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Celine)의 새 수장, 에디 슬리먼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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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Celine)의 새 수장, 에디 슬리먼에 대해 당신이 몰랐던 10가지

2018-01-24T21:45:36+00:00 2018.01.22|

패션 신을 발칵 뒤집은 빅 뉴스죠? 피비 파일로가 떠난 셀린 하우스에 ‘에디 슬리먼‘이 입성했습니다. 오는 9월 파리에서 에디 슬리먼의 첫 번째 셀린 쇼가 공개되며, 그는 앞으로 셀린의 남성복, 꾸뛰르 컬렉션, 향수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1. 에디 슬리먼, 2월 1일부터 ‘셀린(Celine)’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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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생로랑을 떠난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 2년 만의 공백을 깨고 복귀한다는 소식은 패션계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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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피비 파일로가 떠난 셀린으로 복귀합니다.

‘피비 파일로의 셀린’으로 하우스를 완벽하게 재건하고 떠난 그녀는 <보그 코리아>에 이렇게 얘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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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셀린에는 집중하고 개선해나가는 목적의식이 있어요. 내가 설명해야 할 모든 것은 이미 제품에 담겨 있고요. 나는 이 하우스가 신중하고 느긋하며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피비 없는 셀린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셀린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팬들은 브랜드보다 피비 파일로를 더 좋아했죠. 이런 점에서 후임자인 에디 슬리먼도 비슷합니다. 그가 디올 옴므에 있든, 생로랑에 있든 간에 그의 팬들은 ‘에디의 (슬림한) 옷‘을 입기 위해 열성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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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로랑’으로 불린 해리 스타일스.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을 떠나면 대체 어디서 옷을 사야 하냐는 기사까지 날 정도로 에디의 대단한 팬이죠. 그뿐인가요? 칼 라거펠트는 에디 슬리먼의 슬림한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42kg이나 감량했죠!

이제 그는 셀린을 지휘하며 여성복뿐만 아니라, 남성복과 꾸뛰르 컬렉션, 향수도 선보입니다. 에디 슬리먼의 개인 브랜드를 그토록 원했던 LVMH의 소망이 셀린을 통해 이루어지겠군요. 에디 슬리먼의 첫 번째 쇼는 9월 파리 컬렉션!

2. 에디 슬리먼은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한 이후 슬림한 실루엣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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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은 제게 항상 너무 컸어요. 반쪽짜리 남자가 된 기분이었죠. 고등학교 땐 가족은 물론 친구들까지 비쩍 마른 절 남자답지 못하다고 조롱하고 왕따시켰어요. 위축된 사춘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답니다. 남자는 어깨도 넓고 큼직한 옷을 입어야 하고, 슬림한 옷은 마치 저처럼 동성애자들이나 입는 것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결국 동성애 공포증마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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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음식도 많이 먹고 운동을 하면서 남들 보기 좋은, 남자다운 몸을 만들기 위해 제 자신의 가치를 무너뜨리던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와 같은 뮤지션들에게 의지했답니다. 정말 큰 위로가 됐죠. 나의 우상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이상 동성애 공포증 뒤에 숨지 않을 용기가 생겨났죠. 비쩍 마른 동성애자라는 편견에 맞설 힘이 났어요. 록 스타들의 취향과 스타일에 푹 빠지면서 스키니한 실루엣에 완전히 사로잡혔죠.”

3. 수장을 맡은 첫 번째 하우스는 1996년, 이브 생 로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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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슬리먼은 뜻밖에도 프랑스의 명문 학교인 그랑제콜(Grandes Ecoles)에서 기자를 꿈꾸던 정치사회 학도였습니다. 하지만 패션에 열정을 가지고 다시 에콜 뒤 루브르(École du Louvre)에 들어가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하죠.

1992년부터 1995년까지 패션 컨설턴트 ‘장 자크 피카르’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 캔버스’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던 에디 슬리먼. 그때의 경험 덕분인지 그는 환상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지휘하고 이미지를 컨설팅하는 데에 남다른 재주를 보입니다.

PARIS, FRANCE - SEPTEMBER 27:  Pierre Berge attends the Saint Laurent show as part of the Paris Fashion Week Womenswear  Spring/Summer 2017  on September 27, 2016 in Paris, France.  (Photo by Pascal Le Segretain/Getty Images)

그의 재능을 알아봤는지 1996년 이브 생 로랑의 연인 피에르 베르제가 에디 슬리먼을 이브 생 로랑 하우스로 부릅니다. 피에르 베르제는 에디 슬리먼에게 이브 생 로랑의 남성복 디렉터를 맡겼고, 이후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했죠. 에디 슬리먼은 ‘이브 생 로랑 리브 고쉬’를 부활시킵니다.

4. ‘스키니’ 실루엣은 디올 옴므가 최초는 아니다.

비쩍 마른 남자들의 에디 슬리먼의 스키니한 수트는 디올 옴므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브 생 로랑에서 남성복 디렉터를 맡고 있을 당시, 2000 F/W ‘Black Tie’ 남성복 컬렉션에서 스키니한 실루엣을 최초로 선보였죠.

5. 디올 옴므의 향수와 화장품도 론칭했다.

패션 컨설턴트 밑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덕분인지 에디 슬리먼은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액세서리는 물론 화장품 분야까지 총체적으로 지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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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1년 처음으로 디올 옴므의 향수 ‘디올 옴므’를 선보였습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7년간 몸담은 디올 옴므를 떠나기 전까지도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죠. 향수 ‘Fahrenheit 32’와 최초의 디올 옴므 화장품 ‘더모 시스템’.

6. 디올 옴므에서 일하는 동안 사진 블로그를 시작하며 사진집도 만들고, 밴드 앨범 재킷도 디자인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한 에디 슬리먼은 2002년 첫 번째 책을 출간하고 2006년 사진 블로그 ‘Hedi Slimane Diary‘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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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출간된 사진집 <London Birth of a Cult>. 피트 도허티의 일상을 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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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엔 밴드 ‘피닉스’의 앨범 ‘Alphabetical’의 커버 촬영과 디자인도 도맡습니다.

7. 1998년 구찌 그룹이 남성복 브랜드 ‘Hedi Slimane’ 론칭을 원했으나 거절, 2006년 LVMH가 여성복 브랜드 ‘Hedi Slimane’ 론칭을 원했으나 역시 거절했다.

디올 옴므와 재계약 협상을 앞둔 2006년 7월 에디 슬리먼은 (디올 옴므의 모회사인) LVMH로부터 여성 컬렉션을 포함해 에디 슬리먼의 이름을 딴 브랜드 론칭을 제안받았지만 끝내 거절하고 2007년 디올 옴므를 떠납니다. 이게 처음은 아니었죠. 1998년 당시 YSL 그룹을 인수한 구찌 그룹이 에디 슬리먼의 이름을 딴 남성복 브랜드 론칭을 제안했지만 거절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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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사진 블로그에 “내 이름을 사용하거나 사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LVMH와 협상이 원만하지 않았음을 알렸죠.

8. 지금의 ‘생로랑(Saint Laurent)’으로 이름 지은 건 무슈 생 로랑이다.

2012년 3월 이브 생 로랑에 12년 만에 다시 돌아온 에디 슬리먼은 여성복과 남성복 모두를 지휘하게 됩니다. 그가 ‘생로랑’으로 이름을 바꾼 것에 갑론을박이 자자했죠? 에디 슬리먼이 무턱대고 ‘이브’를 삭제해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무슈 생 로랑이 사용했던 아카이브를 다시 꺼내어 창립 정신으로 돌아간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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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생 로랑은 피에르 베르제와 1966년 최초의 기성복 라인 ‘생 로랑 리브 고쉬(Saint Laurent Rive Gauche)’를 선보였어요. 부담스러운 꾸뛰르 드레스 대신 자유롭고 사회 참여적인 여성들이 입을 만한 편한 옷이었습니다. 그는 당시에 꾸뛰르 브랜드와 다른 라벨을 원했고 헬베티카 폰트 로고 ‘SAINT LAURENT’을 사용했어요. 아주 급진적인 행보였죠. 50년이 지난 후, 이 순간이 제게 커다란 울림을 줬어요. 무슈 생 로랑이 명명했던 이 오리지널 이름 , ‘생로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브’를 지웠다고요? 꾸뛰르 정신의 회복을 위한 리브 고쉬의 메시지를 복원하는 작업이었습니다.”

9. 2016년 생로랑을 떠나며 모회사 케어링 그룹에 소송해 승소했다.

에디 슬리먼은 2016년, 4년간의 생로랑 수장 생활을 마치고 모회사인 케어링 그룹을 떠납니다. 하지만 아름답지 못한 이별을 해 화제가 됐는데요, 케어링 그룹을 상대로 에디 슬리먼은 ‘계약서’에 관한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계약서의 “퇴사 후 동종 업계로 이직할  수 없다”는 항목 때문이었죠. 물론 에디 슬리먼이 승소했고, 1,300만 달러의 보상을 받았습니다(대박이네요!). 당시 ‘아무것도 안하고 140억원을 번 에디 슬리먼’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죠.

WASHINGTON - FEBRUARY 05:  The U.S. Supreme Court is shown February 5, 2009 in Washington, DC. It was announced today that Supreme Court Justice Ruth Bader Ginsburg had surgery after being diagnosed with pancreatic cancer. (Photo by Win McNamee/Getty Images)

10. ‘마른 몸’과 ‘피부’는 중요하지만 ‘근육’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타고난 마른 몸 때문에 어릴 적 왕따를 당하며 억지로 근육을 만든 경험자의 조언일 테죠. 그는 (거의 하지 않지만) 인터뷰할 때마다 마른 몸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에디 슬리먼이 말하는 ‘멋’이 어떤 것인지 들어보시죠!

곱고 탄력 있는 피부는 가장 중요한 요소죠. 뜨거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에요. 운동은 좋지만 타고난 몸을 굳이 바꾸며 근육까지 만들 필요가 있나요? 우아함과 거리가 먼 개구리로 변하는 것뿐이라고요. 마른 몸이 멋진 옷을 입기엔 훨씬 유리해요. 남자도 다이어트는 필요합니다. 모든 남자는 블랙 재킷, 화이트 셔츠나 티셔츠, 환상적인 청바지, 단정한 블랙 구두 혹은 오래되어 지저분해진 빈티지 운동화를 가지고 있어야 해요. 레드 카펫 위의 턱시도는 글쎄요, 펭귄 같아요.”

NEW YORK - MARCH 10:  (L-R)  Designer Hedi Slimane and model Helena Christiensen attend the Dior Homme Concert and Party in honor of the Dior Homme Store Opening on March 10th, New York City. (Photo By Mark Mainz/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