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la Hula

일주일에 한 번 머리에 꽃을 달고 골반을 돌리고 있다. 휴양지에서 돌발행동처럼 시작한 훌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법 같은 춤이었다.

Polynesian Cultural Center Dancer

막연한 이미지만으로 사랑하게 되는 장소가 있다. 나에게는 하와이가 그렇다. ‘이응’이 퐁퐁 튀어 오르는 듯한 우쿨렐레 연주를 들으면 나른하게 잠이 오고, 야자나무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으면 분홍빛 햇살이 온몸 가득 전해오는 것만 같다. 하와이 맥주 ‘빅 웨이브’를 마시면 서핑 보드의 아슬아슬한 시원함이 전해오고, 아사이볼을 먹으면 달콤한 무지개가 떠오른다. 영화 <하와이언 레시피>를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고, 하와이‘풍’ 레스토랑을 다니며 이미지로 하와이를 소비하곤 했다. ‘거지가 되더라도 와이키키 해변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되어야지.’ 나에게 하와이는 어떤 음지도 바삭바삭하게 말려놓았을 것 같은 절대적으로 평화로운 땅이었다.

훌라 강습소에 등록한 건 순전히 요시모토 바나나의 에세이 <꿈꾸는 하와이>에서 읽은 한 문단 때문이었다. “창밖에는 바다가 있고,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돌고래 풀이 바로 옆에 있어 돌고래들의 속삭임도 들려왔고, 시원하고 행복한 바람도 불었다. 훌라를 6년이나 배운 지금은 그 바람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바람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바나나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훌라는 수화 같은 것이다. (중략) 곡에 따라, 또 거기에 등장하는 바람의 모습에 따라 표현 방식이 미묘하게 다른데, 그날 밤바람은 정말 부드럽고 천국 같았다.” 영화 <쉘 위 댄스>에서 야쿠쇼 코지가 사교댄스에 빠져든 첫 순간만큼 강렬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파도가 치고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와이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소비해 온 과거가 조작한 운명이었다.

“마음껏 표현하세요! 가사의 의미를 손동작과 몸짓으로 그려보세요!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을 춤으로 표현해보세요.” 훌라를 배우면서 매주 듣는 말이다. 책 <하와이 훌라>의 설명에 따르면, 다른 무용이 발과 다리에 초점을 맞춰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훌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춤이다. 과거 하와이에는 문자가 없었고 몸짓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훌라는 여느 춤과 달리 기교를 부린다거나 새롭게 동작을 창작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태양을 표현하려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둥근 해 모양을 만들고, 마음을 표현하려면 양손을 가슴에 살포시 모은다. 입맞춤을 표현하려면 두 손을 입술에 댔다가 앞으로 뻗고, 바다를 표현할 때면 손목을 돌리며 물결 모양을 만든다. 세상에서 문자가 다시 사라진다면, 의사소통을 위해 취할 법한 홀가분한 몸짓이다. 세상의 생김새 그리고 우리 마음의 모양과 가장 비슷한 몸짓이다. 영화 <훌라 걸스>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 밤에는 눈을 감고 꿈을 보는 거야”라는 대사가 나왔는데, 훌라는 오히려 눈을 감고도 온몸의 세포를 다해 ‘꿈’을 표현해보는 춤이었다. 하와이의 노래 멜레는 꽃, 바람, 구름, 비, 나무, 파도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수잔 선생님(한국훌라예술교육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대단한 실력자!)은 수업 시간마다 외친다. “태양을 표현할 때 진짜 에너지를 모아보세요!” 에너지를 모은답시고 양팔에 힘을 주면 신기하게도 에너지가 모이는 듯싶고, 손목을 돌리며 파도를 표현할 때면 찰랑찰랑 손 아래 물이 만져지는 것 같다. 특히 훌라의 기본은 살짝 무릎을 굽힌 채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밟는 스텝. 네 박자에 맞춰 골반을 흔들다 보면, 삶에 음표가 톡톡톡 쏟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바닷가의 조개 수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 ‘파도가 그대는 내 것이라고 속삭여요’ 같은 가사를 몸으로 표현하는 일은 정말이지 낯설다. 늘어난 책임으로 일상이 복잡해지면서 마치 부자가 망했을 때 살림살이를 하나씩 갖다 파는 심정으로 수식어 같은 감정은 다 내다 버렸는데 이들을 다시 불러 모아야 하는 것이다. 발레가 일상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근육을 고도로 집중해서 써야 하는 운동이라면, 훌라는 일상생활에서 못 쓰고 있는 감정을 꺼내보는 춤이었다. 훌라를 배우면서 사실 나는 무엇이든 뜨겁게 표현하며 살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환하게 웃으며 훌라를 추는 댄서를 보고 있으면 ‘사랑해’라는 말을 ‘물 좀 주세요’만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사는 사람들의 반짝거리는 얼굴이 떠오른다. 비록 머리에 플루메리아꽃을 달고도 무뚝뚝한 조선 선비 같은 표정을 짓고, 섹스할 때도 사용하지 않은 탓에 녹슬어버린 골반을 삐걱삐걱 돌리고 있지만, 계속 바다와 햇살과 바람을 손으로 그리다 보면 미래에는 무엇이든 좀더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예상 가능하지만 현재 내가 추는 훌라는 엉망이다. 평가할 단계도 못 된다. 손동작과 스텝이 동시에 합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짱구보다도 못 춘다. 하지만 “좀더 열심히 연습하세요(한숨)” 같은 조언이랄지, 한심함을 견디다 못해 불쑥 튀어나오는 사천왕 같은 표정을 만나본 적이 없다. ‘또’ 틀려서 멋쩍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수잔 선생님은 “지난주보다 나아지면 된 거예요!” “눈에 힘을 주고 웃어보세요! 우리가 언제 웃겠어요!” 활기차게 외친다. 배를 내밀고 구부정하게 굳어 있는 등을 펴주며 “여기서는 좀더 잘난 척하기로 해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고수들
과 초보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수업을 받는데 이곳에서는 시기, 질투, 무시가 없다. 배려와 관용과 겸손의 알로하 정신이여! 수강생은 백발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모두 재야의 고수들이다. 평소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지내다가 머리핀을 꽂고 파우 스커트만 입으면 훌라의 고수로 돌변한다. 훌라를 추는 할머니들은 정말이지 대지를 품은 여신 같다. 수업 중간중간 그녀들은 새로 나온 꽃핀에 대해, 파우 스커트 무늬의 예쁨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강남역 뒷골목 훌라 강습소는 전쟁이 난 줄도 몰랐던 영화 속 동막골 같다.

휴양지에서 돌발행동처럼 시작했지만 지금 나의 훌라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꾸준히 삶에서 목적 없는 행동을 줄여왔는데 완전히 반대되는 지점에 있다. 훌라를 추는 시간,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옷을 입고 평소라면 절대 웃지 않았을 지점에 웃는다. 이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이미지로만 꿈꾸던 하와이라는 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훌라를 추는 나는 평소보다 온화하다. 알로하라는 단어를 말할 때면 입안에서 빨간 열매가 도르르 굴러가는 것만 같다. 어쩌면 완벽하게 낯선 상황에 들어가 감정을 느끼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다 보면 퇴근길 바람에서도 낙원을 느낄 수 있겠지. 수잔 선생님은 이달 말 강남역 한복판에서 훌라 플래시몹을 해보자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거기까진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직 하와이를 사랑하는 단꿈에서 깨어날 준비 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