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에 걸린 거미줄

북유럽발 슈퍼 베스트셀러〈밀레니엄〉 트릴로지를 잇는 신작이 나왔다. 작가를 둘러싼 가족 잔혹사와 전작의 거대한 존재감은 이 불세출의 시리즈에 영원을 종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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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소설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읽는 내내 아주 고전적인 질문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진품’의 아우라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8,000만 부 이상 팔렸던 슈퍼 베스트셀러 <밀레니엄> 트릴로지(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 2권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 3권 ‘벌집을 발로 찬 소녀’)는 저자 스티그 라르손의 소유인가, 아니면 그 시리즈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 이들의 충성에 보답할 수 있는 유동적인 세계인가? 스티그 라르손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다른 작가가 시리즈 4권으로 이어나간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밀레니엄>의 세계 속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진품’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는 게 맞을까?

잘 알려졌다시피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의 유명 언론인이었다. 스웨덴 내의 반민주주의자와 극우파와 네오 나치에 대한 뛰어난 전문가였으며, 그들의 가장 거대한 적이었다. 계간지 <엑스포>(소설 속 잡지 <밀레니엄>의 모델)의 편집장으로 평생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운 열렬한 투사였다. 그런 그가 추리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었다(오랜 친구들조차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밀레니엄>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좀 다른 종류의 플롯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는다는 것은 탐사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풀어가는 엄청난 수수께끼에 빠져드는 것과 동시에, 우리에게는 그동안 아름답고 정갈하게만 비치던 스웨덴의 추악한 현대사를 목도하는 경험이다. 짜릿한 재미와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동반하는 독서다.

라르손은 3권까지 집필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지 얼마 안 되어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불과 50세의 나이였다. 원래 10권을 목표로 집필했고, 4권(가제는 ‘신의 복수’였다)은 절반 조금 넘는 초안이 작성된 상태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라르손에게는 32년 동안 함께한 파트너 에바 가브리엘손이 있었다. 건축가이자 액티비스트이며 번역가이기도 한 에바는 그의 평생의 사랑이자 동료였으며, 몇몇 작업의 공저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도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라르손의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에바는 ‘아무도 아닌 사람’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이것이야말로 <밀레니엄>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악습 중 하나가 그대로 현실화된 상황이다). 스웨덴의 법은 결혼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 그 어떤 사후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대신 스티그 라르손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아버지 엘란드와 형 요아심이 스티그 라르손의 저작물 지적 재산권을 차지했다. 그들은 스티그 라르손 재단을 독차지했고 에바에게 <밀레니엄> 시리즈 4권의 초안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양측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되었고 에바는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결국 아버지와 형은 대필 작가를 기용하여 시리즈를 이어나가겠다고 결심했다. 그 답이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였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적어도 껄끄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라르손처럼 기자 출신인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는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트릴로지를 꼼꼼하게 탐구했고, 자신이 그 세계관과 주요 캐릭터의 특징을 숙지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서야 신중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이야기는 3권 ‘벌집을 발로 찬 소녀’가 종료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시작된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또다시 자취를 감춰버렸고, 미카엘은 자신에게 찬양과 질투를 동시에 바치는 수많은 이들로부터의 입방아에, 또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종이 잡지 산업의 급박한 몰락의 한복판에서 <밀레니엄>의 불안한 입지 때문에 지쳐가는 슬럼프에 빠져 있다. 그러다가 세계적인 컴퓨터공학자 프란스 발데르의 살인 사건을 통해 거대한 규모의 IT계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여기에는 리스베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새로운 인물, 전작에서 잠깐씩 언급만 되던 리스베트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 카밀라가 끔찍한 피바람을 몰고 온다.

이야기는 술술 잘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만일, 이게 아니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멈출 수는 없었다. 에바 가브리엘손이 간직하고 있는 스티그 라르손의 ‘신의 복수’ 원고는 어땠을까? ‘신의 복수’에도 카밀라가 등장한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스티그가 생각한 카밀라와 다비드가 묘사한 카밀라는 어떻게 다를까?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주인공의 이름이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아니었다면, 북유럽발 인기 스릴러의 최신작 단행본으로 소개되었더라도 사실 무방하다.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밀레니엄> 시리즈에 꽤 잘 녹아들어 있지만, 굳이 <밀레니엄> 세계관이 아니었더라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밀레니엄> 세계가, 굳이 어떤 영웅 사가처럼 끝없이 반복되고 재해석되며 생명력을 이어가는 세계로 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니까 마블이나 DC의 세계관처럼 말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괴물은 200여 년 동안 인류의 상상력을 사로잡으며 무수한 이들의 손끝에서 계속 변이되었다. 하지만 메리 셸리가 쓴 원작 <프랑켄슈타인>과 이후의 재해석 작품을 나란히 놓진 않는다. <밀레니엄> 시리즈에는 그 같은 위치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시리즈가 너무나 인기 있었고, 두 번이나 영화화되면서 미카엘과 리스베트라는 캐릭터가 고유명사처럼 여겨진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강제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라게르크란츠의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2015년 처음 발표된 이래 600만 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두 권을 더 써서 시리즈를 6권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5권 ‘눈에는 눈으로 갚아주는 소녀’는 최근 영미권에서 출간되었다. 아마도 나는 그 5권 역시 읽기야 하겠지만, 그것을 <밀레니엄> 시리즈의 일부라기보다는 라게르크란츠의 또 다른 재미있는 소설로서 읽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