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빚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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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 빚 권하는 사회

2017-12-21T11:39:39+00:00 2017.12.14|

2017년은 정치가 온 관심을 받았다면, 이젠 빚이 트렌드다. 지금까지 빚 문제가 없었던 적은 없지만, 올해는 우린 이 단어를 더욱 자주 들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지난 30년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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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저물었다. 이 해를 상징하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무엇이 적당할까? 적어도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는 ‘촛불’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지난 겨울 내내 수백만의 시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매주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든 촛불에는, 부패한 권력자에 대한 분노뿐 아니라 그러한 부패를 낳는 사회구조를 바꾸자는 간절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마침내 그 권력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권좌에서 끌어내려졌고, 연말로 예정되어 있던 대통령선거가 앞당겨져 우리는 장미꽃 피는 봄에 새로운 대통령을 맞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순전히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새로운 정부가 시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받아 안을 수 있을까? 정권 출범 이후 7개월을 돌이켜본다. ‘개혁’ 또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구속되었고, 문화·예술계에서는 과거 정권에 ‘블랙리스트’에 올라 활동에 제약을 받던 이들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혁의 칼날은 바로 그 개혁의 도구여야 할 검찰 같은 사정기관에 가장 날카롭게 겨눠지기도 했다. 한편 개혁의 바람은 경제 영역에도 불었다. 다주택보유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고 부자들에 대한 세금이 늘어난 반면, 최저임금은 크게 올라 저소득자들의 시름을 조금은 삭혀주리라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 본격적인 ‘빚의 서막’이 올랐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부채탕감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31일 국민행복기금 및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21조7천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소각하기로 한 데 이어, 11월 29일에는 원금 1000만원 이하 금액을 10년 이상 연체하고 있는 채무자 159만명을 상대로 소득 심사를 거쳐 빚을 탕감해주기로 결정했다. 이 조치가 발표되자 찬반양론이 극심하게 대립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바람직한 조치였다며 박수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정부가 나서서 빚을 탕감해주면 앞으로 누가 빚을 성실하게 갚겠느냐며 정색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 옳을까? 여기에 올바른 대답을 하려면 지난 20~30년 사이 한국 경제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봐야 한다.

기가 막히게도,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정확히 10년 단위로 커다란 격변을 겪어 왔다. 1987년에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시민과 노동자의 대규모 저항이 일어났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헌법을 갖게 되었고, 건국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았다. 1997년에는 빠르게 성장하던 한국경제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사건이 있었다. 단기 대외부채를 갚지 못해 국가파산 직전까지 내몰리다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벌’이라 불리던 몇몇 대기업들이 넘어졌고 대형 금융회사들이 헐값에 매각되었다. 대규모 정리해고로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거리에 나앉기도 했고, ‘미래’를 잃어버린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장으로 몰려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끝으로 2007년에는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금융위기가 촉발되었다. 우리 경제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10년 전 위기에 비해 크진 않았지만, 이 위기로 선진 경제권의 국내 수요가 줄어듦에 따라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성장도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국내 부문에서 성장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결과가 ‘빚내서 집 사세요’라는 모토로 요약되는 ‘초이노믹스’(박근혜 대통령 시절 두 번째 경제부총리였던 최경환 씨의 이름을 딴 경제정책)였다. 하지만 실제 경제성장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대가를 생각하면 오히려 잃는 게 많았던 정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상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를 급격히 변화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지난 20년 사이에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566조원으로 가계에게 돌아가는 연간 처분가능소득의 1.8배에 이른다. 이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증가속도 면에서 세계 최고라는 점에서 특히 걱정스럽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 사이에 선진국들에서 대체로 가계부채가 줄어드는 경향이었음을 떠올리면, 우리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2007년과 2015년 사이에 미국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32.0%포인트 줄어든 데 반해 우리는 비슷한 기간에(2008~16년) 35.6%포인트 늘었다. 바로 이것이 IMF 같은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들이 우리 정부에게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거듭해서 경고하고 있는 까닭이다.

시기별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원인은 조금씩 다르다. 2007년 이후엔 부채가 주로 집 살 여력이 있는 중산층 사이에서 증가했다. 하지만 1997년 직후에 급증한 가계부채는 그렇지 않다. 원래 우리 경제에서 가계는 저축의 주체였다. 즉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쪽이었지 수요하는 쪽이 아니었다. 그런데 1997년 이후 대량해고와 기업도산에 따라 많은 가계들이 소득을 제대로 얻지 못하자 돈을 구하러 금융기관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금융기관 입장에선 돈 빌려주고 이자를 챙길 수 있는 무궁한 영역이 새로 열린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해 양자의 요구를 서로 맞춰주었다. 그 결과 가장 불티난 게 신용카드 업계였다. 이자율은 좀 높았지만 대출에서 별다른 담보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드를 여러 개 발급받아 ‘돌려막기’를 하며 당장의 생활의 필요를 해결하는 서민들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연체자가 늘면서 대형 카드사가 도산하는 일도 생겼지만, 지금까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공공화장실에 여전히 넘쳐나는 대출광고가 그 증거다.

이렇게 적어도 지난 20년 사이에 우리는 말 그대로 ‘빚 권하는 사회’를 살아온 셈이다. 누가 누구에게, 그리고 왜 빚을 권했을까? 실직과 실업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에게 빚을 권한 건 탐욕스러운 금융기관뿐 아니다. 국가도 잘못이 있다. 국가가 제때 일자리를 안정시키고 서민들의 소득을 늘려주었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신용카드 대출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새 정부가 깨끗하게 탕감해주겠다고 한 빚은 바로 그런 빚이다. 따라서 그것은 채무자인 시민들이 금융기관에 진 빚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들에게 진 빚이기도 하다. 이번 조치로 우리 정부가 과거의 빚을 청산하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부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