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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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유감

2018-07-15T17:12:28+00:00 2018.07.18|

요즘 베스트셀러는 몇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SNS, 인플루언서, 힐링과 위로, 짧은 텍스트, 예쁜 책. 잘 팔리는 책이 훌륭한 책은 아니지만, 요즘은 더욱 의문이다.

20여 년간 여행 작가로 활동 중이지만 여행서는 한 권도 내지 않는 선배와 술을 마셨다. “혹시 그 베스트셀러 봤어요? 초딩 일기장도 아니고.” 나는 수주째 베스트셀러 10위권에 랭크된 어느 인플루언서의 책을 꺼냈다. 선배는 더 불콰해졌다. 미디어 활동도 하며 팬층이 두꺼운 데다 맛집 베스트셀러도 냈지만, 여행은 매우 사랑해서 출판을 20년째 고심 중인 선배였다. “언제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었냐마는 요즘은 심하지 않니?” 우리는 베스트셀러 키워드를 SNS, 인플루언서, 힐링, 위로, 짧은 텍스트, 간지럽히기로 꼽았다. SNS에서도 용납하기 힘든 글을 써놓고 ‘창작의 고통’을 얘기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허망할 지경이었다. 왜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논의하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인정했다. 잘생겼다. 인플루언서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내용이다(이별하면 아프다, 배고프면 밥 먹는다).’ 출판사 편집자인 친구도 말했다. “출판계가 전성기인 적은 없지만 요즘은 진짜 붕괴된 것 같아. 저자가 잘생겨야 한다니까.”

우리도 이런데, 영감은 엉덩이 붙인 자에게 찾아온다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는 어떨까. 그는 오히려 갸우뚱했다. “그걸 왜 신경 써요? 어차피 세상에는 다양한 계층이 있고,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이 있잖아요. 제 책도 ‘순수문학 최고’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가볍고 내용 없다고 비판받는걸요.” 나의 여행서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는 여행 분야 판매 20위권을 목전에 두고 좌절한 적 있다. 난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루저인가…

남미 여행 후에 책을 출판하려고 상상출판에 갔다. 유철상 대표는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를 물었다. 500명이었다. 실망한 눈치였다. “SNS 스타들이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거의 100%예요. 보통 SNS 스타라면 팔로워가 7만 명 이상인데, 10만 명을 넘기면 더 확실해지죠. 여기에 출판사가 온라인 서점, 페이스북, 오프라인 서점 등에 광고를 단기간 집중하면 효과가 극대화돼요.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의 작가 청춘유리는 팔로워 6만 명일 때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팔로워가 13만 명으로 늘었죠. 2월 출간한 <하루하루 교토>의 작가 주아현 씨도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 1등을 한 뒤 팔로워가 두 배인 14만 명으로 늘었어요. 물론 그런 베스트셀러는 점유 기간이 두 달을 넘기지 않지만요.” 유 대표는 ‘키워드 마케팅’이라 덧붙였다. “SNS에서 영향력이 생긴 작가를 발굴해 위로·힐링·처세 등의 키워드 마케팅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해요. 일명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죠. 한강이나 김용택 작가처럼 텍스트와 작품의 힘보다는 확실히 만들어지는 베스트셀러가 많습니다.”

SNS는 출판에서도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 <언어의 온도>와 같이 SNS에서 팬덤을 거느린 작가들이 대표적 예다.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의 염경원 기자도 동의한다. “한 해 출간하는 책이 8만 권이에요. 책의 홍수에서 책의 존재를 알리는 ‘발견성’이 출판계의 화두죠. 발견성을 끌어올릴 큰 무대가 SNS예요.” 출판사 사월의책의 안희곤 대표도 동의한다. “대부분의 책은 나빠서가 아니라 ‘발견’이 안되어서 안 팔립니다. 요즘은 ‘미디어셀러’라 하죠. 미디어가 만든 베스트셀러라는 뜻입니다. 미디어는 신문·방송뿐 아니라 SNS·팟캐스트까지 포함해요.” 성인이 책을 선택할 때 이용하는 정보 1위는 서점·도서관에서 책을 직접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특히 19~29세)일수록 SNS를 통해 책 정보를 수집하는 비율이 높았다.(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SNS를 통한 ‘발견성’ 말고도, 요즘 세대의 ‘SNS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출판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이미지다. 표지 디자인은 책 판매에 중요 요소긴 하지만, 특히 요즘엔 사진을 찍어 북스타그램으로 공유할만큼 예뻐야 한다. 어느 인디 매거진의 편집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내용은 보지 않는 거 같아요. 표지가 예쁜 호가 잘 팔리더라고요.” 염경원 기자는 “독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을 소비하고 즐긴다면 반갑지 않나요?”라고 반문한다. “책의 물성은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좋은 인테리어 수단 혹은 튼튼한 냄비 받침이 될 수도 있죠. 리커버한 책이 인기인데, 읽었더라도 사는 거죠. 책을 수집품으로 여기는 독자가 많다는 의미죠. 책을 정보와 지식의 도구로 한정하면 안돼요. 책의 역할을 대체할 도구·미디어·콘텐츠가 수없이 많으니까요. 온라인 콘텐츠의 질이 낮고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것도 옛말이에요. 작금의 온라인 콘텐츠 정보를 따져보면 어중간한 책보다 훨씬 나아요. 지식이나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 책의 필요가 약화되면서 자연스레 엔터테인먼트나 취향에 호소하게 된 것이에요. 책이 살아남으려는 노력 중 하나예요.”

둘째, 텍스트가 길지 않다. 트위터 전성기부터 우리는 짧은 글에 매료됐다. 셋째, SNS의 주요 키워드인 나, 공감, 위로, 힐링, 소통을 담고 있다. 나의 책 출판기로 돌아가 팔로워 500명 이후 표제 선정이 난관이었다. 나는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란 제목을 거절했다. 간지러운 글에 경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편집자에게 간곡한 메일을 보냈다. “술 먹고 놀던 내용이 많으니 ‘드렁큰 남미’가 어떨까요?” 편집자는 간곡히 답변했다. “작가님, 요즘엔 힐링과 위로의 코드가 필수랍니다.” 그렇게 나는 ‘불안전하게 안전해지다’로 종종 잘못 발음되는 책 제목을 얻었다. 지금은 그녀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여행 에세이를 펼치는 주요 이유는 휴식이자 힐링이니까.

온라인 서점 예스24의 ‘2018 상반기 출판 트렌드 키워드’를 보자. #나로살기 #거절합니다 #거리두기 #캐릭터로위로받기 #곰돌이푸 #반려동물 #젠더조기교육 #며느리이야기 #아이돌셀러 #미디어셀러 #주식하자. 이런 키워드가 도출된 이유는 ‘타인 말고 나’를 기준으로 살기를 원하는 책(<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신경 끄기의 기술> 등)이 많으며, 곰돌이 푸, 보노보노, 빨간 머리앤 등이 전하는 위로에 사람들이 감동해서다. 나만 해도 보노보노가 “도와주고 싶었어. 하지만 돕지 못했지. 그런 슬픔만이 쌓여간다”라고 말해서 울어버렸다. 우리는 다 아프다. 그래서 이런 책이 팔려나간다.

책은 출간했지만 베스트셀러를 만들지 못한, 그러니까 시대의 요구에 빗나간 열패감에 젖은 나를 반성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베스트셀러에 공통된 걱정거리는 있다. 책이 심하게 안 팔린다는 것과 독자의 책 결정권이 취약하며, 이를 돕는 플랫폼이 아사했다는 것. 책을 살 때 본인이 직접 선택한다는 이들은 30% 미만이다. 광고나 추천 도서, 지인 등 누군가에 의존해 책을 골랐는데,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유명인의 의견을 따른다는 비율도 30%다.(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안희곤도 이 문제에 공감한다. “인문·사회 과학 분야에서도 유명 저자의 책이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내용에 기반을 둔 게 아니기에 일회성 구매로 끝나곤 해요. 독자의 ‘능동적 발견’이 중요합니다.” 유시민이 <알쓸신잡>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랩걸>이 과연 몇 명에게 감동을 줬을까.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은 책이라 생각하지만, 과학자, 나무, 성장, 딸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관심 대신 유시민을 보고 산 이들은 얼마나 감동을 얻었을까. 명사의 추천, 아이돌이 읽었다는 책을 읽음으로써 오히려 독서 상실감을 불러올 수 있다.

독자의 ‘능동적 발견’을 조력할 서평도 아사한 상태다. 전문가 아닌 일반 독자의 서평 문화도 중요하다. 열 명중 일곱 명은 사람들과 독서 관련 대화를 하지 않는다.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성인은 전체의 5.3%다.(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장강명은 <당선, 합격, 계급>에서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라며 자신의 책 리뷰를 많이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서평이 이 소중한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짧은 서평이라도, 그리고 악평이라도 그렇다”고 덧붙인다. 안희곤도 비슷한 해법을 희망한다. “독서를 나만의 ‘외로운 행위’가 아닌 ‘공감의 행위’로 바꿔야 해요. 같은 눈높이를 가진 독자들이 서로에게 책 읽기를 강제하고, 그 책을 함께 공유하는 ‘함께 읽기’를 더 시도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