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내 살과 궁합이 맞는 향수는?

2018.03.22

by VOGUE

    내 살과 궁합이 맞는 향수는?

    병에 담긴 냄새 분자가 살과 깍지를 끼는 순간, 비로소 당신만의 아우라가 연출된다. 은밀하고 개인적인, 살과 향의 궁합에 대하여.

    향은 아지랑이처럼 밑에서 위로 상승하는 성질이 있다.
    와이어 족두리는 큐밀리네리(Q millinery), 점프수트는 김해김(Kimékim

    20대 초, 사람으로 가득한 거리 한복판에서 발길이 절로 멈춰지는 향을 만났다. 스치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청명함이라니! 나는 당황에 가까운 설렘을 느꼈다. 서둘러 돌아보았으나 향의 주인공은 이미 비슷비슷한 뒤통수들 사이로 섞여든 후다. 즉시 향수 전문점으로 달려가 수십 개 제품을 시향했지만 나만의 ‘설렘 트리거’를 가려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나는 우연히 ‘그 냄새’를 다시 마주쳤다. 코안 점막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향을 흡입하고도 알아내지 못했던 정보였기에 염치불구 낯모를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무슨 향수 쓰시죠?” 수상한 여자의 공격에도 침착하게, 미소까지 곁들여 자신이 아침에 뿌린 향수 이름을 알려준 남자와의 로맨스…는 무슨! 나는 그 길로 쿨내 나는 다비도프 ‘쿨워터’를 사서 남자 친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수수하고 담백한 내 남자가 이지적인 섹시남으로 변신하길 기다렸다. 결과? 만족스러웠다면 이 칼럼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그는 그다음 날도 순진했고 심지어 조금 더 달큼한 냄새를 풍기며 귀여움을 발산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소매나 치맛단에 향수를 뿌리면 당신이 악수를 청하거나 그에게로 다가갈 때 향이 일렁이듯 펼쳐진다. 화이트 톱은 렉토(Recto). 한삼으로 연출한 셔츠 소매는 준지(Juun.J).

    몇 해 전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를 인터뷰했다.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이 자신의 첫 향수였는데 영광스럽게도 수년 후 모델이 되었다며 눈을 빛낸다. “계속 사용한 건 아니에요. 스포크스퍼슨이 되면서 다시 뿌리기 시작했죠.”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무슨 향수를 뿌린 거냐고 묻기 시작한 거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를 신상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같은 향수가 사람마다 다르게, 동일인이 같은 향을 뿌려도 나이에 따라 다르게 발향된다니!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건 정말 ‘스릴 넘치는 일’이다.

    New Dawn
    영원한 순환의 고리, 그 계속되는 동그라미에도 시작점은 있다. 다시 한번 원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에너지, 그것은 ‘시작’이라는 신박한 응원에 힘입은 것이리라. 루이 비통 ‘르 주르 스레브’는 매일 맞이하는 희망찬 새벽을 닮은 향이다.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 벨투뤼는 ‘동틀 무렵의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만다린을 사용했다. 과육에서 느껴지는 활력과 과즙의 신선함, 재스민 삼박의 포근함이 어우러져 부드러우면서도 짜릿하고, 촉촉하게 빛나는 산뜻함을 연출한다.

    살와 향의 궁합 친구에게선 담백한 향을 뿜어내던 제품이 내 몸과 만나면 육감적인 향취를 발할 수도 있고, 시향할 땐 분명 신선한 바다 내음처럼 느껴졌는데 살에 뿌리고 나니 비릿할 수도 있다. 이런 ‘살과 향의 궁합’에 영향을 미치는 첫 번째 요소는 피부 타입. 퍼퓨머리 스쿨, 센토리의 김아라 대표는 유분과 수분의 양에 따라 향의 이미지나 강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피지, 즉 기름은 향기를 붙잡는 역할을 하고, 수분은 향을 맡는 기관을 촉촉하고 탄력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향기를 뇌까지 온전히 전달하고 구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거죠.” 건성은 청량감 있는 시트러스나 내추럴함이 강조된 허브 향을 붙잡아두기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반면 따뜻한 우디 향이나, 짙은 오리엔탈 계열을 만나면 기품 있는 고혹미가 연출된다. 지성이라면? 세인트 자일스(St Giles)의 창업자이자 조향사 마이클 도노반은 기름진 피부는 향을 더 증폭시키고 달콤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니 우디나 오리엔탈 계열 향수를 구입할 땐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엔 퍼퓸 플레이버 스쿨 대표 정미순 조향사의 추천은 동물적인 느낌이 거의 없는 꽃 향이나 과일 향.

    La Bella Vita
    꽃이 만발한 시칠리아 정원,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음악만 빠르고 발은 느린 댄스 파티 그리고 혀를 즐겁게 하는 달콤함 한 스푼. 돌체앤가바나 ‘돌체 가든’은 아름다운 인생 그 자체다. 조향사 비올렌 콜라는 후각과 미각을 함께 자극하는 ‘플로리엔탈 구르망 향조’를 설계했다. 처음에는 싱그러운 만다린과 네롤리가 스치고, 코코넛 에센스와 일랑일랑이 중심을 잡아 크리미한 매력을 발산한다. 마지막은 부드러운 아몬드 밀크와 바닐라 압솔뤼, 그리고 샌들우드. 신선함과 달콤함의 절묘한 조화를 즐기길.

    나이에 따라 어울리는 향도 달라진다. 김아라 대표는 수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촉촉한 피부는 가벼운 향도 충분히 오래 머금을 수 있고 발향 또한 풍성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속 수분의 양은 줄어들고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면서 어릴 때만큼 가벼운 향이 어울리지 않게 되죠.” 소녀 키이라가 뿌리던 코코 마드모아젤이 어른이 되어 조금은 다른 향으로 트위스트된 건 이런 이유에서였으리라.

    반보 앞 공중에 향수을 분사하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마치 상모의
    리본이 몸을 감싸 돌듯 향을 전신에 입는다.

    은밀하게 개인적인 제냐의 블루 셔츠 같은 다비도프 쿨워터를 슈프림 티셔츠처럼 소화한 옛 남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영장을 받았고, 방황하며 자주 울적해했다. “사람 돼서 나온다더라” 같은, 여자 친구의 위로라기엔 다소 호탕하고 건실한 말로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저녁. 갑자기 그에게서 낯익고 가슴 뛰는 냄새가 났다. 내 마음에 설렘 방아쇠를 당기던 바로 그 향이었다. “향수 바꿨어?” 대답은 노. 나의 추궁이 계속되자 잠시 눈치를 살피더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다고 고백했다. “고단한 인생사 덕분에 네 냄새는 좀더 멋져진 것 같다”며 눈을 깜빡이자 그가 매우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1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 오 드 빠르펭 엥땅스’. 파촐리를 로즈와 재스민이 감싸 안는 듯한 감각적인 향. 건성이 사용하면 깔끔하고 우아한 인상을 연출하고 지성이라면 볼륨감이 극대화된 아우라를 선사한다.
    2 겐조 ‘겐조 월드 오 드 뚜왈렛’. 어린 단내가 훅 끼쳐오는 이국적인 향. 체구가 작은 여성이 뿌리면 이미지가 보완되며 당차고 발랄해 보인다. 소량 사용하거나 패브릭에 뿌려 휴대하면 더 좋을 듯.
    3 라뒤레 ‘레 메르베유즈 라뒤레 오 드 퍼퓸 메르베유즈’. 아이리스를 주인공으로 한 파우더리 향으로 매우 개성 있다. 흙냄새가 묻어 나와 우아하고 기품 있어 보이며 건성이 사용하면 도시적인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4 르 라보 ‘어나더 13’. 건성, 지성, 모두 잘 어울리지만 매력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와 만나면 중성적이고 지적인 느낌이 들고 후자가 사용하면 좀더 묵직하고 글래머러스한 느낌으로 발향된다.
    5 니콜라이 ‘케이프 네롤리’.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향이다. 직접 맡으면 마치 숲의 한 부분을 떼어온 듯 정제되지 않은 야생미가 느껴지지만 지성 피부와 만나면 마치 잘 가꾼 정원인 양 길이 든다.
    6 메종 프란시스 커정 ‘아쿠아 셀레스티아 포르떼’. 절로 기분 전환이 되는 상쾌함! 젠더 뉴트럴한 꽃 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깔끔하고 우아해진다. 복합성과 지성에 잘 어울리고 건성 피부가 뿌리면 깨끗한 보송함을 연출할 수 있다.
    7 필로소피 ‘어메이징 그레이스 발레 로즈’. 요즘 가장 트렌디하게 여겨지는 프루티 계열 향. 리치와 작약 향이 섬세한 장미를 감싸고 있다. 모든 피부 타입에 두루 잘 어울리지만 20대가 사용하면 가장 잘 좋을 향이다.

    병 속에 든 냄새 분자는 레시피가 바뀌지 않는 한 수백 병, 수천 병 동일할 테지만 그와 궁합을 맞추는 체취가 바뀐다면 향은 달라진다. 영국 올몽드 제인의 창업자인 조향사 린다 필킹턴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체취를 바꾸는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는 기호, 채식 혹은 육식을 선호하는 식습관, 영혼을 위한 명상까지도 체향을 변화시킵니다.” 몸에 흡착되는 향과 호르몬 분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미순 대표는 음주나 흡연이 잦다면 향도 그에 맞게 고르라고 조언한다. 헤비 스모커와 커피 마니아에게는 우디, 시프레, 오리엔탈을 권한다. 저녁 술자리에 가야 한다거나 흡연자에 둘러싸일 환경이라면 가죽 향이나 앰버, 스파이시 우디, 오리엔탈 계열의 향을 뿌려보길. 불쾌감을 줄이면서 분위기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는 시트러스 코롱이 어울리니 레몬, 베르가모트 같은 산뜻한 느낌의 향수를 구비하자. “채식을 좋아한다면 플로럴이나 우디 계열 향이 잘 어울리고 고기를 좋아하면 시프레나 오리엔탈 향과 잘 어우러지니 참고하세요.”

    Nomad Intro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품고, 두려움 없이 발길을 돌리는 여성을 떠올리길. 끌로에 ‘노마드 오 드 퍼퓸’은 탈출에 대한 환상을 실현해줄 향수다. 빈티지 핑크 컬러의 스웨이드 끈으로 봉인한 패키지는 마치 여행자가 옷깃 속에 품고 다니는 영혼의 한 방울 같은 느낌! 향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무리함이 없고, 자아가 확고해 흔들림 또한 없다. 강렬한 플로럴 시프레 계열로 오크모스의 촉촉함이 태양 같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미라벨 플럼의 신맛과 프리지어의 우아함이 더해지자 더없이 조화로운 외유내강의 향이 탄생했다.

    그래도 원하고 있다면 냉정하게 말해 향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금지할 수 없는 기호품이다. 피부 타입이나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는 향이라도 내 코가 즐거워한다면 얼마든지 맘껏 뿌릴 권리가 있다. 다만 좀 영리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 지성이라 오리엔탈 향이 동물적인 느낌으로 발향된다면 피부에 직접 사용하지 않고 옷단이나 스카프 같은 패브릭에 뿌리면 된다. 건성이지만 가벼운 시트러스 향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무향 보디 오일이나 크림을 바르고 향수를 레이어링하면 된다. 혹은 쉽게 날아가지 않도록 아예 오일이나 밤 제형에 향을 가둬놓은 제품을 선택하자. 알코올에 민감한 피부라면 불리 1803의 워터 베이스 향수를 추천한다. “단, 어떤 형태의 향수를 사용하든 직접 분사한 후 살을 비비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열이나 유분이 더해지며 향이 변하거나 불쾌해질 수 있으니까요.” 김아라 대표의 조언이다.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안주영, 이신구
      모델
      메구
      스타일리스트
      임지윤
      헤어
      백흥권(HE:ARTS)
      메이크업
      이영
      플로리스트
      하수민(Gr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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