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프랑스에서 훈 모로(Hoon Moreau) 작가를 만나다

2018.01.19

by 우주연

    프랑스에서 훈 모로(Hoon Moreau) 작가를 만나다

    아주 오래전 우연히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명을 받들어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찾아갔다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대리석 산지 ‘카라라(Carrara)’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멀리서 보면 눈 덮인 거대한 산맥처럼 보이지만 하얀 부분이 모두 대리석인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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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두부 조각처럼 잘려 여기저기 흩어진 집채만 한 돌덩이 앞에서 넋을 놓고 바라본 적이 있다. 신기하고도 압도적인 유기체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 이후로는 오랜 시간 동안 웬만한 가구를 보면 하찮아 보이기도 했다. 과연 ‘인간의 나약하고 작은 노력이 자연의 웅대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에 한 치라도 따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파리로 건너와 카몽도에서 실내 건축과 환경디자인을 전공한 늦깎이 작가, 훈 모로(Hoon Moreau)의 가구 전시가 파리 성디 투프네 갤러리(Galerie Sandy Toupenet)에서 열렸다.

    프랑스의 유명 건축 회사, 빌모트 건축 설계 사무소(Wilmotte & Associés: 우리나라 인천공항을 디자인한 바로 그 건축 사무소) 등에서 20여 년간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쌓은 그녀의 탄탄한 배경은 재료에 대한 다채로운 이해와 조화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를 가져다주었다. 그래서인지 섬세함과 고급스러움이 침착한 형상 속에서 우아하게 빛을 내는 그녀의 작업이 파리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은 물론 우크라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귀족의 궁전, 레바논과 리야드 등지에서 복원과 리노베이션에 참여하며 팀장으로 프로젝트를 주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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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꿈을 차곡차곡 스케치해가며 형상을 그려보고 조각도를 연마하며, 열정의 불쏘시개를 끄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가운데 남다르게 미래를 준비해왔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반을 살아왔을 때 즈음,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를 위해서 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정리되자 경력과 높은 연봉을 뒤로하고, 예술적 경지의 다른 실질적 유기체 ‘가구’를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하는 작업을 시작했죠. 전 지금 너무 행복해요. 비록 돌봐야 하는 가족들(그녀에게는 프랑스인 남편과 10대의 두 딸이 있다)이 있는 파리와 작업실이 있는 부르고뉴를 왔다 갔다 하며 분주히 살고 있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완성해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합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변치 않고 남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평론가 호리아 마르프(Hoya Makhlouf)는 그런 그녀의 작업 세계를 두고 이렇게 평가한다. “자연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가구로 번역하려는 기발한 몽상가.”

    그녀가 20여 년 동안 줄곧 해온 나무와 산등성이 바위, 폭포 등의 스케치를 펼쳐 보여준다. 산수화가 어떻게 가구로 실체화되며, 존재감이 완성되는지 궁금해 부르고뉴의 작업장을 찾았다. 고급스러운 소재의 아름드리나무, 금속판과 철사, 색유리, 도구 등이 여기저기서 그녀의 분주한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의 시각’이란 주제가 어떤 이유로 탄생했는지 와닿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깨닫는 이치, 나무의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속살, 그 귀한 중심을 그녀는 반드시 자기 손으로 느끼고 어루만지며 자르고 빚고 다듬고 태우며 찾아냈다. 물성의 전도가 그녀 내면의 아름다운 본성의 연마로 ‘문화적 산물’로 탄생하며 그것이 생활 속에서 호흡하기를 바라는, 그것이 바로 그녀의 소망이다. 순수 예술을 고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선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요. 아름다움을 느끼고 보며 창작하고 또 환경으로 만들고 함께 호흡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가끔 작업물이나 예술품이 좋아 작품 자체를 사랑하기도 하고, 혹은 작가가 좋아 작품에 대한 해석에 애정을 더하기도 한다. 인터뷰용 사진 촬영을 위해 안경을 벗어보라 요청하자 수줍어하며 마지못해 안경을 벗는 그녀의 눈빛에서 깊고 예리하면서도 한없이 맑고 부드러운 하얀 카라라의 대리석이 뿜어대던 밝고 비현실적인 아름다운 빛을 발견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본 순수함에 대한 예찬이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그녀에게 카라라의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군형감을 이룬 돌덩이 테이블 하나를 주문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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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박지원(디자이너)
      에디터
      우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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