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on of Emotion

예지원은 “무용이 없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무용가는 아니지만 몸의 움직임을 탐구해온 예인이다. 서울무용영화제의 홍보대사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검정 원피스는 닐 바렛, 귀고리는 페르테(X Te), 반지는 이자벨라 에뚜.

검정 원피스는 닐 바렛, 귀고리는 페르테(X Te), 반지는 이자벨라 에뚜.

예지원은 오는 11월 3~5일 처음으로 열리는 서울무용영화제의 홍보대사가 되었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보그>를 만났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대중교통을 타고 온 그녀는 다양한 다른 경험을 이야기했다. 아마추어 프리 다이버 대회의 출전을 권유받았고, 프리 다이빙만큼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하며, 지인들과 수중 촬영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아쉬탕가 요가를 하고, 앞집에 유명한 현대무용가가 살았는데 이사 갔고, 무용단과 유랑 여행을 떠나고, 무슨 배역이든 사람들이 슬랩스틱을 기대한다는 등. “이 얘기를 왜 하냐고요? 제 인생에 무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니까요.” 댄스 필름, 무용을 주제로 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는 서울무용영화제에 그녀가 홍보대사직을 수락한 이유도 하나다. “주제가 무용이니까요.”

최근에도 러시아 무용수들의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예지원은 영화제 라인업 중에 피나 바우쉬의 다큐멘터리 <댄싱 드림즈>를 찾아 볼 예정이다. 무용을 접해본적 없는 10대들이 피나 바우쉬를 처음 만나 그녀의 대표작인 <콘탁트호프>를 공연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예지원은 무용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기적을 보고 싶어 했다. 그녀가 인생을 살아온 방법이기도 하다.

원피스는 닐 바렛(Neil Barrett), 반지는 이자벨라 에뚜(Isabella Etou).

원피스는 닐 바렛(Neil Barrett), 반지는 이자벨라 에뚜(Isabella Etou).

예지원은 열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하고, 국악예술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다양한 무용을 배우고 있다. 발레 개인 교습을 받던 중 연극 <홍도>를 하며 한국무용을 다시 배우고, 그를 바탕으로 프랑스에서 열린 포럼 데지마주의 한국영화제 무대에서 살풀이를 선보였다.

예지원의 배우 인생도 무용에 기반한다. 우리에게 예지원이란 배우의 정체성을 보여준 강력한 한 방은 홍상수 감독의 2002년 작 <생활의 발견>에서 머쓱해하지 않고 춤추던 장면이 아니던가. (관객은 조금 머쓱해졌지만 그것은 감독이 의도한 바라 생각한다.) 매일 아침 그날의 대본을 주는 홍상수 감독이 이례적으로 예지원에게 미리 춤을 부탁해 탄생한 장면이다. “홍상수 감독님은 배우 인터뷰를 정말 많이 하세요. 한번은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 춤추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더군요. 제 꿈이거든요. 영화 <라빠르망>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뱅상 카셀 앞에서 춤추던 장면처럼요. 덕분에 영화에 캐스팅됐고, 그 장면이 만들어졌죠.” 그 후에도 영화나 드라마, 연극 연출가들은 다른 배우보다 자신에게 유독 ‘움직임’에 대한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했다. 예지원은 그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답했다. 최근작 <또 오해영>에서 머리를 풀어 헤친 박수경의 슬랩스틱만 봐도 그렇다. “무용에 대한 열정과 경험은 연기에 큰 도움을 줬죠. 예를 들어 넘어지는 장면에서 저는 정말 넘어져요. 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손동작, 표정 하나에도 움직임을 넣으려 하고요. 저는 무용가가 아니잖아요. 배우로서 전체적인 느낌을 읽고 그 안에서 아름답게 움
직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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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원은 무용가가 아니다. 하지만 무용을 했고, 무용으로 무대에도 서며, 누구보다 무용을 사랑하는 배우이자 예인이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무용가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다. “현대무용가인 안애순 선생님과 <세븐+1: 복수는 가슴 아픈 것>이란 작품을 했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각본을 쓰시고, 배우인 제가 참여하는 공연이었죠. 출연하는 무용가들의 격렬한 춤을 본 뒤 감히 나서지 않고 내레이션으로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죠. 물론 연습은 하루도 빼놓지 않았어요. 조금 더 가까이 그들을 보고 싶었거든요. 수십 년 동안 무용만 한, 할 사람들을 코앞에서 보면 말문을 잊죠. 늘 무용가를 존경하고 곁에서 함께하고 싶어요.” 그녀는 안애순을 비롯해 많은 무용가들과 가족처럼 지낸다. 그들의 거의 모든 공연을 보고, 심지어는 해외 공연도 따라간다. 그날도 예지원은 예술의 전당에서 무용 공연을 보고 뒤풀이에 갔다. 그때 이틀 뒤에 안애순 무용단이 이탈리아와 몰타로 해외 공연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이탈리아행 티켓을 끊었다. “제가 이틀 만에 이탈리아 국내선까지 스케줄 맞춰서 항공권을 예매하자 놀라던데요. 숙박, 차비 모두 자비를 들여서 따라다녔어요. 사실 저라는 깍두기를 데리고 다녀준 것도 고맙죠. 국내에선 무용을 자주 접해 느낌을 알지만, 해외에선 어떤 식으로 공연을 하는지, 우리 무용단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현지에서 매일 같은 공연을 보고, 무용수들이 몸을 풀 때 옷을 갈아입고 같이 스트레칭을 했다. “나중엔 외국 관계자가 저 여자는 누구냐고 수근대요.(웃음) 매니저나 단장 아니냐고요.” 남는 시간에는 이탈리아의 극장을 둘러보고, 해외 무용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버스로 이동할 때는 기타를 메고 샹송을 불렀다.

블라우스와 코르셋은 노케(Nohke), 바지는 아르하(Arha), 구두는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반지는 페르테(X Te).

블라우스와 코르셋은 노케(Nohke), 바지는 아르하(Arha), 구두는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반지는 페르테(X Te).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무용 교육은 러시아, 뉴욕, 프랑스 등에 못 미치죠. 그럼에도 굉장히 뛰어난 실력자들이 수두룩해요. 해외에서 수상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들이 지금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연하고, 알려졌으면 해요.” 예지원은 무용가들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품 <춤이 말하다>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발레리노이자 작품 <돈키호테>에서 늘 주역을 맡던 분이 있어요. 눈을 감고도 하던 작품의 동작인데, 어느 날 갑자기 할 수가 없더래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눈물이 흘렀어요. 저는 무용가는 아니지만 무용을 사랑하고 해온 입장이라 공감이 갔거든요.” 예지원은 꾸준히 몸을 움직일뿐더러 그에 대한 학술적인 관심도 많다. 어린 시절 무용을 할 때부터 몸이 정신보다 똑똑함을 체득했기 때문이라고. <몸의 미학> <부드러운 움직임의 길을 찾아> 등과 같은 책을 즐겨 읽고, 자신의 출연한 프로그램 <비밀 독서단>에는 ‘내 인생의 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몇몇 무용가에게도 추천했는데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책이더라고요. 저는 어떻겠어요. 하지만 무용을 해봤기에 이해되고 깨닫는 무언가가 있어서 재밌어요. 사실 제 몸은 이미 알고있는 내용이겠죠. 무용을 하면 세포 하나하나까지 살아나며 몸이 얘기를 하거든요. 그땐 신께 감사드려요. 감사합니다. Thank you God, mon dieu merci beaucoup(신이여, 고맙습니다)!”

예지원은 무용 공연뿐 아니라, 무용을 영화나 영상에 세련되게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처럼. 영화의 앞뒤는 피나 바우쉬의 무용 작품이 여닫는다. “그 영화에는 무용이 아름답게 녹아 있어요. 예술이 삶인 그들에겐 그러한 편집이 자연스러운 거죠. 이제 우리도 예술영화, 저예산 영화에서 충분히 무용을 아름답게 차용할 수 있다고 봐요. 무용에 대한 이해와, 이를 영상에 담는 법에 대해 아시는 분이 참여해야겠죠. 그런 영화가 제작된다면 추천할 현대무용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