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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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T18:33:37+00:00 2018.02.15|

제철 음식도 좋지만, 시간을 마라톤한 음식도 매력 있다. 이토록 흥미진진한 올드 푸드의 세계.

WHAT'S OLD IS NEW 사진 속의 스테이크처럼 드라이에이징 비프의 매력은 익히 유명하다. 그렇다면 숙성된 스시는? 발효 야채는? 곰팡이 코트를 입은 과일은? 몇 년이나 묵은 마멀레이드는?

WHAT’S OLD IS NEW
사진 속의 스테이크처럼 드라이에이징 비프의 매력은 익히 유명하다.
그렇다면 숙성된 스시는? 발효 야채는? 곰팡이 코트를 입은 과일은?
몇 년이나 묵은 마멀레이드는?

매년 8월, 보스턴에 있는 엄마 집에서 하루나 이틀 밤을 보낸다. 올해엔 엄마 집에서-왜인지는 딱히 잘 모르겠지만-눅눅해진 뚜껑에 ‘1984년까지’라고 적혀 있는 애플 젤리(사과 잼과 비슷하지만 과육이 없음)를 찾느라 선반의 양념 통을 다 뒤졌다. 시간이 더해져서 진한 호박색이 된 내용물은 빙하기에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엄마는 한 술 떠서 따듯한 물에 타 농도를 맞추고는 과일 타르트 위에 발라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뉴잉글랜드의 파머스 마켓이 제철 맞은 농작물을 신나게 자랑하는 한여름이 되면, -아름답고 매우 맛있지만 긴 겨울의 망령이 시커멓게 만들어버린-우리 엄마의 애플 젤리가 영원을 약속하며 자태를 드러낸다(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시간2018136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올드 푸드는 변하지 않을뿐더러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요즘처럼 최근에 딴 과일, 최근에 추수한 곡식, 막 잡은 생선, 막 도살한 고기를 먹는 것을 칭찬하는 로커보어(로컬에서 재배한 것만 먹는 사람) 시대에, 한 철 혹은 여러 해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전통적인 조리법이라는 헌신적인 챔피언이 나타난 거다.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를 생각해봐라. 수렵꾼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발효인’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이 필요하다. 굴과 미뇨네트 소스, 달걀과 베이컨, 가지와 파르메산 치즈처럼.

와인이나 치즈, 스카치나 살라미처럼 너무 유명한 것을 제외하면, 아직도 많은 올드 푸드가 세상에서 주목받기 위해 투쟁 중이다. 피츠버그의 레스토랑인 큐어와 모르씨야(Cure, Morcilla)의 오너 셰프 저스틴 세베리노. 그의 레스토랑에는 1,360kg이 넘는 숙성 고기와 함께 유산균으로 발효한 피클, 자우어크라우트, 요거트, 식초 그리고 다양한 콩피가 담긴 메이슨 자(Jar)가 가득하다. “우리 몸은 멸균 상태를 원하지 않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음식에 대해 그런 공포를 가지고 있죠. 제 찬장에 5~6년 된 꿩이 있어요. 누군가 한번 제대로 놀랄 것 같네요.”

올드 푸드는 예상 못한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페닌슐라 베벌리힐스 호텔의 최근 디너 스페셜은 -누군가는 랍스터 샐러드를 예상했겠지만- 호텔에서 만든 램 파스트라미와 발효된 회향(미나릿과의 풀)이었다. 셰프인 데이비드 코드니는 호텔의 옥상에서 직접 브루잉하는 에일에 홉과 회향을 키운다. “아무거나 말만 하세요. 이미 우리가 발효 중일 테니. 다들 농장에서 식탁으로 바로 오는 것에 너무 집중하고 있죠. 하지만 올드 푸드야말로 새로운 맛과 풍미의 세계를 엽니다.”

최근에 (사실 최근이 아니라 매년 이 시기에 그랬다) 나는 태평양에서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는 야생 연어에 푹 빠져 있다. 웨스트 할리우드에 있는 동네 해산물 가게에 방문했는데 거대한 연어 필레(고기나 생선의 뼈 없는 조각)가 전시품처럼 케이스에 놓여 있었다. 가게의 매니저인 에더 도밍게스가 해주는 물고기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잡았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의 이번 설명은 좀 놀라웠다. 연어의 오렌지색 살코기를 숙성시키려고 며칠 놔뒀다는 것.

생선을 숙성해? 하긴 맛이 좋아진다면 안 할 이유는 없다. 10년 전쯤, 에도마에라고 불리는 전통 방식을 통해 뉴요커들에게 숙성 생선의 세계를 열어준 에이지 이치무라 스시 장인이 떠올랐다. (사실, 스시는 신선한 생선을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생선을 저장하는 방법에서 출발했다. 생선을 밥알에 싸두면, 쌀이 발효되면서 나오는 산이 생선이 상하는 것을 방지한다.) 요즘 우리가 사시미를 떠올리면, 접시 위에서 팔딱거릴 정도의 신선함을 생각하지만, 그건 오류에 가깝다. 생선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7일 정도는 동결 상태로 놔둬야 한다. 이치무라는 신선하게 먹어야 좋은 생선과 냉장고에서 한동안 보관했다가 먹으면 좋은 생선을 구별한다. 방어류는 일주일, 고등어나 삼치류는 열흘을 꽉 채워야 좋다. 그의 식당에서 각각 숙성 기간이 다른 참치 뱃살을 먹은 적이 있다. 솔직히 제일 오래된 뱃살 부분은 못 삼켰다. 풍미가 지나쳐서 치즈 숙성 동굴에 가까운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에 있는 레스토랑이자 연구소인 무가리츠(Mugaritz)에 방문했다. 셰프 안도니 루이스 아두리스에게 당한 적이 있다. 카망베르 치즈에 푸른곰팡이균을 주입하면 하얀 솜털이 치즈를 뒤덮는다. 카망베르 치즈의 특징이다. 그 레스토랑에서는 살짝 삶아낸 배에 이 균을 주입한다. 털 코트를 입은 배를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바로 앞 테이블은 충격적인 해산물과 스테이크 숙성 요리를 먹고 있었다. 큐브 모양으로 잘린 라도(소금에 절인 돼지 비계) 위에 캐비아와 절인 철갑상어알을 한 스푼 듬뿍 올려 마무리한 요리였다.

요즘은 미국에서도 드라이에이징 비프가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환경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 ‘환경’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가정의 냉장고에서는 드라이에이징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축축하고 환기가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충분히 춥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맛을 망치는 박테리아로 그득해진다. 좋은 숙성 식품은 모두 부패 정도의 통제에 의해 이뤄진다.

장모김치(Mother-in-Law’s Kimchi)의 창립자 로린 천은 한국계 미국인 가정에서 톡 쏘는 맛의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 그녀는 김치의 역사 중에서도 공동 식량이었다는 점을 가장 좋아한다. 가을이면 여자들이 모여서 엄청난 양의 배추를 소금에 절여 김치를 만들고, 땅에 묻은 항아리에 넣어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로린은 “신선할 때보다 숙성되면서 복합적인 맛이 나 더 맛있어져요”라고 말한다. “유통기한이 없죠. 발효가 계속되거든요.” 로린은 밀레니얼 세대가 곰부차를 마시기 시작하고 유산균이 주류에 막 편입하려던 시기인 2009년에 사업을 시작했다. 제대로 만들어진 김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추의 항균 작용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 대신 전형적인 ‘좋은 박테리아’ 중 하나인 락토바실리균이 생성된다. 로린은 거의 대부분의 채소를 김치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숙성된 샐러드라고 생각하면 돼요. 공기와 시간, 박테리아가 자기 할 일을 하게 놔두는 거예요.”

또 한 명의 숙성 음식 전도사는 특이 음식 전문가이자 70년 전통의 식료품점 ‘코르티 브라더스’를 운영하는 대럴 코르티다. 호놀룰루에서 열린 사케 페스티벌에서 막 돌아온 그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어떤 신드롬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먹는 것에 공포가 있죠. 신선하거나 완벽한 상태가 아닌 것들은 다 피해요.” 코르티는 3일 지난 빵의 맛을 찬양한다. 그를 보자니 일본 최고의 소바는 5년간 숙성한 것이고, 바스마티 쌀 중에 최고는 그것보다도 더 긴 숙성을 거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는 푸아그라를 창고에서 몇십 년간 저장해둔다는 프랑스 페리고르 지역의 농부들과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맛이 좋아지는 이탈리아 리구리아해의 감귤류로 만든 잼을 격찬했다. 그는 쿠거 골드 치즈(워싱턴주립대의 유제품 공장에서 만든 통조림 치즈)에 대해서도 빠삭했다. “미국식 치즈 제조 공법의 아주 좋은 예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제외하면 와인과 가장 완벽한 궁합을 이루는 치즈입니다.” 코르티 브라더스는 2007년산 쿠거 골드 한 캔에 80달러에 팔고 있다.

LA의 핫 스폿이라 할 수 있는 동남아 음식 전문점 E.P. & L.P의 셰프 루이스 티카람은 새우 페이스트 같은 숙성 음식을 슬쩍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가 쓰는 XO소스는 말린 관자, 새우, 고추, 생강을 써서 2년 전에 만든 것이다. “갈수록 더 맛있어진다니까요. 신맛이 나는 시기를 지나면 감귤류의 에센셜 오일 같은 톡 쏘는 맛이 나죠.” 그는 메뉴에 있는 오리 샐러드를 위해 오리 한 마리를 통으로 데쳤다가 간장과 엿당을 표면에 바르고 약간 상하기 시작하는 냄새가 날 때까지 일주일간 저장소에 걸어놓는다. 특유의 진한 맛은 접시를 내기 전 태국 피시 소스인 남플라를 곁들이면서 더 강해진다.

삭힌 연어 머리를 별미로 여기는 몇몇 알래스카 원주민을 제외하면, 미국 음식은 잘 숙성된 생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케이프 시푸드에서는 생선의 모든 조각을 다 사용하도록 하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해, 케이프 시푸드의 디렉터인 브랜든 그레이는 넌더리 날 정도로 많은 앤초비와 정어리를 가지고 자신만의 피시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머리와 내장을 소금물에 퐁당퐁당 담그면서 말이다. 10개월 뒤, 그것들은 엄청 큰 통에 담긴 버건디색 거름 같은 비주얼이 됐다. 원하는 정도로 숙성이 되면 거름망에 걸러내고 캐러멜을 넣어 단맛을 더하겠다는 계획이다. “장기전은 시간 싸움이죠.” 이렇게 말하는 그레이는 꽤나 즐거워 보였다.

집에서도 ‘장기전’을 쉽게 하는 방법이 있다. 피자 도우나 쿠키 반죽을 오븐에 굽기 며칠 전에 미리 만들어놓으면 더 깊고 풍성한 맛과 풍미를 낸다. 스테이크를 페이퍼 타월 한 뭉치로 감싼 뒤 냉장고에 며칠 놔둬봐도 좋다. 에이징 비프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겠지만, 표면이 살짝 마르면서 더 진한 색의 바삭하고 풍미가 더해진 크러스트를 즐길 수 있다. 지난해 책 <더 푸드 랩>으로 제임스 비어드 상을 받은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어리어에서 활동하는 식품과학 작가 J. 켄지 로페즈 알트는 냉장고에서 감자를 큐어링하는 실험 중이라고 했다. “2주가 지나면 얼마간의 전분 성질이 설탕으로 변해요. 덕분에 더 단 감자 샐러드를 만들 수 있죠.”

LA의 내 집에 있는 냉장고에도 다년간의 노력이 축적된 저장물이 있다. 몇 년 전 프랑스의 파머스 마켓에서 구입한 소시지, 압축 비닐에 담겨서 야채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들, 손도 안 된 피클, 아이스박스에 담겨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냉장고에서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육수까지 쌓여 있다. 몇 주 전 나는 로망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를 두 덩어리 사왔는데, 하나는 신선한 것, 또 하나는 40일간 드라이에이징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 숙성된 스테이크는 심플하게 구워서 토마토, 올리브오일, 소금을 넣은 소스만 더해서 먹었다. 신선한 고기는 힙스터 델리카트슨(육류 가공품을 파는 가게)인 주스타(Gjusta)에서 사온 발효 소스에 1시간 동안 재워놨다.

“오래된 것과 신선한 것의 조합을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누가 봐도 확실히 절인 것, 미리 준비된 것들, 혹은 저장 숙성된 음식을 선호할 것 같은 코르티도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8월 중순에, 영국 탐험가 로버트 팔콘 스캇의 것으로 추정되는 106년 된 케이크가 발견됐다. 버터가 산패된 냄새가 약간 나긴 하지만, 케이크는 여전히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코르티는 전혀 놀라지 않는 듯했다. “제 냉장고에도 83년이랑 84년에 산 케이크 있을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