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Hotel Korea

2018.03.13

by VOGUE

    Hotel Korea

    여행의 목적지에 ‘호텔’이라는 도시가 추가되었다. 2018년 대한민국의 호텔 지도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하다.

    지난 2015년 <보그>는 비즈니스 호텔과 부티크 호텔의 범람을 다룬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울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새 호텔이 생겨 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게 됐다. 서울의 풍경이 호텔로 인해 바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문장을 쓴다고 해도 사실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호텔의 정의다. 호텔은 잠을 자기 위한 기능적인 공간에서 ‘스테이케이션’ 공간으로 변화했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앞서 언급한 문장에서 ‘서울’을 ‘한국’으로 바꿔서 쓴다면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이 된다.

    올해 호텔 트렌드는 한 가지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횡적 확장을 이루는 모습이다. 몇 년 전 등장한 부티크, 비즈니스 호텔은 강남과 홍대를 중심으로 지점을 추가하며 카테고리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글로벌 특급 호텔 체인은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 중이다. 트렌드의 한쪽에는 복합 리조트가 있다. 파라다이스시티, 힐튼 부산, 서울드래곤시티는 호텔 안에서 휴식과 유희가 해결된다면 지역과 접근성은 크게 상관없음을 증명해 보였고, 이름 있는 호텔 여럿이 제주신화월드, 부산 오시리아관광단지 등 거대한 리조트 단지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다. 2019년 완공을 앞두고 있는 제주 드림타워 복합 리조트에는 그랜드 하얏트 제주가 들어설 예정이다.

    매일‘사드로 인한 중국인 관광객 급감’ ‘엔저로 일본인 관광객 감소’ ‘북한 도발로 한국 찾는 외국인 줄어’ 같은 뉴스에 노출되어 있던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호텔 업계의 활발한 움직임이 다소 어리둥절하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방은 누구를 위한 방이란 말인가. “외국인 손님에 기대지 않기로 한 거죠. 요즘 호텔은 내국인 고객에 집중하고 있어요.” <스포츠서울> 이우석 기자는 먹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쓰던 사람들이 이제 호텔을 일상의 탈출구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호텔은 휴가철에만 찾는 곳이 아니라 연중 고르게 찾는 곳이 됐다. “기사 클릭률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대학생들의 특급 호텔 기사 클릭률이 높아요. 매일 호텔에 갈 수는 없어도 몇 달간 용돈을 모으면 갈 수 있는 거예요. 평일엔 요금이 더 저렴하니 직장인들은 스스로에게 ‘호텔에서 하룻밤’을 선물해요. 파인다이닝에서 식사하고 전망 좋은 호텔 방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와인을 마시죠. 평일에 조식 뷔페에 앉아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조식만 먹고 바로 체크아웃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호텔에서 하룻밤 쉬고 바로 출근하는 거죠.”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주변 놀 거리가 많은 홍대, 강남 같은 지역으로 부티크 호텔을 불러 모으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악명 높은 지역이지만 호텔은 이들 지역의 시장성을 본다. 이비스 버젯 앰배서더는 강남 지역에 처음으로 삽을 꽂았고, 4월 오픈 예정인 글래드호텔은 마포를 선택했다.

    현재 가로수길부터 청담까지 이어지는 ‘도산대로’ 공사 현장은 베스트웨스턴 바이브 같은 호텔 차지다. 동교동 삼거리부터 합정역까지 1.6km에 이르는 거리는 ‘호텔 밸리’로 불린다. 현재 L7 홍대, 라이즈 오토그래프컬렉션, 마포애경타운 호텔 등이 호텔 밸리에서 공사를 진행 중이다. L7 홍대가 들어서는 곳은 자그마치 50년 가까이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청기와주유소 자리다.

    ‘호텔에서 식사’도 과거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다.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파인다이닝으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특급 호텔이었다. “제대로 된 초밥을 먹으려면 호텔에 가면 된다” “호텔 중국집이라면 어떤 모임을 잡아도 실수가 없다”와 같은 공식은 대가 끊겼다.

    상류사회 3세대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마주칠 위험이 있는 특급 호텔은 오히려 기피해야 할 장소다. 기성세대로부터 지키고 싶은 프라이버시는 부티크 호텔의 급성장을 도왔다. 물론 트렌디한 미식과 음악, 패션, 인테리어 감성을 충족시켜주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라는 메가톤급 무기를 가지고 있는 부티크 호텔은 누구도 외면하기 힘든 장소다. 특급 호텔 식당에 대한 충성도는 떨어졌지만 F&B(식음료)는 여전히 호텔을 찾게 되는 이유다.

    이우석 기자는 신세계조선호텔이 준비하고 있는 아직 이름도 공개되지 않은 호텔을 2018년 가장 기대되는 호텔로 꼽았다. 총지배인이 미식 블로거이자 데블스도어와 스타필드의 식음료 공간을 진두지휘한 팻투바하이기 때문이다. “팻투바하는 파인다이닝, 미슐랭 스타 등 권위나 거창한 브랜드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본질을 추구해왔어요. 그의 블로그가 큰 인기를 모은 이유죠. 종합유통기업 신세계의 노하우와 그의 철학이 어떤 시너지를 내며 호텔이라는 공간으로 탄생할지 궁금해요. 그라면 별의 개수에 연연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호텔의 별을 매기는 기준에는 한식당 개수 같은 조건까지 포함되니까요.”

    2018년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글로벌 호텔 체인의 끊임없는 한국 진출이다. 작년 말 메리어트 그룹은 미디어 브리핑을 통해 올해만 총 여섯 개 호텔을 오픈하겠다고 밝혔다. 2월에는 제주신화월드 메리어트 리조트 & 스파, 3월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강남, 4월에는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서울, 5월에는 라이즈 오토그래프컬렉션과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보타닉 파크, 7월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 해운대가 문을 연다. 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에서도 앞서 언급한 이비스 버젯 앰배서더 강남을 비롯해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 & 레지던스를 새롭게 선보인다. 6성급 호텔 시대를 열었던 포시즌스 호텔은 제주신화월드 내에 포시즌스 리조트 제주 오픈을 준비 중이고, 글로벌 호텔 체인 마이너 그룹도 한국을 찾는다. 2019년 부산에 아바니 호텔을 선보일 예정이다.

    흑자로 전환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진 호텔 산업에 글로벌 호텔 브랜드가 끊임없이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리어트 마케팅 디렉터 배순억은 장기적인 비전을 들려줬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한국을 아시아 태평양 시장 내에서 중국, 일본, 인도, 호주와 함께 5대 주요 국가로 보고 있습니다. 2017년에만도 2,400만 명이 넘는한국 관광객이 해외여행을 떠났어요. 일본 해외 관광객 수와 비교했을 때 800만 명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이 지점이 해외 호텔이 한국을 중요한 시장으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서 해외에서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브랜드를 선택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그는 2018년의 호텔 트렌드 주요 키워드로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과 ‘로열티 프로그램(Loyalty Program)’을 꼽았다. 특급 호텔은 더 이상 연령, 성별, 지역 등으로 고객을 구분하지 않는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서비스와 경험을 제공한다. 이때 로열티 프로그램은 여러 호텔 브랜드를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 아직 진출하지 않은 브랜드 론칭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폭넓게 끌어안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이렇게 많은 호텔 중에 당신의 취향 한 개쯤은 있겠지’ 같은 전략이랄까.

    글로벌 호텔은 서울 밖으로도 눈을 돌린다. 부산, 제주, 대구, 일산 등 더 다양한 지역에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편 호텔 칼럼니스트 김다영이 꼽은 2018년 호텔 키워드는 ‘지역 문화 기반의 관광’이다. 세계적인 여행 트렌드가 호텔에도 동일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거의 호텔은 지역과는 다소 괴리된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 호텔이 얼마나 그 지역과 긴밀히 연계하여 새로운 로컬 여행을 제안하고 차별화된 스토리를 갖느냐가 매우 중요해졌어요. 밀레니얼 세대는 여행에서 단순한 휴양보다는 ‘새로운 문화 학습’을 원하고, 호텔은 또 다른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현지 문화와 접점을 만드는 역할을 자청하고 있기 때문이죠. ‘코워킹 스페이스’ ‘코리빙 스페이스’와 같은 공유 공간이 호텔 내에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다영이 눈여겨보고 있는 호텔은 ‘체이슨’. 제주를 기반으로 지역 출신 스태프를 고용하고 로컬 아티스트와의 아트 콜라보레이션 같은 시도를 한다. 체이슨은 올해 서귀포 에만 두 곳의 호텔 오픈을 앞두고 있다. 한동안 호텔 업계를 지배한 근심은 관광객의 감소로 인한 객실의 과잉 공급이었다. 수많은 호텔이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이슈다. 고급 호텔과 중저가 호텔 공급의 불균형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파이 자체를 키우고 있는 호텔은 장기적으로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본다. 생존을 위해 새로움과 차별화라는 해결책을 선택한 호텔은 2018년 대한민국 호텔 지도를 흥미진진하게 바꾸는 중이다.

      에디터
      조소현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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