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운동장

모마에서 피필로티 리스트의 작품 아래 요가를 하고, 메트 미술관에서 퍼포먼스 아티스트와 춤을 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요가와 러닝, 댄스가 이뤄졌다. 요즘은 운동도 예술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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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튜디오에서의 단체 요가를 즐기지 못한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수업에 참여한 내가 급작스레 온화한 움직임의  세계로 진입하기 쉽지 않다. 요가복 사이로 비집고 나온 셀룰라이트도 신경 쓰여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다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지루함과 불편함에 1개월을 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경우가 여러 번이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우연히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설치 미술 공원의 요가 클래스에 참여하게 됐다.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은 이스트리버 강가를 낀 예쁜 공원에 설치 미술가들의 전시를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데, 최근까지 자메이카 출신의 나리 워드(Nari Ward) 작품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말 아침에 요가 클래스가 열린다. 조각상과 설치 작품 사이로 알아서 자리를 잡고 자신이 준비해온 요가 매트만 펼치면 눈앞으로는 맨해튼의 멋진 건물이 보이고, 때로는 이스트리버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오고 가며(심지어 소크라테스 조각공원에서 수업을 주최하기도 한다), 옆으로는 웅장한 설치 작품이 보이고, 뒤로는 공원을 뛰어 다니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태극권을 배울 수도 있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왔던 관객은 뜻하지 않은 태극권 수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다. 9월 초부터는 브라질 카포에이라 초급 과정이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요가 대신으로 각광받는 추세인 데다, 야외라는 미술공원의 특성상 쌀쌀해지는 가을에 더 땀을 흘릴 수 있는 스포츠를 선택한 것 같다.

이곳만은 아니다. 브루클린 뮤지엄은 몇 년 전부터 ‘Art of Yoga’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웅장한 3층 홀에서 주말 아침 요가 클래스가 열리는데, 예약 인원이 워낙 많아 언제나 드넓은 홀 안이 꽉 찰 정도다. 때로는 유명 DJ가 요가를 위한 음악을 직접 플레이하고, 요즘에는 클래식 밴드가 직접 라이브를 연주해, 이 역사적인 미술관이 음악홀로, 요가원으로 변모한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매주 수요일 저녁 폐장 전 요가를 위한 공간으로 야외 조각 가든을 오픈하고, 대서양 건너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역시 존 마데스키 가든에서 ‘Yoga and Coffee Morning’이라는 요가 세션을 마련하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뉴욕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미술관 요가 클래스는 2008년 11월에서 2009년 2월 사이 모마에서 열린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의 전시 <Put Your Body Out>이다. 아름다운 멀티미디어 설치 작품이 넓은 아트리움을 꽉 채웠고, 전시의 마지막 날, 이 공간에서 요가 클래스를 진행해 작품과 관객이 인터랙티브한 소통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이 요가 클래스는 관객의 움직임과 미술 작품 그리고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연결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흥미롭게 지켜본 액티브 웨어 브랜드 ‘롤(Lolë)’은 뮤지엄 요가 월드 투어를 기획했다. 2014년 ‘Lolë White Tour’는 뉴욕 모마를 비롯, 몬트리올 순수미술 박물관,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등을 돌았다.

실제로 요가와 미술 관람은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미술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관람객들은 회랑을 천천히 걷고, 작품 앞에서 생각에 잠기며,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래서 미술관의 정적과 고요함 사이로 우리는 관람객과 작품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말없이 이를 함께 즐긴다. 요가 역시 운동이라기보다는 실제로 몸과 정신의 에너지를 이해하는 활동이다. 요가 클래스를 지켜보면 실제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주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관과 요가의 만남은 지극히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술관이 요가, 태극권, 카포에이라처럼 ‘도’에 가까운 운동과 명상만 끌어안은 것은 아니다. 이제 미술관은 ‘순수예술’이라는 성역을 허물고 더 다이내믹한 예술 체험을 선보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벤트 ‘The Museum Workout’은 그저 미술관 홀이나 가든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미술관 곳곳에서 적극적인 퍼포먼스를 유도하는 이벤트다. 보통 한 달에 4~5번 정도 열리는데 티켓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시퀸 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댄서(Monica Bill Barnes & Company)가 관객들과 라이브 퍼포먼스를 함께 하면서 미술관 곳곳을 돈다. 모타운 스타일의 댄스음악이 흥겹게 울려 퍼지고, 중간중간 작품을 설명하는 내레이션도 흘러나온다. 미술관 개장 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칠 염려도 없다. 메트로폴리탄에서는 이 운동을 아예 ‘라이브 아트’로 분류해 관객을 잠시나마 아티스트로 대접한다. 인터랙티브한 공연이 끝나면,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도 이러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나이키와 함께한 ‘서머 오브 아트 & 스포츠’에는, 경복궁이 보이는 옥상에서 댄스 클래스, 전시장 내에서 요가 클래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경복궁, 청와대 앞길을 달리는 5km 러닝 코스 등 다양한 체험을 했다. 미술관 개장 전이나 후에 이루어지는 뉴욕의 요가 세션과 달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시간에 요가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는 점도 신선했다. 요가 클래스에 참여한 한 친구는 “전시 관람객과 요가 하는 사람 사이의 긴장감,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대형 설치 작품이 시각적으로나 심적으로 환기를 불러일으켰다”고 이야기했다. 소문에 따르면 소격동 국제갤러리에도 곧 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거라고 한다.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새로운 미술관 체험일까, 혹은 운동을 색다르게 체험하는 것일까. 그러나 조각 공원 잔디에 누워 요가를 하고 나서는 무엇이든 어떠랴 싶었다. 이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 찬 공간에서 운동을 하고 나서 바라보는 아티스트의 작품은 어쩐지 새로웠다. 작가의 의중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불쑥 생겼다는 말이 아니다. 요가 매트 사이로 올라오던 잔디의 풀 내음이 작품에서 느껴졌다. 10대 소녀처럼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채 작품을 바라보는 친구의 얼굴이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