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승리, 임효준

Living

여덟 번째 승리, 임효준

2018-03-26T19:29:01+00:00 2018.03.27|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꿈을 이룬 임효준.

슬리브리스 테일러드 재킷과 팬츠, 허리에 두른 스카프는 디올(Dior).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임효준은 어느 패션 브랜드 행사장에 나타났다. 그는 노란색 티셔츠에 검은색 수트를 입고 포토월에 선 자신의 모습을 직접 SNS에 올렸다. 해시태그는 ‘#운동하길잘했어’. 임효준은 패션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스타일을 물어보면 “그냥 이것저것 사 입어요. 후디처럼 편한 거 입어요”라고 발뺌하지만, 그는 <보그> 촬영장에 구찌 피코트에 화이트 스니커즈를 매치해 나타났으며,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한 신발을 보고 “한국에 벌써 들어왔어요? 제가 찾던 건데”라고 수줍게 물었다. 그가 좋아하는 패션 아이콘은 지드래곤. “엄청 좋아해요. 하지만 그처럼 입기엔 제 허벅지가 너무 두껍죠. 맞는 바지가 별로 없고, 입어도 핏이 예쁘지 않아 스트레스 받아요.”

팬츠와 허리에 두른 스카프는 디올(Dior).

인생의 대부분을 쇼트트랙 훈련으로 보낸 임효준의 다리는 두꺼운 나무 같다. 다른 선수와 다른 점이라면, 큰 시합 전에 염색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패셔너블’한 징크스가 있다는 것.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임효준은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과 500m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일곱 번의 부상과 그로 인한 수술을 견뎌야했다. “쇼트트랙 선수 중에 제가 제일 많이 다쳤을 거예요.” 중학교 1학년 때 정강이뼈 골절상으로 1년 반 동안 운동을 못했고, 그 어린 나이에 다잡고 일어났지만 고등학교 2년 동안 집중적으로 부상을 당한다.

데님 재킷과 팬츠는 보스 맨(Boss Men).

“2년의 시간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만두고 싶었죠. 허리, 정강이, 손목, 발목만 세 번… 계속 수술대에 누워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어요. 자국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었거든요. ‘괜찮아, 효준아. 평창 동계 올림픽까지 시간이 남았잖아.’ 그러면 저 밑에서 자신감이 슬슬 올라오는 거예요. 다시 시작해도 충분히 올라가리라는 자신감.” 임효준의 좌우명은 ‘의심하지 마라’다. “코치님과 교수님이 ‘너를 의심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초반엔 ‘이게 무슨 말이지, 뭘 의심하지 말라는 거야?’라며 흘려들었죠. 이제는 좌우명이에요. 엄청난 훈련량을 두고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날은 정말 힘들어요. 경기에 나가서도 ‘쟤를 이길 수 있을까’하면 절대 잘할 수 없어요. 나에 대한 의심을 없애고 내가 최고라고 생각할 때 결과가 좋아요.”

실크 블루종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 국가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심리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불안했다. “멘탈이 약해지고 예민해져서 형들이 쿠크다스라고 불렀어요. 심리 치료까지 권유받았죠.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지금도 꾸준히 스포츠 심리 치료를 받고 있어요. 확실히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임효준은 언젠가 은퇴하면 스포츠 심리 공부를 하고 싶다. “제가 운동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실크 블루종은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팬츠와 스니커즈는 골든구스 디럭스 브랜드(Golden Goose Deluxe Brand).

물론 근거리 목표는 올림픽이다. 국내 쇼트트랙 선수로선 최초로 3연속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 것. “일생의 목표가 올림픽 금메달이었어요. 그런데 선배들이 ‘금메달 따도 별거 없어’라는 소리를 자주 했어요. 정말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꿈을 이룬 뒤 찾아오는 텅 빈 마음을 얘기한 걸 거예요. 아… 텅빈 마음도 아니고, 허무함도 아니고… 말로 잘 표현을 못하겠네요. 그래서 얼른 다시 목표를 잡은 거예요. 4년 뒤, 그다음 4년 뒤 올림픽에도 좋은 성적을 내자.”

그레이 컬러 나일론 재킷과 슈즈는 몽클레르(Moncler), 팬츠는 톰 브라운(Thom Browne).

임효준은 직접 가져온 두 개의 메달을 보여주다 어렵게 얘기를 꺼낸다. “메달을 보면 좋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하진 않아요. 남자 단체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좋지 않은 성적이 나왔잖아요. 넘어지는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코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가야 돼!’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순간 정신이 번쩍 나서 일어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죠. 경기가 끝나고 스케이트 끈을 푸는데 제게 화가 나서 헬멧을 던져버렸어요. 오히려 형들이 와서 위로해주니까 서럽게 울고 말았죠.” 동계 스포츠 중에도 쇼트트랙은 워낙 변수가 많은 종목인 데다, 그날의 경기는 그날 발생한 일일 뿐이다. 자신의 개인 종목 메달 수여식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임효준에게 한 팬이 소리쳤다. “괜찮아!” 임효준은 누구보다 동료들을 생각한다. 그의 바람중 하나가 쇼트트랙이 프로야구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거니까. “쇼트트랙은 올림픽 같은 큰 대회 때만 주목을 받잖아요. 하지만 국내 대회도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저보다 훌륭한 선수도 정말 많고요. 인터넷에 검색하면 경기 일정이 나오니까 많은 분들이 보고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