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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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멀미

2018-06-18T10:49:28+00:00 2018.06.19|

멀미가 나서 VR을 벗어 던지고 드러누운 적 있나. 가상 세계가 현실을 잠식하는 때에 멀미만 그건 가짜라고 외친다. 멀미는 기술적, 산업적, 철학적 과제다.

새롭고 놀라운 VR 장비가 갑자기 쏟아지던 몇 년 전, 나 역시 붐에 휩쓸렸다. 생전 안 해본 해외 직구의 세계로 편입해가며 받아 든 오큘러스 리프트. 레이싱 휠(운전 게임을 위한 자동차 핸들형 컨트롤러)과 VR을 결합한 자동차 게임이기에 후진할 때 고개를 뒤로 돌려야 한다는 말에 혹했다. 오, 세상에, 정말 그랬다. 나는 게임 트럭을 몰며 사이드미러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야 하는 세계에 경악했다.

하지만 경악이 고통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게임 속 내 트럭이 독일 어딘가의 과속방지턱을 밟는 순간, 갑자기 훅 멀미가 밀려왔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VR 기기의 화면은 덜컹댔지만 내 몸은 앉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극심한 두통과 구토감으로 1시간을 뒹군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VR은 고개를 돌리는 대로 화면을 보여주는 놀라운 시각 경험을 제공하지만 멀미라는 진입 장벽을 넘지 못했다. 수년간 해군 생활로 ‘멀미 면역력 보유자’임을 자신한 친구도 VR을 쓰고 20분을 넘기지 못했다. 엎드려 수 시간 고통을 호소했다. 새로운 멀미의 탄생이었다. 단지 기기의 문제가 아니라, 가상 세계라는 낯선 공간이 열리려는 시점에서 멀미는 피해갈 수 없는 기술적, 산업적, 철학적 과제가 되었다.

멀미에 관한 기록은 고대까지 거슬러간다. 서양 의술의 원조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에도 선원들의 멀미 기록이 존재하고, 중국의 옛 의료 기록에서는 수레 탑승자의 멀미와 뱃멀미를 병의 일종으로 언급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장면은 수전에 익숙지 않은 위나라 병사들이 멀미 방지를 위해 배를 다 엮었다가 맞이하는 화공의 참극이 드러난다.

멀미 치료를 위해 어린이의 소변(!)을 마시거나 야생 허브 향을 맡는 등의 전근대적 치료 시대를 지나, 현대 과학에서는 멀미를 감각의 불일치에 의한 현상으로 정의한다. 1975년 영국의 제임스 리즌이 정립한 감각 불일치 이론은 우리 몸의 균형을 체크하는 속귀의 전정기관과 시각이 서로 다른 균형 정보를 제공할 때 발생하는 정보 충돌 현상으로 멀미를 설명한다.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받았는데 소리와 영상이 싱크가 맞지 않는 것과 같은 불편함을 신체는 매우 위중한 오류로 받아들여 위험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멀미가 비슷한 환경에서 발생한다. 뱃멀미, 차멀미, 3D 게임을 신나게 한 뒤에 찾아오는 멀미와 VR을 체험하면서 겪는 멀미 모두 시각 정보가 몸의 균형 상태와 불일치할 때 터져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상 현대사회의 기술 매체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감각은 시각이라는 점이다. 현대사회의 정보 기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들어온 역사이기도 하다. 뢴트겐의 엑스선 기술과 허블 우주 망원경처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문자, 그림, 사진, 영상 등 문명이 밟아온 길은 모두 시각화의 역사였다. 눈으로 보여야만 믿는 세상.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잡지를 포함해 텔레비전, 유튜브, 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모두 시각 정보를 딛고 현대 문명의 한 축을 이룬다.

시각 정보가 세계를 뒤덮는 과정에서 멀미는 숨은 구석에서 함께해왔다. 영상학자들은 최초의 시각적 스펙터클로 매체가 아닌 열차를 지목한다. 인간은 기차 안에서 네모난 차창을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환경을 보며 처음으로 스펙터클한 시각 정보를 맛보았다. 기차의 등장은 이동의 개념을 바꿔버렸을 뿐 아니라 탑승자에게 멀미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현대에 와선 가상 정보를 진짜처럼 보여주는 영상으로 인해 멀미가 본격적으로 튀어나온다. 영화의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 1인칭 시점의 디지털 게임, 그리고 VR에 이르는 이들 영상의 시점은 끊임없이 전정기관의 감각과 어긋나며 이용자를 변기 앞에 쓰러뜨렸다.

탈것에서 시각 매체로 이어지는 멀미의 흐름을 ‘한 큐’에 꿰뚫는 학자가있다.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속도를 다루는 이른바 ‘질주학’의 창시자다. 속도의 관점으로 현대 문명을 해석하는 비릴리오의 시도는 기술 매체에 의해 뒤바뀌는 현대인의 일상을 통찰하게 한다.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심지어 인터넷을 통해 그 사건에 개입할 수 있게 한다. 이들 기술의 발달은 인류로 하여금 공간이 아닌 시간 차원에서의 삶을 살도록 유도했다고 비릴리오는 평가한다.

비릴리오의 속도 개념을 빌려온다면, 우리는 시각 과잉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멀미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다. 현대 기술은 끊임없이 인간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신체의 한계를 넘고자 한다. 스마트폰은 뇌를 대신해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각종 탈것은 인간의 다리를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불가능한 속도의 이동을 가능케 했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성공 여부를 두고 내기하던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가 되었다. 그러나 빠르게 가속하는 시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완벽하게 편입시키진 못했다. 생물학적 근본을 버리지 못한 우리의 신체는 과속하는 현대 미디어 속을 헤엄치며 끊임없이 멀미를 호소한다. VR은 인간을 ‘속여’ 완벽한 가상 세계 진입을 꿈꾸었지만, 멀미는 그것이 결국 시각적 착시일 뿐이라 말하며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어지러운 머리 안에서 ㄴ계속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지 않는가!”

다만 멀미 연구에서 항상 따라붙는 대전제를 상기하자. 멀미는 결국 적응의 문제라는 것이다. 뱃멀미부터 VR 멀미까지 결국 멀미는 적응하면서 점차 줄어든다는 것까지 밝혀졌다. 이는 두 가지 노력 덕분이다. 하나는 멀미를 줄이기 위해 철도의 진동을 줄이고 VR의 움직임을 최대한 인체와 맞추려는 기술적 시도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신체의 변화다. 기술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의 저서 <네 번째 불연속>은 발전하는 기술만큼이나 인간 또한 그 변화에 적응해간다고 말한다. 나는 어지럼증에 VR 기기를 벗어놓고 드러누워 생각했다. 이 기기가 멀미를 넘어 성공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새롭게 뒤바뀌는 기술 매체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