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피, 땀, 눈물

운동 없이 매일 0.5kg씩 살이 빠지고 아이큐가 20이나 올라간다는 ‘방탄 커피’ 다이어트. 이거 실화냐? 아니면 신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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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주변 건강 얼리어댑터들의 8할은 ‘방탄 커피’라 불리는 버터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선일보> 송혜진기자가 그중 한 명이다. “실리콘밸리의 IT 재벌이자 바이오해커, 데이브 아스프리가 쓴 <최강의 식사>를 읽었어요. 거기 등장하는 버터 커피 때문에 요즘 아이허브가 난리래요.” 그녀는 즉시 실험에 돌입했고 결과는 모두가 알아볼정도의 슬림한 턱선으로 나타났다. 일주일 만에 3kg를 감량했는데 그중 체지방이 1.8kg이다. 상품 디자이너 김혜정 씨도 버터 커피 예찬론자. 이것저것 안 해본 다이어트, 안 먹어본 약이 없는 그녀가 “이제 방탄 커피에 정착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난생처음 식욕 억제제 없이 ‘내려놓음’의 미학을 체험했어요. 머릿속에서 누군가 명령을 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이제 그만 숟가락 내려놔’ 라고요.” 누구보다 방탄 커피에 몰두하는 건 VIP와 셀럽 뷰티 컨설턴트 안미선 이사. 체중계와 전쟁을 치르는 연습생과 연예인은 물론 죽어도 살이 안 빠지는 저주받은 체질의 사람들에게 체험하게 해보니 예외 없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질 좋은 커피와 목초만 먹인 소의 우유로 만든 무염 버터 그리고 MCT 오일(혹은 코코넛 오일)을 믹서에 돌려 만드는 레시피, 그 핵심은 ‘재료의 질’에 있기에 요즘은 커피콩 선별에까지 나서고 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지 겨우 1년. 수많은 의료인과 영양학자들에게 공격받고 결국 신화로 분류된 작년의 ‘지방’과 이건 좀 다를까? 직접 도전해보기로 했다.

10. 18. 생체 에너지 폭발
커피콩 37g에 물 237ml로 내린 따끈한 커피, 무염버터 2큰술과 MCT 오일 2큰술을 넣고 믹서에 돌렸다. 비주얼은 카푸치노, 맛은 부드러운 라테. 커피의 풍미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분 좋은 출발이다. 반응은 바로 느껴졌다. 손발이 뜨끈하고 배도 따뜻해 출근길 가을 날씨가 봄처럼 느껴진다. 업무에 돌입하는 9시 반, 기운이 뻗치다 못해 하이퍼 상태가 됐다. 마치 ADHD에 걸린 사람처럼 부산하고 여러 일에 동시에 집중하려 들며 동분서주!

책에 쓰인 대로 오후 1시까진 전혀 공복감이 들지 않았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 밥을 먹으러 간 것은 2시 즈음. 좋은 단백질과 많은 야채를 먹으라기에 혼자 돼지고기 편백찜을 먹으러 갔다. 평소보다 많은 일을 해서 여유가 생긴 데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뿌듯했다. 8시쯤 삼계탕 2/3 그릇을 먹었다. 점심과 저녁 사이의 공백이 6~8시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고 가이드 받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분주히 보내서였을까? 평소 가벼운 불면증이 있는 데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는데 이날은 11시쯤 쓰러지듯 잠들어 한 번도 깨지 않았다.

10. 19. 부기 없는 나날의 서막
기쁘지만 불안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체중은 0.3kg 줄었지만, 장 상태가 심상치 않다. 아침에만 화장실에 세 번이나 갔다. 변상태가 나쁘지 않은 게 더 이상하다. 오늘은 목요일. 외부 미팅도 많고 론칭 행사에도 참석해야 하는데 괜찮을까? 그러고 보니 송 기자는 첫날 약한 복통과 함께 화장실 출입이 잦았다 했다. 출근길에 안미선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슷한 시기에 방탄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도전자 11명 중 이런 경우가 또 있었느냐는 질문에 “정도는 다르지만 많이 겪는 증상”이라며 함께 오일의 양을 좀 줄여보라는 답장이 도착했다. 좋은 건 저녁이 될수록 바지가 헐거워진다는 점. 화장실을 들락이며 탈수가 일어난 건 아닐까? 제발 부기 없는 나날의 서막이길.

10. 21. 친절한 ◯◯씨
언젠가 인생 BGM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은 ‘불협화음’. 의욕과 체력의 불균형이 평생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약골인데 사람을 많이 만나며 에너지를 뿜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진 터라 5시가 되면 이미 방전 상태가 된다. 저녁 모임은 대부분 불참. 이러다 결혼식에 아무도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가장 미안한 건 가족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목석같이 굴 수밖에 없는 하루하루, 내 인생의 3도 화음은 언제 쌓일 것인가.

도전 4일째. 체중이 0.3kg 추가로 줄었다. MCT 오일을 한 스푼으로 줄이고 버터의 양도 좀 덜어냈더니 배 속은 안정됐고, 지나치게 혈기 넘치던 에너지 역시 적당히 조절이 된다. 커피를 더 맛있게 먹는 요령도 생겼다.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거나 자일리톨 덩어리를 설탕 삼아 넣었더니 바닥이 보이는 게 아쉬울 정도 혀에 착착 감긴다. 어차피 뻗치는 힘, 한두 정거장 정도 걷는 건 일도 아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미루지 않는다. 수다가 늘어나자 기획안도 늘어난다. 커피 만들랴, 기름기 도는 설거지하랴, 매일 30분씩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잠을 푹 자서인지 피곤하지 않다.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건 가족에게도 친절한 사람이 됐다는 것. 내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이제야 운전대를 잡은 기분이다.

10. 23. 가짜 방탄 커피
비혼녀들을 위한 MBN 라이프스타일 프로그램에 방탄 커피가 등장했다. 슈퍼주니어 신동이 종이에 걸러 내린 커피에 마가린을 듬뿍 떠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마시길 권하자 배우 최여진이 질겁한다. 기름이 둥둥 뜬 짝퉁 방탄 커피를 마신 그녀가 이내 김치를 찾는다. 쯧쯧. 방탄 커피의 완전한 패착이 딱 저거구나. 원 레시피에 따르면 질 좋은 커피 기름을 마시려면 절대 종이에 걸러선 안 된다(프렌치 프레스나 금속 필터를 권한다). 또한 풍부한 폴리페놀 과 카페인을 공급할 만큼 상급의 커피인지 검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마가린은 대표 트랜스 지방! 우리의 뇌와 호르몬, 세포벽은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어, 저질 지방을 먹으면 인테리어와 아웃테리어 모두 쓰레기가 된다. 또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믹서에 넣고 돌리는 이유는 지방을 미셀화시켜 흡수를 돕기 위함으로, 데이브는 이 과정을 생략하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밝혔다. 마지막은 쇼의 패널로 동석한 의사의 일침. “아직 갑론을박이 있고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위험천만한 방법이에요.” 이쯤 해서 전문가를 만나봐야겠다.

10. 29. 실화냐, 신화냐
에너지 상승, 집중력 강화, 숙면 그리고 체지방 1.1kg 감소(참고로 시작 당시 나는 161cm에 51.3kg의 ‘적당한’ 체격이었다). 지난 2주간의 생활 변화를 기록한 리스트를 들고 항노화병원 더 클리닉 김명신 원장을 찾아갔다. “지방은 파워풀한 에너지원이니 힘이 났을 거예요. 식단 일기를 보니 긍정적 포인트도 발견돼요. 확실히 식사량이 줄었고, 밀가루를 덜 먹는군요. 의식 한 건가요?” 맞다. 방탄 다이어트는 탄수화물 섭취를 저항 녹말의 형태로 저녁에만 섭취하게 하는데 정확히 지키지 못할 상황일지라도 ‘이러면 안 되지’라는 무의식적 방어막이 가동됐다. 게다가 ‘방탄 다이어트’는 매일 간헐적 단식을 시킨다. 밤부터 다음 날 점심때까지는 커피 이외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소화기를 쉬게 하고 몸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좋은 휴식이죠.” 종합해보니 비타민 D가 풍부한 포화지방, 무염 버터 두 조각은 기름기가 적은 한식을 과식하던 원래의 내 식습관에 윤활제가 된 것 같다. 김 원장은 좋은 지방이 공복과 포만을 느끼는 호르몬의 감수성을 좋게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단, 지방 커피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기본적으로 학계의 정설에 도전하고 있어요.” 데이브는 지방이 이롭고 심혈관계 질환과도 무관하다는 연구를 찾아 제시하고 있지만 그 반대를 증명하는 논문이 여전히 더 많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WE 클리닉 조애경 원장도 우려를 표한다. “워낙 고지방 다이어트가 초기 감량이 빨라요. 하지만 유지 역시 어렵죠. 몸에 무리가 가기도 하고요”라며 말하며 단 1회의 고지방식도 지방간이나 혈관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덧붙인다. 포화지방은 총열량의 8% 이하로 먹어야 하는데 이 커피 마시고 휘핑크림 들어간 라테를 추가로 먹는다면 재난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영국 영양사협회가 ‘올해 따라하지 말아야 할 저명인사 다이어트 리스트’에 방탄 다이어트를 올려놓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술과 가공식품 섭취를 최소화한다는 점은 높이 사지만 데이브가 ‘바이 오해킹’한 식품의 등급과 분류는 일반적인 건강 가이드와는 대치되며 심지어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실리콘밸리의 천재가 75만 달러를 들여, 자신의 피와 대변까지 분석해 증명한 다이어트법. 몸의 염증 지수를 낮추고, 장내 날씬 균을 증식시키며, 계속해서 지방을 태우게 되는 효율적인 몸 만들기의 과학적 근거, <최강의 식사>를 재독하며 혼란에 빠졌다.

11. 7. 이론과 현실
식단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식사나 정중한 미팅 자리에서 나만 단백질을 찾아댈 수 없었던 이유도 있고, 실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와 냉면 앞에 굴복했다. 혹독한 감기에 걸린 탓도 있다. 야외 촬영장에서도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하며 무리한 탓이다. 약을 먹기 위해 뜨끈한 죽과 보양식을 세끼 꼬박 챙겨 먹었더니 체중은 하루 만에 0.5kg 늘었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강한 몸이 된다더니 1년 6개월 동안 걸리지 않았던 감기에 걸려 골골대는 꼴이라니. ‘짧은 수면만으로도 활력이 넘치고 최소한의 운동만으로도 살이 빠지는 완전무결한 상태’를 일컫는 ‘방탄’ , 혹시 이 단어는 수분 크림 앞에 붙는 ‘48시간의 촉촉함’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촉촉함이 과학적으로 증명은 되었으되, 사실 현실에서 그걸 사용하는 우리는 결국 12시간이 되기 전에 세안을 하고 새로운 수분 크림을 덧바른다. 좋은 크림을 썼지만 세수 못하고 잠든 다음 날엔 뾰루지가 나는 것 처럼, 방탄 커피 하나가 체중을 줄이고, 머리를 좋게 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11. 13. 다이어트의 모순
배우 셰일린 우들리는 토크쇼에서 “이건 인생을 바꿀 커피”라고 말했다. 방탄 커피를 마신 지 27일째, 나는 그녀의 말에 80% 동의한다. 에너지 레벨이 높고, 식욕 통제가 쉬워졌으며, 살이 빠졌다. 방탄 커피는 무엇이든 막아낸다는 방패를 쥔 듯 내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동시에 내 주변에는 뭐든 뚫어내는 창 역시 즐비함을 깨달았다. 국수를 좋아하는 식성, 급한 성격,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등 방심하면 나는 즉시 앓아눕고 살이 찐다. 우리 모두는 방법적 ‘모’와 이와 상충되는 본능의 ‘순’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갖고 싶다면 평생 ‘모’로 ‘순’을 통제하며 살아야 하며 치트 키는 없다.

커피는 거들 뿐, 신화를 실화로 만드는 건 자신이다. 데이브 아스프리가 티베트인들의 힘의 원천, 야크버터차에서 영감을 얻어 방탄 커피를 고안한 것처럼 우리 역시 버터와 카페인의 도움을 얻어 내게 맞는 삶의 방식과 건강을 발견해내는 수밖에. 가장 필요한 건 과유불급의 교훈과 꾸준함이다. “과연 이 커피가 3년은 갈까요? 새로운 형태의 무엇인가가 또 나타나겠죠. 기자님이 매 시즌 내게 새로운 다이어트법을 물어오는 게 증거잖아요?” 조애경 원장은 우리가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길 권했다. 100세 시대에 마른 몸만 추구하는 건 근시안적 발상이며 근감소증, 골다공증에 대비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니 제발 고루 먹고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말이다. 아, 다이어트는 역시 도돌이표, ‘피, 땀, 눈물’뿐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