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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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광주

2018-05-15T11:03:57+00:00 2018.05.15|

지금 ‘5월의 광주’ 에서는 ‘예술은 내가 제정신으로 살 수 있도록 한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전시 두 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오직 그 이유만으로도 기차에 몸을 싣기엔 충분했다.

도시 이론가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가 정의한바, 이상적인 도시란 서로 다른 생각이 중립적인 공간에서 대충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되 생산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광주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2010년 금남로1가 1번지 전일빌딩 꼭대기에서 구 전남도청의 파헤친 터를 촬영하면서, 매회 비엔날레에 가면서, 젊은 예술가의 일상 투쟁 거점이 된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을 다니면서 뜨거운 광주를 실감했다. 물론 8년이 지난 지금 구 전남도청 자리를 가득 메운 아시아문화전당의 산책로는 지나치게 평화롭고, 왕두의 ‘빅토리’ 조각만 해방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지만 말이다. 모든 게 소비 대상화된 건 어디나 마찬가지더라도, 정치적 화두를 덮고 살기엔 자칫 살아 있는 시체가 되기 십상인 시대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일기에 “Art is a guaranty of sanity(예술은 제정신으로 살도록 해준다)”라고 썼다. 어떤 시대에든 미술은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아야겠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선사했다. 5월에 가까워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파킹찬스 2010~2018> 전시와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 전시가 그 역할을 맡았다(7월 8일까지). 인간의 양심이 시대를 만나면 인본주의로 변모하고, 정치와 만나면 세상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는 통찰력이 된다는 것을, 이들 전시는 알려준다. “광주에 오면 마음이 복잡하고 무겁지만, 어쨌든 다른 곳이 아닌 광주이기 때문에 전시와도 잘 맞고, 기분도 좋습니다.” 파킹찬스의 박찬경 작가가 이렇게 말한 이유다.

박찬욱, <풍경 연작(Landscape Series)>, 2010~2018, 다양한 크기의 사진 55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디지털 O-프린트, 작가 제공.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박찬욱 감독, 박찬경 작가 형제가 장르, 매체, 이윤, 소재 그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파킹찬스의 이름으로 만들어온 영상 및 사진 작업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회 될 때마다’ 만들어온 작품이라 포맷도, 미디어도 제각각이지만 관통하는 점이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를 이성과 감성을 확장시키는 즐거운 경험으로 변모시킨다는 것이다. 그 소재가 남북 문제일 수도, 서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굿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세상 만물과 나누는 대화의 방식”이 된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커미션한 신작 <반신반의>는 진짜와 가짜, 그 모호함의 대상을 남북 관계로 맞춘다. 분단 상황에서 남북을 오간 어느 실제 인물은 남북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상징하는 이중 스파이로 등장한다. 실제 이런 경우가 많다. 탈북 후 남한에서 인기 BJ로 활동하던 그는 돌연 북으로 돌아가 그들의 메가폰이 되었다. 이 와중에 선교사와 십자가, 모든 걸 조종하는 인물들도 끼어든다. 북한 취조실과 남한 공간 세트를 나란히 두고 위로 왔다 갔다 하는 카메라가 <반신반의>가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겨냥할 때, 그제야 관객은 이 이야기가 남과 북 사이의 어딘가, 영화와 작품 사이에 위치함을 인지한다.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 관계,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 진실과 거짓의 경계 짓기 자체가 무색해진 상황은 판타지가 가미된 잔인한 농담 같다.

<격세지감(Decades Apart)>, 2017, 3D 비디오 및 몰입형 사운드 단편영화, 17분 53초,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커미션, (주)모호필름 제작.

“<반신반의>는 남북 얘기이지만 한편 반은 신이 진짜 있느냐 없느냐, 하는 종교에 대한 얘기예요. 동시에 미디어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남북 사이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커요. 물리적 벽이 있지만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정보를 주고받는 반면 간단하게 전화로 할 수 있는 일도 괜히 암호 부르며 유난을 떨죠. 미디어의 교환 관계를 보면 엉망진창 난센스예요. 첩보전에 프로토콜조차 없죠. 인터넷이 이렇게 잘되어 있는 상황에서 간첩이 할 게 뭐가 있겠어요.(웃음) 어쨌든 남북 분위기는 언제든 돌변할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 같을 땐 분노와 공포의 감정 없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죠.”

얼마 전 방송으로 중계된 평양 공연의 기이한 풍경(Uncanny)을 목격하며, <반신반의>의 공감각적 경험을 떠올렸다. <가요무대>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섞은 듯한 무대에서 조용필을 비롯한 한국 뮤지션들은 통일의 선봉장 역할을 부여받은 양 열성적으로 노래를 부른 반면, 객석을 가득 메운 북한 사람들은 꼿꼿하게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봤다. 원래 표정이 저런 건지, 근엄한 척하는 건지, 정말 즐겁지 않은 건지, 즐겁지 않은 척하는 건지. 북한이라는 행성에 대해 쏟아지는 정보는 실체와 이미지를 혼동시키는데, 이는 때아닌 춘풍이 불고 있는 현 남북 관계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이런 광경을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보는 상황과 그대로 재현된 <반신반의>의 세트장에서 셀피를 찍는 것 중 과연 어떤 것이 더 ‘반신반의’한 상황일까?

<반신반의(Believe It or Not)>, 2018, 복합 매체 설치, 단편영화, 가변 크기, 아시아문화전당 커미션, (주)모호필름 제작.

무려 18년 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광주의 미술관 입구의 복도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는 상황도 믿기지 않을 만큼 흥미롭다. 새 밀레니엄의 문을 연 박찬욱의 흥행작은 2017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커미션 작 <격세지감>의 서문 역할을 한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지만, <격세지감>의 3D 사운드와 이미지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보길 추천한다. 폐허가 된 남양주종합촬영소의 판문점을 둘러보다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의 다양한 층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본인 영화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격세지감>에서는 어쩐지 ‘냉전 누아르’를 둘러싼 파킹찬스의 시대 풍자는 물론 자기 풍자의 면모도 느껴진다.

박찬경, <소년병(Child Soldier)>, 2017~2018,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 35mm 필름 연속 상영, 가변 크기, 16분 9초, 3개의 사진 라이트 박스(각 84×120cm).

파킹찬스의 첫 작업인 <파란만장>, 코오롱과 협업의 결과물인 <청출어람>, 이정현의 뮤직비디오 , 서울 시민들에게 영상을 공모해 만든 크라우드소싱 다큐멘터리 <고진감래>까지, 파킹찬스의 영상 작품을 필독하는 와중에 사진은 짧은 시처럼 상징적으로 읽힌다. 풍경이든 정물이든 모두 인물처럼 찍는 박찬욱의 사진은 괜히 웃음이 나고, 모든 걸 풍경처럼 찍는 박찬경의 사진에는 한발 더 다가가게 된다. 전시장 입구, 어리고 순수한 소년병의 사진은 라이트 박스에 담긴 채 몽환적으로 빛나고, “정치적 이미지가 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이미지가 거꾸로 정치적으로 ‘불순한’ 이미지가 된다”는 작가의 말은 남북 상황뿐 아니라 일상 전반에 포개진다. 박찬경이 2009년 분단과 관련한 공동묘지 세 개를 찍은 <세 개의 묘지>는 이번에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 작품이다. 그 맞은편에는 박찬욱이 미술관에 갈 때마다 찍은 명화 사진, 일그러지고 흔들린 명작의 향연 <미술관 연작>이 놓여 있다. 박찬경 작가의 말처럼 미술관과 묘지의 닮은 점에 대한 비유는 숱하고, 설사 우연이라 해도, 미술관과 묘지가 마주한 배치는 파킹찬스답다.

박찬경의 <세 개의 묘지>(2009) 전시 전경.

건축가 정의엽이 디자인한 공간, 안팎이 연결된 구조는 파킹찬스의 다채로운 작품을 느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미로는 미로이되 막다른 골목보다 출구가 더 뚜렷이 보이는 전시 공간은 파킹찬스가 추구하는바, 영화와 미술, 전통과 현대, 매체와 장르 등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 의식을 건축적으로 재현한다. 파킹찬스는 스스로의 이름을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하기가 서울에서 주차할 기회를 찾는 것만큼 어렵고도 반가운 일”이라 설명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이들의 희망은 엄연히 다른 영화 관객과 전시 관객을 모두 만난다는 기회로, 극장과 미술관을 자유롭게 오가는 획기적 작품의 출현으로, 어쩌면 장편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만날 기회로 이어질 것이다. “심각하고 도전적인 문제작”으로 세상을 환기시키고자 꿈꾸는 파킹찬스라는 예술가는 박찬욱, 박찬경 두 사람으로부터 서서히 분리되어 독립적인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From Vietnam to Berlin

“여러분은 베트남 전쟁의 시작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시점을 아시나요? 베트남 전쟁은 1964년 8월 2일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시작되었어요.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989년 11월 9일 동독의 해외여행 자유화 선언과 함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전시 투어를 다니다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교과서와 뉴스, 엔터테인먼트의 소재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해왔을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냉전은 남북만의 문제가, 피투성이 근현대사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은 냉전 시대를 본격화했고,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는 자본주의의 파도가 덮쳤다. 미주에서는 흑인들의 인권 투쟁과 반전 시위가, 유럽에서는 프랑스 68혁명이,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주의로부터의 독립 투쟁이,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는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결코 서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두의 역사적 결과물이다.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전은 이런 공통의 현대사를 예술로 만나는 자리다.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탄생한, 전 세계 25개국, 51명의 회화, 드로잉, 판화 작품 170여 점이 강렬한 연대기를 구성하고 있다. 아시아문화전당 김성원 예술감독과 함께 전시를 기획한 르 콩소르시움(Le Consortium)의 김승덕, 프랑크 고트로(Franck Gautherot) 공동 디렉터는 퐁피두센터,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등 32개 기관 및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어렵사리 작품을 공수했고, 그 결과 우리는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이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는 곧 회화가 어떻게 우리의 현대사를 기억하는지, 회화가 시대적, 정치적 상황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이런 회화를 통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과 답, 단서까지 모두 품고 있는 장이다. 김승덕 디렉터의 말대로 “부딪침과 엇갈림, 이상한 것들과의 만남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를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베르나드 랑시악(Bernard Rancillac), ‘Bloody Comics’, 1977, Acrylic on canvas, 195.5×300cm ⓒ Musée des Beaux-Arts de Dole, cl. Jean-Loup Mathieu.

전시는 야마시타 기쿠지(Yamashita Kikuji)의 대표작이자 ‘르포르타주 회화’의 주요 작품인 ‘아케보노 마을의 설화’로 시작하여 얀페이밍이 그린 마틴 루터 킹의 죽은 후 모습으로 끝난다. 이 여정은 지정학적 조건과는 무관한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객은 미국 거장 레온 골럽(Leon Golub)의 작품 ‘백색부대’ 옆에 한국 작가 김정헌의 작품 ‘숨은그림찾기’와 홍성담이 광주를 그린 오‘ 월’이 놓이고, 앤디 워홀의 ‘전기의자’와 인도 작가 치타프로사드(Chittaprosad)의 ‘방글라데시 전쟁’이 나란히 놓인, 흔치 않은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시대별로 배치된 작품은 이들의 사건과 고통, 위기와 저항이 얼마나 인류 보편적이었는지, 동시에 곳곳의 역사가 얼마나 특수하고 기구했는지를 증명한다. 시대를 겪은 이들이, 시대를 그린 작가가, 그리고 그 시대를 경험하는 우리가 연대할 수 있도록 무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트랜스모더니즘’이라는 주제를 리서치해왔어요. 각 문화권에서 모더니즘을 어떻게 발전시켜왔나 궁금했죠. 문화적 콘텍스트 안에서 모더니즘을 관찰하다 보니 이를 가능하게 하거나 혹은 다른 차원에서 발전한 저항 미술 혹은 정치적 미술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어요. 동시에 지난 5년 사이 세계 곳곳에서 정치와 연결된 굵직한 전시가 잇따라 열리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김승덕 디렉터는 지난해 라는 메가스케일의 전시가 회자되었고, ‘블랙 파워’ 예술을 다룬 전이 테이트 모던에서 열렸으며, 쉬른 쿤스트할레에서는 전이 열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미술계의 지속적인 관심은 과거의 미니멀 아트처럼, 미술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덧붙였다. “일반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건 현시대의 현상인 것 같아요. 정치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고 깊숙하죠. 가령 요즘 미세먼지가 심해서 아이들과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잖아요. 미세먼지야말로 신자본주의의 폭주와 이를 가능케 한 현실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나요?”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전은 이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면밀히 기획되었다. 작품의 역사적 의미를 벽에 빽빽하게 써두는 대신 충실한 가이드북을 준비했고, 그림은 가장 전통적인 눈높이로 걸었다. 한쪽 벽을 클래식한 미술관의 벽으로, 마주 보는 쪽을 거울 시트로 만든 시도는 흔치 않을뿐더러 흥미롭다. 그림 앞에 서면 작품에 몸은 가려진 채 다리만 보인다. 작품 속에서 고통받는 누군가의 다리처럼 보이기도, 이런 미술의 존재 자체를 지탱하는 다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맞은편에 걸린 작품과 타인, 그리고 내 모습이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보인다. 나와 작품 간의 관계를 끊임없이 인식함으로써, 과거가 아닌 ‘그때’를 여기에서, 다름 아닌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역사와 나의 연관성을 스스로 찾아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시이 시게오, ‘계엄령 상태(State of Martial Law)’, 1956, Oil on canvas, 182×227.5cm,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이시이 시게오(Ishii Shigeo)는 28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일본의 불안한 상황과 자신의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했다. 팝아트의 대표 주자 로버트 라우센버그조차 <타임>지 커버로 거절당한 ‘기호들’을 두고 “지난 10년의 사랑, 공포 그리고 폭력을 상기시키는 판화”라고 말하며 “위험은 망각에 있다”고 했다. 특히 이탈리아 작가 레나토 구투소(Renato Guttuso)가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밤의 개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검은 개 다섯 마리는 우왕좌왕 시선 둘 데를 찾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반면, 개 한 마리가 정면을 응시한다. 어딘가 절박한 그 얼굴은 무슨 말이든 듣고 싶도록 만든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얼굴 속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가 있고, 시대의 괴로움이 있다.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우리를 멀리 데려가는 사건들보다 이 얼굴이 더 우리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현실의 진실한 영상은 다름 아닌 우리다.”

레나토 구투소, ‘밤의 개들(Chiens dans la nuit)’, 1973, FNAC 32660,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France) ⓒ Adagp, Paris / Cnap / Yves Chenot.

‘주체적인 삶’은 내가 동시대의 어떤 시점에 살고 있는지를 눈 크게 뜨고 직시하는 것이고, ‘더 나은 시대’란 명확해진 현실과 상관관계 안에서 쉽게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전은 한 인간으로서 존엄과 주체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며 더 나은 시대를 향한 희망을 위협하는 정치적 현안을 기록한 작가들의 생존기다. 김승덕 디렉터는 말한다. “남미의 작가 훌리오 레 파르크(Julio Le Parc)가 그린 고문 장면을 봤나요? 그는 옵아트와 키네틱아트 작가예요. 직접적으로 정치를 다루지 않는다 할지라도, 작가는 인간의 가치이자 비전을 시각을 통해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는 세상이 이렇다는 이야기는 지금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작가들은 다 정치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조지 오웰이 말한바,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야말로 정치적인 태도라는 것은 미술가에게도 오차 없이 적용된다.

레온 골럽, ‘백색부대(White Squad XI)’, 1987, Acrylic on unstretched canvas, 300×355cm, Centre Pompidou, Paris,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de création industrielle ⓒ Centre Pompidou, MNAM-CCI, Dist. RMN-Grand Palais – GNC media, Seoul, 2018.

역으로 돌아가는 길, 택시를 탔다. <택시운전사>라는 영화가 1,400만 관객을 모으기 훨씬 전부터 광주의 택시 운전사들은 살아 있는 역사였다. 그해 5월, 광주 근처의 부대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는 그는 벚꽃 만발한 운천 저수지에 나를 내려줄 때까지도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는 “이 역사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 전시를 권했다. 옛 철학자들이 정의한 ‘정치(Politics)’의 원래 의미, 나눠줄 수 있는 덩어리였고 결국 감각의 분화이자 이성의 나눔이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