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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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치유

2018-03-14T18:08:56+00:00 2018.03.14|

힙합으로 유년의 우울을 극복한 정신 건강 전문의가 있다. 그는 힙합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으며 환자들에게도 이를 적용하고있다.

도시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시로 이사 오면서 가족의 삶도 따라 움직였다. 시골에서의 내삶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 그때 힘이 돼준 건 두 가지였다. 가족과 음악.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닐때 처음 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그들의 음악을 도시의 중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재미’로 다가오던 음악이 ‘위로’로 바뀌는 지점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듀스 너머의 닥터 드레(Dr. Dre), 서태지와 아이들 너머의 사이프레스 힐(Cypress Hill)을 만났고, 무엇보다 힙합 아티스트 투팍(2Pac)과 조우했다. 그가 내뱉는 ‘F Words’는 내면의 분노를 풀어내는 창구가 됐고, 그의 말은 어떤 위로보다 강력했다. 투팍의 대표곡 ‘Me Against the World’의 내레이션은 다음과 같다. “때때로 힘들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이거 하나만 기억해. 어두운 밤이 지나면 더 밝은 날이 온다는 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넌 할 수 있어.” 이후로도 래퍼들은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며 롤모델이 돼주었다. 에미넴(Eminem)의 ‘Lose Yourself’를 통해 마주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단 의지를 다졌고,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Through the Wire’를 들으며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의 진면목을 보았으며, 음악을 믹스테이프(Mixtape) 형태로 대가 없이 세상과 나누고자 하는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의 태도를 통해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세상과 나눌까를 고민했다. 마치 정신분석가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이 말한 이상화 전이(Idealizing Transference)처럼 래퍼들과 내 삶을 동일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재화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생의 에너지를 주는 힙합을 나만 누리지 않고 세상과 나누는 기회가 오길 어렴풋이 바랐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중2병’ 소년이 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조그마한 지적에도 상처를 받는 친구였다. 교회에서 만날 때마다 상담을 했지만 내면의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고 제자리걸음이었다. 힙합 음악이 떠올랐다. 그맘때 내가 그랬듯이 힙합을 통해 소년도 치유가 되지 않을까. MP3 플레이어에 위로와 힘이 될 만한 음악을 넣어주었다. 우원재의 ‘또’, 이센스가 피처링한 ‘독’ , 넉살의 ‘작은 것들의 신’ 같은 곡이었다. 변화는 놀라웠다. 침울함은 줄고 랩을 흥얼거리며 비트를 타기 시작했다. 요즘엔 직접 쓴 가사를 내게 들려줄 정도다.

한 소년을 변화시키는 힙합이 진료 현장에서 만나는 젊은 정신장애 환우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들과 긍정의 메시지를 담은 힙합곡을 들었다. 감상을 얘기했다. 래퍼의 심정을 공감하고, 자신의 아픈 마음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표현했다. 이젠이라는 책을 교재 삼아 ‘함께하는 힙합’ 교실을 진행하고있다. 얼마 전에는 본인들이 쓴 가사를 토대로 공연도 했다. 누군가 이렇게 읊조렸다. “나도 별거 없어. 몸무게도 그대로. 헤매다가 결국 다시 병동에 왔어. 철없는 행동들을 후회하고 있어 난. 그래도 포긴 없어. 일어설 수 있어 난.”

힙합이 정말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정신과학자 두 명이 만든 사회적 기업 ‘힙합 사이크(Hip Hop Psych)’가 분석한바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는 특유의 메시지와 ‘말하듯이 자기감정을 표출’하는 랩의 특성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랩을 통해 ‘미래의 긍정적 자아상’을 그릴 수 있다. 정신 건강 캠페인에도 힙합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 예로 로직(Logic)은 ‘1-800-273-8255’란 곡을 통해 우울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했다. 곡명만으로 미국 전역에 자살 상담 전화번호를 알렸다. 래퍼 우원재는 눌러쓴 모자 아래로 눈을 똑바로 뜨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우린 그 아픔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도 환자들과 랩 가사를 쓰는 법을 공부했다. 이 시간만큼은 다들 속마음을 랩으로 내뱉는다. 아직은 초기 단계다. 하지만 바다로 가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꾸준히 가려 한다.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10년간 앓아온 정신장애를 용기 있게 밝힌 래퍼 스윙스가 말했다. 힙합은 바다와 같은 음악이다. 바다는 넉넉하다. 누구나 품는다.

‘함께하는 힙합’의 한 멤버에게 물어보았다. “OO 씨에게 힙합은 무엇인가요?” “내세울 것 없던 제가 사람들 앞에서 랩을 뱉어댔어요. 그들 앞에 나서고 있죠. 어제는 운동장 20바퀴를 뛰었어요.” 힙합 치유는 단지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다. 마음에 대한 것이고, 우리 존재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이 작업을 나와 환자들뿐 아니라 힙합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 이들과 나누길 바란다. 힙합은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송가(Anthem)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