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is the Warmest Color

패션계가 사랑하는 아티스트 도널드 로버트슨이 자신의 베이스캠프를 뉴욕에서 LA로 옮겼다. 온통 파란색으로 가득한 ‘블루 하우스’에서는 누구도 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아티스트 도널드 로버트슨이 YCH의 2017 F/W 드레스에 유머러스한 터치를 더했다. 컬러풀한 테이프와 기다란 몸매의 패션 일러스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아티스트 도널드 로버트슨이 YCH의 2017 F/W 드레스에 유머러스한 터치를 더했다. 컬러풀한 테이프와 기다란 몸매의 패션 일러스트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20세기 최고 아티스트의 이름을 21세기 아티스트가 별명으로 가진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작업을 지나치게 베꼈거나 둘째, 그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녔거나. LA에서 다섯 아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도널드 로버트슨(Donald Robertson)은 후자에 속하며 현재 ‘인스타그램계의 앤디 워홀’로 불린다. 스스로를 상업 작가로 부르는 그는 자신의 작업물을 파는 걸 개의치 않는다. 학생 시절부터 배고픈 아티스트는 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네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은 너무 크고 말랐어. 다시 그려”라는 말을 듣던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키 크고 마른 사람들’이 미의 기준이 된 패션계로 진입했다. 그리고 콘데나스트, 허스트 등 상업 잡지의 메카인 뉴욕에서 아트 디렉터로 10여 년 넘게 일하며 뷰티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던 몇 년 전 도널드는 번뜩이는 일러스트 작업으로 패션 피플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큰 관심을 받았다. 반창고, 덕 테이프 등 기성품을 재조합하는가 하면,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오브제로 창조한 것. 마침 주변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화끈하고 민첩한 그의 성격과 환상의 시너지를 냈다. 20만 팔로어를 거느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뉴욕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또 다른 성공의 기회를 찾아 LA로 건너간 것이다. <보그>가 최근 자신의 첫 책 <Donald>를 출간한 도널드를 그의 새집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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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스타그램 아티스트(@drawbertson)로 유명세를 떨친 당신이 책을 낸 이유는 뭔가?
A 늘 책을 내고 싶었다. 아주 크고 두꺼운 커피 테이블 북으로! 그래서오래전부터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두꺼운 책의 표지에 그림을 그린 뒤 ‘Donald’라고 이름을 썼으며, 심지어 그 책을 팔기도 했다. 당시에는 이 방법이 ‘내 책’을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으니까. 그때 내가 팔던 책 중 애슐린 출판사의 책이 있었는데 애슐린 담당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나한테 다른 사람의 책 위에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두라고 하더니, ‘내 책’을 만드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진짜요? 애슐린에서 책을 만들자고요?’였다. 이번 책에서도 커버에 장난을 좀 쳤다. 사실 최종 커버 후보가 두 가지였는데, 아내와 의견이 갈렸다. 출판사 아트 디렉터가 “아내의 말을 들으라”고 조언했지만, 내가 굽히지 않자 아트 디렉터는 기지를 발휘했다. 커버를 양면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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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의 주요 작업실인 차고에서 라이브 페인팅이 진행됐다.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즉흥 페인팅에 능한 그는 순식간에 흰 드레스를 빼곡히 채웠다. 집 전체를 파란색으로 칠했지만, 집 곳곳에선 무지갯빛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Q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딸 드루(Drue)가 당신을 인터뷰한 부분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물을 수 있는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예를 들면 “첫 가제본이 나왔을 때 울지 않았나” 같은 질문 말이다.
A 처음에 출판사에서 제안한 인터뷰어는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미 이 책에는 유명 인사들의 추천사가 있다. 그래서 완전 반대는 어떨까 생각했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하는 인터뷰가 진짜니까. 큰딸은 나에게 처음 인스타그램을 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Q 이 책에는 당신의 모든 작업이 망라돼 있다. 호두를 얼굴 삼아 패션 피플들을 표현한 ‘Fashion is Nuts’ 프로젝트, 줄지어 늘어선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입술 시리즈 등등. 다른 작가들처럼 특정 주제나 시기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런 구성에 이유가 있나?
A 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고 한 분야를 전문화하지 않으면 유명 작가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모든 걸 하고 싶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모두가 하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고 규칙을 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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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을 발췌한다면?
A ‘철들지 않기’. 내겐 세 살, 열세 살 난 아들이 있다. 두 아들에게 마커와 종이를 쥐여주면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열세 살짜리 아들은 이렇게 그리면 똑똑해 보일지, 쿨할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세 살짜리 아들은? “우~~~” 하면서 거침없이 그린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술을 느긋하게 가지고 노는 것. 걱정 없이!

Q 지난날을 돌이켜볼 때 제일 기억에 남는 작업은 뭔가?
A 하루는 버그도프 굿맨에서 팝업 행사를 하는데 어떤 소녀가 옷 더미와 가방을 들고 와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난 “그래요” 하면서 그림을 그려줬다. 소녀는 고맙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다음 날 인스타그램에 난리가 났다. 가수 비욘세가 전날 내가 ‘앨리스앤올리비아’와 협업해 팔던 셔츠에, 가방을 든 사진이 찍힌 거다.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비욘세 스타일리스트였다. 솔직히 말하면 난 누가 내 작업을 비욘세 옷에 합성한 줄 알았다. 그때의 경험은 정말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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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보그 코리아>와의 인연도 꽤 오래됐다. 컬렉션 부록 커버 작업부터, 20주년 선물이었던 MCM 클러치까지. <보그>라는 클라이언트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A 음, <보그>와의 작업은 정말 ‘구체적’이다. 처음에 엄청나게 세세한 가이드를 주는가 하면,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 간의 간격까지 좁혀달라고 할 정도니까. 나는 에스티 로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브랜드를 아시아 마켓에 다시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한국 마켓을 잘 알고, 뷰티와 패션계에서 <보그>가 지닌 중요성도 잘 인지하고 있다. 작업실 이사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때를 제외하면, 이제까지 <보그>의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다. 얼마를 부르더라도 한다. 그리고 빨리! 지금은 그야말로 친구 같은 존재다. 이번 책에 <보그 코리아> 편집장의 추천사도 들어가 있다. 곧 한국에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찾아갈 예정이다.

Q 당신은 현재 에스티 로더 그룹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무엇보다 뷰티 브랜드에 집중하는 이유는 뭔가?
A 내 이력에서 가장 결정적 기회는 프란시스 해서웨이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조언이었다. 돈이 떨어져 미국에서 고향 토론토로 돌아가야 했을 때 “집에 가면 이 남자들한테 전화해봐요. 메이크업 브랜드를 론칭할 사람들인데 당신 작업을 좋아할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들은 M.A.C의 창업자들이었고 나는 브랜드 전속 작가로 계약하며 페이스 차트 그림을 그리는 것을 비롯, 여러 캠페인의 아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이제까지 뷰티계에 몸담고 있다. 패션계에 비해 뷰티계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일단 나는 굶주리는 아티스트보다는 오히려 성공한 아티스트이고 싶다. 아이가 다섯 명이나 되고, 지불해야 할 고지서는 많다. 대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조차 이렇게 말한다. “뷰티계에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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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운동선수용 선크림을 개발하면 되지 않겠나?
A 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어쨌든 나에게 뷰티는 곧 성공을 의미하고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뉴욕에서 LA로 집을 옮긴 것도 LA를 기반으로 하는 뷰티 브랜드 ‘스매시박스’ 론칭 때문이었다. 사실 뉴욕에 있을 때 LA에서 뷰티계가 뜰 거라는 걸 누구보다 빨리 직감했다.

Q 당신이 영감을 받고 좋아하는 패션 아이콘의 공통점이 있나?
A 변하지 않는 캐릭터가 있다는 사실이다. 시시때때로 변신하는 레이디 가가보다 시그니처 캐릭터
를 지닌 인물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멋진 아이리스 아펠, 나의 첫 뉴욕 아트 쇼를 관장한 카린 로이펠트, 자신의 세계를 똑똑하게 확장하는 제레미 스캇 등등. 책에 등장한 패션 아이콘은 내 친구들이기도 하다.

Q 누군가는 당신을 ‘인스타그램계의 앤디 워홀’이라고 부른다. 동의하나?
A 일정 부분 동의한다. 워홀은 나처럼 뉴욕에서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던 중 팝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현명하고 계산적인 결정이었다. 또 기존 규칙을 깼다.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공통점 또한 있다. 아, 머리카락도 둘 다 하얗다.

도널드가 YCH의 드레스에 자신의 아이코닉한 입술을 그려 넣었다. 다섯 아이와 함께 사는 도널드의 집에는 각종 장난감이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건 튜브 브랜드 펀보이(Funboy)와 협업한 알록달록한 인어 꼬리, 유니콘 모양 튜브.

도널드가 YCH의 드레스에 자신의 아이코닉한 입술을 그려 넣었다. 다섯 아이와 함께 사는 도널드의 집에는 각종 장난감이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은 건 튜브 브랜드 펀보이(Funboy)와 협업한 알록달록한 인어 꼬리, 유니콘 모양 튜브.

Q 디지털 시대를 사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소셜 미디어가 주는 단점도 있을까?
A 전혀! 지금 내가 참여하는 ‘글램글로우’ 프로젝트를 위해 어느 소녀가 암스테르담에서 할리우드까지 와 있다. 그녀의 작업은 인스타그램에서 찾았다. 과거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보여줘야 했다. 지금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Q 당신이 예술가의 삶을 살도록 만든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A 할아버지. 나는 캐나다의 아주 작고 보수적인 마을에 살았다. 열 살 때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도널드, 그림을 그리는 건 좋아. 하지만 ‘아이디어’를 그려야 해.”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할아버지 이름도 도널드라는 것이다. 책 제목에 가장 실망한 사람은 우리 어머니다. 하지만 난 그냥 책의 이름이 ‘도널드’라는 게 끔찍한 동시에 쿨하다고 생각한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