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마스크도 패션이다

2018.03.16

by VOGUE

    마스크도 패션이다

    마스크는 아이돌 스타 모방 아템? 미세먼지 나라 사람들의 필수품?

    스스로 ‘마스크 헤비 유저’라 부르는 디자이너 바조우. 그는 자신의 감각을 담은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기가 우리의 삶을 지배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나. ‘미세먼지’ 공포에 시달리게 된 2018년의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창문닫아요’ 앱을 통해 대기 상태를 확인하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스위스 아이큐에어 공기청정기의 전원을 켠다. 미세먼지 수치가 높아질수록 아파트 놀이터는 텅 비어가고, 서울시는 대중교통 무료 이용 등의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에는 중국 지방에서 대형 ‘공기청정기 첨탑’을 가동했다는 뉴스까지 들린다.

    패션도 달라졌다. 올해 초 ‘트렌드모니터’라는 리서치 기업은 미세먼지 관련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달라진 우리 일상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90.5%는 “이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라 답했고, ‘독감(감기 등)에 걸렸다면 당연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도 92.1%에 달했다. “마스크 사용은 타인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 볼 수 있다”라고 답한 비율은 무려 94.5%. 더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거나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소수(10.5%)다. 그렇게 마스크는 이제 일상적 아이템이 되었다.

    “2008년 일본 유학 때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어요.” 해외 패션계에서 일명 ‘마스크 맨’이라 불리는 99%IS-의 디자이너 바조우가 마스크를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다미방이나 고양이 때문인지 일본인들은 유난히 알레르기가 많아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국민성 역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이유겠죠.” 바로 그 마스크에서 패션에 대한 가능성을 엿봤다. 반다나로 얼굴을 가리는 펑크족 스타일을 마스크로 변형한 것이다. 환자나 의사만 썼던 마스크가 반항적 패션 아이템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 여기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더했다. 마스크의 입 부분을 찢어 기괴한 멋을 뽐내는 것이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데 마스크를 벗기 싫어 빨대 넣을 구멍을 생각한 게 시작이었어요. 하지만 치아에 ‘그릴’까지 끼니 더 껄렁해 보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동안 해골 모양을 새기고 코튼 소재로 마스크를 선보였던 그는 내친김에 마스크 라인을 론칭했다. 이름은 ‘Hide’. KC 인증 소재로 제작한 일회용 마스크는 입 부분을 뜯어낼 수 있게 디자인했다. “한국인들을 위해 새로 패턴을 만들었어요.” ‘㈜내맘대로’라는 회사까지 설립한 바조우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사실 수많은 마스크 브랜드에서 연락이 왔어요.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컬러도 더하고, 디자인을 바꿀 수도 있겠죠.” 스스로를 ‘마스크 헤비 유저’라고 소개하는 젊은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얼굴을 감출 수 있는 건 꽤 흥미로운 스타일링 방법이니까요.”

    얼굴을 감출 수 있다는 마스크의 또 다른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건 한국의 스타들이다. 인터넷에는 “왜 K-팝 아티스트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가?”처럼 해외 팬들의 궁금증이 차고 넘친다. “처음엔 노 메이크업 상태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기 시작했어요.” 어느 대형 기획사의 홍보 담당은 아이돌 그룹 사이의 마스크 열풍을 이렇게 해석했다. “매니저들이 마스크를 나눠 줄 때도 있어요.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팬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이제 아이돌 스스로 마스크가 지닌 파워를 즐기게 됐다. 출국을 위해 공항을 찾을 때나 미용실에 갈 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아이돌의 ‘포스’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마스크를 쓰면 사람들의 이목이 더 집중되곤 합니다. 오히려 그걸 즐기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지난해 가을 뉴욕 모마(MoMA)에서 열린 패션 전시 역시 마스크의 패셔너블한 개성을 인정했다. 현대 패션 아이템 111가지를 정리한 목록 중 95번째에 ‘Surgical Mask’가 있었다. 16세기 중반 처음 고안된 ‘의료용 마스크’의 역사부터 정리한 이번 전시는 최근 달라지고 있는 마스크의 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료용 마스크가 하위문화적 개성을 띠게 된 건 놀랍다. 입과 코를 가리는 건 공포 혹은 SF 소설 그리고 아니메에서 자주 등장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마스크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바꾸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마스크의 아이콘으로 바조우를 꼽은 이 전시는 최근 아시아에서 마스크 열풍이 불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마스크를 둘러싼 열기를 가장 잘 설명하는 주인공은 중국의 아티스트 왕즈쥔(@zhijunwang)이다. 북경에 있는 그는 칸예 웨스트의 ‘이지 부스트 350 V2’를 뜯어내 마스크로 만들어 단번에 인스타그램 스타가 됐다. 그 후로도 오프화이트와 나이키가 함께한 스니커즈 ‘베이퍼맥스’ 등 잘나가는 스니커즈를 해체하고 이어 붙여 마스크로 재탄생시켰다. 스트리트 패션에 미친 디자이너의 작품일 듯하지만 왕즈쥔은 오히려 중국의 대기오염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수많은 ‘오퍼’가 이어졌지만 아티스트로서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제안은 많았지만,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업체는 없었습니다.”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마스크는 요 몇 년 사이 하나의 ‘블루오션’이 됐다. 수천 달러짜리 운동화를 뜯어낼 순 없으나, 높은 기능성을 갖춘 마스크를 구입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스톡홀름에서 탄생한 ‘에어리넘(Airinum)’ 역시 고급형 마스크 중의 하나다. “2014년 친구이자 동업자인 알렉산더를 만나기 위해 인도에 갔어요. 공기가 나쁜 인도에 살게 된 이후 알렉산더는 천식이 도지는 바람에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창립자 프레드릭 켐페(Fredrik Kempe)가 마스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마스크는 치과 의사나 광부가 쓸 것처럼 생긴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2015년 에어리넘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패셔너블하고 기능성이 높은 마스크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 “선글라스나 이어폰을 보세요. 모두 라이프스타일과 거리가 먼 아이템이었죠. 편안함은 물론, 보호 기능에 멋진 디자인까지 갖춘 마스크는 인기를 끌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개의 특수 밸브를 사용한 에어리넘뿐만이 아니다. 4중 필터, 100% 오가닉 안감,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실리콘 마스크 등 마스크를 선택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은 점점 늘고 있다. 그렇다면 20만원이 넘는 마스크와 1만원 안팎의 일회용 마스크의 차이는? 초미세먼지를 잡아주느냐, 더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느냐가 기준일 것이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KF 인증),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 인증) 등의 수치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샤오미는 공기청정기 기술을 마스크에 담은 신제품을 선보이고, 영국의 고급 마스크 브랜드 프레카는 에어 필터, 인서트 등을 조합해 YG의 노나곤과 함께한 모델을 선보였다.

    하지만 패션 아이템이 되기 위해서는 기능성 이상의 뭔가가 더 필요하다. “파리의 패션쇼나 오프화이트의 마스크를 보세요! 더 이상 마스크는 아시아만의 아이템이 아닙니다.” 프레드릭은 이제 마스크가 좀더 세계적인 위상을 누리게 될 거라 예언했다. “이제 사람들은 마스크를 이용해 멋을 부립니다.” 패셔너블한 마스크를 찾는 이들이라면, 슈프림의 로고 마스크 혹은 언더커버의 슬로건 마스크 등을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혹은 올봄 라프 시몬스가 선보인 커튼 형태의 얼굴 가리개도 흥미로운 선택이 될지 모른다. 다만 시몬스의 커튼 아래에는 KF94(0.6㎛와 0.4㎛의 미세먼지를 94% 이상 걸러낸다) 이상의 마스크를 착용해야겠지만.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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