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데미 파인 주얼리

2018.04.05

by VOGUE

    데미 파인 주얼리

    코스튬 주얼리는 가볍고, 파인 주얼리는 부담스럽다. 지금을 사는 여자들의 몸에서 반짝이는 것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데미 파인 주얼리다.

    By Nye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런웨이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주요 디자이너들은 언제부턴가 모델의 한쪽 귀에 축소한 조각 작품 같은 귀고리를 달거나 양손 가득 묵직한 반지를 잔뜩 끼워서 런웨이로 내보냈다. 그 전에는 가짜 피어싱으로 코와 귓불을 강박적으로 장식한 적도 있다. 예전에도 디자이너들이 그랬나? 요즘에 비하면 2000년대 초반 컬렉션은 너무 심심해서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이런 변화에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지각변동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소셜 네트워크도 한몫했다. 인플루언서들은 인스타그램 사진에서 더 예쁘고 활기 차 보이려면 반짝거리는 주얼리만 한 게 없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냈으니 말이다. 푸석하거나 까칠해 보이는 맨 얼굴도 빛나는 커다란 귀고리 하나면 금세 화사해 보인다.

    Agmes

    “고가의 파인 주얼리를 사는 사람들은 중대한 소비를 결정하는 겁니다. 반면 데미 파인(Demi-Fine) 주얼리를 사는 사람들은 장신구를 사고 싶은 거죠.” 네타포르테의 여성 패션 글로벌 바잉 디렉터 엘리자베스 폰 데어 골츠(Elizabeth von der Goltz)는 요즘 뜨는 데미 파인 주얼리와 파인 주얼리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네타포르테는 2016년 말, 주얼리 카테고리에 데미 파인 주얼리 섹션을 추가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해당 카테고리의 브랜드 수는 무려 2.5배나 늘었다. 데미 파인 주얼리는 파인 주얼리와 코스튬 주얼리 양쪽의 경계를 흐리면서 최근 몇 년간 성장했다. 네타포르테의 리테일 패션 디렉터 리사 에이킨(Lisa Aiken)은 새 주얼리군에 대해 “전통적으로 완전히 구분돼 있던 패션과 파인 주얼리의 요소를 통합했다”고 평가한다.

    Wwake

    파인 주얼리의 가격을 높이는 건 순도 높은 금과 다이아몬드 같은 값비싼 재료다. 데미 파인 주얼리는 일반적으로 18, 14, 10, 심지어 9K 합금이나 도금, 컬러 원석을 사용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은 편이다. 고객뿐 아니라 디자이너에게도 부담 없는 재료는 매력적이다. 네타포르테에서 가장 잘 팔리는 데미 파인 주얼리 ‘Wwake’의 디자이너 윙 야우(Wing Yau)는 “18K 금의 따뜻한 느낌을 제일 좋아하지만, 디자인할 때는 14K 금이 편리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질 좋고 물려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만한” 장신구를 원하는 여자들을 위해 주얼리를 디자인한다.

    Mounser

    최근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는 양식 진주 귀고리가 유행이다. 피비 파일로가 셀린 런웨이에 올리지 않았다면 여전히 ‘할머니 보석’이었겠지만, 젊은 독립 주얼리 디자이너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제멋대로 생긴 양식 바로크 진주를 가져다 자신만의 버전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천연 진주의 10분의 1이지만, 진주 특유의 클래식하고 우아한 느낌은 다르지 않다. 쉽게 말해 잃어버리거나 손상되는 걸 염려할 정도로 고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구려 같아 보이지도 않고 쉽게 질리지 않는 독특한 디자인에 오래 착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질을 갖춘 데미 파인 주얼리가 인기다.

    Sarah & Sebastian

    “20~30대 여자들을 위한 거죠.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요즘 흐름을 반영하고 있고요. 전통적인 고객들이 잇 백이나 포인트가 될 만한 슈즈를 사는 데 몰두했다면 이제는 세미 럭셔리 주얼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트렌드 조사 기관 스타일러스(Stylus)의 패션 담당 에밀리 고든 스미스(Emily Gordon-Smith)는 데미 파인 주얼리가 부상하는 경향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요즘 온라인으로 주얼리를 사는 사람들은 커다란 후프 귀고리, 비대칭 귀고리, 초커 같은 눈에 띄는 아이템과 오팔, 라피스 라줄리, 터키석 같은 독특한 원석을 세팅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여러 개를 레이어링하는 스타일링과 보디 피어싱이 흔해지면서 주얼리 쇼핑 횟수도 늘었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 기업 NPD 그룹의 액세서리 업계 분석 이사 베스 골드스타인(Beth Goldstein)에 따르면 바이어들이 주얼리를 주문할 때 자기 것도 함께 주문하거나 이니셜을 새기는 개인 주문을 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다. 런던 셀프리지스 백화점도 올봄 시즌부터 데미 파인 주얼리 카테고리를 확장할 계획이다. 셀프리지스의 액세서리 바잉 매니저 조시 가드너(Josie Gardner)는 소비자들이 바이어들보다 먼저 새 브랜드를 발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데미 파인 주얼리를 사는 사람들은 종종 인스타그램에서 브랜드를 발견하곤 합니다. 니치 레이블, 흔치 않은 디자인이나 소재의 주얼리를 원하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직접적 소통은 제품 자체를 넘어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도 매우 효과적이다. 꽤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둔 덴마크 디자이너 마리아 블랙은 자신의 브랜드를 주얼리가 아닌 패션 브랜드로 여긴다. 고객에게 어떤 이야기와 가치, 고유한 스타일을 제안해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방식에 계속 제동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기존 고객과 습관을 고착하지 않고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발휘해서 비즈니스를 밀고 나갈 수 있으니까요.”

    Maria Black

    주얼리에 대한 최근 인식의 변화는 이 고고한 업계에 기성복와 동일한 주기로 새 컬렉션을 선보이는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파인 주얼리는 2년에 한 번꼴로 새 컬렉션을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고 보면 변화의 요구에 영리하고 신속하게 부응하는 데미 파인 주얼리가 기존의 파인 주얼리 업계를 위협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이탈리아 주얼리 매거진 <보그 조엘로(검색 불가??)> 에디터였던 지오반나 바타글리아 엔젤베르트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인기 있는 주얼리 하우스일수록 이해해야 해요. 패션처럼 주얼리에도 새로움이 필요하니까요.” 실제로 데미 파인 주얼리 디자이너 중에서는 샬롯 슈네처럼 고정 고객을 확보한 후 기존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한 파인 주얼리 라인을 추가로 론칭한 이들도 있다. 가이아 레포시처럼 고가의 파인 주얼리로 시작했지만, 접근성이 좋은 엔트리 가격대로 디자인을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데미 파인 주얼리 경험은 다소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파인 주얼리로 ‘입성’하기 전, 일종의 워밍업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죠. 주얼리를 모으기 시작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파인 주얼리에 대한 좋은 첫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바니스 뉴욕의 여성 액세서리 전무 사라 블레어(Sarah Blair)는 데미 파인 주얼리가 모든 기회로 통하는 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주얼리 시장에서 블루오션으로 뜨는 데미 파인 주얼리의 가장 큰 가치는 사람들이 주얼리에 기대하는 것을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매우 사적이고, 착용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파인 주얼리지만 데미 파인 주얼리처럼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는 브라질 출신의 디자이너 아라 바르타니앙(Ara Vartanian)의 비유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한 여자가 파티에 멋진 하이힐을 신고 참석했어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죠. 그렇지만 그녀가 하이힐 때문에 불편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주얼리를 하고 미친 듯 춤추고 펄쩍펄쩍 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겠지만, 주얼리는 늘 그 자리에 있답니다.”

      에디터
      송보라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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