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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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전성기

2018-05-10T10:21:53+00:00 2018.05.10|

포크는 상징적 인물들과 함께 늘 곁에 있었지만, 때론 잊혔다. 우리는 새삼 포크의 시대를 다시 맞았다. 통기타라는 단순한 이미지로 가둘 수 없는 음악이다. 포크이면서 포크를 넘어선다.

조안 바에즈와 밥 딜런이 워싱턴 D.C.에서 노래를 부르던 1963년이든 지금이든 포크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다만 2018년 한국 포크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매해 정초가 되면 홍대 근처 음악 공간 벨로주에선 포크 공연이 열린다. ‘새해의 포크’라 이름 붙인 이 공연은 홍대 앞에서 주로 활동하는 음악가 중심이지만, 때로는 의외의 이름을 포진하기도 한다. ‘새해의 포크’란 이름을 지은 김목인이나 강아솔, 권나무, 시와 등이 예상 가능한 이름이라면 왠지 젊은이들 노는 자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김창기나 김두수가 의외의 이름일 것이다.

2013년 처음 시작해 올해로 6년째가 된 기획 공연이니 ‘권위’와 ‘전통’이란 수식어를 붙인대도 무리는 아닐것이다. 이 소박한 공연에 ‘권위’란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홍대 앞의 넘치는 기획 공연 사이에서 확실한 주제를 가지고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또 하나 의미있는 점은 ‘새해의 포크’를 통해 지금 한국의 포크 신(Scene)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올해 ‘새해의 포크’ 출연진을 보며 작년 한 해의 포크 신이 얼마나 풍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목인, 강아솔, 최고은 같은 전통(?)의 강자들부터 김사월과 김해원, 이호석, 정밀아 등 요 근래 부각된 음악가들, 송은지와 에몬처럼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이들도 있고, 예람이나 드레인처럼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젊은 음악가도 있다. 정말이지 다양하다. 출연진 가운데 절반이 ‘새해의 포크’ 공연에 처음 참가했는데, 이는 그만큼 지금 한국 포크 신의 저변이 넓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결코 크게 목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중견부터 신인까지 고르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는 지금이 한국 포크 음악계의 새로운 전성기임을 나직하게 말하는 듯하다.

그런 흐름에 맞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는 4년 전부터 포크 분과를 신설했다. 팝 분과 안에 속해 있던 포크는 독립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이들을 불러 모았다. 권나무와 김사월×김해원, 이랑, 이민휘 등이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부문 수상의 주인공이 됐다. 조금 전 나는 ‘통기타’란 식상하고 도식적인 낱말로 포크 음악을 표현했지만, 포크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표현의 틀도 다양해지고 있다. 권나무와 김사월, 김해원, 이랑, 이민휘, 이들의 음악을 들어봤다면 알 것이다. 이들 음악의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를.

이쯤에서 나는 김목인의 이름을 꺼내려 한다. ‘나무사람(木人)’이란 뜻의 그 이름처럼 음악 역시 나무처럼 곧고 풍성하다. 그의 음악을 포크라 한정해 말하기 어렵다. ‘포크의 요소를 갖고 있다’가 좀더 정확한 표현 일 것이다. ‘버스킹(거리 공연)’이란 말이 쓰이기 전부터 캐비넷 싱얼롱즈라는 팀의 일원으로 거리에서 공연해온 그는 첫 앨범 <음악가 자신의 노래>를 발표하며 단숨에 주목받았다.

정돈된 언어로 음악가로서의 정체성과 태도를 노래하는 그의 음악은 동시에 문학적이다. 또 뮤지컬이나 클래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누구와 닮지 않은 음악도 김목인이란 음악가를 특별하게 해준다. 작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콜라보 씨의 일일>에서 그의 음악은 포크를 중심에 두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로는 고풍스럽고 때로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재즈 팝과 포크 팝의 경계에서 김목인만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을 더해 ‘목인이즘’이라는 고유의 스타일이나온다.

그 옆에는 김목인과 닮은 듯 다른 권나무가 있다. 이름에 똑같이 나무가 들어가고 또박또박 사려 깊은 발성과 발음으로 노래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지만 음악은 또 다르다. 어떤 노래는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 주듯 편하게 흘러가고 어떤 노래는 긴장감이 잔뜩 흐른다. 전자가 ‘어릴 때’ 같은 노래라면 후자는 ‘나의 노래’나 ‘어두운 밤을 보았지’ 같은 노래다. ‘이천십사년 사월’처럼 일상의 언어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정말 쩔쩔매게 만드는 노래도 있다. 권나무의 노래는 그저 편하다는 단편적인 감상에서 좀더 귀 기울이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정밀아는 이들에 비해 훨씬 전통적인 의미의 포크에 가깝다. 과거 1970년대부터 시작된 포크의 전통과 정서가 지금까지 내려와 현대와 맞닿았다면 정밀아는 그 전통 안에 속하는 음악가일 것이다. 첫 앨범 <그리움도 병>과 싱글 ‘꽃’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정밀아는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나갔고 얼마 전 두번째 앨범 <은하수>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가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라고 ‘꽃’을 노래할 때 많은 이들이 귀 기울였다. 나태주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밀아의 목소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저 ‘단아하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는 않는 목소리의 힘과 조영덕(기타), 성기문(피아노), 신동진(드럼) 등 재즈 동네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조력으로 음악은 정갈하게 다가온다.

최근의 포크로는 김해원이 있다. 김사월×김해원의 일원이었던 김해원은 얼마 전 자신의 첫 앨범 <바다와 나의 변화>를 발표했다. 김해원은 나서지 않는 음악가다. 김사월×김해원으로 활동할 때도 김사월에게 더 많은 조명이 비추었고, 김사월의 솔로 앨범인 <수잔> 작업에서도 자신은 프로듀서 역할을 맡으며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또한 영화 <셔틀콕> <피의 연대기> <소셜 포비아> 등의 음악가로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작업을 해왔다.

<바다와 나의 변화>에는 이런 그의 성향이 자연스레 담겨 있다. 어둡고 쓸쓸한 이미지다. 침잠하는 분위기에서 조용히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가 있고, 기타 연주 뒤로 치열하게 다듬은 사운드가 있다. 그의 음악은 포크이며 동시에 포크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넓고 치열한 ‘소리의 풍경’을 펼친다. 또한 여전히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있다. 3월에 나왔지만 오는 12월 각 매체의 연말 결산에서 다시 호명될 앨범이다.

음악가 네 명은 지금 신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다. 또 ‘통기타’라는 단순한 이미지로만 가둘 수 없는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는 음악가들이기도 하다. 이들 말고도 여전히 외롭고 높고 쓸쓸한 자기 세계를 들려주는 다양한 포크 음악가들이 있다. 그 음악가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지금 한국 포크의 지형도가 얼마나 넓고 다양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원고를 쓰고 있는 2018년 4월, 지금을 나는 ‘포크의 시대’라 부르려 한다. 소박하되, 아름답게 빛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