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Wonder Pills

2018.01.03

by VOGUE

    Wonder Pills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 여성의 역사에 선택지를 추가한 어마어마한 이 알약에 대한 소견을 듣고 싶어 여러 산부인과에 질문지를 보냈지만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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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나타샤 워 감독의 영화 <터미널>을 상영했다. 임신 중절 수술이 불법인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낙태 시술을 위해 원정을 떠나는 두 여자의 이야기였다. 게이트에 앉아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는 16세 소녀와 기혼 여성의 허망한 얼굴에는 원 치 않았던 임신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작년 11월 서울 시립미술관 앞에서 진행된 낙태약 자판기 퍼포먼스를 보며 생각했다. 자연 유산 유도약 ‘미프진’을 언제 어디서나 살 수 있었다면, 소녀는 눈물을 흘리 는대신미프진을처방받아꿀꺽삼켰을까?한차례피임을하지않은실수 를 두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해서 벌을 받고 있는가까지 확장해서 자책하는 일은 없었을까?

    청와대에 낙태죄 폐지와 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에 관해 제기한 청원이 23만명의추천을받으면서미프진은올해가장뜨거운약이됐다.용어사 용의 적합성을 떠나 미프진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먹는 낙태약’ 이다. 1980년대 프랑스에서 개발되었고, ‘아기 죽이는 약’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1988년 공식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미프진의 성분은 미 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이 두 성분은 자궁 내 착상된 수정체에 영양 공급을 차단하여 자궁과 수정체를 분리하고 자궁 밖으로 배출시킴으로써 임신 상태를 중단시킨다. 대체로 임신 기간이 10주 이내일 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필수 의약품 목록에 포함시켰다. 현재 120여 국가에서 미프진을 처방하고 있지만 모자보건법으로 임신 중절 수술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미프진의 유통과 복용은 모두 불법이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흡입식 수술에 비해 간편하긴 하지만 미프진은 의사의 처방하에 복용해야 하는 약이다. 극심한 경련이나 출혈이 따르고 때 로는 태반이나 태아가 배출되는 과정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수술보다심리적고통이덜하다고말할순없다.임신주차에따라 먹어야할약의양과복용법이다르고,자궁외임신은아닌지,심장질환이 나간질환이있진않은지사전에체크해서복용가능여부에대한진단도 필요하다.하지만도입된지시간이꽤흘렀기때문에허용국가에서만큼 은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어느 정도 종식된 상황.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통 계에따르면약을복용한1,000명중오직두세명만심각한합병증으로병 원 치료를 필요로 했고 사망률은 10만 명 중 0.5명이었다. 이는 출산 사망률 보다 14배 낮은 수치다. 의학계는 출혈이나 감염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비율은 대략 0.65%로 보고 있다.

    미프진이 합법인 국가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이슈는 어떻게 하면 의사와 대면을 줄이고, 원거리에 거주하는 여성들도 손쉽게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가에 관한 것이다. 미국시민자유연합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이 약물을 왜 약 국에서 구매할 수 없는지” 묻는다. 하와이, 뉴욕, 오리건주, 워싱턴주에서 활 동중인한건강단체는자체적으로초음파와혈액검사를진행한후화상 미팅을 통해 약물을 받아보는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다. 호주와 캐나다에서 도 전화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의사와 상담한 후 미프진을 처방받는 서비스 를 진행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반드시 병원에서만 복용해야 했던 규 정을 완화, 두 번째 약부터는 집에 가지고 가서 복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프진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며 가장 놀란 점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 이고 실질적인 정보의 공유였다. 오스트리아의 어느 병원 사이트는 “임신 진 단은여러가지생각과감정이들게합니다.스스로결정을내리는데필요 한 모든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해당 사이트 는임신주차계산기,법조항부터비용까지낙태를고민하는사람들이궁 금해하는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네덜란드 의사 레베카 곰퍼트(Rebecca Gomperts)는 법의 한계마저 뛰어넘는다. 뜻을 함께하는 의사, 연구원, 낙태 한 여성들과 함께 운영하는 위민온웹(www.womenonweb.org)은 낙태가 금 지된 국가의 여성들을 위한 디지털 커뮤니티다. 그녀는 기니, 멕시코 등지에 서 안전하지 않은 낙태 수술로 목숨을 잃은 여자들의 사연을 접했고 이들에 게미프진을전달할수있는원격진료서비스프로그램을설계했다.전세 계 어디라도 웹사이트에서 25개 질문으로 구성된 질문지를 작성하고 의사와 상담을 거친 뒤 70~90유로를 기부하면 위민온웹은 자연유산 유도약을 배송해준다. 임신이 종료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 에 이 사이트는 마치 매뉴얼처럼 관련 사항을 꼼꼼히 작성하고 있으며 24시 간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자들의 실제 이야기가 있다. ‘나는 낙 태를했다’메뉴를클릭하면동그라미가가득표시된전세계지도가펼쳐 지는데 이 표시는 위민온웹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다. 이곳에는 처 음 임신 중절 수술을 망설이던 순간부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순간까지 매 순간의 감정이 각자 모국어로 담겨 있다. 위민온웹에는 지금도 수천 통의 메일이 쏟아지고 있다. 국제 비영리 단체 Women Help Women(www. womenhelp.org)도 신뢰할 만한 정보와 의약품이 여자들에게 힘을 부여한 다고 말한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임신 중절약뿐 아니라 경구 피임약, 응 급 피임약도 우편으로 발송해준다. 의료 상담 서비스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

    여전히 낙태가 불법인 우리나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술을 하지 않 고약을먹어도임신중절을할수있다는사실이알려지고있는수준이다. 청와대에 제기된 청원에 조국 민정수석은 2010년 이후 임신 중절 실태 조사 가 없었음을 인정하며 올해 조사를 재개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를 시작으로 관련 논의가 진전될 것이고 미프진 합법화 여부는 사회적·법적 논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사이 안전하지 않은 약물과 시술로 위험에 노출되는 건 여 자들이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 ‘미프진’을 검색하면 수만 개의 판매 사이트가 뜬다. 가짜 미프진을 판매하는 음성적인 사이트다. 병원 사이트처럼 만들어 놓고 전문가를 사칭하며 실시간 상담까지 받고 있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약 값도 문제지만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이 실제로 함유된 약물인지 확 인할길없어여자들은불확실함을붙잡고끊임없이불안감에시달려야한 다. 예상치 못한 증상이 일어났을 때 어찌해야 할 것인가. 약을 먹었음에도 임신중절이되지않았다면어떻게해야할것인가.이모든공포는여자들 의 것이다. 가짜 약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학계 는 미프진에 대해 입장을 밝히길 꺼리는 분위기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불완전한 유산으로 인한 하혈이 발생했을 때 그에 따른 부작용의 가능성만 경고했을 뿐이다. 미프진에 대한 소견을 듣고 싶어 여러 산부인과에 질문지 를 보냈지만 나는 어떤 답도 듣지 못했다. 불임 클리닉이라서, 민감한 사안이 라서… 거절의 이유는 다양했다. 임신 중절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누구 도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자연유산 유도약이 거래되고 있지만 누구도 자연유산 유도약에 대해 말하지 않는 곳이 대한민국 현주소다.

    10대를 독자층으로 둔 미국 <틴 보그> 홈페이지에만 들어가봐도 우리 인체가 낙태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일러스트로 정리한 비디오와 낙태약 복용에대한FDA의제한이현대여자들에게끼칠영향에대한칼럼을읽 을 수 있다. 비디오는 말한다. “낙태 결정은 때로는 간단하고 때로는 복잡하 지만 어느 쪽이든 그것은 결정입니다. 그리고 당신만이 무엇이 옳은지 압니 다.” 낙태에 관한 한 우리는 올바른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과거 경구 피임약은 여자들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 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명품으로 꼽 힌다. 이로써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섹스할 자유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지를 얻었다. 미프진이 도입된다면, 미프진 은우리에게어떤자유를선사할까.하나확실한건더자유로운섹스라이 프는아니라는점이다.이놀라운알약은여성의건강권침해가능성을낮 춰주고 여성의 생명권을 좀더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섹스 이전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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