행복 유랑자라는 거짓말

욜로, 디지털 노마드를 넘어선 새로운 트렌드는 행복 유랑자가 될 듯하다. 직장, 터전, 친구까지 ‘행복 추구’ 라는 이유로 버리고 옮긴다. 이 유목민들의 우주는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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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포크>의 창립자 네이선 윌리엄스는 한 인터뷰에서 유행할 라이프스타일로 ‘행복 유랑자’를 꼽았다. “삶의 질을 좇아 이곳저곳 떠돌고, 이 일 저 일 옮겨간다. (중략) 어제의 사진가가 오늘의 디자이너가 되고, 내일이면 작
가가 된다. 성취감 없는 일에 자신 있게 ‘No’ 하는 힘을 키운다. 지금 사는 도시가 마음에 안 들면 도시를 바꾸고, 친구가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면 새로운 친 구를 찾아 떠날 것이다.”

멋지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유동적으로 조직하는 것! ‘삶의 주인은 나니까’라고 생각하다가 디지털 노마드의 허상이 떠오른다. 행복 유랑자의 중심 키워드는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일하며 먹고사는 디지털 노마드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해변 아래 맥북을 켜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이미지. 실제라면 맥북이나 본인이나 과부화돼 5분 만에 일어설 거다. 독일의 디지털 노마드족인 얀 지라드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세계를 여행하면서 일도 하겠다는 건 ‘쉣’이다. 인터넷에서 읽은 ‘멋진 디지털 노마드’도 다 거짓말이다. 뭔가 팔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인터넷 강의, 컨퍼런스 티켓, 하다못해 책…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호주로 건너가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시작한 한국 여성, 도유진 씨도 얼마 전에 책을 냈다.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족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원 웨이 티켓>도 만들었다. 그녀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그 사례 중 일부가 ‘자유 상품’ 혹은 ‘라이프스타일 패키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콘텐츠 제작자로서 제2의 유랑을 시작했고, 디지털 노마드족 대부분은 맥북을 든 개발자, 디자이너, 작가, 마케터 등이다. 도유진 씨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이들이 “다시는 출퇴근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가난, 관계, 회사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당연히 디지털 노마드의 결격사유다. 공간만 바뀌었지 이전처럼 기업이나 일상에 종속되니까.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D는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족이 일하는 풍경을 묘사하며 해당 조건을 얘기한다.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 더 칼같이 업무 시간을 정해요.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스위치를 누르죠. 그 분야의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면서 네트워크도 탄탄하죠. 한두 해 해서 얻은 네트워크가 아닙니다. 이들은 한국에 놀러 가거나 여행 가지 않아요. 한국에서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인맥과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코워킹 스페이스를 찾죠.” 디지털 노마드는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 여행이 좋아서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발리에서 ‘좋아하는’ 일 좀 하다가 뒹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디지털 노마드족은 철저한 자기 관리자이자 전문가다(그러니 자신이 디지털 노마드족이라고 떠들어대는 이들 대부분은 노마드가 아니라 부랑자다). 또 굉장한 시대 적응자들이다. 많은 매체와 컨퍼런스는 디지털 노마드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필수’라 얘기한다. 워드프레스 개발사인 오토매틱(Automattic)은 전 직원이 45개국에서 원격 근무를한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1997년 저서에서 처음 쓴 디지털 노마드란 용어는 2010년 인재가 곤궁한 실리콘밸리 기업이 확장시켰고(“뉴욕에서 살아도 좋아, 일만 해준다면”), 이 급속한 파급력만큼이나 금세 미래의 대세가 될 것이다.

문제는 앞서 얘기했듯이 디지털 노마드를 ‘욜로’의 시각으로만 접근한다는 것이다. 확장 개념인 <킨포크> 네이선의 행복 유랑자도 고찰이 필요하다. 유랑을 꿈꾸는 이들과 얘기해보면 모두 ‘행복’이란 단어를 꺼낸다. 하지만 삶이 쉽게 옮겨지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판단은 매번 옳을까? 출근한 지 이틀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헬조선’이란 유행어에 휩싸여 천국으로의 이민을 알아본다.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한다. 인플루언서가 되면 좋아하는 일만 하며 먹고살 거 같다. 가족이나 친구 모두 나를 중심으로 ‘커팅’한다.

나 역시 열렬한 행복 유랑 지원자였다. 우선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자신과 행복을 찾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네이선의 말대로 ‘No’를 외쳤다.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그 외는 카톡을 차단했다. 시공간을 자유롭게 운용하며 모바일 앱 서비스를 만드는 팀 ‘노마드씨’의 애나도 이렇게 얘기한다. “욜로, 노마드, 행복 유랑자 모두 일시적인 트렌드일 수 있죠. 하지만 이들이 갖는 패턴이 있어요. ‘나’에 집중하죠.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애나는 지금 행복 유랑자다. 나는 길고 긴 남미 여행에서 돌아와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패잔병처럼? 맞다. 행복 유랑자가 되지 못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도 안 됐다. 어디서든 정착민이 되어 일상의 노예가 되었다.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참지 않아 많은 관계와 기회를 잃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솔직히 허상에 현혹됐다. 이 땅에 ‘노마드’ , ‘유랑자’는 이미지로만 정착되고, 상품화되어 있다. 어느 정도냐면 페이스북과 네이버 카페에는 벌써 ‘노마드 삶을 위한 강습’이 운영되고 있다. 멤버십에 가입하면 129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