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빵빵빵

2018.04.15

by VOGUE

    빵빵빵

    힙스터들이 빵을 사려고 줄을 서고, 매체는 빵의 시대가 온 것처럼 부풀린다. 다들 빵에 미쳐 있을까? 단연코 아니다. 우리와 빵이 함께한 역사를 돌아보며 생각해볼 문제다.

    “어린 시절 만두 가게에서 팔던 찐빵과 만두가 기억에 남습니다. 막걸리 넣고 슬쩍 찐 술빵도… 별미죠.” 1950년대에 서울에서 나고 자라, 청년기를 프랑스에서 보내고, 이제는 푸드 페어링을 비롯한 일 때문에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지내는 아트 디렉터 김경애에게 빵에 얽힌 추억을 여쭈니 이런 말부터 나온다. 빵의 추억은 만두 가게에서 시작하고, 찐빵과 만두와 술빵이 뒤섞인다. 낯설게 느낄 분도 있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야말로 한국 빵 문화사의 원형이 압축된 기억이다. 한국인이 빵을 만들고 먹어온 역사는 짧다. 더구나 서양식으로 구운 빵을 오늘날처럼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쌀가루로 떡을 짓기도 했지만, 떡은 빵이 아니다. 떡에는 효모를 이용한 부풀리기 과정이 없다. 식물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Gluten)에서 비롯한 물성도 바랄 수 없다.

    빵은 19세기 말 개항 이후에야 한국 음식 문화사에 들어왔다. 개항의 첫 상대는 일본이었지만, 중국이야말로 지리적으로 조선과 가까웠다. 상인, 노동자 등 청나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가운데 조선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현대 한국 화교의 뿌리다. 이들은 밀가루 반죽을 부풀리고, 글루텐으로 물성을 잡아 찐 ‘빵’을 먹었다. 속 넣지 않고 찐 중국식 찐빵이 ‘만두(饅頭)’다. 속 넣고 찐 밀가루 빵이 ‘포자(包子)’다. 한국인이 보통 만두라고 하는 음식, 빵의 속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그 음식은 ‘교자(餃子)’다. 제빵의 원리를 알기 힘든 조선 사람 눈에는, 글루텐 잡은 반죽으로 찐 모든 중국 밀가루 음식이 곧 호떡이었다.

    일본인은 구운 빵을 들여왔다. 단팥빵-앙꼬빵이란 일본 근대 제과의 상징인 앙빵(餡パン), 앙꼬빵(あんこパン)이다. 이 음식은 일본의 전통 팥소인 앙을 중국식 포자로 싸, 구미식으로 구운 것이다. 일본에서 식사용 빵은 쇼쿠빵(食パン)이라 했다. 이를 한국어로 읽으면 ‘식빵’이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식 제빵 제과의 산물을 ‘왜떡’이라 뭉뚱그려 불렀다. 조선 사람들은 호떡과 왜떡 사이에서 빵을 경험했다. 제빵과 제과도 뒤섞였다. 김경애 스타일리스트의 추억 속 ‘만두 가게 찐빵’이 바로 이것이다. 만두와 찐빵이 함께인 추억, 그 뒤를 술빵이 뒤따른다. 술빵 또한 일본 제빵사 초기의 산물이다. 서양식 효모에 익숙지 않던 일본인들은, 반죽을 부풀리느라 아예 반죽에다 효모가 살아 있는 생(生) 사케를 넣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원조를 통해 밀가루, 옥수숫가루가 생긴 한국인은 거기에 막걸리를 써 술빵을 쪘다.

    일찍이 조선인 최고위층과, 외교관, 부유한 외국인 상인이 드나드는 최고급 호텔에서는 전통 방식의 빵과 과자를 구웠다. 하지만 이런 빵은 극소수 상류층을 위한 음식일 뿐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화교의 호떡은 찐빵이라는 이름과 함께 점차 화교의 만두 가게에 따로 묶였다. 제빵 제과는 일본인 차지였다. 일본인의 빵집에서 나온 앙꼬빵, 소보로빵, 카스텔라 등 빵의 이름을 붙인 빵 겸 과자가 부유한 조선인에게 돌아갔다. 서민들은 소문으로 들은 그 빵 한 조각을 선망했다. 하지만 서민 대중의 일상생활에 빵이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다.

    해방 전까지 조선에 자리한 빵집의 핵심 기술자와 경영자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조선인은 허드렛일이나 했다. 손님이란 일본인 중심의 외국인에 극소수 조선인 부자가 다였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빵집에서 일하던 조선인 기술자들은 남겨진 시설과 도구를 가지고 엉성하게나마 제빵 제과의 명맥을 이었다.
    1945년 직후 들어온 주한 미군은 부풀리기도 엉성하고, 오븐도 시원치 않은 채 나온 빵의 품질에 냉정했다. 당시 미군은 조선 사람이 만든 빵을 좀처럼 사 먹지 않았다고 한다. 맛이 없었으니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는 한국사에서 본격적인 빵 문화사의 시작은 공장 빵이라고 단언한다. 소수 부자의 일상과 서민 대중의 식생활이 완전히 달랐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크림빵, 일명 보름달빵, 1960년대 후반 미국의 밀가루 원조 이후의 밀가루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 빵도 제 어린 시절 안에 있습니다.” 중산층 출신 김경애 스타일리스트에게도 “없던 시절이라 빵 한입 먹는 일이 얼마나 간절한 일”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1960년대 초에는 원조 밀가루와 옥수숫가루로 만든 옥수수빵이 학교에 뿌려졌다. 60명 넘는 학생 모두에게 돌아갈 수 없어, 청소를 한 학생에게만 배급했다.

    이는 1960년대 후반 시작된 산업화하고도 한번 더 맞아떨어졌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에 따르면 공장에서 나온 빵은 건설 현장, 공장, 농촌에 참으로 요긴했다. 손 씻을 것도 없이 봉지만 뜯으면 참 또는 끼니가 해결됐다. 수분이 덜한 만주 계통은 동네 구판장에 방치해도 한참을 팔 수 있었다. 일에 쫓기던 도시 서민과 농어민 부모는 공장 빵 한 봉지를 자녀에게 쥐여주고는 일터로 달려갔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풍경이다. 이 먹을거리는 브레드도 페이스트리도 빵도 과자도 아닌 그 무엇이었지만, 한국인은 이를 다 그냥 ‘빵’이라고 했다.

    한국 빵 문화사의 시작은 찐빵이라든지, 일본식의 빵 겸 과자류다. 해방 이후, 소수의 기술자가 제빵 제과 기술을 어렵게 이어갔다. 이들의 빵은 부유한 몇몇에게나 돌아갔다. 서민 대중은 산업화와 함께 양산을 시작한 빵을 빵으로 받아들였다. 공장 빵은 단팥이며 크림을 붙인 스낵에 가까웠다. 어느 시점을 지나 빵은 우리 일상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드디어 빵에 열광하고 있나? 쉽게 말하기 어렵다.

    한국인은 먹던 대로, 감각해온 대로 여전히 빵(제빵)과 과자(제과)를 뒤섞은 식생활을 하고 있다. 본래 빵은 밥과 같은 주식이므로, 밥처럼 수수한 질감과 풍미에 집중한다. 과자는 간식으로 먹을 별미이자 기호식이다. 집중력 발휘해 먹고 치워 마땅한 과자는 설탕과 유지의 풍미로 단박에 사람을 사로잡아야 한다. 한데 주식과 간식 사이에 어정쩡하게 빵을 먹고 있는 한국인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매체가 말하는 만큼 서민 대중은 빵에 열광하고 있을까. 단팥빵, 찹쌀도넛, 꽈배기를 빼고 순전히 빵으로 독립한 빵집이 드물다. 탄수화물 중독이라고? 실은 빵의 이름이 붙은 설탕과 유지 덩어리를 먹으며 빵을 먹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빵집에 가서 정말 내가 무엇을 사 먹는지 돌아보자. 탄수화물 바탕에 설탕과 유지 그리고 동식물성 부재료까지 잔뜩 붙은 간식을 영어권에서 스낵(Snack)이라고 한다. 한국형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빵을 뺀 나머지가 바로 스낵이다. 지금 어느 빵집이 스낵을 빼고 독립할 수 있을까.

    산업화 시대의 아이들이 그랬듯, 젊은이는 가장 간편한 한 끼를 찾아 빵집에 들어가, 스낵을 산다. 조리가 생략된다는 점에서 보면 국수보다 쉬운 간편식이 빵이다. 조리가 경제적, 시간적 부담이 된 시대의 빵, 그 빵 판매 추이에 허턱 ‘열광’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렵다.
    매체와 힙스터들은 주거니 받거니 빵의 유행을 부풀리고 있지만,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에서 왔다는 최신 유행 빵집에서 실제로 더 많이 파는 상품은 빵이라
    기보다 디저트에 기운 스낵인지도 모른다. ‘힙’하고 ‘핫’하다는 빵집이 정말 빵집인지, 오전에 매진된다는 상품이 정말 빵인지는 한번 더 살펴보아야 한다.

    승용차, 보석, 향수, 옷가지보다는 그래도 싼 게 먹을거리다. 숙련된 제과사가 온 정성을 다해 완성한 앙트르메, 데세르는 그야말로 완결된 예술 작품에 준한다. 입안에서 사라지지만, 그래도 제일 싸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 조각이고 한 입이다. 식사 빵, 간식 빵을 구별할 줄 안다는 담론 또한 새로운 캠페인이 필요한 기업에게 요긴한 한마디이다. 빵 매대에 식사 빵 매대 하나를 더 늘릴 수 있으니 말이다. 힙스터가 뽐내고 매체가 부추길 때, 순간적으로, 실제로 매출이 쑥 올라갈 만한 상품으로 음식, 더구나 빵 한 덩어리, 과자 한 조각만 한 것이 없다. 서민 대중이 따라 하기에, 이보다 싼 상품도 별로 없다. 아주 야박하게 말하면, 19세기 말부터 내내 중산층-힙스터-매체와 서민 대중의 식생활은 늘 따로 놀았다. 식빵을 ‘바게트’가 상당히 대체한 정도는 되어야 유행이라든지 열광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동네 제과사에게(제빵사 말고 제과사!)에게 일선 종사자의 감을 물었다. 한국인이 현재 빵에 열광하는지. 도리질한다. 대답이 걸작이다. “단것은 필요하고 빵은 ‘빵빵하게’ 크니까 가성비 좋게 느껴지고, 빵은 우리에겐 간식이니까 달아야 팔리고…”

    이전보다 다양한 빵이 진열되고, 빵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먹고 있는가를 따지면, 그저 열광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에게 빵은 여전히 빵과 과자, 브레드와 페이스트리, 주식과 간식이 뒤섞인 음식이라는 점이다. 음식 문화사를 읽는 입장에서는 여기가 급소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이현석
      글쓴이
      고영(음식문헌 연구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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