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ing Love

세 남자가 사랑하는 문학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소설가 최민석은 LA부터 뉴욕까지 스콧 피츠제럴드의 흔적을 찾았고, 음악가이자 미학자인 최정우는 파리에 살아 숨 쉬는 조르주 페렉을 사유했으며,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는 유럽의 서점을 유랑하며 ‘발견’의 시간을 가졌다.

피츠제럴드가 말년에 거주했던 할리우드.

피츠제럴드가
말년에 거주했던 할리우드.

작 가 가 추적한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화려한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기세 좋게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글을 썼는데, 플라자 호텔은 지금도 1박에 150만원이 넘는다. 이런 그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가 40대가 넘어 인기가 꺾이고 난 후,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각색 일을 했는데, 크레딧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참여한 무명 각색가 중 한 명이 바로 피츠제럴드다. 나는 미국 현대 소설의 거장이라 불리며, 재즈 시대 사교계의 왕자라 불린 피츠제럴드의 추락한 시절부터 이번 기행을 시작했다. 출발지는 로스앤젤레스였다. 미국은 역사가 짧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라다. 한국 도시로 비유하자면 파주나 일산처럼 신도시 같은 국가다. 현대사에서 굵직한 의미를 차지하던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쇼핑몰이 되거나, 패스트푸드점이나 주유소로 변해버린다. 이런 나라에서 사후에나 인정을 받은 작가의 생을 되밟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위대한 개츠비>는 출간 당시 2쇄도 다 팔리지 않았다).

처음 접한 당혹은 작가가 가장 사랑한 서점 ‘Pickwick’s Bookstore’가 기념품 가게로 바뀌어버렸던 것이다. 입구에는 ‘10달러에 티셔츠 네 장’이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고, 늦은 밤 할리우드 거리에는 오줌 냄새가 떠다녔다. 가게 옆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려는지 한자가 한 글자당 내 상반신 크기만큼 쓰인 광고판이 있었다. 이건 약과였다. 연인 실라 그레이엄과 첫 데이트를 한 ‘클로버 클럽’의 자리에는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 있었고, 작가가 묵었던 아파트형 호텔인 ‘Garden of Allah’는 일대 자체가 완전히 갈아엎어졌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LA에서는 문학도, 피츠제럴드도 모두 사체처럼 느껴졌다.

그가 즐겨 가던 벨베데레 호텔. 단골 유명인의 사진 중에 그도 있다.

그가 즐겨 가던 벨베데레 호텔.
단골 유명인의 사진 중에 그도 있다.

하지만 LA가 모든 것을 역사의 뒤안길로 몰아낸 것은 아니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자, 피츠제럴드가 ‘제2의 집’으로 여겼다는 스테이크하우스 ‘무소 앤 프랭크 그릴(Musso & Frank Grill)’은 여전했다. T.S. 엘리엇, 존 스타인벡, 도로시 파커 같은 과거 작가부터 레이먼드 챈들러, 커트 보니것, 찰스 부코스키 같은 현대 작가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던 이곳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피츠제럴드는 이곳에서 재기를 꿈꾸며 <최후의 대군> 원고를 탈고했다. 동료 시나리오 작가들과 함께 작업의 고충을 토로했고, 오가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일감을 청하기도 했다. 나는 이곳이 꽤 마음에 들어 두 번 갔다. 한 번은 늦은 밤에 가서 <낙원의 이쪽>의 주인공 에이머리처럼 김렛을 마시며 스테이크를 먹었고, 다른 한 번은 오픈한 직후인 오전 11시 반에 가서 파스타를 먹었다. 존 스타인벡처럼 바에 앉기도 했고, 피츠제럴드처럼 붉은 가죽을 덧댄 1인용 좌석에 앉기도 했다. 54년간 근무한 웨이터가 있기도 한 이 유서 깊은 식당은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활기를 함께 보존하며,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주말 영업 후, 단잠 같은 월요일의 휴업을 하고 난 뒤의 화요일 오전 식당은 그야말로 매력적이었다. 고단함에 시달린 사람이 잠을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개운함 같은 게 느껴졌다. 바깥에는 선선한 공기가 흘렀고, 실내에는 재즈가 흘렀다.

피츠제럴드의 영혼이 담긴 프린스턴 대학. 그가 직접 쓰던 책상도 볼 수 있다.

피츠제럴드의 영혼이 담긴 프린스턴
대학. 그가 직접 쓰던 책상도 볼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는 작가에게 의미가 깊다. 소설가 최민석은 스콧이 밥을 먹고, 아파했으며, 숨 쉬었던 공간을 찾아다녔다.”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는 조현병으로 한평생 시달렸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한 이유 역시 미국에서 의대로 가장 유명한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이 있었기 때문이 었다. 한동안 입원할 만큼 젤다의 정신착란은 심각했지만, 그는 평생 처음으로 이 곳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했다. 스코티는 학교에 다녔고, 피츠제럴드는 마침내 조용한 삶을 영위하며 원고에 집중하게 됐다. 그가 볼티모어를 사랑한 데는, 그가 흠모한 작가 에드거 앨런 포가 살던 도시라는 점도 작용했다. 나는 이곳에서 그의 단골이었던 ‘Belvedere Hotel’에 가보았다. 지금은 콘도미니엄이 됐지만, 1층에 있는 부엉이 바(Owl Bar)는 실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천장은 매우 높았고, 온도는 프랑스 지하의 와인 저장고처럼 시원했다. 천장에 매달린 긴 날개의 선풍기 네 대가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는데, 네 대의 바람이 합쳐져 가장자리에 앉은 내 불콰해진 뺨까지 시원하게 어루만졌다. 전반적으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비밀 교육 장소 같은 이 공간에서는 여느 곳처럼 MLB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고, 술에 취한 미국인들은 식사 중인 호그와트 마법학교 학생들처럼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IPA 한 잔과 베이컨으로 싼 송어구이를 먹으며, 피츠제럴드도 가끔은 이랬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때론 건강이 나쁜 아내와, 감당해야 할 빚을 잊은 채 이곳에서 여유를 즐겼을 것이다, 라며 말이다.

‘무소 앤 프랭크 그릴’이 피츠제럴드에게 ‘제2의 집’이었다면, 프린스턴 대학은 그에게 ‘영혼의 고향’이었다. 특히나, 그는 자신이 속했던 동아리 ‘University Cottage Club’을 사랑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말하자면 ‘식사 클럽’이다. 즉, 함께 모여서 밥을 먹는 동아리였다. 하지만, 이들의 사교적 목적이 때로는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서민층 학생을 배제시키는 역할을 했기에 대학 당국은 수십 년간 식사 동아리 활동을 모두 금지했다. 어쨌든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이 ‘코티지 클럽’은 왕성히 활동을 하는데, 나는 이곳에 피츠제럴드가 직접 쓰던 책상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방문해보았다. 한 개방적인 학생이 “여전히 식사를 한다”고 소개한 식당을 본 순간, 프린스턴 학생들의 위치를 실감했다. 천장에는 금색 촛대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창이 9월 프린스턴의 밝은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햇살은 붉은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위를 끊임없이 비추고 있었고, 그 옆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오직 백인들로만 구성된 30~40명이 매일 식사를 하면, 없던 계급의식도 생기겠다고 여겨졌다. 회원들이 공부하는 서재 역시 수백 년 된 듯한 고서와 가죽 양장본 책이 나란히 꽂혀 있었고, 학생들은 이 모든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러닝용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실내를 오가고, 가죽 소파에 기댄 채 허벅지에 맥북을 올려놓고 무심히 볼일을 보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어깨에 올려놓지 않은 귀족의 견장이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표정에서 느껴졌다. 자신의 문학적 주제가 ‘계급’이었던 피츠제럴드가 이곳에서 많은 좌절과 우월 의식을 느꼈음은 당연하리라.

의 배경지인 그레이트넥의 화려한 저택.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지인
그레이트넥의 화려한 저택.

피츠제럴드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단 하나의 도시만 꼽으라 한다면, 그곳은 당연히 뉴욕이다. 그는 뉴욕의 성 패트릭 성당에서 결혼을 했고, 자신의 가장 화려하던 시절을 뉴욕에서 보냈다. 처녀작 <낙원의 이쪽>이 성공하자 주저 없이 거주지로 뉴욕을 택한 그가, 자신의 최고작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을 뉴욕으로 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많고 많은 곳 중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지인 ‘그레이트넥’에 가장 먼저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로 과거 화려하던 미국의 단면을 보았다. 그레이트넥에는 ‘개츠비 레인’이라는 길이 생겼는데, 이 길의 끝자락에 있는 집은 실제로 개츠비가 살았을 법한 저택이다. 그곳에서는 정말 소설처럼 맞은편 만(灣)의 불빛이 보일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 영화를 보았을 때, 진입로에서부터 화려한 불빛이 끊이지 않은 걸 보고 과장이라 여겼지만, 이 동네의 집들을 보자 거의 사실이었음에 놀랐다. 일단, 진입로에서 집까지 가려면 대개 500m 정도를 차를 타고 가야 한다. 그리고 집들은 대개 한국의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단과대학 크기 정도다. 집의 입구에는 그리스 신전에 있을 법한 조각상이 설치돼 있고, 바깥쪽에는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손질된 프랑스식 정원이 있다. 그리고 바다를 마주한곳에 개츠비가 총에 맞아 죽은 듯한 푸른 야외 수영장이 있다. 미국을 상징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실제 이토록 미국이면서도 가장 유럽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쩌면 뉴욕이 미국을 상징하지만, 뉴요커들의 말대로 미국이면서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공간인 것처럼,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 현대 소설을 대표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유럽적인 공간과 삶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이러니다. 어차피 이 나라는 이민자의 나라이자, 유럽을 모태로 하고 있지 않은 가.

비 내리는 트로카데로 광장과 안개 속의 에펠탑,

비 내리는 트로카데로
광장과 안개 속의 에펠탑,

파리, 사물들의 종류, 기억들의 분류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과 함께, 파리(Paris)와 함께 이 글을 쓴다. 그의 소설을 둘러싸고, 그가 살았고 또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파리 안에서, 나는 쓴다. 그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그의 글과 그 글이 남긴 흔적을 따라, 그리고 이 도시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와 함께, 이 도시와 그것의 장소를 따라, 그 사물과 함께 쓴다. 생미셸 거리에서,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보부르와 라탱과 마레 지구에서, 몽파르나스와 페르 라셰즈 묘지 곁에서, 오페라와 피라미드를 통과해, 피갈과 블랑시와 클리시 사이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파리를 굽어보며, 그렇게. 그러므로 이것은 한 작은 여행의 이야기가 될 텐데, 사실 모든 여행의 이야기란 그래서 또한 자서전적 글쓰기의 일종이다. 다만, 이상하게도, 일상을 이야기하지 않고 반대로 바로 그 일상을 벗어난 비일상적 여행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바로 이 ‘나’ 자신을 더 정확히 말하는 것이 된다는 의미에서만, 오직 그러한 역설 안에서만. 마치 부재가 존재를 환기하듯, 죽음이 도리어 삶을 오롯이 드러내듯, 지금 여기 내게 없는 어떤 결여의 불확실성이 거꾸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는 존재의 확실성을 증명하듯, 그렇게. 그래서 파리의 길과 골목을 찾아 떠나는, 아니 차라리 그 길과 골목에 이끌리는 여행은, 우리 모두의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근본적이고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자서전적 계기를 이룬다.

어둠이 내려앉은 스트라빈스키 광장

어둠이 내려앉은 스트라빈스키 광장

페렉의 글쓰기가 정확히 그랬다. 1936년에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동일한 스타일로 글을 쓰지 않으며 그 모든 소설을 써냈던, 그리고 1982년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던 실험적 작가. 그를 따라, 그와 함께, 나는 이 모든 장소와 그 장소에 서려 있는 기억에 관해, 조각난 말 맞추기로서의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마치 문자로는 작성되지 못했지만 나날이 우리 몸 밖의 어떤 기억의 저장소에 각인됨을 반복하는 하나의 일기처럼, 우리가 어느 날 묻어둔지도 몰랐거나 아예 잊어버렸던 어떤 기억의 타임캡슐을 우연찮게 발굴하는 필연처럼, 눈에 뻔히 보이지만 그 자체로 숨겨진 글쓰기, 의도하지 않게 어느 날 보물처럼, 혹은 축복이나 저주처럼, 그 둘 모두로서, 그렇게 발견하고 발명하게 되는 우연과도 같은 필연이다. 페렉은 그의 소설 <잠자는 남자 (Un Homme Qui Dort)>(1967)의 첫 문장에서 이렇게 쓴다: “네가 눈을 감자마자, 잠의 모험이 시작된다(Dès que tu fermes les yeux, l’aventure du sommeil commence).” 잠과 꿈은 깨어남과 현실을 그 거울로 삼는다. 우리가 여행에서 걷는 모든 길과 겪는 모든 순간은, 내가 ‘나’라는 사실에 잠시 눈을 감는 순간, 그럼으로써 눈을 뜨고 있었을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험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눈을 감자마자, 보이던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고, 바깥의 빛 대신 안쪽의 어둠이 열리며, 아니 차라리, 외부에서 빛나던 어둠이 잠잠히 숨어들어 내부에서 어둡던 빛이 갑자기 드러나며, 잠은 꿈을 깨우고 꿈은 또 다른 현실을 꿈꾸게 한다.

라스파이가에 위치한 갈리마르(Gallimard) 서점의 조르주 페렉 특별 가판대 전시

라스파이가에
위치한 갈리마르(Gallimard)
서점의 조르주 페렉
특별 가판대 전시

아마도 이것이 여행일 것이다. 그 눈 감음이란 내가 ‘나’임을 잠시 잊게 하고 나였다고 생각한 ‘나’로부터 잠시 눈을 돌리게 하는 일이기도 한 것, 그래서 복잡한 관계 안에서 하나의 확정적 위치로서만 존재하는 ‘나’라는 존재 본연의 익명성을, 두 눈으로, 눈을 감고, 그렇게 보게 되는 일이기도 한 것. 이것이 필시 또한 여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름이 있어도 여행 안에서 나는 이름을 잃기 때문이다. 여권과 같은 신분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나는, 이 거리 위 그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 역시 아무도 알아볼 필요가 없다. 여행, 길을 찾아가고 그 길이 이끄는 여행이란, 그래서 익명성 그 자체가 거꾸로 나 자신의 확신 없는 확실한 조건이 되는 상황을 바로 그 ‘나’에게 툭 던져준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나 규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우리 존재 그 자체에는 언제나 근본적인 한계가 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여행의 길은 자서전적 ‘나’의 실체를 부정하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진정한 ‘나’ 자신에 가닿는다. 그런 의미에서도 역시, 여행은 하나의 자서전적 발걸음이다.

그래서 여행은 하나의 삶이다. 다만, 여행이 단순히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거꾸로 삶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오직 그러한 의미에서만. 일견 나의 확실성은 내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그 시간의 지점과 공간의 시점에 의해서 이미 그 시작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페렉은 또한 <나는 태어났다(Je suis né)>(1990)에서 이렇게 쓰는 것이다. “내가 태어났다, 그렇게만 시작하는 글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Il est difficile d’imaginer un texte qui commencerait ainsi: Je suis né).” 아무런 시간이나 주소 없이, 숫자나 지점 없이, 그 자체로 ‘태어났다’고만 말할 수 있는 ‘나’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름다운 센강과 노트르담 성당

아름다운 센강과 노트르담 성당

음악가이자 미학자인 람혼 최정우는 파리에 머문다. 그곳에서 조르주 페렉의 숨결을 따라다니며 그가 남긴 사유를 사유한다. 조르주 페렉과 함께 쓰는 인생의 사용 설명서이기도 하다.

나는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디로 가며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혹은, 나는 언제 탄생하여 어느 순간에 존재하며 또 어떤 시간에 끝날 것인가. 반대로, ‘나는 태어났다’라고만 말할 수 있는 나란, 이 여행의 모든 순간에, 바로 삶의 그 현재라는 찰나에만 존재하는, 그래서 오히려 그 매 순간에 ‘진정한’ 나를 말할 수 있는 주체 아닌 주체가 아닐까. 그래서 또한 여행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그러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다만, 진정한 나라는 존재가 어디 외따로 숨어 있어 찾아내야만 하는 비밀 같은 진리가 아니라, 언제나 여기-거기, 그리고 지금-순간에 존재하고 있는 무관심한 욕망의 자리라는 점에서, 오직 그 점에서만. 그래서 여행을 통해서, 그 모든 길과 골목을 거쳐서 ‘진정한 나’를 찾았다고 하는 것은, 사실 거짓말에 가깝다. 그 ‘나’란, 날아가버린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한 마리의 파랑새처럼, 실은 내 안과 밖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므로 여행에서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여행을 찾는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찾아가는 주체가 바로 나, 삶에서 계속되는 현실의 여행과 잠의 모험을 지속하고 있는 그 주체 아닌 주체가 바로 나인 것이다. 그러한 나와 너에게, 더 이상 새로운 호기심이나 신기와 경이 같은 것은 없다. 세계는 그런 곳이 아니다. 모든 것은 그저 거기에 그대로 있기에. 오직 산책하는 자의 방황과 배회만이 있을 뿐이고, 그 방황과 배회는 부정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을 부르는 다른 보편적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페렉의 풍경 안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공원과 미술관, 카페와 영화관, 극장과 음악당, 서점과 화랑, 상점과 거리, 지하철의 통로와 노선, 길과 골목의 위치와 순간, 그 공간의 종류와 시간의 분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인생의 사용 설명서(Mode d’Emploi)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여행은 삶이며, 삶이 바로 여행이 된다.

페렉은 <나는 태어났다>의 마지막 부분에서죽기 전에 어쨌든 해야 할 몇 가지 것들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여전히 내가 하고 싶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이 한 가지 있는데그것은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그것이 자라는 것을 보)는 일이다(Il y a encore une chose qui j’aimerais faire, mais je ne sais pas où elle se place, c’est : Planter un arbre (et le regarder grandir)).” 그것이 어디에서 이루어질지어디에 그 스스로 자리를 잡을지혹은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죽기 전 어느 때에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내가 나무를 심고 그것이 커가는 것을 볼 수 있을지나는 알지 못한다그것은 마치 이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로 대중적으로 회자되곤 하는 스피노자(Spinoza)의 몸짓에 가닿는다그렇다면 이것은 희망의 표현인가그럴 수도 있다그러나 내게는스피노자의 경구도 페렉의 소원도 모두인생의 불가능성과 그 인생의 주인으로 상정된라는 존재의 불확실성을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하나의 비유로 읽힌다따라서 그것은 희망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우리가 그 나무를 심는 일에그리고 그것이 자라나는 것을 보는 일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그것은 다시금 여행이 될 것이고 또한 인생이 될 것이다아라공(Aragon)이 함께 걸었던 ‘파리의 농부(Le Paysan de Paris)’의 어지러운 발걸음처럼혹은 베냐민(Benjamin)이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던 파리의 ‘파사주(Passage)’가 지닌 근대의 슬픈 풍경처럼혹은 브르통(Breton)이 세상을 향해 열고 다시 그 세상을 향해 닫았던 ‘나자(Nadja)’의 저 뜨고 감기는 두 눈처럼나는 파리의 곳곳을 걸으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만들며 사람들을 바라본다계속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여행을그래서는다시 삶을페렉이 <사물들(Les Choses)>(1965)의 에필로그에서 마르크스(Marx)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듯: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구성한다진리의 탐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왜냐하면 진실한 탐구란 펼쳐진 진리이며그 흩어진 구성 요소가 결과 안에서 서로 합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Le moyen fait partie de la vérité, aussi bien que le résultat. Il faut que la recherche de la vérité soit elle-même vraie ; la recherche vraie, c’est la vérité déployée, don’t les membres épars se réunissent dans le résultat).” 여행이라는 ‘수단은 삶이라는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이기 때문에아니 차라리여행과 삶은 단지 진리를 구성하는 흩어진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그 자체로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진리이자 그 진리를 향해 걷는 여행의 길이므로.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교회에 들어선 ‘Boekhandel Dominicanen’은 영국의 과 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했다.

네덜란드 도미니카넌 교회에 들어선 ‘Boekhandel Dominicanen’은 영국의 <가디언>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했다.

서점 유랑단 나는 지금 독일의 어느 산장 호텔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열흘 일정으로 한국을 떠난 지 오늘로 아흐레째이며 일행은 나를 포함하여 열세 명이다. 함께 유럽의 서점을 돌아다녀보자는 취지가 담긴 이 모임의 이름은 ‘떼거리 유럽 서점 유랑단’. 아무런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내 멋대로 갖다 붙인 이름이다. 가능하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힘닿는 데까지 서점 유랑단을 모아보려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군가는 ‘아니, 비싼 경비를 치르고 고작 서점 따위를 보러 거기까지 날아간단 말인가’ 하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유럽의 수많은 볼거리를 놔두고 대관절 왜 서점에 간다는 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글쎄,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견학하기 위해 떠나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서점을 둘러보고 싶었을 뿐이다. 책을 만들어 먹고사는 편집자이기 전에 독자로서, 나는 서점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예전부터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반드시 서점에 들렀다. 마치 파친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도박꾼처럼. 편집자로 은퇴하기 전까지 가급적 여러 나라의 서점을 보고 그에 관한 감상을 글로 써보고 싶다. 다만 이번에는 혼자 가기가 아쉬워서 SNS에 동행인을 모집하는 벽보를 올렸다. 그런데 서점 구경이 컨셉인 모임에 예상보다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신청해주어서 놀랐다.

출발은 2017년 11월 3일 자정. KLM 네덜란드 항공을 타고 암스테르담에서 환승하여 취리히에 도착할 때까지 13시간이 걸렸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베른으로 이동했다. 이맘때의 유럽은 걸핏하면 비가 내려서 춥고 우울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반해버릴 만큼 청명한 하늘에는 알프스의 만년설만큼이나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고속도로 양쪽으로는 절정에 이른 단풍나무가 끝도 없이 보였다.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보니 베른은 스위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며 ‘독일어’와 ‘베른 독일어’를 사용한다고 나와 있다. 베른 독일어라는 건 일종의 사투리인가. 잘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대개 두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모양이다.

책 조형물로 건물을 꾸민 독일의 예술 전문 서점 ‘Büchermarkt’. 네덜란드의 어린이 전문 서점 ‘Kinderboekwinkel’.

책 조형물로 건물을 꾸민 독일의 예술 전문 서점 ‘Büchermarkt’

이 도시를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돌아보는 것이 이번 유랑의 여정이다. 그리고 오늘까지 스무 군데가 넘는 서점을 방문했다. 그중에는 큰 규모의 체인 서점도 있었고 소박한 크기의 독립 서점도 있었다. 다양한 구색을 갖춘 종합 서점도 있었고 특정 분야만 고집하는 전문 서점도 있었다. 내 마음에 드는 서점도 있었고 별 볼일 없는 서점도 있었다. 방문한 모든 서점이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눈에 띄었다. 해가 갈수록 매출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구글 맵에 ‘북스토어’로 등록되어 있어 찾아갔더니 이미 건물이 허물어졌거나 업종이 바뀐 경우도 있었다. 경영난으로 대표가 교체되기도 했다. 책 이외에 문구와 음료를 파는 건 보편적인 풍경이 되었다.

그래도 서점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서점을 찾는다. 독자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서점도 애를 쓰고 있다. 먼저 그 얘기를 해보자. 네덜란드의 최남단, 뫼즈강의 교차점에 위치한 도시 마스트리흐트의 교회 도미니카넌에 서점이 들어섰다. 교회 안에 조그만 서점이 들어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아예 교회 건물을 통째로 바꿔버린 것이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네덜란드 전역에 마흔 군데 이상의 서점을 보유한 체인 셀렉시즈의 경영주 톤 하르메스였다. 무엇을 기획하더라도 늘 평균 이상의 좋은 성적을 내왔던 그는 어느 날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 ‘뻔한 건물 대신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에 지점을 내보자’는 것이었다. 쉽게 입주할 수 있는 건물을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갈 이유가 있었을까.

마스트리흐트 교구에서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변경해서는 안 되며 철수할 때는 원상 복구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못질 한 번 없이 서점을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는 얘기다. 그리하여 교회의 측벽과 간발의 거리를 둔 채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는 3층짜리 철골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교구가 내민 까다로운 조건으로 인해 “고딕 교회의 견고한 벽체가 현대 건축의 기능성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의 <가디언>과 는 부칸들 도미니카넌(Boekhandel Dominicanen)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했다.

이번 방문 중에 만난 경영주 톤 하르메스는 2014년에 서점이 경영난으로 고전하다가 회복한 이후 지역 주민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말한다. 전 세계에서 일삼아 찾아오는 방문객도 연간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하긴, 나처럼 먼 곳에 거주하는 독자도 오직 이 서점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에 두 번째로 왔는데 같은 권역에 사는 독자들은 오죽하겠나. 그를 만난 김에 도미니카넌이 근래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지 물었다. 스릴러와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 분야의 매대를 좀더 풍성하게 만드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 어덜트(Young Adult,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독자를 일컫는 말)들이 서점을 자주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들이 독서를 멀리한다면 그들에게도 서점에도 미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스릴러와 미스터리는 그들이 책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을 만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러한 습관을 토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서점을 찾게 될 거라 예상한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건, 이 분야는 시리즈로 구성된 책이 많다는 거다. (여섯 권짜리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보여주며) 1권을 사면 6권까지 살 수밖에 없다.(웃음)”

문화유산으로서의 서점도 있다. 룩셈부르크의 보몽 스트리트를 22년 동안 지켜온 알리아나 서점(Librairie Alinea)은 지난 2017년 5월 11일에 서점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마존을 위시한 인터넷 서점과의 경쟁, 관리 비용의 증가가 원인이었다. 서점의 주인인 에드먼드 도너스바흐는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상황이 변했으며 특히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세계의 거물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서점을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어린이 전문 서점 ‘Kinderboekwinkel’. 독자들이 나서서 폐쇄를 막은 룩셈부르크의 ‘Librairie Alinea’. 네덜란드의 여행 전문 서점 ‘De Noorderzon’.

네덜란드의 어린이 전문 서점 ‘Kinderboekwinkel’.

출판사 북스피어의 대표 김홍민이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유럽의 서점을 순례했다.
독자적인 다양성을 견지하는 서점을 응원하고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여러 출판인과 독자들이 이 지역에서 세 군데밖에 남지 않은 독립 서점 가운데 한 곳의 폐쇄를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서로 독려하며 인터넷 사이트에서 크라우드 펀딩 캠페인을 벌였다. 서점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인근에 사는 고객들은 매일 서점을 방문했다. 그리하여 불과 3주 만에 룩셈부르크의 일간지 <레상시엘>에는 다시 에드먼드 도너스바흐의 인터뷰가 실렸다. “재정적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할 수 없고 현실은 설명할 방법이 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많은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배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서점에 들어갔을 때 친절한 얼굴로 맨 처음 인사한 사람도 에드먼드 도너스바흐였다. 인터뷰 사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형광색 안경을 끼고 있어서 금방 알아보았다. 일행 가운데 한 명이 “한국에서 온 출판 편집자”라고 슬쩍 말을 건네자 매우 반가워하며 책 한 권을 꺼내서 설명해주기도 했다. 설명인지 질문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해도 그는 열심히 설명했다. 친절은 이 사람의 두 번째 트레이드마크인 듯하다. 오래된 2층짜리 건물의 내부에는 공식 언어가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인 나라의 서점답게 외국인이 많았다. 진열된 책은 대부분 소설이었지만 여행, 예술, 역사서도 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2년 동안의 서점 역사를 설명해놓은 사진과 손 글씨였다. 이처럼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진작해온 덕분에 독자들은 이 서점이 문을 닫는 걸 필사적으로 막았던 것이리라.

모두 식상한 프로모션 대신 창의적인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해가고 있다.

독자들이 나서서 폐쇄를 막은 룩셈부르크의 ‘Librairie Alinea’. 모두 식상한 프로모션 대신 창의적인 방식으로

서점을 운영해가고 있다.

이 외에도 프랑스에서, 스위스에서, 독일에서 우리는 많은 서점과 맞닥뜨렸다. 대부분의 체인 서점에서는 댄 브라운과 존 그리샴과 로버트 해리스의 신작을 대대적으로 프로모션하고 있었다. 대형 출판사에서 출간된 3인의 소설들은 빠르게 베스트셀러 순위를 석권했다. 지속적인 수익 악화를 조금이라도 타개하기 위한 서점의 방편과, 화제성 있는 작가를 집중적으로 노출하여 고만고만한 신작에 들어간 비용을 속히 회수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방편이 맞물린 결과물이다. 한국에서 자본력을 갖춘 출판사의 매대 구입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듯, 유럽의 서점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 판매가 고공 행진을 이어간다는 것,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코너가 늘었다는 것, 책+문구의 판매가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라는 것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공통점이었다.

한편으로 독립 서점은 ‘어떻게 인터넷 서점과 다른 고유의 색깔을 가질 것인가’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집중했다. 근래에는 서점도 흡사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운영하듯 창조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내부 인테리어와 도서 큐레이션과 각종 이벤트를 기획해나가는 분위기인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을 놔두고 굳이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가 떼거리로 ‘유럽의 다양한 서점을 구경’하는 일도 가능해진 것이겠지.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모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분위기였으리라. 그리고 지난 열흘 동안 무턱대고 낯선 서점을 매일매일 마주하며 ‘어린 시절, 이렇다 할 사전 정보 없이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어떤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에 필적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책 속에 담긴 글(그림, 사진)의 내용이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수백 종의 책이 쏟아지는 요즘 같은 때에, 책 속에 담긴 글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집적해놓는 공간의 운영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천편일률적인 프로모션 대신) 독자적인 다양성을 견지하는 서점을 응원하는 것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나도 그런 서점을 운영해보고 싶다. 뭐, 지난 열흘 동안 살펴본바,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