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시 키드의 생애

스시만큼 기본이 중요한 음식이 있을까. 단정한 모습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어른의 맛. 미식 트렌드의 중심에서도 ‘중심’을 잃는 법이 없는 진짜 어른. 스시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화려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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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자 은은한 베이지색을 띤 정갈한 다치가 펼쳐진다. 미소를 띤 셰프 앞에는 베타라 즈케(누룩에 절인 무)와 가리(생강 초절임)를 올린 스시 플레이트가 놓여 있다. 그렇게 자리에 앉으면 셰프가 준비한 오카세 코스가 시작된다. 이렇게 스시를 기다리는 순간,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보통 첫 시작은 쓰마미(스시 전에 내놓는 사시미나 계절 음식) 로 해산물이나 트러플을 넣은 차완무시(계란찜과 비슷한 요리)가 나와 속을 따뜻하게 덥혀주기도 하고, 무시 아와비(전복찜)가 나와 입맛을 돋우기도 하고, 신선한 제철 사시미가 나와 즐거움을 더하기도 한다. 각 메뉴마다 셰프가 친절히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 었는지 설명을 곁들이고, 이어서 윤기가 반들반들한 샤리(초밥에 사용하는 밥) 위에 네타(샤리 위에 올리는 생선이나 조개 등의 재료)를 얹어 유선형의 배가 불 룩한 스시를 쥐어 플레이트 위에 내놓는다.

스시는 참으로 오묘한 음식이다. 네타로 올라가는 생선은 같은 종류라도 시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 보통 산란기 전의 생선을 제철 생선이라고 하지만, 이 제철의 의미가 지역, 시대에 따라 또 다르다. 또 산지에 따라 다양한 맛을 가진다. 어떤 때는 북해도산 우니가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국내산 우니가 우위를 가리기 힘든 맛으로 나타난다. 다치 위의 여러 식재료는 세계 방방곡곡을 오가고, 지역적 제한성 따위는 온데간데 없어 이 요리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같은 생선으로도 셰프의 감각과 기술에 따라 그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감각 있는 셰프는 쓰마미, 스시를 내놓는 순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때때로 캐비아나 트러플 같은 프렌치 음식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하이 브리드 창작 스시를 만들어내 혀를 즐겁게 해준다. 말 하자면, 센스 있는 셰프 장인은 같은 재료로 명품 스시를 탄생시키는가 하면, 때때로 아쉬운 셰프와 재료의 합은 재료가 아까울 정도로 기억에도 남지 않는 ‘그 냥’ 스시를 만들어낸다.

보통 스시라고 생각하면 이 샤리 위에 올라가는 네타가 중요하다고 여기겠지만, 이제 어느 정도 스시를 알 아가는 단계에 들어서면 샤리야말로 스시의 전체 맛을 아우르는 정점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스시 요리사들에게 훌륭한 샤리를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끝없는 숙제라고 한다. 사사니시키나 고시히카리 같은 쌀의 종류, 쌀을 씻는 방법, 물의 양, 온도, 밥에 들어가는 초대리(샤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배합초, ‘아와세즈’라고도 한다) 등에 따라, 밥맛은 천차만별이다. 식재료와 조리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본인만의 샤리 스타일을 완성하고 또 완성된 샤리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 역시 힘들다고 하니 꽤 어려운 요리다. 훌륭한 네타를 그저 그 런 샤리 위에 얹어 내놓으면 오마카세 코스 중간에 집에 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스시 전문가들은 샤리에 유달리 예민하고, 어떤 초를 썼는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내가 워낙 음식에 관심이 많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레스토랑이나 음식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최근 에 어느 지인에게 받은 질문은 “요즘은 어떤 음식이 핫해요?”였다. 요즘 핫한 음식? 우스운 질문일 수 있겠지만, 요즘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스시를 꼽을 것이다. 밀레니엄 즈음의 퓨전 요리에 이어 2000년대 초반의 분자 요리처럼 때에 따라 사람들이 핫하다고 여기는 음식 트렌드가 분명 존재했고, 요즘은 그 자리에 스시가 올라 있다. 물론 스시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서 인기를 끈 음식이다. 번화가에 가보면 고급 일식집과 동네의 작은 회전초밥집 형 태로 존재해왔으나, 최근의 스시 레스토랑은 무언가 이전과 다르다. 이들은 이제 ‘스시야’라는 매력적인 형태로 변모했다. 예전처럼 룸에 앉아 즐기는 식사보다 다치(카운터석)에 앉아 셰프가 바로 앞에서 사시미나 스시를 맛보이는 형태를 선호하게 되었다.

스시야가 레스토랑 업계에서 트렌드가 된 이후 여러 하이엔드 스시야와 수많은 신생 미들급 스시야가 생겨났고, ‘다름’과 ‘핫한 것’을 좇는 세태에 따라, 인스타그램 둘러보기를 보면 어여쁘게 잘 차려입은 힙스터들이 여러 스시야를 해시태그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어느 어느 셰프님, 어느 스시야에 다녀온 것을 찍어 올리는 것이 명품 백을 쇼핑한 후 찍어 올리는 것과 함께 SNS의 한 신으로 늘 등장하고 있다. 스시야에서 식사하는 것이 우아한 고급 컬처로 비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렴, 값 비싼 컬처임에는 논란이 없을 것이다. 서울 시내 유명 한 하이엔드 스시야의 가격대가 디너 타임은 스시 오마카세가 제일 비싼 곳이 34만원 정도니 한 달에 여러 차례 스시를 먹어야 하는 스시 중독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지기가 쉽다.

게다가 때로 일본 유명 스시야의 셰프를 초대해 마련하는 갈라 디너 때는 가격이 좀더 오를 수 있다. 스시 오타쿠들은 이보다 조금 더 나아가 스시의 본고장인 일본으로 날아간다. 이른바 <미쉐린 가이드>에 이름을 올린 유명 스시야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도쿄의 유 명 스시야는 웬만하면 한 달에서 몇 달 후, 심지어 어떤 곳은 1년 치 예약이 완료될 만큼 인기가 많다. 또 어떤 콧대 높은 스시야는 아예 외국인의 예약은 받지 않기에 방문하려면 그곳의 단골인 지인이나 일본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굳이 바다 건너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이제 서울에도 만만치 않은 스 시야가 참 많이 생겼다.

다치에 처음 앉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유년 시절부터 유달리 일식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일식집을 무던히 드나들었지만 그 자리는 어른들의 자리였다. 등만 보이는 어른들이 셰프와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 며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유년의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 선배가 괜찮은 스시야가 있으니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 적 있다. 그리하여 찾은 스시야에서 나는 비로소 그 어른들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 앞의 셰프는 정갈한 손으로 진주같이 빛나는 샤리에 깨끗하게 다듬은 생선을 얹은, 말 그대 로 멋들어진 스시를 쥐어 나에게 순서대로 내놓았고, 입안에 들어온 스시는 하나같이 긴 여운을 남기며 셔벗처럼 녹아내렸다.

맛에 매료된 걸까, 아니면 분위기에 취한 걸까. 난 그 렇게 ‘스시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웬만한 스시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까탈스러운 마니아가 되었다. 어느덧 나는 다치에 앉아 스시를 쥐는 셰프님에게 “오늘 샤리가 정말 좋네요” “오늘 우 니는 북해도산인가요?”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스시 역시 아는 만큼 더 많이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게 뭔가. 만고불변의 진 리로, 즐기며 먹는 음식이 최고다. 보이는 것이 참 중요한 세상이다. 그 갈망이 각자의 입맛까지 바꾸지 않기를.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맛있으면 맛있는 것이고, 내가 맛없으면 맛없는 것이다. 스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