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ga Slam

Beauty

Yoga Slam

2018-03-05T17:50:03+00:00 2018.03.05|

EDM, 대관람차, 염소, 사막, 아이스, 맥주…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요가가 쏟아진다.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퓨전 요가 신드롬.

니트 소재 브라 톱은 셀린(Céline).

레저 마케팅의 MSG
그럼에도 얼음판과 맥주를 오가는 요즘의 퓨전 요가를 보면 실소가 나올 때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가에 호의적이다. 모두 그것이 좋은 운동인 걸 알고 있고 몸매 좋은 연예인들은 죄다 요가를 한다.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트렌드가 된다. 그리고 트렌드가 된다는 것은, 아무런 노력과 갈등 없이 당장 지갑을 열고 체험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고 가벼워진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요가는 여가계의 인스턴트 크림수프 같은 존재로 변모했다. 이런저런 첨가물과 함께 깡통에 집어넣고 예쁜 라벨을 착 붙여서 레저 마케팅의 진열대에 전시하면 바쁘고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이 입맛대로 골라 한 끼에 간편히 먹어 치우는 것이다. 아, 크림수프가 아니라 MSG인가? 불량 식재료를 위장하고 풍미를 돋우기 위해 뿌리는 마법의 가루 말이다.

이쯤 되자 (어째서인지 남자들이 더 잘 아는) 섹시 요가나 행잉 요가, 차크라를 불태워버리는 게 목표인 듯한 핫요가는 이제 클래식이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요즘은 아기 염소와 함께 하는 힐링 요가, 반려견과 함께 하는 도가(Doga), 사이키델릭한 조명 아래 비트에 몸을 맞추는 EDM 요가, 대관람차 위에서 하는 요가, 빙판 위에서 하는 아이스 요가, 사이클링 요가, 트램펄린 요가, 마셜 아트 요가까지 나왔다. 패셔너블한 요가 전용 레깅스와 브라 톱, 요가 매트 구입은 필수고, 누가 누가 유연한가 옆 사람을 훔쳐보고 경쟁하느라 바쁘다.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인도 요가는 코를 씻는 것으로 시작해 호흡과 명상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데, 아메리칸 스타일 퓨전 요가는 숨이 가쁠 정도로 사람들을 몰아세워 격앙시키기 일쑤다. 명상은커녕 내가 제대로 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지 체크할 시간조차 없다. 그저 포즈 몇 개 응용하고는 ‘요가’라 부르는 수준이다. 그게 팔리니까. 요가가 돈이 되니까. 그래서 나도 몇 개 구상해봤다. 전 세계 유튜버와 함께 하는 K-팝 요가, 스크린 세이버를 보면서 우주와 교감하는 야근 요가, 담배 연기의 흐름을 따라 호흡기관을 속속들이 느껴보는 스모킹 요가 어떤가? 좀 트렌디하게 들리나? 그걸로 돈 벌면 라자스탄에 여행 가서 인도 카레나 실컷 먹어야지.

컷오프 디자인의 보디수트는 부쉘(Bushel),
레깅스는 캘빈 클라인 퍼포먼스(Calvin Klein Performance).

요가 동물원과 입장료
어쩌면 요가의 영적 측면을 들먹이기에 현대인들은, 그리고 이 세계는 너무 멀리 와버린 건지도 모른다. 나는 요가 천국 발리에 산다. 그리고 취미로 요가를 한다. 여기까지 와서 요가를 한다는 사람들을 봐도 요가의 철학적 의미와 효과에 의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년씩 요가를 배워서 포즈는 완벽한데 그걸로 관심병을 치유하진 못해서 힌두 사원에서 헐벗은 차림으로 요가 하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원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허다하다. 모두 몸매는 끝내준다. 인도엔 가본 적도 없다면서 인도 이름을 짓고 인도풍 의상을 입고 요가 강사로 일하면서 걸핏하면 페이스북에 눈물 그렁그렁한 셀카를 올리는 절박한 사람도 있다. 그에 비하면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며 사시사철 쫄쫄이를 입고 다니는 피트니스 강사형 요기들의 정신이 오히려 건강해 보인다. 이곳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모 요가원은 현지인들에게 ‘요가 주(Zoo)’라고 불린다. 일주일에 100개쯤 되는 프로그램이 공장처럼 돌아가고 요가의 Y도 모르는 체험자부터 강사급까지 뒤엉켜 일제히 몸을 뒤틀고 관광객들이 이를 구경하는 모습이 원숭이 우리 같아서다.

언젠가 아시람에서 한 달을 지낸 적 있다. 아시람이란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며 거주하는 암자 같은 곳을 말한다. 미국의 히피 부락을 뜻한다고도 한다. 과연 이래서 발리가 요가 수행의 최적지라고 하는구나 싶을 만큼 정글과 계곡에 둘러싸인 아시람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은퇴한 발리니즈 요기로 부터 그곳을 물려받은 주인은 요기들을 무능한 몽상가라고 경멸하는 유대인으로, 오직 돈을 위해 아시람을 운영했다. 정통 요가를 추구하고 정신적인면을 강조하는 요가원도 대개 조금씩은 상업화되어 있다. 한 달이나 한 달반씩 진행되는 요가 강사 과정은 그들의 쏠쏠한 수입원이다. 구루-제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영적인 인물보다는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느냐가 프로그램 지도자의 관건이다.

유사 요가, 가짜 요가
그렇다고 요가의 효능을 전부 부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심오한 요가 철학을 들먹일 주제가 못 된다. 하지만 운동, 여가로서의 요가라면 할 말이 있다.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세계와 나, 몸과 의식의 균형을 찾는다는 건 일리가 있다. 그건 마라톤이나 복싱을 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요가가 의식의 지향점이 더 높을 뿐이다. 호흡이 느리고 격한 동작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올바른 운동을 위해서는 올바른 목표 설정이 필수다. 인간은 행동의 목표가 뚜렷할 때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동물이다. 자전거 탈 때를 생각해보라. 당장 눈 앞의 장애물을 보고 ‘저것을 피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몸이 그쪽으로 쏠린다. 시야를 멀리 두면 중심이 틀어진 자전거라도 똑바로 주행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요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발리의 아시람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요가가 뭔가 찾아보고, 겉핥기나마 공부를 하고 나서부터다. 호흡을 통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읽고서야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어느 부위에 힘을 줄 것인지가 아니라 어느 부위에 힘을 뺄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각각의 자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흔한 요가 강좌에서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이다. 당연히, 몸에 좋다니까 뭣도 모르고 영차 영차 열심히만 할 때보다 조금이라도 알고 하는 편이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그러자 요가가 덜 지겹고, 덜 고통스러운 운동이 되었다.

아슈탕가 빈야사 요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리 파타비 조이스는 “요가는 내면 훈련이다. 나머지는 서커스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서커스도 좋은 운동이다. 하지만 그것을 요가라고 팔아먹는 건 허위 광고다. 단지 포즈만 따라 해서는 그 포즈의 효과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것이 요가라 굳게 믿고 있기에, 아직 수양이 덜 돼서 세상에 초연하지 못한 나는 허다한 퓨전 요가가 못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