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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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꼰대?

2018-05-14T02:55:27+00:00 2018.05.14|

후배에게 몇 번씩 말을 주워 삼키고, 치솟는 화를 누르며 생각한다. 나는 꼰대 인가? 쟤가 이상한 게 아니고?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에 수록된 서‘ 른’의 구절이다. 나도 시시한 어른이 될까 불안했다. 그래서 시시한 어른에게 날이 섰다. 이들은 꼰대 육하원칙을 즐겼다. 내가 누군지 알아(Who),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나 때는 말이야(When), 어떻게 나한테(How), 내가 그걸 왜?(Why).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니면 자기 얘기만 했다. 택시 기사가 인사를 한다. “오늘 날씨 좋죠?” 내 의견은 궁금하지 않다.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한 오프닝이다. 대통령 뒷담화가 시작될 때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유명 연극배우의 강연을 들을 때다. 그녀는 “자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앞자리의 학생에게 물었다. 학생이 입을 떼기 전에 “나는 말이지”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37세다. 시소의 끝에 앉아 반대쪽의 기성세대를 누르려 애쓰다, 어느새 시소의 중간 즈음에 와 있다. 꼰대 기질로 말이다. 나보다 일찍 퇴근하는 막내 기자를 보며 ‘쟤 일 다 한 건가?’란 생각이 든다. 나는 꼰대인가? 30대 운동선수를 인터뷰했다. “선수촌에서 제가 제일 열심히 해요. 애들은 진짜 저보다 안 한다니까요.” 그는 꼰대인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꼰대 조로 현상’이 나온다. 일찍 꼰대가 되는 20~30대를 일컫는 말이다. 대학명과 학번이 쓰인 ‘과잠바’에 집착하고, 말할 때 ‘다나까’를 쓰는 대학생의 기사를 읽으며 쯧쯧 혀를 찬다. 밑에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기사를 보고 경악한다. 꼰대인지 알아보는 체크리스트도 있다. 15개 문항에서 말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 생각한 문항은 거의 해당된다. 예를 들어 ‘내가 너만 했을 때란 말을 자주 한다’는 해당되지 않지만 ‘내가 한때 잘나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는 해당된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라 해놓고 내가 먼저 답을 제시한다’는 아니지만 ‘나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는 맞다. 테스트 결과는 자숙 기간이 요구되는 꼰대다. 아니, 내가 왜? 무슨 근거로 만든 테스트야?

꼰대가 뭘까. 심리학자 장근영은 꼰대를 자기애적 성격 장애(나르시시즘)으로 본다. “나는 언제나 옳고 가장 뛰어나기에, 내가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나르시시즘과 통해요. 덧붙여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연령과 직위에 기대는 나르시시즘이기에 권위주의적 성격도 포함하죠.” “치료법은 없습니까?” 심리학자 장근영에게 물었다. “성격 장애 대부분이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최적화된 것이거든요. 그런 꼰대들 대부분이 자기 성향에 의존해서 현실을 왜곡하면서 잘 살아갑니다.” 뒤의 말이 더 충격이다. “심지어 어떤 조직에서는 그런 꼰대들을 이용해 젊은 직원을 통제합니다. 조직의 운영 논리 자체가 꼰대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조직의 최고위층이 가장 심한 꼰대죠.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과 꼰대인 개인 모두 윈윈인 게임이어서 바뀔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꼰대를 정말 고치려면 당사자의 노력을 기대하기 전에 그런 행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변에서 꼰대질을 계속 받아주는 한 그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늘 있어왔을 꼰대가 요즘 유독 대두되는 이유에 대해 사회학자 오찬호는 이렇게 답한다. “한국 사회에는 수직적 위계화가 많아서 선배, 윗사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도 사회적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하죠. 대학생일 때는 선배 노릇 잘한다는 말이 있고, 실제 그런 선배들이 인기 있었지요. 어릴 때로 거슬러가면 오빠 노릇, 형 노릇, 누나답게, 맏언니라면 등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조언하고 이끌어야 하는 압박이 강했어요. 직장에서도 이 문화가 이어지고 있어요. 요즘은 더 살얼음판인 세상이기에 꼰대가 될 상황이 많아지는 거겠죠.”

나의 꼰대 기질도 ‘역할 부담’ 때문일까? 선배 노릇 하려고? 내 좌우명이 ‘각자도생’이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글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 서문이다. 친구가 말한다. “꼰대의 문제는 자신이 꼰대인지 모른다는 거지.” 내가 후배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때를 보자. 나는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거지만, 듣는 이에겐 낡은 이야기, 흘러간 강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무료 봉사에 상응하는 특권(권위)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후배가 먼저 알려달란 적 없다. 일방적인 도움은 상대에게 부담이자 자율성을 해치며,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악일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화살을 쏘아놓고 후배의 뒷담화를 한다. “공들여 알려주면 뭐해,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데. 나 걔한테 상처받았잖아.” 후배를 미친 듯이 괴롭힌 선배 간호사가 SNS에 “변해가는 내가 싫다”라 쓰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있네.”

다른 잡지사의 또래 기자들과 점심을 먹을 때면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 서로 얘기하고 싶어서 안달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만큼 힘든지가 40%, 누군가의 뒷담화가 40%,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정해인 찬양이 20%. 후배 뒷담화의 단골 멘트는 “우리 때는 안 그러지 않았니? 왜 그렇게 열심히 안하니?”다. <보그> 편집부의 야근 식사 시간, 배달 음식을 먹으며 편집장이 묻는다. “나랑 에디터, 이번 호 힘들었나?” “에이, 예전엔 회사 창고에서 자면서 일했는데요, 뭐.” 앞에는 밥을 다 먹고도 그릇을 치우기 위해 앉아 있는 막내 에디터가 있다. 여기서 나한테 해주고 싶은 영화 <생활의 발견> 명대사가 있다. “우리,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

왜 다른 사람도 나만큼 일해야 하는가? 내가 그만큼 일을 하긴 했나? 마음대로 과거를 편집한 건 아니고? 일본의 지성, 우치다 다쓰루는 책 <힘만 조금 뺐을 뿐인데>에서 꼰대가 되어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이 말하는 ‘중년의 꼰대’는 ‘견디는’ 자세가 극적으로 인격화된 사람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회사에서 상사의 욕설을 견디고, 부하의 막말을 참고, 클라이언트의 안하무인도 참고, 만원 전철을 타야 하는 장거리 출퇴근을 참고, 무뚝뚝한 아내의 얼굴을 참고, 아이들의 침묵이 주는 경멸을 참고, 거액의 대출금을 참고, 닳아버린 양복 팔꿈치를 참고, 치질의 고통을 참고…. 이렇게 온몸이 인내로 둘러싸인 이들이 ‘중년의 꼰대’라는 존재입니다. ‘불쾌함을 견디는 나’를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그때부터 ‘꼰대가 되는 길’은 탄탄대로 입니다.” 그런 사람은 술잔을 들며 한탄한다. “왜 주변에 재수 없는 사람밖에 없는 거야.” 자신처럼 참지 않는 상대에게 화를 낸다. 견디며 살아온 인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상대가 나를 따름으로써 인정받고 싶다. 나처럼 살라고 ‘꼰대질’을 한다. 내 생각이 맞고 내 규칙에 따르라고.

‘꼰대질’은 자기방어의 잘못된 형태다. 사람은 불안하고 위협을 느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중심으로 생각한다. 지금 후배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유년의 사건이든, 사는 게 힘들어서든, 내 문제로 괴롭기에 꼰대질을한다. 엉망인 삶을 타인의 인정(복종)을 통해 보상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처참하다. 누군가 그랬다. 꼰대는 아픈 사람이라고.

우치다는 참지 않는 삶을 살 때, 내가 행복할 때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가 내 삶을 답습해야만 내 삶이 인정받는 것 같은 열등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일본의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는 10여 년간 성공한 인생이라 불리는 200여 명을 만나 <어른의 의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어른의 의무 세 가지를 제안한다. 불평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상태를 유지한다. 의무 세 가지를 다하려면 당연히 내 삶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자, 그럼 어떻게 만족스러워질지는 다시 생각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