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초자연적 배우 티모시 살라메

2018.04.03

by VOGUE

    초자연적 배우 티모시 살라메

    아주 가끔 외계인 같은 젊은 배우가 등장한다. 무명이지만 관객조차 몇십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초자연적 재능을 지닌 그런 배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는 그런 외계인이다.

    할리우드의 신성, 티모시 샬라메가 입은 봄버 재킷과 티셔츠는 생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2016년 봄, 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뉴욕 출신의 청춘이 첫사랑에 휩쓸리는 3개 국어 구사가 가능한 똑똑한 10대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나머지 배우들보다 먼저 도착했다. 두 가지 악기와 한 가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몇 달 후 이 배우는 캐릭터에 완전히 익숙해진 채, 다른 배우들을 비롯해 감독과 깊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 함께 나올 클로즈업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촬영 종료 3일 전 이 젊은 배우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 고통은 가시지 않았다. 과거엔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괴로웠다. 다른 배우들은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훨씬 오래 배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감정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었다. 감독은 ‘지속적이고 만족스러운 놀라움’을 목격했다. “그러나 전혀 놀랍지 않기도 합니다”라고 그는 나중에 말했다. 엔딩 크레딧 장면은 모두 세 번 찍었다. 각 테이크는 4분 길이로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가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노래의 길이에 맞췄다. 여기서 그의 얼굴은 상처받은 여러 감정을 전달한다. 마지막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갈망과 향수와 사랑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샬라메는 이 모두를 훌륭하게 전달한다. 이날 이 장면이 배우 인생 초반의 변곡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걸 그는 거의 알지 못했다. 이 한 장면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여기 그 과정을 소개한다.

    그 피날레 장면의 중요한 점은 이 낯선 얼굴(눈 둘레에 장밋빛이 맴도는 아직 미완성의 사랑스러움)이 미래를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샬라메가 말한 것처럼 이 마지막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그 장면이 중요한 건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사랑, 사랑을 더 완전하고 더 빠르게 밀고 나가지 못한것에 대한 후회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오래 이어지는 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이처럼 갑자기 만난 것에 흥분을 느끼게 만드는 스물두 살의 배우. 아마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다시 만날 것이 확실한 배우. 이 배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건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였다. 그리고 베를린, 토론토, 뉴욕, 그리고 마침내 미국 대부분의 도시로 이어졌다. 젊은 배우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는 오랜만에 등장한 최고의 배우이자 일종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에 다른 영화 <레이디 버드>가 개봉된 건 그저 우연이었다. 이 작품에서 티모시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끄집어낸 그레타 거윅을 위해 보다 작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크리스찬 베일이며, 다니엘 데이 루이스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입니다”라고 <레이디 버드>의 감독 거윅은 말한다. “순수한 연기 재능을 가진 멋진 남자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지금 그에게 놀랄 겁니다. 하지만 전 놀랍지 않아요. 그가 유니콘이라는 걸 늘 알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배우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시상식 시즌에 40여 개의 남우주연상과 신인상, 그리고 기타 상의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LA와 뉴욕을 오가며 겨울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열렬한 고마움을 표현했으며, 시사회 때 의자에서 넘어졌을 때 쿨함을 유지하기 위해 재차 자신에게 “어색해하지 마, 어색해하지 마”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빠르게 유명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1월 말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지난 90년간의 아카데미 역사 중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중 세 번째로 어린 배우) 무명에서 22세의 영화 스타가된 그는 인생의 최절정을 맞이했다.

    유명해진 것보다 더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을 끝낸 시기와 그 작품이 완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진 시간 사이의 간극이 아주 짧다는 것뿐이다. 1월 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이 있는 한 주 동안 나는 티모시 샬라메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삶이 완전히 바뀔 거라는 정도까지는 깨닫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엄청난 일의 시작이었지만 다른 것의 끝이기도 했다. 인생 첫 역할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번갯불과 천둥소리 사이에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티모시 샬라메의 패션 스승을 자처하는 하이더 아커만이 디자인한 데님 재킷과 팬츠, 부츠는 벨루티(Berluti).

    티모시에게는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특이한 에너지가 있다. 그의 몸은 연통처럼 호리호리하다. 풋볼 팀이 없는 고등학교에서 만들어졌을 법한 그런 골격. 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출연할 때보다 키가 컸다(183cm 인 그는 스크린 위에선 자신보다 12.5cm 큰 아미 해머 때문에 작아 보인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깎아야 할 것처럼 보이는 각진 얼굴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얼굴은 풍부하고, 냉철하고, 성실해 보인다. 그리고 종종 두 개의 경쟁 세력이 그의 양팔을 당기는 것 같다. 어떤 행운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 그러면서도 이제 막 붙잡은 것을 놓칠지 모른다는 계속되는 불안감과의 싸움. “이 불안감이 계속되는 동안 매 순간을 즐길 거예요. 가식적으로 들릴 테지만 저는 제 자신을 삼류 배우, 이류 아티스트, 일류 팬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비판적이고 신중하다. 그는 ‘젊은 배우들에게 동반되는 인위적인 성숙함’에 회의적이다. 그는 종종 “남자의 뇌는 25세까지 완전히 개발되지 않아요”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는 이른 성공의 위험을 경계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고민한다. “제가 반짝 스타가 아니라는 것, 혹은 이런 건 한때일 뿐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부추길 만한 일을 하지 않아야겠죠. 저는 젊은 배우들이 거쳐간 길을 봅니다. 그 행보는 건강하지 않아요.” 자신을 보호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모든 일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보여주면서도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프로젝트, 새로운 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가능한 한 집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1월 초 골든 글로브 시상식 며칠 후에 그가 자란 헬스키친 지역의 아파트 건물 로비에서 만난 이유다. 데스크의 경비는 모두가 티모시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건물에서 어머니, 아버지, 누나와 함께 평생을 살았다. 할머니는 5층 아래에 사신다. 우리는 안부 인사를 하기 위해 할머니 아파트에 들렀다. 91세인 그녀는 모든 것에 대해 상당히 할머니스럽다. 그녀는 문을 열러 와서 “너구나!”라며 귀엽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우리를 내내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 건물이 부산스러워졌어. 현재 네가 처한 모든 것을 조금이나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 같구나… 넌 분명 피곤할 거야. 맙소사.”
    그녀를 따라 거실로 가면서 복도 벽을 장식한 책과 브로드웨이 광고, 그리고 올여름 그녀의 손자가 표지에 등장한 잡지를 지나갔다. “네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나온 걸 보다니 정말 흥분했단다. 얼마나 장한지! 앉아라!” “아니에요. 잠깐밖에 시간이 없어요”라고 티모시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았다. “앉아!”

    그녀는 TV에 나온 그가 정말 좋아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 누나가 정말 근사해 보이더라! 네 엄마에게 거기에 참석한 다른 영화 스타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보다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얘기가 있단다. 이리 와봐.”
    “그럼요”라고 티모시가 가까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기자들 중 한 명이 네가 왜 이 영화에서 그런 엄청난 배역을 맡았는지, 그건 위험한 시도가 아니었는지 물었고 너는 이렇게 답했지. ‘저는 진지한 배우입니다. 도전적인 역할들을 좋아해요. 그리고 아무도 저를 모릅니다. 아무도 제 이름을 몰라요. 그래서 잃을 게 없습니다.’ 나는 너무나 웃겼단다. 오, 나는 내 손자가 정말 좋아…! 그리고 오늘 그런 식은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너는 오늘 밤 지미 펄론 쇼에 나갈 거야. 내 친구 마릴린에게 얘기했단다!”

    할머니는 브로드웨이 무용수였다. 어머니는 브로드웨이 무용수 겸 배우였다. 배우이자 발레 무용수인 누나는 파리에 살고 있다. 공연에 대한 압박감과 유대인의 피는 어머니 쪽에서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유니세프에서 프랑스어 출판을 감독하고 있다. 독특한 이름과 유창한 프랑스어, 그리고 성장기의 도시 생활에 좋은 평형추를 제공한 리옹 외곽에서 보낸 여름휴가는 아버지 덕분이다. “연기를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건 외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잘 들어주는 능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티모시는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광고와 연극, 그리고 마침내 TV와 영화까지. 그는 <홈랜드>에서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다. <인터스텔라>와 <애더럴 다이어리(The Adderall Diaries)>에서는 케이시 애플렉과 제임스 프랭코의 아역을 연기했다. 그는 처음 상당한 출연료(디즈니 광고)를 받았을 때 엄청나게 비싼 닉스 시즌 티켓을 샀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의 뒤를 이어 라구아디아 음악 & 미술, 그리고 연기 예술 고등학교(LaGuardia High School of Music & Art and Performing Arts)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벌인 어느 할로윈 축제에는 목발을 짚은 브로드웨이 스파이더맨으로 분장했다. 또 거의 1년 동안 마돈나의 딸 루데스와 데이트를 했다. 좋은 성적을 받았고 연기를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쉬운 건 처음 몇 년 동안 학교 뮤지컬에서 주인공 역을 따내지 못했다는 점. 그 역할들은 학교에서 잘나가는 선배였던 안셀 엘고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파트를 방문한 후 우리는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닉스의 경기가 있었기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잠깐 들르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손바닥을 비볐다. “당신에게 라구아디아에서의 제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남자는 지금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가고 싶어 하는 팬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는 전업으로 연기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에이전트(그리고 특히 그의 엄마)는 그를 컬럼비아대학에 억지로 등록하게 했다. 그러나 1학년 말에 그는 학교에 머무는 것을 합리화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당시 그가 평생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그대로 있으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바닥에 있는 배우도 집세를 지불할 수 있는 브롱크스로 이사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좀더 클 것이고 그것이 일종의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인터스텔라>의 시사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무일푼이었고 자신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고군분투했다.

    그는 계속 오디션을 봤고 의례적으로 전화번호를 땄다. 그러나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게 싫었다. 자신이 오디션을 본 후 떨어진 영화를 끝까지 보려고 애쓸 때 뉴욕의 빌리지 이스트 극장 바닥의 불안한 물웅덩이 속에 녹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고 묘사했다. 그는 대본을 읽었지만 오디션조차 보지 못한 영화는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거기에 자기 또래의 배우들에게 맞는 멋진 역할들이 있을까 봐 말이다. “저는 동년배들과 나오는 영화나 일반적인 영화를 보러 가서 그것을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우아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저는 거기에 출연하고 싶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벽이 안으로 조여오던 아주 중요한 시점에 티모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신 중 한 명인 키드 커디(Kid Cudi)와 한두 시간을 보냈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연극의 백스테이지에서 커디는 자신에게 힘들었던 시기와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도록 만든 결심에 대해 얘기했다. 티모시는 자신이 들은 모든 것을 적어놓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휴대폰에 그 메모를 보관하고 있다. 티모시,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게 불가능한 그런 사람인가요? “제길, 그래요.”

    그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을 만난 건 이 무렵이었다. 그는 안드레 아시먼의 우아한 2007년 소설을 영화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티모시와 점심을 먹을 때 저는 안드레가 책에서 묘사한 흥분되고 불안한 모난 신체 윤곽을 곧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티모시와 대화를 하면서 이 젊은이가 이미 TV, 연극, 심지어 영화에서 오랜 세월 동안 연기를 해온 베테랑 연기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배우가 되겠다는 가장 매혹적인 야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것은 무해하게 들렸다. 누가 위대해지고 싶지 않겠는가? 그는 재능이 있고 야망이 있고 열정이 있다. 그러나 평생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도구로 살아갈 운명이라는 걸 스스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재능과 야망과 열정이 있다. “캐릭터 변신을 덜 하는 것”이라고 티모시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 자신이 어떤 연기를 추구할지 묘사했다. “감정을 더 많이 포착하는 것… 동기화. 흐름. 생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이 말은 내게 엔딩 크레딧 시퀀스와 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은 거의 고백적인 일인칭 회고록이다. 그리고 대사 없이 얼굴과 몸만으로 내적인 애매함이 담긴 그 페이지를 표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그것은 과거에 영화의 주인공을 해본 적이 없는 젊은 배우에게 상당한 도전이었다.

    하와이안 셔츠와 가죽 팬츠는 코치 1941(Coach 1941), 앵클 부츠는 벨루티(Berluti).

    티모시는 촬영 시작 한 달 반 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그는 프랑스어가 유창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어와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야 했다(그의 기타 선생님은 이탈리아 메탈 밴드의 리더였다). 흥미롭게도 프랑스어는 늘 그가 맡은 역할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시먼의 소설에서도 아니었다. 그러나 구아다니노와 각본가 제임스 아이보리는 실제 티모시 샬라메가 갖고 있는 것 위주로 주인공인 엘리오 펄먼의 캐릭터를 바꾸었다. “저는 위대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했던 말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영화를 찍을 때는 현실을 향해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티미는 반은 미국인이고 반은 프랑스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역할을 그의 실제 모습에 가깝게 바꿨습니다. 우리는 그의 프랑스적인 요소,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는 그의 개성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라고 구아다니노는 말했다.

    다른 배우들이 도착하기 전 그 몇 주 동안 “티모시는 크레마(Crema) 소년이 되었습니다”라고 구아다니노는 자신이 살고 있고, 많은 영화 로케 장소였던 롬바르디아의 마을을 언급하며 말했다. 티모시는 종종 구아다니노와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가 제 숙소로 왔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함께 식사를 했어요. 저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함께 출연하는 아미 해머가 도착했을 때 티모시는 이미 적응이 되었다.

    “티미는 해야 할 연습이 있었어요”라고 아미는 말했다. “저는 대개 이런 식이었죠. 바이크 탈 줄 아니? 그곳에 도착한 날 저는 피아노 레슨에 불쑥 끼어들어 말했어요. ‘피아노 레슨 끝나자마자 놀러 가자.’ 그 순간부터 우리는 늘 함께 있었어요.”

    그들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편안한 친밀함이었다. 아미는 덩치가 크다. 보통 사람보다 110% 크다고 보면 된다. 키 차이는 시각적으로 성숙함의 차이를 표현해준다. 아미는 티모시보다 거의 열 살 위다. 그리고 그가 맡은 역할인 올리버는 엘리오보다 일곱 살 많다. 영화 속에서 그것은 신체적으로 재미있게 표현된다. 엘리오가 올리버 위로 올라타고, 거의 그의 몸 위에서 원숭이처럼 장난을 친다. 여름을 함께 보낸 후 촬영이 끝났을 때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상실감을 느꼈다. 거의 2년 동안 이 프로젝트에 몰두해온 티모시와 아미가 특히 가까워진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아미와 그의 아내를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상한 세계에서 티모시가 기댈 수 있는 큰형 같은 존재다.

    영화에서 엘리오의 아버지를 연기한 마이클 스털버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영화에서 티모시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함께했다. 올리버가 이탈리아를 떠난 직후에 이어진 대화에서 펄먼(엘리오의 아버지)은 소설 속 단어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부드러운 어조로 자신이 두 사람의 정사를 알고 있으며, 상처를 인내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힘껏 사랑하라고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엘리오의 동성애를 100% 인정한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면서 말이다. 그것은 감동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엘리오는 가장 크게 반응한다. 티모시는 여러 테이크와 그에 따른 선택을 백과사전처럼 기억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유익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된 점은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 제가 처음 구입한 이 책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주석을 많이 단 단락이 끝부분에 나오는 펄먼 씨의 연설이었다는 걸 알고는 행복했어요. 늘 제게 가장 많은 공감을 주는 순간은 펄먼 씨가 ‘네가 그것을 알기 전에 네 마음은 닳아버린단다. 그리고 아무도 우리 몸을 쳐다보지 않는 순간이 올 거야. 가까이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훨씬 더 적어지지.’ 거기에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줄을 그었더군요. 그리고 지금도 그 문장들은 소름 끼칩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잃어버린 사랑 때문이든, 부모님의 죽음 때문이든 슬플 때 기분이 엉망진창이라면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의 최절정에서 자책이라는 짐을 더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혐오하는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죠. 제 세대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평생 지니려고 했던 것이기도 해요. 영화 장면을 찍을 때 저는 다른 사람의 대사도 외우는 걸 좋아합니다. 그냥 리듬을 알기 위해서죠. 하지만 그 연설은 방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외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티미, 그냥 들어, 그냥 들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펄먼 씨의 대사로 시작했어요. 그러나 그들이 그 장면에서 저를 이용한 부분, 그것을 보는 건 늘 감동적입니다. 처음엔 그를 보고 그 후엔 저와의 상호작용을 봅니다. 그 연설을 들으면서 캐릭터에 충실해. ‘엘리오가 돼, 엘리오가 돼, 엘리오가 돼’라고 생각하던 게 기억나니까요. 그러나 제 뇌의 어떤 부분은 ‘티미, 제길 이 남자의 말을 들어. 이 문장들을 들어. 그걸 네 뇌 속으로 가져와’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이 가식적으로 들리지 않길 바랍니다. 당신과 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이긴 하지만 젊은 배우라는 위치나 ‘커져가는 성공’에 지치는 것은 아주 쉽고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예술이 자애로운 힘을 발휘하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예술이 저를 도왔던 순간이에요. 영화라는 예술이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킨 순간이죠.”

    말이 끝났을 때 그의 얼굴은 숨이 차 보였다. 그리고 그는 수줍게 웃었다. 우리가 함께 있던 곳의 조명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프레임이 그의 얼굴 둘레에서 무지개로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매디슨 스퀘어 가든 경기장의 스피커가 갑자기 켜지고, 조명이 밝아졌고, 우리는 우리가 함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디스코곡에 맞춰 달리고 있던 닉스 치어리더들(Knicks City Dancers)과 함께 닉스의 구단주 지미 돌란 자리에 앉아서 말이다.

    그는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더니 눈이 황홀해졌다. 그는 항상 삼류 배우, 이류 아티스트, 일류 팬이 아니었나.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닉스 팀의 구장에 앉아 있던 그는 발딱 일어섰다. “경험을 위해서 이곳을 따라 조깅을 할 거예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다음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7구역의 계단을 ‘록키처럼’ 뛰어 올라갔다.

    뛰어난 배우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즈음에 시작해 오스카 시상식을 끝으로 수개월간 이어지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탔다. 그러므로 9월 초부터 3월 초까지 티모시 샬라메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레이디 버드>, <하스타일(Hostiles)>을 홍보하고, 주연상 후보로서의 고마움을 천명하거나 때론 비대칭적 조각상을 받기 위해 엄청난 횟수의 시사회, 디너, 파티, 런치, 심야방송 그리고 시상식 쇼에 참석하고 초대받았다.

    당신이 샬라메 같은 위치에 있다면 투표할 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한다. 시상식 시즌의 유권자들은 1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신은 LA 비평가 런치, 전미 평론가 위원회의 디너, 그리고 BAFTA(영국 오스카)가 주최하는 애프터눈 티 파티 같은 행사에 간다. 당신은 자신의 영웅들에게 집중하고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같이 후보에 오른 동료들과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그가 속한 카테고리에는 종종 게리 올드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 톰 행크스, 덴젤 워싱턴, 다니엘 칼루야가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와중에 샬라메는 질문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답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결국 문화를 뒤흔드는 선언을 해버린다. 예를 들어 ‘미투’ ‘타임즈 업’ 운동에 발맞추어 변화한 할리우드 속에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곧 개봉할 우디 앨런 영화의 출연료를 타임즈 업과 다른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티모시가 쓴 모자는 고샤 루브친스키 × 스티븐 존스 × 버버리(Gosha Rubchinskiy × Stephen Jones × Burberry).

    당신은 비행기를 타고 수없이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비가 오든 사이클론이 강타하든 이틀에 한 번 정도로 자주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당신이 티모시 샬라메라면 수없이 많은 마일리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적립하는 걸 잊어버릴 것이다. 돌아보면 그것이 그를 괴롭힌다. 그는 아직 배울 것이 너무 많고 만들어가야 할 습관도 많다. 그는 스물두 살이다. 그는 직불 카드로 모든 걸 지불한다.

    그런 여행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그는 아픈 적이 없다. 그것은 정신력에 달린 것 중 하나라는 걸 그는 안다. 그래서 스스로 인사불성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신들을 만난다. 그는 하룻밤에 수천 번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다. 그는 매주, 때론 매일 밤 번쩍이는 영감으로 직접 쓴 진지하고 종종 투박하고 긍정적인 수상 소감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사람들(키드 커디, 카디 비)의 이름을 외치고 객석에 있는 감독들(폴 토머스 앤더슨, 기예르모 델 토로)에게 몸을 던진다. <레이디 버드>가 상을 받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떨어졌을 때는 <레이디 버드> 팀과 몸을 부딪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특별한 한 해에 선두를 달리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한 특전 중 하나다. 시즌 내내 그는 수트케이스 네 개를 들고 LA의 선셋 타워 호텔과 뉴욕의 바워리 호텔을 오갔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늘 집에 머문다. 가족, 독립할 때 모습 그대로인 어린 시절의 침실, 봉제 인형들이 있는 곳.

    “제가 호텔에 머물지 않아서 계속 곤란해지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전날 밤 부모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호텔 아래층 레스토랑에서 단둘이 식사를 하며 아들을 위해 남겨진 공짜 와인을 즐기고 있는 엄마와 아빠.

    비평가상 시상식 다음 날 우리는 웨스트우드에 있었다. 그는 이 시상식에서 <다키스트 아워>에 출연한 게리 올드만에게 상을 두 번째로 빼앗겼다. 나는 그에게 왜 웨스트우드에서 만나고 싶었는지 물었다. 나는 그가 LA를 수상쩍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이곳으로 이사하는 것을 고민해왔지만 늘 집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뉴욕에서 그는 좀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느낀다. “불안해져요. LA로 이사하는 것에 대해 걱정스럽습니다. LA는 아주 매력적이고 약간 위험한 도시죠. 저는 LA에 살고 있는 스물여섯 살의 저를 만나 ‘오, 그는 인간으로서 도전을 받았고 지적인 발전을 했지’라고 생각하는 걸 상상할 수 없어요. 아마 그는 하와이안 목걸이를 걸고 배기 쇼츠를 입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웨스트우드는 괜찮다고 느꼈다. 그리고 가까이에 친척이 있었다. 그는 특히 UCLA 캠퍼스를 마음에 들어 했다. “입학원서 마감 시간을 놓쳤어요”라고 그는 UCLA에 지원한 것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것이 모든 걸 바꿔놓았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잰스 스텝스(Janss Steps) 꼭대기에 올라가 학생들로 가득한 로이스 홀 인근의 사각형 안뜰을 바라볼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와, 이런 게 진짜 평범한 일상이군요. 제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대학 생활 말이에요.”

    그는 를 언급한 키드 커디의 곡 중 장황한 한 소절을 랩으로 불렀다. 그런 다음 <하스타일>을 홍보하기 위해 크리스찬 베일과 함께한 전날 밤 행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저는 세트장에서 그와 다각적인 대화를 나눌 생각은 하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그랬다가 <아메리칸 싸이코>와 <다크 나이트>에 대해 그를 심문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특별한 순간에 베일을 보게 되어서 아주 흥분했고 한편으로 안심했다. 이곳에서 그는 베일과 영화 촬영을 하던 1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새로운 질문을 했다. 티모시는 베일이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비밀로 간직한 채 이쪽 일을 하는 방식을 존경한다. 베일은 티모시에게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멋지지만 ‘정통’ 연기를 다시 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고 약간 불안하며, 그만한 가치가 있든 없든 사람들이 지금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연기한 적이 없어요”라고 그는 며칠 전 내게 말했다. “사람들의 어떤 기대를 마음에 두고 연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저를 약간 흥분시킵니다… 제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게 될 사람들을 알았다면 영화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을지 모르겠어요.” 베일은 재빨리 그를 놀렸다. “‘그건 잊어버려요’라고 그는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게 정답이네요.’ 그 조언이야말로 제대로 된 처방전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편안해 보인다. 뉴욕에서 LA 라이프에 대해 얘기할 때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그는 특히 캠퍼스에서 편안해 보였다. 그는 박탈당한 대학 생활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의 일부를 갈망하는 늘 친절하고, 늘 조언을 해주지만, 늘 굶주린 영화 관계자들로부터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자기 또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뉴욕에서 그는 미래, 스물여섯 살의 삶(남자의 뇌는 스물다섯 살 때까지 개발된다!), 현재와 그때 사이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 젊은 유명인의 삶을 선택한 것에 너무 골몰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가볍게 돌아다녔다. 그는 다른 학생들 속에 바로 섞여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아직 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경험하는 게 중요했다.

    1월 그 주에 그것이 아직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다. 밤 동안에 그는 최고의 주연배우였고, 낮 동안엔 아직 좀 무명이었다. 그곳은 번갯불과 천둥소리 사이의 초현실적 공간, 어떤 순간도 끝날 수 있다는 신호와 소음 사이의 그런 간극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얼마나 큰 특권인지. 그는 스물두 해 동안 자신이 입었던 껍데기에 꼭 들어맞을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주 빠르게, 아주 동시대적으로, 아주 과한 동시에 희미하게 변신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까지 그것의 영향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티모시 샬라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비교적 일찍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으로 대화하는 그의 얼굴이 스크린에 오래 머물다 마침내 사라졌을 때 나는 내 평생 처음으로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지만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될 아주 쿨한 비밀을 이제 막 알게 되었다고 느끼며 어두운 극장을 떠났다. 그것은 번갯불이었다. 천둥은 앞으로 칠 것이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1월에 그와 함께 보낸 그 한 주가 증기처럼 사라질 환상이자 1부의 마지막 나날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는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했다. 그러나 미래 때문에 아주 흥분했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미래는 그가 원하는 것이고 지금까지 노력해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기대하는 사람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해야 하는 때가 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현재 사람들이 저를 알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라고 그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북적이는 캠퍼스를 산책하며 말했다. 바로 그때 우리 등 뒤에서 아주 높고 굶주린 소녀 팬의 목소리가 들렸다. “티모시!” 그 순간 그의 판타지는 끝났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RYAN McGINLEY
      글쓴이
      DANIEL RI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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