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인간의 천진한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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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인간의 천진한 모성

2018-02-08T11:21:02+00:00 2018.02.08|

여성성, 천진함, 동화적 아름다움, 낙관주의, 설렘, 감사하는 마음, 쓸데없는 공상’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쓰던 정서경은 여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탰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녀를 이끌었다.

화이트 톱과 와이드 팬츠는 코스(Cos).

화이트 톱과 와이드 팬츠는 코스(Cos).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만난 지 정확히 11년 만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 이외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똑같이 산다.(웃음) 영화를 쓰다가 드라마를 쓰게 되었다는 것 정도?
아, 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전에는 내가 연장자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수업하면서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인간에겐 선생 본능이 내장되어 있는가 보다. 엄마로의 변화, 선생으로의 변화가 맞물려, 내가 어리다고 여기거나 마음만 먹으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자체가 맞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나리오를 가르친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격적인 어떤 걸 걸고 배우는 것이다. 인간적인 성장을 원하고 내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데, 그런 열망을 가지고 필사적으로 선생을 쳐다본다.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라는 느낌이고, 그래서 수업이 끝난 후에는 늘 행복했다. 직업 작가가 아니다 보니 실제 자기 내면을 고스란히 꺼내 쓰는 경우도 많다. 실험실에서 ‘이야기하는 인간’ 사고의 형태를, 그 본질을 보게 되는 것처럼. 강의라기보다는 대화에 가까웠다.

본인은 전혀 열정적인 작가 지망생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웃음) 맞다.
안 그랬다.(웃음) 처음 철학과 갔을 땐 뭐랄까, 경기장 밖 벤치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앉아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겠다, 그런 느낌. 그리고 경기에 들어가야겠다 싶어 한예종에 간 거다. 깨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첨엔 내가 발달해온 방향이 시나리오를 쓰기에 적합하지가 않다는 걸, 그다음엔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걸, 그다음엔 시나리오 쓰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이른바 하루키 스타일, 폴 오스터 스타일 등 각기 스타일이 있는데, 이것이 이들이 글 쓰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지 않나?
규칙적으로 쓴다. 7시 반쯤 일어나서 밥을 짓고, 이모님이 오셔서 반찬을 하시는 동안 내가 아이들을 깨운다. 하나는 학교에, 하나는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하루 에너지를 다 써버린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출근해서 뉴스를 본다.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잡아 끄는 이슈가 있으면 또 집중 탐구.(웃음) 점심 먹고 일을 시작해서 7시쯤 되면 더 할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일이 잘되면 더 하고. 박완서 작가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셨다던데, 난 하루를 버티기가 힘들어 포기했다.

쪽대본이 난무하는 방송계에서는 보기 드문 규칙성이다. 그래서 3주 남은 지금 벌써 <마더>도 14부작까지 완성할 수 있었나 보다.
이걸 고집한 건 아닌데, 이렇게 내일도, 일주일도, 한 달도 살 수 있게, 오늘의 잘못된 점은 내일 개선해 지속 가능하게 하다 보니 10년간 생활 패턴이 거의 똑같다. 그간 단 하루도 그냥 지낸 적이 없다. 휴가는 많이 가지만. 늘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에 연착륙하는 식이다. 그냥 쉰다는 게 뭔지 그 느낌을 잊은 것 같을 때도 있다. 립스틱도 한 10년 만에 발라본 것 같다. 입술이 무거워져서…(웃음)

<마더> 덕에 립스틱도 바르고, 우리도 재회하게 되었다. 어떤 계기로 이번 드라마를 쓰게 됐나?
드라마를 쓸 만큼 에너지도, 여력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tvN에서 제안이 왔을 때 고민했다. 5년 안에 엄마와 아이 이야기를 쓸 기회가 있을까. 없겠다 싶었다. 사랑 이야기를 볼 때마다 거기가 끝이 아니야, 다음부터가 시작이야, 이런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막 든다. 16개의 이야기로 완성할 만큼의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큰애한테도 물어봤다. “엄마가 드라마를 쓰려고 하는데…” 싫다고 하더라.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야” 했더니 “그래?”.(웃음) 물론 15세 이상 관람가라 보기 힘들겠지만.(웃음)

원작은 어떻게 봤나?
이 원작이, 쓸수록 신기하다. 낳아준 엄마, 길러준 엄마가 모두 등장하고 그녀들에 대한 감정도 복잡하다. 사실 누구에게든 엄마는여럿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 싫어하는 엄마, 하지만 늘 그리운 엄마… 이 모든 걸 보여주기에 완벽한 세팅이라, 쓰면서도 놀라웠다. 우리는 엄마가 되길 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원치 않는다. 아이를 낳았다 해도 한없이 보듬고 싶다가도 너 때문에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극 중에 나오는 여러 유형의 엄마들이 마치 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원작과는 얼마나 다른가?
원작이 11부작이고 회당 40~50분 정도 되는데, 우린 16부작에 60~70분 분량이다. 1회만 흡사하고 후반부는 많이 다르다. 장르적인 면도 추가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드라마를 멜로로 해석했다.
멜로는 인간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
처음엔 엄마와 아이보다는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엄마 간의 가장 큰 드라마는 복닥거리는 일상에서 시작되는 것 같은데, 이 여자는 강렬한 끌림 때문에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고, 유괴라는 비일상적인 행동을 하니까. 그녀 안에 있었던 건 ‘엄마가 되어야겠다’가 아니라 ‘쟤는 아이이고, 나는 어른인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굉장히 엄마와 딸의 이야기여서 많이 놀랐다.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쓰고 있다 생각했는데, 많은 부분이 딸로서 쓰기도 하고. 모든 여자 인물들이 엄마이거나, 엄마가 아니거나, 엄마가 아니길 원하거나, 열렬히 엄마이기를 바라거나, 이렇게 다들 엄마라는 대상과 어떻게든 관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도 직접 경험했거나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 왠지 현장 분위기도 남다를 것 같은데, 어땠나?
영감을 받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설렜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엄마와 어떻게 관계 맺고 살았는지. 이혜영 선생님, 이보영 씨, 고성희 씨, 전혜진 씨, 고보결 씨, 어쩌면 다 그렇게 다르고도 비슷한지, 보기 좋았다. 대본 리딩할 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울기도 하고, 아주 순식간에 친구가 된 것 같았다. 특히 전혜진 씨는 아역 배우로 살다가 배우와 결혼했고, 스물세 살에 아이를 낳았다. 드라마로는 7년 만의 복귀라 아이가 응원해준다고 하더라. 남기애 씨도 아이 셋을 키우고 서른일곱 살에 배우 일을 시작했다. 놀랍지 않나?

이보영 씨의 출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가장 고맙다. 나는 편성이나 캐스팅 같은 걸 잘 모른다. 보영 씨가 그걸 선뜻 해주겠다고 한 의미를 잘 몰랐던 거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보영 씨가 대본을 두 번은 못 읽겠다고 했다.그때 생각해봤다. 내가 작가로서 읽는 것, 다른 배우들이 읽는 것, 보영 씨가 읽는 것이 얼마나 다를까. 말하자면 그 자신이 되어 깊이 내려가 최선을 다해 대본을 읽어준 건데, 그러고도 하겠다는 게 굉장히 힘든 결정이었을 것 같다. 반짝반짝하기보다는 어쩌면 굉장히 고통스러울 텐데도 말이다.

섭외 전화 했을 때 곧 이혜영 배우를 만난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연극 무대를 찾아보면서 아름다움의 층위란 정말 다양하구나, 사람의 목소리로도 이렇게 감동 받을 수 있구나 했다. 배우 생활 40년 동안 인간으로, 엄마로 열심히 사셨고, 다 살아낸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실 참이지 않나. 처음 리딩할 때, 너무 그 인물이라 직접 쓰신 대사인 줄 알았다. 대본 리딩 영상을 보고도 깜짝 놀랐다. “우리 드라마는 모든 여자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엄마 없이 자란 아이도.” 이게 직관이구나. 단순히 아이를 낳는 체험보다도 한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자기를 내주는 게 더 어렵지 않나. 한 인간이 가장 높이 점프해서 성장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인 것 같다.

20대, 아니 자아라는 게 생기고 나서는 늘 마치 엄마 없는 사람처럼 굴었던 것 같다.
맞다,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나날이 깨달은 건 이혜영 배우님 말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거다. 어릴 때 난 눈만 뜨면 책을 읽고 글을 썼는데 그게 내가 외로워서, 우리 엄마가 내게 뭔가 잘못해서 이렇다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모성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동시대적인 시도다. 모성의 어떤 지점에 초점을 맞추는가가 본질을 확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흔한 소재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어떻게 보고 있나?
난 아직 많이 탐구하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깜짝깜짝 놀란다. ‘인간은 다 똑같구나’라는 걸 발견할 때. 엄마들이 이걸 다 알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다만 그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혹은 세계의 느낌이 별로 공유되지 않았고, 우리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다행히 가전제품의 발전으로 손과 어깨가 가벼워지고, 주변 분들이 아이들을 키워주시고, 시간이 있고, 글을 쓸 수 있으니, 나부터 이 관점을 꼭 공유해야겠다, 싶었다.

터틀넥 니트는 H&M, 팬츠는 비이커(Beaker).

터틀넥 니트는 H&M, 팬츠는 비이커(Beaker).

이 이야기가 작가 자신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아이를 키울 때, 갑자기 세계가 확 열린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엄마가 막연하게 나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든 것 같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 적 없다. 그 흔한 엄마놀이 같은 것도 안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인간을 발생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난 원래 이렇게 난 게 아니라 누군가 이렇게 키운 거였고, 한 씨앗 안에서 역사를 가지고 자라는 거였다. 내 속에 있던 아이도 자라나는 기분이다. 아들만 둘이라 남성성이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너무 여러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엄청 줄어들고, 그 사이에 굉장히 많은 관점이 들어가서 자아가 작아졌다. 그래서 편하다.(웃음)

엄마이기 때문에 <마더>라는 작품을 더 잘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안 그러면 못 썼을 것 같다. 그리고 PD님이 주인공 아이가 아이 같지 않다고 할 때가 있다. 내가 볼 땐 아이 맞는데… 평소 ‘어린아이답다’는 것과 ‘어른 같다’는 건 뭘까, 생각하는데 이번에 내 관점에서 어린아이를 그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특히 <마더>에 나오는 율이는… 첫인상은 평범했지만 연기하는 걸 보다 보니 저절로 눈물이 났다. 쓸 때 느낀 리듬감 같은 걸 어떻게 아는지… 고요한 뭔가가 마음을 흔든다. 아이가 연기와 현실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 드라마가 얘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야기에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작가로서 선사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
우리 드라마가 대박 날 것 같진 않지만,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보영 씨 캐릭터는 생물학적 엄마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엄마의 본질에 좀 다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생물학적 엄마에게도 엄마가 되길 선택하는 순간이 온다.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도, 주저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 엄마가 되어보자, 이렇게 도약하는 순간이 있는데, 낳은 엄마가 아닌 경우에는 더 드라마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서문에도 썼지만, 대중과의 소통의 방식이나 방향을 반성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막상 대중 친화적인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니 어떤가?
내가 뇌 발달이 중년 이후에도 일어난다는 증거다. 그때 난 시나리오 쓰는 일이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을 놀라게 하고 재미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내 일이라고. 그게 아니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나는 사람들이 듣길 원하는 이야기를 알아내서, 더 재미있고 놀라운 방식으로 들려줄 뿐인 것을 말이다. 어떻게 하면 완벽할까 고민했지 관객 입장에서 그걸 원하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매 순간 생각한다. 나는 11년 전에 인터뷰했던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다.(웃음)

예전엔 뭔가를 보여주겠어, 아주 잘해보겠어 등의 야망 없이,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이런 느낌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박찬욱 감독님은 늘 그러셨다. “쓰고 싶은 대로 다 써.” 내가 쓰고 싶은 게 뭐지? 대체 뭘 쓰고 싶은 대로 쓰라는 거야?(웃음) 너무나 어려웠다. 이젠 전혀 다른 느낌이다. 지난해 내 나이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감독님 나이와 같았다. 이젠 당시 감독님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다. 시나리오 쓴 지 10년 정도 지났을 때, <아가씨>를 쓸 때, 아, 이런 거구나, 하면서 이른바 ‘자아 유능감’이 확 터졌을 때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오히려 그러지 않지만.(웃음)

개인적으로는 <비밀은 없다>를 보면서 괜히 반가웠다. 이젠 박찬욱이 없어도 정서경은 정서경이다 싶어서.
<비밀은 없다>는 무엇보다 이경미 감독님의 DNA를 엄청 집요하게 새겨 넣은 영화다. 언제부터인가는 손예진 배우가 막 이경미 감독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예쁜 배우가…(웃음) 그분에게는 이야기 구조는 물론 배우의 느낌조차도 ‘이경미스럽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자아가 강한 감독들과 거듭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인가, 아님 원래 가진 재능인가?
다음 작품이 뇌 과학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평소에도 늘 뇌에 대해 생각한다. 최근엔 내재화, 즉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을 때 이 사람처럼 변해가는 과정에 대해 관심이 갔다. 나는 박 감독님과 일할 때는 박 감독님 프로그램이 돌아간다. <친절한 금자씨> 때만 해도 각본을 엄청 써야 했다. 재미있으면 넘어가고, 재미없으면 다시 쓰는 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를 거쳐 <아가씨>를 쓸 땐 재미가 없어서 다시 쓴 적은 없게 되었다.

혼자 일할 땐 어떤 시스템이 작동되나?
혼자일 땐 그냥 정서경의 프로그램.(웃음) 작품화되지 않았을 뿐 혼자 일하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원작 있는 작업들을 했다. 난 그게 편하고 좋다. 오리지널을 쓰고 싶은 캐릭터가 아닌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생각해낸 뭔가가 안에 있다. 예전엔 이 작가가 무엇을 원했고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에 집중했는데, 지금은 이 안에 어떤 원형적인 구조가 들어 있다는 생각으로 쓰게 된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스토리텔링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어떤 차이점이 있나?
별로 다르지 않을 줄 알고 덤볐는데, 많이 배우고 있다. 이를테면 만약 대화로 극적인 뭔가를 표현할 수 있다면 시간도, 돈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배우의 힘만으로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점은 연극과도 비슷하다. 영화는 기계적인 도움으로 완성된다. 사운드, 이미지, 카메라 움직임, 편집 등이 만들어내는 게 컸고, 내가 쓰면서도 많이 기댔다. 어떻게 하면 새롭고 힘 있는 이미지를 만들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훨씬 더 배우와 말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좋다.

자식 키우는 심정에 대한 문학 작품을 찾았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인가?
토니 모리슨의 <빌러브드(Beloved)> 같은 소설은 이야기 자체가 견고하고 꽉 짜였다기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고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오에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을 보면서도 느낀 바가 있다. 아버지가 아픈 아이 옆에서 시를 읽어주면서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이렇게 많구나 실감한다. 동시에 아이를 바라보는 눈길을 거두지 않는데, 이 아버지의 태도가 인류를 진화시켜온 중요한 요소구나 싶다. 이런 경우 엄마는 시를 읽지 않는다, 읽을 수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걸 정신 놓지 않고 지켜보고, 그 경험을 고통의 어느 형태로 기억해 묘사할 수 있어야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망가져간다고나 할까. 어쨌든 고전으로 알려진 세계문학 중에서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엄마가 스스로 엄마가 되어가는 이야기는 왜 별로 없는지 생각해봤나?
사랑 이야기, 부자간의 이야기, 소년이 성장해가는 이야기, 전쟁 이야기, 하다못해 인간이 고래를 쫓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녀들이 찬찬히 엄마라는 인물에 대해 스스로 추상화하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엄마 이야기는 어쩐지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성에 대한 이미지는 양극단으로 치우쳐 있다. 희생하는 엄마 혹은 광기 어린 엄마. 딸이 아니라 엄마의 시점으로 쓰인 글은 생각 외로 적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 해서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각인되는 경험으로 쓰게 된다. 그런데 엄마 체험을 한 사람이 작가가 되는, 그러니까 그걸 폭발할 시간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을 동시에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투자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필요한 것 같다.(웃음)

봉준호의 <마더>도,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마더!>도 있었다. 왜 <엄마>가 아니라 <마더>인지 궁금했던 적은 없나?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일종의 소격 효과 아닐까? 엄마 하면 떠오르는 선입견이 너무 많으니까. 제목이 엄마일 수밖에 없는데,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라서.

내가 아는 정서경이라는 작가는 대중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점차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얼마나 소수에 속하는 사람인지 안다. 얼마 전 사촌 오빠의 부탁으로 인문학 강좌에 갔다. 깜짝 놀랐다. 청중이 60~70대인 거다. 보통 막연히 관심사가 비슷한 20~40대와 소통한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어쨌든 더듬더듬 얘기했는데, 결국 이분들이 내 드라마의 주요 관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실물로 본 그분들이 관심 있고 재미있어할 얘기를 써야 해, 그랬다. 그래서 드라마가 어려운 것 같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친구 같다 했고, <아가씨>로 대화의 대상으로서의 관객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했다. <마더>의 경우에는 어떨 것 같은가?
실감이 안 난다. 어쨌든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의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유할 수 있음 좋을 것 같다. 진짜 엄마가 되라는 게 아니라. 엄마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 보면 현재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많은 부분이 ‘나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또 누군가 “쓰고 싶은 거 다 써봐” 한다면, 어떤 걸 쓰고 싶나?
얼마 전에 만난 류성희 미술감독님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다. 평소 맨날 일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을 안 한다. 그런데 <마더>를 쓰면서 ‘아, 이런 작품 쓰고 싶었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처음이다.

‘이런 작품’이라고 하면 어떤 걸까?
여자들이 끝까지 싸워가는 이야기. 극마다 감정의 동력이 있다. 스포츠 영화에서 역경을 이겨내는 건 승리의 감정, 결합하기 위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건 사랑의 감정이다. 이 드라마는 성숙함에 대한 것이다. 그런 존재로 성장해나가야겠다, 더 커져야겠다는 의지. 이겨야 하는 상대나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처럼, 우리 드라마에서는 자기 안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분투한다. 그런데 그걸 쓰는 게 너무 좋은 거다. 그녀들도, 나도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