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Women In Motion

2017.10.18

by VOGUE

    Women In Motion

    최근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 하우스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이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런 현상은 지금껏 남자들이 주도한 패션계에 계속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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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WOMEN AT THE TOP (왼쪽부터)가브리엘 샤넬, 클레어 웨이트 켈러, 나타샤 램지 레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미우치아 프라다, 부크라 자라, 줄리 드 리브랑.

    여자 디자이너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원인은 쉽게 알 수 있다. 실용적인 유행의 창작자인 여자 디자이너들은 우선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들이 옷 입는 방법을 생각한다. 반면 남자 디자이너들은 환상적 이미지를 떠올리며 비현실적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최근 패션 회사에서 디렉터를 비롯한 중요한 자리에 여자들이 진출하는 것은 아직 압도적이진 않으나 우리는 여기에 부정적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디올에서 저를 임명한 사실에 대해 당신처럼 저도 굉장히 놀랐어요.” 2016년부터 디올 아트 디렉터로 지명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디올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이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죠. 저는 패션 트렌드와 여자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제 위치 때문에 패션계에서 남녀평등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순간이 왔다고 판단했어요.” 그녀가 디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사실은 패션계의 질서에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왜 이렇게 ‘소수의’ 여자들만 패션 회사의 책임 있는 지위에 오르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랑방은 2016년 부크라 자라를 채용했고, 1년 후 끌로에에서는 나타샤 램지 레비, 그리고 지방시에선 클레어 웨이트 켈러를 최고 디렉터로 임명했다.

    프랑스어에서 ‘꾸뛰리에(Couturier)’라는 단어는 남성명사와 여성명사가 같은 뜻을 갖지 않는다. 남성명사는 디자이너와 같이 창작하는 사람이란뜻이고, 여성형인 ‘꾸뛰리에르(Couturière)’는 생산을 위해 재단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구분은 17세기 말 루이 14세 재위 시절 창작하는 재단사라는 직업이 생겼을 때 당시 위계질서와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하지만 패션 역사를 봤을 때 귀족 작위를 받은 여자들도 세상에 나왔다. 잔 파캥(Jeanne Paquin), 칼로(Callot) 네 자매, 그리고 레이디 더프 고든(Lady Duff Gordon)이라고도 불린 루실(Lucile).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살아난 레이디 더프는 혼자 살아남은 것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오늘날처럼 포즈를 취하며 스테이지를 걷는 패션쇼를 처음으로 구상했다. 루실은 패션쇼 중 소개되는 모델을 직접 호명하며 진행했을 뿐 아니라 연주된 오케스트라 음악까지도 직접 소개하는 등 디테일한 모든 작업을 수행했다.

    다음 세대 여자 디자이너들은 더 예리해졌다. 잔느 랑방, 마들렌 비오네, 가브리엘 샤넬,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실용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우아함을 살렸다. 이들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샤넬은 옷을 만들었고, 랑방은 장식에 눈을 돌렸고, 스키아파렐리는 패션 퍼레이드에 집중했고, 비오네는 한층 세련미를 더했다. 모두 각자의 소신을 명백히 표현했다. 마들렌 비오네는 단호하게 말했다.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꿈이 아니라 옷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56년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에서 프랑수아즈 지루(Françoise Giroud)는 코코 샤넬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우리는 늘 꿈의 드레스를 떠올리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다음엔 부수고, 물어뜯고, 내던져버려야 합니다. 절대 기존 방법으로 되돌아가선 안 됩니다.” 그리고 58년 <엘르>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저는 여자에게 이 시대에 맞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실용적인 드레스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한편 엘자 스키아파렐리는 그녀의 자서전 <Shocking Life>에서 실용성을 더 강조했다.

    “드레스는 벽에 걸린 화보나 오랜 시간 보관된 책과는 다릅니다. 입지 않으면 드레스는 생명을 지녔다고 볼 수 없죠. 드레스는 사람들이 입음으로써 생명을 부여받습니다. 또 때에 따라 그 존재감이 커져 옷이 지닌 아름다움을 칭송받기도 하고, 반대로 갑자기 사라지기도 합니다.” 최고 연장자인 잔느 랑방은 이렇게 덧붙였다. “상상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상상력은 먼저 우리가 상상한 것의 결점을 찾는 데 쓰여야 해요. 하나씩 지워가며 만들어야 합니다.” 유명 디자이너 폴 푸아레의 사무실에는 ‘마담’이란 단어만 새겨져 있다. 그는 “여성이 유행을 창조한다”고 말하며 패션계에 일고 있는 여성 파워를 부각시켰다.

    60년대부터 저항적이고 보수에 반대하는 시대정신이 등장했다. 그런 사회적 영향을 받아 여성 스타일리스트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구체제 위계질서를 반대하며 아침, 점심, 저녁, 연회 시간에 따라 맞춰 입는 전통적 여성 의상을 거부했다. 여자들은 단순한 생활을 원했고, 여자를 대상화하는 사회적 지위를 거부하고자 했다. 나아가 남자와 동등한 사회 활동과 참여를 주장했고 페미니즘 규범이 정착되길 원했다.

    엠마누엘 칸(Emmanuelle Khanh), 크리스티앙 바일리(Christiane Bailly), 미셸 로시에(Michèle Rosier), 소니아 리키엘(Sonia Rykiel)은 기성복 디자인에 있어 분야와 직책을 넘어 늘 톱클래스에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한 옷이 없었습니다. 중년 여성을 위한 옷이 거의 전부였지요.” 반세기가 넘게 <엘르> <마리끌레르> 등 프랑스 패션 잡지 편집장을 지낸 클로드 브루에(Claude Brouet)는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브루에는 특히 50년대 <엘르>에 고급 기성복 사설 코너를 만들었다). “남자 디자이너들의 일방적 결정 때문에 유행을 따르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고 뭔가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70년대 초반부터 주변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클로드 브루에는 “자기 자신이 되어라! 각자 마음에 들고 어울리는 것을 유행으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여성은 저마다 선택의 자유를 원했죠. 틀에 갇히는 것을 원하지않았어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2017년 2월에 작고한 엠마누엘 칸도 돈과 특권에서 벗어나 가장 대중적 시각을 지녔다. “소수의 여자들을 위한 오뜨 꾸뛰르에 반기를 들었어요. 그것은 사실 나의 삶과 관계가 없었죠.” 미셸 로시에(2017년 4월 별세)도 65년<Dim Dam Dom>이란 방송 프로그램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렇게 언급했다. “구시대 재단사는 화려한 마차 제작자 같아요. 반면 기성복 디자이너들은 벌써 달에서 입을 옷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늘 과거와 싸우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일터를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으로 만든다. 아이디어와 표현 그리고 의상을 위한 거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소니아 리키엘도 이에 강하게 공감을 표현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적극적으로 항상 사회적 슬로건이 적힌 스웨터를 만들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유행과 풍조는 시계추처럼 박자를 탄다. 80년대는 대중의 지지와 <The Show Must Go on>과 같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룩’에 대한 복고풍이 형성됐다. 사람들은 유행을 타기 전에 한번 일종의 볼거리가 되기를 원한 것이다. 그 후로 패션은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와해되길 바라던 극도로 물신화된 여성성을 초월한 흔적을 찾아 찬양하는 것이 됐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남성 창작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아이러니가 있다면, 최근 10년은 동성애 감각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꿈꾸던 초월적 여성화가 패션계에 확산된 사실이다. 장 폴 고티에, 티에리 뮈글러, 클로드 몬타나, 아제딘 알라이아가 주도하던 시기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미우치아 프라다, 레이 가와쿠보, 이렇게 세 명의 여성 디자이너만 고군분투했다. 이들은 동성애적 시각이나 남자 디자이너들이 지닌 과도한 성적 시각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하고 지적이고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의 창조를 위해 실천적이거나 실용적인 페미니즘 투쟁을 포기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수십 년 동안 사회 저항적 경향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기괴할 뿐 아니라 선동적이고 반역적인 펑크 룩에 자신의 팔다리를 찍어 디자인했다. 80년대 정형화된 스타일을 벗어난 미우치아 프라다는 비타협적이고 자유롭고 대담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공산주의 성향으로 보이는) 정치적 신념, 현대 예술과의 친밀성 그리고 여성성의 끊임없는 표현은 그녀의 지적이며 격식 없고 비판적인 스타일과 직접 연결돼 있다. 일본인 레이 가와쿠보는 여자의 에로틱화된 미적 감각을 탈피한 저항성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매우 엄정한 형식 추구와 그것을 상쇄하는 탈핵 의식으로 무장한 가와쿠보는 순수하고 견고한 개념적 담론을 제시한다. 서구 전통주의 가치에 반대하여 가끔은 난해한 작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80년대는 누벨바그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정말 다양한 디자이너들을 탄생시키는 유행 창조의 흐름을 탔습니다. 레이 가와쿠보와 미우치아 프라다가 그 예입니다.” 1991년 <Women of Fashion>을 출간한 뉴욕 FIT 뮤지엄 큐레이터 발레리 스틸은 그 시대를 이렇게 분석했다.

    2017년으로 돌아와보자.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바로 재능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동등하게 창조적 디자이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드레스를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남자 디자이너는 드레스를 상상하지만, 저는 드레스 입은 여자를 상상합니다. 바로 여기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시각의 출발점이 다릅니다. 저는 여자에 대한 관념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죠.”

    여자 디자이너는 여자와 옷이란 근본적 관계를 디자인을 위한 태생적 재료로 지니고 있다. 여성이란 점은 디자인을 위해서 장점이 되지만, 사회적 시각으로 봤을 때는 사회 차별의 피해자라는 단점 또한 안고 있다. 그렇게 봤을 때 여자 디자이너들의 진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의상 컨설턴트 장 자크 피카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자들은 패션에 대해 사람들이 입어야 한다는 실용적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들의 창조적 표현력은 늘 남자들의 그것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는 허구적 상상력을 동원하지만 여자는 자연적으로 그들의 가슴, 허리 등이 드레스와 어떻게 어울리는지 한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부크라 자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 디자이너와 남자 디자이너의 차이점은, 여자는 드레스를 늘 직접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변하거나 퇴색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성 디자이너는 바로 몸속에 있습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루이 비통에서 훈련받은 줄리드 리브랑(현 소니아 리키엘의 디자인 디렉터)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유명 패션 회사에서 가졌던 특별한 경험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균형 잡힌 모습을 구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적 경험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야 가능한 일이죠. 예술과 창작은 굉장히 흥미롭지만, 제가 만드는 이 드레스를 입고 다닐 수 있을지 제 자신에게 물어보는 순간이 생깁니다.”

    한 가지 중요한 예외가 있다. 에르메스에서 조만간 30년 경력에 도달하는 베로니크 니차니안은 남성 패션을 작업하는 유일한 여자 디자이너다. “여자를 위해 옷을 만드는 남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 있습니까? 여자옷 대부분을 남자 디자이너들이 고안하는데, 반대로 남성복을 여자가 만드는 것이 왜 무례하게 느껴질까요? 특히 에르메스 전 CEO 장 루이 뒤마는 미래를 내다봤죠. 그 시대에 에르메스와 같은 큰 회사에서 남성복 디자인을 젊은 여성 디자이너에게 맡겼다는 사실은 매우 현대적이고 대담한 결정이었어요.” 베로니크는 또 다른 차이점을 언급했다. “여성은 화려한 치장을 위해 옷을 만들지 않습니다. 과장되지 않고 굉장히 실용적인 데다, 지능적이며 섹시하고 효율적으로 구상합니다. 매우 신중하죠. 아마 여자의 시선이 남자의 시선보다 더 부드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남자의 시선은 경쟁적이고 힘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죠.” 마틴 싯봉은 또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여자는 옷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좀더 감각적이며, 여성을 변화 시키지 않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르메스 여성복 디자인 디렉터 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도 이와 같은 의견이다.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입니다.”

    부크라 자라는 동성애 감각의 옷을 떠올렸다. “(동성애 경향의) 남자 디자이너들은 여자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저는 동성애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매우 좋아합니다. 굉장히 아름답죠. 생 로랑이나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엄청난 업적을 이룬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 편견에서 벗어나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여자 디자이너들의 성공적 진출 원인을 과연 경제 위기와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을까? 줄리 드 리브랑은 남자들이 대부분 경영 분야로 이동하는 것이 업계 경향이라고 인정한다. “제가 디자인 디렉터지만, 회사 경영은 대부분 남자가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남자 파트너와 일해야 합니다. 비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업계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남자가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자는 원칙을 중요시하고, 여자는 실용성을 중요시할까? 셀린의 디자인 디렉터 피비 파일로가 이렇게 대답한다. “여자는 자신들이 입는 옷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는 자신이 선택하는 건 어떤 것이라도 입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회사에서 ‘남을 위해 입지 말고 자신을 위해 입으라’고 말합니다.”

      PAMELA GOLBIN
      일러스트레이터
      STEPHANE M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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