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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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여자들

2018-06-18T11:24:50+00:00 2018.06.21|

문제에 봉착할 때면 비슷한 고민을 하던 생면부지 여자들의 생각을 탐독했다. 그 어떤 비상 약보다 탁월했다.

취재차 방문한 콘서트홀 기념품 숍에서 라는 책을 발견했다. 페미니스트 성인이라니! 저자이자 <뉴요커> <가디언> 등에 글을 쓰는 작가 줄리아 피어폰트(Julia Pierpont)가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 역할을 거부한 여자들 100여 명을 모아 소개한 책이었다. 초상화가 연상되는 일러스트도 함께 실려 있었는데 프리다 칼로, 구사마 야요이, 버지니아 울프 등 익숙한 얼굴 뒤에는 경의를 표하듯 후광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책을 들고 바로 계산대로 갔다.

줄리아 피어폰트에게 100명의 여자들이 있듯 나에게도 빛을 빌려서라도 후광을 비추고 싶은 여자들이 몇몇 있다. 인생의 특정 시기, 떨쳐내려 아무리 애를 써도 끈질기게 달라붙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기댈 구석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라는 믿음과 나보다 먼저 이 시기를 살았을 여자들이었다. 고맙게도 이들은 쏟아내듯 자신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겼고, 나는 폭식하듯 그녀들의 인생을 뒤적거렸다. 그녀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그녀들이 살면서 내린 결정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내 삶에 보탬이 될 작은 힌트라도 얻고자 분주했다.

목수정을 처음 알게 된 건, 지금 봐도 통렬한 제목의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으로부터였다. 서른 살에 파리로 떠나 예술가 희완 트호뫼흐를 만나 아이를 낳고 혼인이 아닌 시민연대계약을 한 사람. 문화 정책을 공부하고 이를 현실로 펼치고자 정당 활동을 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글을 쏟아내는 사람. 프랑스와 한국, 결혼과 비혼, 운동권과 제도권, 예술과 문화 사이에 놓인 수많은 경계를 넘나드는 그녀의 생각을 읽으며 마치 불온서적이라도 읽는 듯 짜릿했다. 전 인류가 주입해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써 내려간 강인한 문장, 현실을 구축하는 힘의 핵심은 연대라고 믿으며 행한 구체적인 행동. 무엇보다 목수정은 사회의 변화 촉구를 열렬히 삶의 중심에 두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음껏 누렸다. 책 중간중간 실린 그녀의 사진은 ‘자유’라는 제목의 연작 사진전 같았다. 일, 사랑, 결혼, 출산은 행복이라는 감정과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내게 프랑스 부르고뉴 시골집에서 젖을 먹이며 온화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함께 원하면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합니다”라는 슬로건을 턱받이에 새기고 목수정과 함께 시위 현장에 서 있는 딸아이의 사진은 어른과 아이는 같은 시간을 공유할지라도 완벽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믿음도 깨뜨렸다. 머리는 자유를 갈망하는데 저주에라도 걸린 듯 옴짝달싹할 수 없던 시절 목수정의 삶을 보며 나는 관습과 타인의 시선에서 두어 걸음 자유로워졌다.

캐시 하나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여러 잡지에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기고하는 작가라는 사실뿐이다. 한국에 번역된 책도 이미 절판된 <그래, 난 못된 여자다> 한 권뿐이다. 서문을 잠시 옮겨보겠다. “이 책을 낳은 것은 ‘화’다. 나는 남편과 네 살, 두 살 두 아이와 이사한 참이었다… 잠을 깨우는 고양이에게 분노하고, 시동을 걸려다 기름이 떨어진 차에 분노하고, 발에 걸리적거리는 장난감에 분노했다…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낑낑거리고 있는데 자기 일 끝내고 ‘뉴욕 타임스’나 뒤적거리고 있는 남편에게, 늘 나만 스트레스 받고 미친년 같아서 그에게 분노했다.” 내 일기장을 읽은 듯했다. 캐시 하나워는 일과 결혼과 아이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야심 있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 있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며 스트레스에 지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26명의 여자들로부터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느낀 분노에 관한 글을 받아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결혼 후 대한민국 땅에서 분노 조절 장애를 의심하던 내 손에까지 들어왔으며 비로소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다.

결혼, 일, 아이, 섹스 등에 있어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쌓이는 화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었고, 나는 처음으로 ‘연대’의 감정을 느꼈다. 비슷한 시기, 엘리자베스 워첼은 가운뎃손가락을 들고 ‘어쩌라고?’ 하고 말하는 듯한 사진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녀 스스로 표지에 등장한 책 <비치: 음탕한 계집>에는 역사적으로 ‘비치’로 불린 여자들의 인생과 문화 사회 현상에 대한 통찰이 가득했다. 600페이지에 걸쳐 끊임없이 조롱하고 날카롭게 비꼬는 말투는 누군가를 분명 불편하게 했을 것이고 나에게는 그 점이 정말이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분명하고도 굳건하게 아는 건 분명 지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의 영역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그 기술이고 말이다. 그녀는 우리의 부끄러움 없는 솔직함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었다. 변호사로 일하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페미니즘에 관해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을 그녀는 한때 우울증 때문에 약물 중독에 빠지기도 했지만 자신을 짓누르는 원한과 분노에 한순간도 순응한 적 없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백만스물아홉’ 번씩 임신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 때 탐독한 여자는 주디스 워너다. 헌책방에서 제목에 매료되어 그녀의 저서 <엄마는 미친 짓이다>를 집어 들었다. 이 책에는 그녀가 행한 엄마 ‘노릇’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가 담겨 있었다. 주디스 워너는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사회는 성인 여성으로서 엄마가 필요로 하는 욕구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무감각한가. 왜 이 세상은 모든 육아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가. 모성을 종교로 만들어버린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비로소 ‘휩쓸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차분하게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여성과 아동에 대해 통찰력 있는 글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라디오도 진행하던 그녀가 언젠가 새로운 책을 내주길 기다리고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아마도 만인의 사랑의 대상일 것이다. 독립적인 주체로서 여성의 삶에 대해 그녀만큼 근원적으로 고민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사회에서 통용하는 ‘여성’이라는 개념을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한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차별, 가정 폭력, 낙태 등 근원적으로 비합리적인 문제를 향해 싸우는 시위 현장에는 어김없이 달려나갔다. 1971년 343명의 여성과 함께 “프랑스에서 매년 백만 명의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는다”고 낭독한 선언문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움직임은 몇 년 뒤 낙태 합법화 과정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경험과 행동, 느낌과 말에는 이율배반이 없었다. 그녀는 완벽하게 동등한 관계를 이룬 세기의 커플이기도 했다. 신뢰 있는 공동생활을 위해 연인 장폴 샤를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을 했고, 물리적으로도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각자 호텔 방에 묵었다. 각자 자유롭게 연애했지만 끊임없이 자유, 실존의 문제, 페미니즘 등에 대해 토론하며 사상을 교류하고 발전시켜나갔다. 한때 이 커플의 이상적인 자유로움에 반해 계약서를 작성한 커플의 숫자는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남을 것이다.

요즘 나는 서점가에서 불고 있는 페미니즘 유행 덕분에 몇 권째 연속해서 출간되고 있는 나혜석의 글을 읽는다.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고 싶을 때는 록산 게이의 책을 집어 든다. 자신감이 한없이 떨어지는 날이면 “내려놓고 나니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던 송은이의 말을 떠올린다. 미투 운동 같은 사회적 이슈가 떠오르면 목수정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녀의 생각을 읽고 꼼꼼히 곱씹는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목구멍이 까칠까칠하게 타들어가는 날이면 일단 나는 그녀들에게로 간다. 눈부시게 도발적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과 용기를 가진 여자들은 기꺼이 내면의 깊숙한 이야기를 꺼내준다. 이들이 없었다면 내 세상은 분명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