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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4T11:34:30+00:00 2018.03.12|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피렌체의 메르칸치아 궁전에 새 아지트를 마련했다. 패션, 미술, 음식을 아우르는 이 건물은 유럽 패션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브랜드의 근원지인 피렌체에 오픈한 복합 공간 ‘구찌 가든’을 기획한 주인공이다.

도시를 여행할 때 패션 박물관은 1순위에 놓이기가 쉽지 않다. 고대의 유물을 하나하나 끌어모은 박물관은 절로 하품이 나온다. 또 끝내주는 큐레이션으로 무장한 패션 전시는 대개 기간이 짧거나 패션 수도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렌체 ‘구찌 가든’의 오픈이 더 반갑다. 1337년 메르칸치아 궁전(Palazzo della Mercanzia)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이곳은 2011년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의 수장이던 시절, 대중에게 ‘구찌 뮤제오’로 공개됐다. 그리고 현재 구찌의 사령탑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손을 거쳐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했다.

이 역사적 건물 앞에 서자 관람객을 반기는 건 외눈 모양의 네온사인이다. 미켈레의 구찌 컬렉션(신발, 티셔츠, 초대장 등등)에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고풍스러운 건물 벽면을 휘황하게 밝힌 디지털 아트워크 덕분에 구찌 뮤제오가 아닌 구찌 가든은 미켈레의 컬렉션처럼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로 충만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역사적 공간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분위기를 주입하고 싶었어요. 매장은 ‘시장’ 분위기를 띱니다. 제가 좋아하는 컨셉이기도 하죠. 유동적이고, 진실하며, 활발한 에너지! 피렌체는 구찌에 아주 파워풀한 지역입니다.” 미켈레가 지난 1월 9일 구찌 가든의 오프닝 파티에서 전했다. 구찌 가든 입장료의 50%를 피렌체 복구 사업에 기부하니 브랜드와 도시는 서로에게 든든한 파트너인 셈이다.

르네상스 회화로 가득한 우피치 갤러리 옆 구찌 가든 역시 14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하지만 수백 년 된 오래된 건물 내부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가장 현대적인 콘텐츠로 채워졌다. 그래서 이곳은 동시대성과 현재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구찌 가든을 구성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이곳에 입장한 관람객들도 살아 있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곳은 박물관이지만, 박물관이 아닙니다.”

구찌의 홈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는 부티크.

미켈레의 설명은 박물관을 돌아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다. 우선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방식이 고루한 연대기적 방식이 아닌, 패션과 영상 콘텐츠를 혼합한 창의적인 시도였다. 이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큐레이터 겸 비평가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Maria Luisa Frisa)의 협업이 완성한 결과다. “아카이브를 살아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상상력과 창의성을 끌어내는 놀라운 공간으로 말이죠. 미켈레는 저에게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또한 그의 새롭고 현대적이며 정교한 미학은 구찌의 과거와 아주 강력한 연속성을 지닙니다.” 루이사는 다소 흥분한 듯 설명을 이어갔다. 아카이브에는 미켈레뿐 아니라 구찌 하우스의 여러 전임 디자이너의 작품도 함께 균형을 이루며 전시돼 있었다. “미켈레는 아카이브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지식을 지녔으며, 이를 아주 면밀히 공부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과거, 현재, 미래를 끊임없이 섞는 중입니다.”

구찌 가든을 견고하게 받치는 지상층에는 구찌 매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고딕 서체로 ‘구찌 가든’이라 적힌 실크 봄버 재킷 등 다른 매장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곳만의 독점 제품을 쇼핑할 수 있다. 아울러 홈 컬렉션 라인 ‘구찌 데코’는 물론, 구찌 수버니어를 쇼핑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패션 팬뿐 아니라 미식 팬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 역시 오픈 전부터 화제였다. 지상층에 마련한 ‘구찌 오스테리아’가 그것이다. 넷플릭스의 <마스터 오브 제로 2> <셰프의 테이블 1>에도 등장한 미슐랭 3 스타 셰프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와 협업한 레스토랑 말이다. 마시모는 구찌 가든을 위해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메뉴를 구성했다.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50년 전처럼 먹을 순 없죠. 현대적인 방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새로운 전통’을 위해 규칙을 깨야 하죠.” 마시모가 새로 내놓은 메뉴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토르텔리니, 아시아 스타일 포크 번, 버섯 리조토, 햄버거 등이다. 이 음식은 근사한 페이즐리 패턴의 이탤리언 자기에 서빙되어 벌써부터 젊은 층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도배하고 있다. 구찌 오스테리아의 인테리어 역시 피렌체라는 주제를 잊지 않았다. 벽에는 5세기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데 메디치가 쓴 축제곡 ‘일곱 행성의 노래’의 가사를 금색으로 페인팅해 과거의 숨결을 은유적으로 주입했다. 오뜨 꾸뛰르가 아닌, ‘오뜨 퀴진(Haute Cuisine)’이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곳이다.

실험적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쇼핑과 식사를 즐겼다면 이젠 박물관에서 구찌 아카이브를 감상할 차례다. 지상층을 넘어 1층과 2층은 총 여섯 개의 방으로 나뉜다. 1층 ‘구찌피케이션(Guccification)’에선 말 그대로 ‘구찌화’된 옷이 눈에 띈다. 1921년에 탄생한 오리지널 로고 프린트를 뉴욕 할렘의 디자이너 대퍼 댄(Dapper Dan)의 실루엣에 적용한 2017 F/W 의상, 그래피티풍 ‘GG’ 로고를 창시한 아티스트 ‘구찌 고스트(본명 트레버 앤드류)’와의 협업 코트와 토트 백, 영국 스타일리스트 사이먼 폭스턴이 불어넣은 펑크풍 옷 등이 진열돼 있다. 다음으
로는 가문을 대표하는 홀스빗, GRG 웹, 뱀부 핸들 등 수십 년간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온 디테일을 전시한 ‘장신구’ 방이다. 세 번째는 ‘코스모라마’.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벨보이, 엘리베이터 보이로서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 전 세계 부유한 여행객들을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브랜드인 만큼, 트렁크, 피크닉 바스켓, 수트케이스 등이 주인공처럼 자리하고 있다(이 가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한 세기 여행의 경향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네 번째 방은 ‘시네마’. 검붉은 벨벳 텐트로 우아하게 천장과 벽면을 드리운 이곳은 30명쯤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배치돼 있다(현재 영화 제작 그룹 ‘자프루더(Zapruder)’의 단편영화 를 상영 중).

코코 카피탄의 핸드라이팅 작품.

2층은 좀더 다층적 감상이 가능한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됐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철학적 이름의 방에는 미켈레가 동식물과 관련된 도상학을 탐구했던 사실을 반영해 벽면에 식물도감처럼 액자를 설치하고 벽지로 마감했다. 이제 마지막관인 ‘단편적인 자료’에서는 영상, 기념비적 작품, 문서를 배치했다. 아시다시피 구찌는 전 세계 일류 아티스트들과 경계 없는 협업을 시도해왔는데, 구찌 가든을 위해서도 지금껏 의기를 투합했던 아티스트의 흔적에 곳곳에서 보인다. 미켈레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발굴했던 아티스트 제이드 피시(Jayde Fish)는화장실 벽면에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를 채웠고, 구찌 고스트(Gucci Ghost)는 ‘구찌피케이션’ 방에 해골, 뱀, 우주인 등을 그렸으며, 코코 카피탄(Coco Capitán)은 계단 벽면에 손 글씨로 문구를 썼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큐레이터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

“이젠 패션이 옷과는 다른 어떤 것에 문을 열 시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붕괴될 거예요.” 미켈레의 혜안은 최근 구찌의 무서운 성장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여기에 모터를 장착한 건 미켈레의 실험과 도전을 위한 구찌 그룹의 전폭적 신뢰와 지원이었다. “구찌 가든을 방문하고 싶은 장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즐거운 공간이요. 그리고 다른 어떤 구찌 매장보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