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od Earth of Ruby

전 세계 미술계에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을 선사한 남자. 만약 로스앤젤레스에 만연한 자유로운 에너지가 바닥난다 해도, 예술적 기운으로 가득 찬 스털링 루비의 스튜디오에서는 실험과 사유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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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작업실은 우주의 출발점 같은 곳이다. 삶과 예술, 시간과 공간의 경계이자 그 모든 것이 현실화되는 공간. LA 외곽의 버넌(Vernon) 지역, 이 광활한 도시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아티스트 스튜디오라 알려진 것치고는 꽤 아담한 출입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기까지, 수없이 스털링 루비(Sterling Ruby)의 작업실을 상상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 정육 포장 업체 ‘Farmer John’의 기다란 벽을 메운 그로테스크한(인간들과 다정하게 농장에서 뛰놀던 돼지가 바로 옆에서는 훈제 고기가 되어 걸려 있다) 그림을 봤고, 레미콘과 크레인 등 각종 건설 장비를 목격했으며, 개발 중에 방치된 듯한 황량한 공터를 지나쳤다. 무국적의 적막한 산업지대 한가운데 위치한 스털링 루비의 스튜디오는, 그의 제타바이트급 예술적 활약을 떠올려보자면 더욱 흥미로운 부조화를 자아낸다. 그리고 그 기묘함은 외벽으로는 가늠할 수도 없는 압도적인 크기의 스튜디오 공간, 자그마치 3만6,000평(12만㎡)이라는 규모로 더욱 배가되었다. ‘LA에 가면 스털링 루비처럼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의 주인공이 만든 평화롭고 견고하며 질서 정연한 자치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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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LA 시내와 가깝긴 하지만, LA는 또 아니에요. 주말에는 분위기가 아주 이상하죠. 우리가 여기 처음 왔을 땐 이 근처에 90가구 정도의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한 200가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우린 다운타운에서 북쪽에 위치한 마운트 워싱턴에 살고 있어요.” 스털링 루비는 <보그> 팀과 함께 넓은 스튜디오를 걸으면서 말했다. 그는 가깝게는 6~8개의 전시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고 있거나 앞두고 있고(가고시안 단체전인 전, 디올의 역사를 복기하는 전, 독일 브레멘에서 열리는 전, 마이애미 바젤 기간에 열리는 드 라 크루즈 컬렉션의 전 등), 멀게는 2018년에 예정된 댈러스의 국립 미술관 전시 및 2019년 마이애미 ICA를 위한 작업을 지금 하고 있다. “대부분 새로운 전시 공간에 맞춰서 작품을 새롭게 제작해요. 그래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죠. 캘빈 클라인과의 작업에 비하면 말이에요. 느리고, 좋아요.” 화이트 티셔츠에 화이트 진, 그리고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위장한 화이트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이 멋진 아티스트가 웃었다. 젠틀하고 따뜻해 보이는 수줍은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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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루비를 전 세계에 알린 훌륭한 전시도 많지만,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은 그에게 ‘좋은 작가’라는 평에 ‘스타’의 광채를 확실히 씌웠다. 그가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와 나눈 건 펑크 음악에 대한 애정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의기투합은 예술과 패션의 협업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철학적이며 지속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 최고의 사례로 기억된다. 스털링 루비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얼룩덜룩한 블리치(표백) 패턴이 디올의 드레스 혹은 데님 컬렉션이 되어 런웨이를 걸을 때, 그가 디자인한 캘빈 클라인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탄생했을 때, 패션계는 미니멈과 맥시멈의 간극을 자유롭게 오가는 스털링 루비의 남다른 스타일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정작 그는 매일 아침 “이런 명성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주술을 외우기라도 하는 듯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예술가로서 옷을 만들고 매장을 디자인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옷을 만드는 거나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거나 내겐 똑같다”고 말하는 건 예술계와 패션계 모두의 지지를 잃지 않겠다는 욕심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옷을 만드는 것이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반드시 좋거나 나빠야 하는 이유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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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루비에게 패션과의 협업은 예술 세계에서 통용되던 아티스트의 언어, 철학, 사유를 패션을 매개로 세상과 공유하는 작업이다. 동시에 패션계와 예술계, 각각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질서, 규칙, 구조 등에 전혀 따를 생각이 없다는 의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의 이러한 독자적인 시선은 패션을 예술과 동일한 가치의 대상으로 승격시킨다. 패션계가 그를 아껴야 하는 진짜 이유다.
독일 태생이지만 평생 미국에서 자란 스털링 루비는 유럽 출신 디자이너의 충실한 통역자가 되어 가장 미국적인 브랜드인 캘빈 클라인을 동시대적으로 해석한다.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 아르 데코 스타일의 건물에 문을 연 캘빈 클라인 플래그십 스토어 곳곳에 걸린 미국적 요소는 시각적 경험으로 연결되고, 이는 곧 브랜드의 물리적인 정체성으로 각인된다. 노란색 빛을 발산하는 플래그십 스토어의 전경이나 속옷을 입고 있는 모델이 거대한 태피스트리 ‘Flag(4791)’ 앞에 서 있는 광고 캠페인을 볼 때마다 그의 존재가 이 브랜드의 변화는 물론 새로운 미래를 미리 축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수십 년 전 캘빈 클라인이 엘스워스 캘리와 함께 추상화 같은 결과물을 내어놓은 협업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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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지 2년 정도 되었다는 이 대형 스튜디오는 메인 빌딩을 중심으로 세 개의 위성 빌딩, 그리고 빌딩만큼이나 넓은 공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은 각각 세라믹, 텍스타일, 콜라주 작업 등 일의 종류에 따라 효율적으로 나뉜다. 모든 공간에 스털링 루비의 과거와 현재를 나타내고 가까운 미래에 곧 세상에 선보일 작품이 효율적으로 포진해 있기 때문에, 모두를 놀라게 할 비밀 프로젝트를 몰래 훔쳐본 듯한 일종의 자부심마저 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걷던 중 거대한 반 타원형의 철근 구조를 발견했다.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폐기 직전의 미국 잠수함을 수거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한참을 관찰한 후 스튜디오 마당에 들여놓았다고 했던, 바로 그 쇳덩어리의 잔재들이다. 그 이외에도 출처조차 알 수 없는 다양한 재료가 가득 쌓여 있다. 그러나 이곳은 기계의 무덤이 아니라 작품의 요람이며, 다채로운 재료가 자라나는 풍요로운 대지다. 페인팅, 도자기, 조각, 콜라주, 드로잉, 직물 등의 재료와 기법은 미적 연관성을 가지며, 이것은 스털링 루비의 인장이 된다. 예술계에서조차 ‘생산적’이지 못하면 주목받기 어려운 요즘, 그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세상을 누비는 고고학자를 자처하며 예술 작품의 가치를 부여한다. 고급 예술과 공예의 경계를 무너뜨린 바우하우스의 후예답게 말이다. 물론 스털링 루비는 어떤 물질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고 실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는 가끔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너무 많은 재료에 둘러싸여 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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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리처럼 보이는 우레탄에 염료를 흘려 넣는 기술을 구현하기가 매우 힘들었다는 신작 ‘Acts/Survival Horror’ 시리즈 앞에 그를 앉히고는 사진 촬영을 했다.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몇 가지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그가 펜실베이니아 시골 농장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그는 자신이 펑크와 스케이트 문화를 발판 삼아 그렇게 벗어나고자 했던 시골의 정서에 받은 것이 많다고 종종 말했다.) 기초적인 미술 교육을 받던 그가 우연히 쉬머의 책 를 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그는 이 책이 자신을 현대미술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가 팝아트나 추상 작품 대신 아미시(기독교의 일파로,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현재도 엄격한 규율에 따라 옛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퀼트를 먼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아미시 이불은 스털링 루비의 첫 예술적 경험이다.) 그가 나이브한 LA 대신 치열한 뉴욕으로 갔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정교한 날것’의 느낌은 이 도시와 잘 어울린다.) 그의 어머니가 재봉틀을 선물하지 않았고, 그가 10년 동안 직접 옷을 만들어 입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그래도 라프 시몬스와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었을까?) 독창성을 담보하기 위해 스스로를 역사 혹은 예술계에서 떼어내고자 기를 쓰는 다른 현대미술가와는 달리, 스털링 루비의 예술 작업은 자전적이다. 그가 유난히 예술과 패션, 재료와 장르, 시간의 흐름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 것도 이 굳건한 연결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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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스털링 루비의 작품을 만나는 기회가 그리 흔한 건 아니다. 2013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꽤 많은 기자들이 몰려든 전시장에서 그는 도자기 작품을 소개하며 “나는 LA의 그래피티와 갱 사인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광장 앞에 설치된 작품 ‘Stoves’를 비롯한 그의 작품은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그해 테마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의 난로는 제레미 델러의 회화 ‘문어’를 뒤로한 채 실제로 활활 불을 피웠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 초대 받아 간 LA의 이름난 컬렉터인 클리포드 아인스타인(Clifford Einstein)의 집 거실에는 스털링 루비의 거대한 블리치 패턴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그 앞에 놓인 키키 스미스의 사람 형상 조각 작품을 빨아 당기는 듯했다.

어디에 있든, 스털링 루비의 작품은 매우 다중적이며 분열적인 감상을 이끌어낸다. 현실의 가장 깊은 부분을 직접 건드리는 듯하면서도 현실을 초월하는 몽환적인 느낌, 자연의 일부를 차용한 듯하면서도 연금술로 모든 것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개념적이고,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이며, 추상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양극의 성향. 인간성 상실의 문제부터 사회 정치적인 이슈까지, 작품의 메시지조차 종잡을 수 없이 다채로운 스털링 루비의 작품 세계는 현대미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복잡한 메커니즘을 기꺼이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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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앞을 가로질러 갔다. “티나예요. 몇 마리 더 있어요. 우리 스튜디오에는 온통 검은 고양이투성이거든요. 직원들이 많이 데려왔고, 집도 많이 찾아주었어요. 밖에서 일할 때마다 티나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녀가 여기에 서서 저를 바라보죠. 그리고 내가 일어나면 막 갸르릉 소리를 내요.” 스튜디오 스태프들 역시 티나만큼이나 조용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우 정확하게, 매우 자율적으로, 매우 자연스럽게, 일종의 생태계처럼. 온화하지만 낯을 많이 가리고, 음악을 좋아하되 파티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며, 오프닝 파티나 갈라 디너 같은 자리로부터 스스로를 최대한 보호할 것이 뻔한 이 예술가는 이 생태계에 은신한 채 미친 듯 몰두하고 사유하며 작업한다. 자신의 캐릭터와 딱 맞게 진화하는 듯한 이 유기체적인 공간은 스털링 루비의 삶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자신의 송곳니를 닮은 드라큘라 모양의 사인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한 스털링 루비는 다시 스태프들과 업무를 시작했다. 스튜디오를 나와서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스털링 루비가 꽂은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깃발처럼 나부끼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뉴욕 타임스>의 예술 비평가 로버타 스미스(Roberta Smith)가 말한바, “스털링 루비는 이번 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라는 평을 이젠 업데이트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음을 깨끗이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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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매우 좋아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인지, 스튜디오에서는 항상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스튜디오에서 듣기에 특히 좋은 음악이 있나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1년 동안 스튜디오에 음악을 틀어둔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조용한 분위기에서 작업하는 게 좋더군요. 대신 출퇴근 시간에 차에서는 늘 음악을 듣습니다. 이번 주에는 빌 올컷(Bill Orcutt)의 신보와 데드(Dead)의 ‘Blues for Allah’,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Lust for Life’, 푸시 갤로어(Pussy Galore)의 ‘Right Now!’, 존 케일(John Cale)의 ‘Artificial Intelligence’, 바운티 킬러(Bounty Killer)의 ‘Poor People’s Governor 92-96’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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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당신이 정의하는 가장 ‘미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요?
아메리카는 혼란과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마치 궁지에 몰린 뱀 같아요. 단지 빠르게 쇠퇴하는 상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아티스트에게 스튜디오란 단순히 ‘작업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곳인가요?
아주 사적인 공간이죠. 생각을 하기 위한 공간이자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기 전 의자에 앉아 작업하는 공간이에요. 방문객들이 이따금씩(오늘처럼) 찾아오긴 하지만, 나는 더 좋은 장소로 그들을 초대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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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풍요로움과 결핍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나요?
나는 LA가 그냥 좋아요. 도심과 교외, 풍요와 결핍 모두.

최근 더욱 본격화된 LA 아트 신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이 궁금합니다. 당신 스스로의 역할을 포함해서 말이죠.
LA에 산 지 이제 15년이 넘었어요. LA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후, 다른 어떤 곳에서도 살아본 적 없지요. 이곳을 집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인구밀도가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것 이외에는 도시가 그간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견이 없군요. 그만큼 난 LA에 완전히 속해서 살고 있어요.

한국의 예술계뿐 아니라 패션계 사람들도 당신의 작품이라고 하면 일단 믿고 봅니다. 그것이 미술계에서의 업적 때문인지, 패션계에서의 활약 때문인지는 모르지만요. 이런 평가, 어떤가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저로선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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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옷을 만드는 것의 차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당신이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화이트 큐브에 걸린 블리치 회화와 그 패턴을 이용한 데님 컬렉션 모두를 만든 예술가가 실감하는 차이는 무엇인가요?
내가 만드는 것이 옷이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그것에 어떤 위계도 두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옷을 만드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아티스트의 관점에서는 둘 다 중요합니다. 물론 얘기한 대로 바우하우스 운동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행위는 이미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워홀은 그림을 그렸지만, 필름도 제작했지요. 라우센버그는 콤바인 작업을 하면서 세트 디자인 작업도 했고요.

Flag(4791), 2014, Bleached and dyed canvas, denim and elastic, 443.2×871.2cm(Inv# 4791), Photo by Robert Wedemeyer.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Flag(4791), 2014, Bleached and dyed canvas, denim and elastic,
443.2×871.2cm(Inv# 4791), Photo by Robert Wedemeyer.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캘빈 클라인과의 협업을 통해 미국을 칭송하는 대신 비판하는 예술가로서의 시각이 상업적인 아이템이나 공간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정작 당신은 무엇을 느꼈나요?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에 대한 나의 사려 깊은 반영과 그 결과물이 캘빈 클라인에 대한 앞으로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건 미국 회사 대부분이 참여하기를 꺼리는, 자기비판적인 역할이에요. 나에게는 문화적 책임이 정치적 책임과 동등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징적인 회사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자리 잡기를 희망합니다.

패션과의 협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본인의 스타일이나 방식이 있나요?
새로운 테크닉이나 스타일에 대해서는 배운 게 없습니다. 단지 속도만 필요했을 뿐이죠.

‘브랜드를 대표하는 것’과 ‘브랜드가 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려운 질문이군요. 브랜드를 대표하는 것은 궁극적인 개념보다는 다소 부차적인 반면, 브랜드가 되는 건 보다 주체적, 자주적이라는 의미 아닐까요? 가끔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죠.

The Jungle, 2016, Steel, paint, bronze, wood and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Inv# 6208), Photo by Timo Ohler. Courtesy of Sprüth Magers

The Jungle, 2016, Steel, paint, bronze, wood and mixed media, Dimensions variable(Inv# 6208), Photo by Timo Ohler. Courtesy of Sprüth Magers

예술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아미시 퀼트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런 직물 이외에도 당신이 다루는 재료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 다채로운 재료와 매체 중 본래의 성향이나 기질과 가장 잘 맞는 걸 고르라면 무엇일까요?
나의 성격이 변화하듯이, 특별하게 선호하는 작업 방법에 대한 욕구도 변하기 때문에 특정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을 두진 않습니다. 아미시 퀼트는 분명 노스탤지어를 자극합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들죠. 아트에 대한 개념과 시각을 정립하기 전에 아미시 퀼트에서 비주얼의 강한 파워를 느꼈습니다. 퀼트는 내게 많은 걸 대변해요. 과거와 현재, 형식주의와 기교…

Basin Theology/STYX BOAT, 2017, Ceramic, 66×116.8×188cm(Inv# 6451), Photo by Robert Wedemeyer.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Basin Theology/STYX BOAT, 2017, Ceramic, 66×116.8×188cm(Inv# 6451), Photo by Robert Wedemeyer. Courtesy of Sterling Ruby Studio

어떤 재료가 달라진다는 건 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짐을 의미하고, 그 작업을 하는 예술가의 행위 자체가 다른 패턴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매번 매체를 달리하는 것이 스스로의 행위를 바꾸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맞습니다. 꽤 자주 그런 경험을 하지요. 하지만 그건 나의 미친(Manic) 성격 때문일 겁니다. 나는 그런 점이 물질이나 육체적인 것에 저항하는 정신적 변화로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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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인터뷰어로 초대받아 에드 루샤를 인터뷰한 칼럼을 봤습니다. LA를 대표하는 두 작가의 존재감이 느껴져서 매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일은 어떻게 성사된 건가요?
그가 날 선택한 걸로 알고 있어요. 에드 루샤는 LA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어요. 그는 LA가 어떻게 시작했는지, 지금은 어떤지를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제 생각에 그는 지금 그 어떤 때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LA에 에드 루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는 가끔 이 스튜디오에 오기도 한답니다.

언젠가 당신이 LA의 아티스트로서 그런 인터뷰를 할 기회를 가진다면, 누가 당신의 인터뷰어가 되길 희망하나요?
저도 에드를 고를 것 같은데요.(웃음) 그는 꽤 좋은 후보예요. 그는 25세든, 70세든 상관없이 항상 쿨해요. 크리스 버든처럼 항상 재미있고 좋은 친구도 좋고, 낸시 루빈스처럼 도전적인 작품을 하는 사람들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