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식당 단명 시대

2018.06.18

by VOGUE

    식당 단명 시대

    식당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식당이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동안 거리에는 신상 맛집과 노포만 남았다. 모두가 얘기하듯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일까. 10년 동안 외식업계에 종사해온 월향 이여영 대표가 좀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내왔다.

    자영업자는 기형적으로 많고 내수 불황이 고착되는 상황에서 웬만한 식당이 3년 안에 문을 닫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잘되는 식당도 대부분 5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월향>도 홍대와 이태원, 가로수길 등지의 이른바 대박 점포는 대부분 닫았다. 대신 광화문과 송도 등의 신흥 상권으로 옮겨갔다. 원주민 구축(驅逐)이나 임대료 상승 현상과 관계 깊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다.

    상가 임대차 보호 기간이 끝나면 거액의 불로소득을 노리는 건물주의 욕심이 낳는 이 외식업계의 악순환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나 이태원, 가로수길 같은 유명 상권의 수명 주기 역시 급속도로 짧아지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대기업 계열 플래그십 스토어만 즐비한 곳에서 발길을 돌리는 젊은이들이 늘어서다. 하지만 건물주들이 자신들의 과욕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실감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신촌이 몰락한 것처럼, 자신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만 골라가며 배를 가르고 있다는 인식을 하는 데는 한 세대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식당이라는 자영업의 정의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 ‘5년 동안 부지런히 벌어서 초기 투자금까지 뽑고도 약간 남겨야 하는 업종.’

    얼마 전 소셜 미디어에서 인생 맛집이라고 하도 자주 거론되길래 굳이 망원동 돈가스집을 찾았다. 비주얼은 확실히 돋보였다. 맛이나 품질은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럼 어떠랴. 현재 트렌디한 식당의 키워드는 딱 하나, 인스타그램을 할 만하느냐(Instagram-worthy)다. 거의 모든 식당이 인스타의 항공샷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다. 조명은 따뜻해지고 테이블은 협소해지고 있다. 맛이나 품질은 뒷전이다. 레스토랑은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아예 인스타에 올릴 수 없다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밀레니엄 세대다. 외식업 종사자로서 의무처럼 해야 하는 새로운 식당 순례가 점점 더 고역이 돼가고 있다.

    물론 아직 맛집이나 ‘노포’가 존재한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이런 점포는 다른 이유로 잘못되고 있다. 숱한 방송이 먹방과 미식 기행을 끊임없이 선보이면서 이들을 쉼 없이 대중에 각인시킨 탓이다. 기존 오랜 단골 고객에, 소셜 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려는 젊은 세대들까지 가세했다. 이런 맛집이나 노포는 손님으로 미어터진다. 방송 직후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뤄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물론 방송사 간 경쟁으로 전보다 맛집 선정 기준이 엄격해지기는 했다. 노골적인 뒷거래도 줄었다.

    하지만 미디어가 주목할 만한 맛집이나 노포라는 게 지역적으로 지극히 한정돼 있다. 극소수의 식당만 집중적으로 홍보해주는 꼴이다. 더욱이 미디어에서 요리사로 등장하는 방송인 지망생과 외식 경영자로 분한 장사꾼들은 별것 아닌 맛의 차이를 극적으로 부풀린다. 그래야 자신이 맛이나 요리에 지식이나 경험이 많다는 것을 과시할 수 있기에. 결과는 식당 양극화다. 그것도 점점 더 가속화되는 양극화다. 이미 잘되는 곳은 고객이 발에 치이고 안 되는 곳은 아예 고객들이 발길을 끊는다.

    젊은 세대들이 인스타 맛집에 열광하는 동안 구매력 높은 중년 남성 고객들은 자신들의 입맛을 식당 평가의 기준으로 등극시켰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 먹방이나 미식 기행의 주역이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젊은 세대 중 일부도 미식 지식이나 경험을 과시하기 위해 여기에 동조하고 나섰다. 미식가의 자격이 마치 진정한 평양냉면 맛을 아느냐가 관건인 것처럼 알려진 것이 좋은 예다. 힘 있는 영화 평론가가 영화 애호가들에게 프랑스 예술영화만 진짜 영화고 할리우드 영화는 쓰레기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외식업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미 공공연하다.

    이들이 깊은 맛이라고 주장하는 감각도 상당 부분은 착각이다. 대개 들큼한 맛으로 대표되는 그 맛은 넉넉히 넣은 MSG의 산물이다. MSG 자체의 유해성이 과장됐듯 맛집이나 노포의 깊은 맛이라는 것 또한 과장됐다. 그들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이나 노포가 이미 대중과 시장의 검증을 받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배곯던 시절의 맛과 영양 과다 상태에서 느끼는 미식에 대한 기준이 같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역사와 전통이라는 게 어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열정적으로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신흥 세력에게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저염식에 대한 수요만 해도 그렇다. 최근 식당에서는 소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아니, 쓸 수가 없다. 약간이라도 짜면 중년 고객이 호통을 치거나 음식을 물리기 일쑤다. 정작 그들도 우리보다 훨씬 짠맛을 고수하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현지 음식에 대해서는 군소리 없이 받아들인다. 건강에 좋은 지중해 식단이라며. 이 또한 성인병에 대한 우려가 부른 중년 고객의 불평일 뿐 맛의 본질적 기준은 아니다. 그저 우리 사회의 식당이나 맛에 대한 검증 기준이 ‘아재화’됐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파인다이닝은 비극을 맞이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외식업 상위 10% 이내에 속하고, 소비자의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커지는 파인다이닝 신은 미스매치의 전형이다. 우선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최고급 레스토랑 하나쯤 갖고 싶은 외식 경영자와 부잣집 마나님, 여기에 미식 선진국 파인다이닝에서 공부하거나 훈련하고 돌아온 셰프들이 가세했다.

    반면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와인까지 곁들여가면서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고객은 국내에 극히 제한돼 있다. 재벌 일가와 법인 카드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기업 경영자들과 전문직 종사자, 극소수의 연예인들이다.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런 부류들은 레스토랑처럼 남들 눈에 많이 띄는 곳을 태생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럴 바에야 유명한 셰프를 집으로 불러 요리하게 하거나 거의 멤버십이라고 할 전용 레스토랑을 창업해버리고 만다. 자신들만의 리그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이들에게는 호텔과 룸살롱이 있다. 한마디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공급 과잉에 수요 부족이다.

    그럼에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줄기는커녕 줄지어 들어서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외파 셰프와 돈을 대는 쪽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다. 전주(錢主)는 돈이 크게 안 되더라도 자신의 부나 지위를 즐기기 위해 이런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마치 프로야구 선수의 FA 계약처럼, 이름난 셰프들에게 터무니없는 계약금과 투자금, 보수를 지불한다. 셰프는 유명세를 얻어 이들에게 발탁되기 위해서라도 주방이 아니라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다른 분야처럼 외식업 역시 한국 사회의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가 응축된 구조다. 그런데도 나는 후배들에게 이 분야로 도전할 것을 독려한다. 외식업이 아직은 정직한 승부가 가능한 몇 안 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아직 새로운 도전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 강고한 기득권이 물샐틈없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파이가 너무 작거나 돈이 별로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더욱이 외식업은 인구통계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르더라도 미래가 유망하다. 1인 가구의 증가나 고령화로 일본에서처럼 각 가정의 주방에서 도마나 칼이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요리를 할 수 없거나 그것이 오히려 비경제적인 사람들은 식당을 찾을 수밖에 없다. 늘 포화 상태로 보여온 외식업은 아직도 성장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중저가의 대중 식당과 중상위층의 외식 수요를 겨냥한 고가 레스토랑으로 완전히 양분되기는 하겠지만.

    외식업은 여전히 손대볼 만한 곳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박’의 꿈은 요원하지만 죽도록 애쓰면 어찌어찌 ‘쪽박’은 면할 수 있는 분야다. 대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지라든가 외식업이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정도의 숙고는 거친 후 뛰어들어라.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글쓴이
      이여영((주)월향 대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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