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친구, 모두가 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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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친구, 모두가 연예인

2018-02-12T18:47:35+00:00 2018.02.12|

우리는 별 하나를 잃었다. 심리학자는 말한다. 일대일로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비슷한 처지라고.

노란 실크 드레스는 펜디(Fendi).

한 가수가 자살했다. 주변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살에 대한 고정관념, 예를 들어 어둡고, 외롭고, 좌절에 빠졌고, 충동적이거나 우울한 사람의 이미지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가 이야기해준다. 이 세상에 ‘자살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깊은 우울증, 그 원인 중 하나인 좌절이나 절망, 거듭되는 좌절로 갈 곳 잃은 분노 등이 자살의 보편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반드시 이것만이 자살의 원인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결코 그 방법에 동의할 수 없지만)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살도 있다.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는, 일종의 구조 요청 신호로서의 자살도 의외로 많이 발생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대개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미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청소년기에는 자살이 일종의 로맨틱한 상상과 연결되기도 한다.

발달심리학자 데이비드 엘킨드(David Elkind)는 사춘기 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중2병’ 증세를 ‘청소년기 자아 중심성’이라고 부른다. 이 자아 중심성의 증상 중 연예인하나가 ‘상상의 청중’, 즉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만 본다는 상상이다. 물론 그들도 실제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상은 유지된다. 남들이 사실은 내 일거수일투족에 엄청난 관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는 본심을 숨긴다는 망상 때문이다. 내 망상 속에서 그들은 결코 솔직해질 수 없다.

오직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들은 숨겨왔던 나에 대한 진심을 드러낼 것이다. 이런 망상의 한 극단은 자살로 이어진다. 자살이란 결국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사건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들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 청소년들은 정말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만약 내가 죽으면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보고 싶어서 자살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종현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개인의 자살은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벌어진 몇몇 소동은 이 ‘상상의 관중’과 이어진다. 사실 연예인들, 특히 유명 연예인의 삶은 상상의 관중이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들의 일상은 진짜 관중에게 둘러싸여 있다. 대중은 실제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쏟아부으며, 대중매체는 유명 연예인의 일상을 상품처럼 팔아댄다. 그 때문에 이들의 대수롭지 않은 행동, 사소한 한마디가 사람들을 뒤흔들고 흥분시켜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중과 연예인 사이에는 대중매체라는 매개체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매체를 통해 연예인들에게 전달되었고, 연예인들 역시 매체를 통해서 자기를 표현하거나 알렸다. 비록 대중이 이들 유명인들에 대해서 무슨 헛소문을 공유하든, 어떤 험담이나 찬양을 하든, 그건 그들끼리의 일이었다.

이런 사정은 ‘대중매체’라는 중간 매개체 없이 직접 일대일 소통을 하게 된 상황, 즉 소셜 네트워크의 도래와 함께 완전히 뒤바뀌었다. 거의 모든 연예인들은 고유한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개설했으며, 계정만 있으면 누구든 그 연예인과 직접 연결하게 되었다. 이제 대중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연예인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뒷담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직접 실시간으로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예컨대 울타리 밖에서만 서성이던 관중들이 내 집, 내 방 안으로 들이닥치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이효리의 제주도 자택 초인종을 제멋대로 눌러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무리 호의적인 타인이라도 내 방에 마구 들어오면 불편하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악담만 퍼붓는 자도 여럿이며,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이래라저래라 ‘훈장질’하는 인간마저 있다. 이번에는 가수 자이언티가 그런 일을 겪었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로부터 종현의 장례식에 조문하러 가지 않았다며 지적당한 거다. 얼마 전 교통사고를 낸 소녀시대 멤버 태연의 인스타그램에는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메시지가 빗발쳤다고 한다. “사과는 피해 당사자에게 하는 것이고, 공개적으로 할 일이 아니다”라는 그녀의 대꾸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현실화된 상상의 관중들이지만 이들 역시 여전히 이중적이다. 그들의 칭송은 정말 100% 진심일까? 그렇다면 악플은 진심일까? 칭찬도 평가다. 모든 평가는 잠재적인 위계를 전제로 한다. 즉 A가 B를 칭찬한다는 건, A가 B보다 우위의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대중은 특정인을 칭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그들을 평가하는 존재로 슬쩍 격상시키는 보상을 얻는다.

악플도 그렇다. 악플은 대개 분노라기보다는 질투의 표현이고, 그 악플을 통해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이의 관심을 끌려는 욕망의 결과물인 경우도 많다. 사실 그런 글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이 개구리에게 던진 조약돌에 불과하다. 심리적인 거리만 가까워지는 셈이다. 연예인들이 접하는 상상의 관중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인데, 여전히 일반적인 상상의 관중처럼 겉과 속이 다르고, 심지어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데다, 예전처럼 약간의 거리를 둘 여지조차 없이 마구 들이댄다. 이런 비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면서 온전한 정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에이핑크의 정은지는 종현의 자살만큼이나 그의 유서를 보며 공감하는 동료들이 많음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서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연예인과 비슷한 환경을 경험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전부 그렇다. 예컨대, 예전에는 직접 만나는 친구들에게만 따돌림을 당했다면, 이제는 전교 단위로 혹은 지역구 단위로 확장될 수 있다. 경험하는 환경의 폭도 매우 넓어졌다. 어떤 이는 무명의 연예인에 가깝다면, 어떤 이는 상대적으로 좀 잘나가는 연예인과 비슷한 처지다. 이런 시대에 자이언티나 태연에게 벌어진 일은 스케일만 다를 뿐 우리들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 기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든 그건 당신들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