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오피의 다르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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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오피의 다르게 보기

2018-05-29T16:18:57+00:00 2018.05.18|

부산 F1963에서 열리는〈줄리언 오피 인 부산〉전은 제목부터 줄리언 오피의 존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대중은 간결한 선과 색으로만 이뤄진 그의 직관적인 작품에 열광하지만, 실은 지난 35년 동안 지속된 견고한 예술적 사유와 명분으로 구축한 세계다. 줄리언 오피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하며, 현대미술이 도외시한 미덕을 다시 리스트 업하고 있다.

줄리언 오피가 성 모양의 작품 ‘중세 마을(Medieval Village, 2018)’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이미지는 ‘Lucia, Back 1’, 2017, Aluminium, vinyl and lights, Large, 340×260cm.

F1963은 부산 비엔날레 전시장으로도 활용된 바 있는, 도시의 이미지를 바꿀 만한 공간이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어떤 내러티브 혹은 이미지를 떠올렸나?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전시 열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게 첫인상이었다.(웃음) 이 공간은 다목적공간의 구조에 가깝다. 방음 천장과 슬라이딩 도어 몇몇 개를 제외하고 뻥 뚫린 구조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이해와 협조로 나의 디자인이 충실히 재현되었고 새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공간이 좋았던 이유는, 꽤 복잡하고 기이한 건물 자체의 역사와 존재감 때문이다. 천장의 파이프 같은 요소가 공간을 생기 있게 만들어준다. 작은 창을 통해 외부, 공원, 도시, 시민으로 연결되어 뻗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

‘Walking in Sadang-dong in the rain’, 2014, Vinyl on wooden stretcher, Large, 230×344.3×3.5cm.

관객의 존재가 공간을 채우면 작품 속의 걷거나 뛰는 인물들 사이에서 실제 관객들의 움직임이 조화로운 불협화음처럼 시너지를 일으켜 결국 이 전시의 명분을 완성할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맞다. 우리는 빈 벽과 플라스틱, 페인트뿐이던 공간에 작품을 들이고, 조명을 조율하고, 마지막 청소까지 하고 물러섰다. 어떤 공간이 관객들로 채워지면 또 다른 공간으로 바뀐다. 그래서 전시를 디자인할 때, 공간이 어떻게 변모할지 미리 상상하는 건 중요하다. 성 형태의 ‘중세 마을’은 관람객이 물리적인 몸으로 탐색하고 스스로의 위치를 알아가는 상황을 예측하여 디자인한 것이다. 반면 미술관은 작품 주위에 경계선을 두르고 60cm 떨어져서 관람하라고 한다.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를 방해하고는 작품이 존중받길 강요한다. 하지만 나는 파손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관람객이 작품과 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길 바란다.“이 작품은 굉장히 가치 있지만 당신은 그 앞의 작은 존재다. 그러니 한 걸음 물러서라”라고 하고 싶진 않다.

영상 작품 ‘Tunnel’ 시리즈, 2016-2018, Continuous computer animation on 46″ LCD screen 102.7×58.5×11.5cm.

방금 나는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천 작품이 바람 때문에 살짝 흔들린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 ‘움직임’은 핵심 요소다. 걷는 사람은 물론 초상화에서도 눈썹 모양이나 머리의 각도 덕분에 미묘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또한 작품 속 사람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반면 ‘중세 마을’은 단단하게 자리하는 식으로 대조적인 느낌이다. 이런 움직임의 미학을 의도한 건가?
문이 열릴 때의 바람이 작품에 움직임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주어 기쁘다. 물론 행복한 우연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런 섬세한 특징을 자각할 수 있다. 반면 동시에 어떤 것도 명확하게 정의하거나 알지못한다. 예술은 이미 존재하지만 잡히지 않는 것을 불러내고, 모방하고, 드러내기 위한 실험이며, 동시에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자기만의 방법을 확립해가는 일이자 이 모든 노력의 결과물이다. 어떤 색이 적합할지, 목을 그리는게 좋을지 등에 대해 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술과 사람의 관계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번식과 안전이 필수 요소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것만큼 미묘하다.

인간의 시각과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하나?
우리는 이 세상을 완전히 읽어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정 부분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텅 빈 골짜기에서 사슴이 뛰어가는 걸 봤다면, 이는 눈이 아니라 뇌가 본 것이다. 우리의 뇌와 눈은 움직임을 포착할 때 서로를 조정한다. 강렬한 색이나 거대한 규모의 예술이 사람을 압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동시에 우리는 무언가를 묘사할 때 무의식적으로 움직임을 제외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움직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적인 이미지를 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발이 땅에 닿기 직전처럼 좀 어정쩡해 보이지 않나. 기술의 발전이 이런 움직임을 더욱 특징적으로 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술을 활용한다는 건 꽤 골치 아픈 일이지만 관람객이 고심해 만든 움직임을 보고 반응하는 순간, 그런 노력이 보상으로 돌아온다.

맨 앞 작품은 ‘Delphine. 1’, 2013, Paint on resin, Unique, 184×109×144cm, 뒤에 보이는 작품은 ‘Reed. 1’, 2013, Paint on resin, Unique, 176×115×150cm. 왼쪽 벽의작품은 ‘George’, 2014, Continuous computer animation on 70″ LCD screen, Ed. 4/4, 158x92x7.7cm.

관객을 위한 글에서 직접 이렇게 썼다. “나는 종종 작품과 전시장 내에서 관객의 시야를 다소 방해하거나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는 이의 시선이 저 멀리 뒤편으로 잠식되기 이전에 전경으로 먼저 이끌리면 모든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받아들이기도 더 쉬워진다.” 그 문장을 이번 전시에 빗대어 설명해줄 수 있을까?
많은 전시를 진행하면서 나름의 규칙을 발견했다. 예컨대 어떤 뻥 뚫린 공간에 문을 달아놓으면, 관객들은 그 문을 통해 내부를 흘깃 보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그때 모든 걸 봤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게 문제다. 반면 문이 있더라도 큰 규모의 작업을 전시장 가운데에 놓고 다른 무언가로 둘러싸면,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 뒤에 무엇이 있을지 무의식적으로 궁금해하고, 그렇게 시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혹시 19세기에 활동한 우타가와 히로시게라는 작가를 아나?

일본의 유명한 우키요에 목판화 작가 말인가?
맞다. 반 고흐가 그를 존경한 나머지 작품 ‘신오하시 다리에 내리는 폭우’를 모사하기도 했고, 모네도 그의 작품을 수집한 걸로 알고 있다. 나 역시 히로시게의 작품을 수집하는데, 그를 통해 많은 걸 배운다. 히로시게의 그림에 매료된 이유는 서구의 방식과 반대였기 때문이다. 보통 서양 풍경화에서는 화면 깊숙이 멀어지는 도로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멀리 있다. 하지만 히로시게의 그림은 모든 걸 앞에 둠으로써 수평이 아니라 수직적인 구조를 만들고, 대상을 전면에 내세워 자연스럽게 시선을 배경으로 이끌어 관심이 이어지도록 한다. 어쨌든 누구나 이 전시장 입구 너머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입구를 통과할 것이고, 이 방은 복도 혹은 쇼핑몰처럼 사람으로 가득 차게될 것이다. 방 한가운데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피게 될 것이고, 이로써 당신은 차단되며 그만큼 당신의 시야는 더욱 열릴 것이다.

불특정 모델에 허구의 직업을 부여하는 것은 작가의 작업 방식 중 하나다. 왼쪽은 ‘Pilot. 1’, 2015, Vinyl on wooden stretcher, Large, 226.8×155.1×3.5cm. 오른쪽은 ‘Doctor. 2’, 2015, Vinyl on wooden stretcher, Large, 225.7×144.5×3.5cm.

그 너머로 ‘서울에서 부산(From Seoul to Busan)’이 보인다. 우리에게 성이라는 모티브는 이질적이며 이국적이다. 한국적이지 않은 풍경 너머 곧바로 익숙한 ‘서울에서 부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런 드라마틱한 배치가 시선을 차단하고 열어줌으로써 일종의 스토리를 제공한다.
일단 ‘중세 마을’은 작년 여름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다. 프랑스의 성과 타워를 보면서 그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공간에 성을 짓는 건 내겐 큰 모험이었다. 한국에는 이런 중세풍의 성이 없고, 또 있다 하더라도 이런 모양의 성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이 모티브 덕분에 관객들은 자신과 비슷한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이국적인 감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서울에서 부산’ 작품이 눈에 띌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오늘에야, 이 신기한 성을 통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온전히 내 것을 창조한다기보다 이 세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 나뿐 아니라 동시대 사람이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내겐 그게 바로 오피이즘이다.”

‘서울에서 부산’을 전시장의 맨 끝에 걸어둔 데도 특별한 의도가 있나?
이쯤 오면 관객들이 피로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미 정원도, 초상화도 본 상태라, 또 비슷한 작품을 둔다면 반복된다고, 충분히 봤다고 느끼지 않을까. 그래서 빠르고 경쾌한 느낌의 작품을 배치하고 싶었다. 나는 무엇이든 컨트롤하는 사람이다.(웃음) 방금 리셉션장에 둔 꽃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계획하지 않은 것들이 전시장에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조명이나 작품이 걸린 높이, 라벨까지, 모든 걸 나만의 체계로 설계하는 건 작고 사소한 요소가 전시의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그런 점이 스튜디오에 있는 12명 정도의 식구들은 물론 많은 이들을 미치게 만들 거라는 것도 안다.(웃음) 하지만 작품도, 전시도, 타협하는 순간 흠이 된다.

전시장 입구에 걸린 천으로 된 다양한 얼굴 작업이 ‘줄리언 오피의 세계’임을 공표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인 동시에 개별적이다. 한국 사람이건, 영국 사람이건 상관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은 이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작품 속 사람들의 존재를 어떻게 설정하고자 했나?
몇 년 전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적 있다. 당시 서울에서 한국 사람을 담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바로 이 두 작품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여자와 한국의 전형적인 남자 직장인의 모습. 그때 나는 사진가를 고용하여 신사동을 비롯한 곳곳에서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열릴 전시에서 한국 사람을 담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 합당한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같은 아이디어를 인도의 뭄바이, 뉴욕, 호주에서도 실현해봤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지역에서 그 지역 사람들을 보여주는 건 관람객들에게 최소한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라 믿는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평범한 동시에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평범함이라는 개념을 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전시회를 연 후 지금까지, 당신의 작업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골드스미스 졸업 직후 23세에 전시를 열었는데, 1983년 즈음은 영국의 모든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던 시기였다.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가 오래 지속된 후, 젊은 예술이 막 태동하기 시작했다. 보다 유머러스하고 다채로운 직설 화법을 만난 사람들은 매우 흥분했고, 이들의 호응은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33세에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즈음 아까 당신과 인사한 나의 첫딸이 태어났다. 알겠지만, 아이들이 생기면 인생도 바뀐다. 그 전시를 하면서 내 작품을 새롭게 이해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고, 더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 가느다란 선에만 의존하지 않고, 작품의 영역이 확장되었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지금도 나는 뭔가를 기억해야 하거나 특정 공간을 볼 때, 선으로 인식하려고 한다. 세상을 읽는 나만의 방식이다.

F1963 입구 외관에 설치된 LED 작품. ‘Imogen Walking’, 2016, LED double sided monolith, Unique, 210×120×30cm.

당신의 작품은 얼마나 세상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유일한 목표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인 양. 그러나 다른 지점에서 보면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보는 세상의 이면을 인식하게 하기도 한다.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어떤 것에 더 동의하나?
나는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작품을 나를 위해 혹은 나를 대신해서 놀 수 있는 무언가로 접근하는 편이다. 이것이 내 삶의 방식이자 세상에 흥미를 가지고 관여하는 방법이다. 어떤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더 찾아보고, 더 관찰하고 싶다. 메시지를 담는 건 내겐 복잡하고 정치적인 일이라, 의견이라 할 만한 것도 없지만 오히려 어떤 의견을 갖는 걸 기피하고자 한다. 단지 나는 세상을 볼 때 흥미롭다고 느낀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그걸 그리거나, 운 좋게 구매하는 식으로 기억에 담아둔다. 음식을 보고 식욕을 느끼는 것처럼, 저녁 분홍빛 하늘에 노란 선 형태의 비행운을 남기며 태양을 쫓는 비행기 같은 무언가를 본다면 어딘가에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즉각적으로 먼저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기차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 ‘Seoul to Busan’, 2018, Ink on polyester, Large, 200×100cm(each).

엄청난 호기심과 관찰이 세상을 바꾸는 데 어떤 식으로든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언가가 흥미를 돋우거나 재미있게 느껴지는 현상 자체를 좋아한다. 우리는 매일 다양한 시간대에 런던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관찰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봤다. 어떻게 저런 비행운을 남기는지, 어떨 때 비행운이 크거나 작은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었다. 물론 나는 비행기 전문가가 아니다. 하늘에 남은 비행운이 회화나 지퍼를 연상시킨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울 뿐이다.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했던 생각, 비행기 두 대가 엑스(X) 자 모양을 남길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등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누군가가 굉장히 재미있는 걸 봤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바로 반응하지 않나. 그가 아티스트라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 셈이다.

동의한다. 당신의 작품은 의미를 고민하기 전에 이미지가 나의 뇌에 어떻게 각인되고, 해석되고, 느껴지는지 그 시스템 자체를 궁금하게 만든다. 본다는 것, 인지한다는 것, 상상한다는 것 같은, 예술 작품 앞에서 인간이 실행할 수 있는 근본적인 프로세스 말이다.
우리가 의논한 것도 바로 그거였다. 세상에 있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 경험하거나 인상을 받아 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과정… 레고와도 같다. 어떤 물질이나 사물을 보고 관찰하여 느낀 점, 생각한 것을 구조화하여 시스템으로 변환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옛날 사람들이 흔적을 남기기 위해,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다는 걸 떠올려보면, 그런 과정은 인간이 만들어낸 굉장한 집착의 결과물이다. 나도 늘 풍부한 가능성으로 나 자신을 설정하고자 하고, 모자이크, 배너, LED는 그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용한 팔레트다.

왼쪽 작품은 ‘Beach Head. 4’. 2017, Paint on overlaid aluminium panel, Large, 190×156cm. 오른쪽 작품은 ‘Beach Head. 5’, 2017, Paint on overlaid aluminium panel, Large, 190×156cm.

런던 스튜디오에 작업 공간 이외에도 갤러리처럼 꾸민 공간이 있다고 들었다.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이 어떤 영향을 주나?
예술적인 것을 늘 감지하고자 한다. 실제로 내 작품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 대부분을 다른 작품을 구입하는 데 사용할 정도다. 나는 내가 ‘찾아낸’ 예술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좋다. 요즘엔 아침마다 이집트의 인물이 새겨진 돌을 본다. 이 역사적 유물이 내게는 굉장히 동시대 예술처럼 다가온다. 인간이 시각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느끼고, 의사소통해 왔다는 사실에 큰 자극을 받는다. 수백만 년전의 호모 엘렉투스(Homo erectus)가 돌도끼를 만지면서 흔한 돌로 유용한 도구를 만들었을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면 매우 ‘인간적인’ 결과물임은 분명하다. 나는 책상 위에 도끼를 두고는, 현대에서 어쩌면 가장 멀리 떨어진 그시대를 떠올리며 작업한다, 즐겁게.

이번에도 느끼는 바이지만, 당신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매우 실험적이다. 조각에 페인팅을 더해 회화처럼 보이고, 회화에 영상 기법을 가미하기도 하며, 영상이 그림처럼 느껴진다.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자격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작품 간의 경계도 없애고자 하는 건가?
맞다. 일종의 속임수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짜 속임수는 현실에서 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당신은 상상의 혹은 정신적 문학 세계, 즉 언어 혹은 의사소통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현실 세계에 있을때라야 비로소 흥미진진할 수 있다. 내게 삶이란 그런 것이다. 엄연한 현실 가운데, 이야기, 읽는 행위, 감정과 같은 무형의 것이 함께 존재하는 것. 사진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면, 더이상 이건 단순한 플라스틱이 아니게 된다. 나무조각에 제목을 붙이면, 또 다른 현실이 생겨난다. 따라서 어떤 작품을 볼 때, 우리는 다양한 현실을 대면하게 된다. 나무 위의 플라스틱과 거리를 걸어가는 여성들, 그리고 깊이와 색상의 감각까지 세 가지 다른 현실. 노래를 만들 때처럼,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다양한 ‘현실’을 섞어서 앞으로 밀거나 뒤로 뺄 수 있다. 내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변화에 대한 감각이다.

유리 건물인 전시장 전면을 장식한 스티커 작업 ‘걷는 사람’. 지구상 어디에서도 대규모 작업이 가능한 그만의 방법이다.

좀더 쉬운 예를 들어준다면?
도로의 신호등을 보면 횡단보도에 대한 정보인 동시에 이야기 혹은 시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느낌을 작업에 차용한다. 2D와 3D로 변환하는 건 마법을 일으키는 매우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입체적인 형태를 취해 평면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 물론 그건 가짜다. 3차원이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3차원이다. 눈이나 두뇌가 착각하도록 하는 모순적인 레이어들이 겹쳐져 있는 것이다. 두뇌와 눈과 기억에 얽힌 프로세스는 예술가가 개입할 수 있는 최고의 분야다.

작가만의 언어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던 걸 인식하는 순간이 있을것 같다. 지금과 같은 방식을 발견한 건 언제였나?
지금 내 작품은 17세 때 내가 그린 작품과 많이 다르지 않다. 부모님 집 벽에 그린 그림을 보면, 10대 때부터 프로젝트를 해왔구나 싶다. 더 어릴 땐 만화 <틴틴의 모험>을 특히 좋아했다. 원작자 에르제도 우타가와 히로시게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아마 그 일본 작가들은 거꾸로 서양미술을 보면서 배웠을 것이다. 드로잉의 역사는 매우 길다. 최근에는 북아프리카의 동굴벽화를 발견했는데, 사냥이나 달리기를 하는 역동적인 인물들이 아주 친숙하게 다가왔다.

최근에 몰두하는 새로운 이미지나 개념 혹은 기술은 무엇인가?
나는 끊임없이 작업한다. 여전히 도시의 사람을 관찰하는 일은 즐겁고, 새로운 게 탄생하는 게 아니라 더해지는 식이다. 가령 ‘중세 마을’은 최신작인 동시에 가장 오래된 작업이다. 1990년대에 건물을 많이 지었지만 미뤄두었다가, 5년 전 어느 전시를 통해 부활시켰다. 최근에는 서로 다른 기술, 즉 영상을 그림과 연결, 하나의 프레임에 넣어 동적인 효과와 정적인 효과를 대비시키는 식의 작업을 하고 있다. 이때 영상, 그림, 사운드, 세 가지 요소는 반드시 지루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각의 작품이 독자적으로 기능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루하면,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함께 완전해질 수 있다. 시계도, 비행시간에 대한 정보도, 광고도 포함된 공항 전광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겠다. 한 상자에서 다른 언어와 정보가 제각각 움직인다. 지난 3년 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초상화도 공항 전광판 스타일로 만들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오피이즘’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작가로서 이 단어를 어떻게 생각하나?
나의 성 오피는 프랑스어로 ‘검(Épée)’이라는 뜻이다.(웃음) 어쩌면 다른 ‘오피’들도 ‘오피이즘’에 어느 정도 권한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18세기에는 또 다른 오피가 있었다. 화가였던 존 오피. 어둡고 지루해 개인적으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유명했다. 요즘 바르셀로나의 어느 학교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 내 시스템을 활용해 초상화를 만드는 식이다. 나는 온전히 내 것을 창조한다기보다는 이 세계에서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그런 면에서 이는 전 세계적인 시스템이자 대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인 셈이다. 나뿐 아니라 누구나 접근 가능한, 내겐 그게 바로 오피이즘이다.

예술이 세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고 싶나?
당신의 마음이, 눈이 그림자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빛과 당신이 없다면 그림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을 그림으로 그리는 내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석의 한 방식이다. 어느 날, 우리 집 욕실에서 두 개의 구멍이 난 돌을 발견하고는 바바파파(Barbapapa)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아내가 물었다. “화장실에 있는 남자 봤어?” 우리는 같은 사람을 본 것이다. 실제 그림이 아니어도 보는 행위를 통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벽에 비춰진 실루엣을 그리고 오리는 건, 딱히 예술적이진 않지만 오랫동안 사랑받은 기술이자 자동화된 시스템이다. 이렇게 인간은 현실을 상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이것이 우리가 기능하는 방식, 즉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세상을 읽는다는 건 눈이 아니라 머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 그것이 왜 예술이 중요한가에 대한 답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동물들도 뜨거운 걸 어떻게 피해가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었던 건 명백히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어릴 때와 달리 어른이 되면 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걸까?
슬프지만, 그림을 그리며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그림들이 항상 더 좋아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