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호르몬 피임제의 숨은 이면

2018.07.19

by VOGUE

    호르몬 피임제의 숨은 이면

    인공피임은 문명의 혜택일까, 해악일까? ‘편리함’이라는 달콤함에 가려진 호르몬 피임제의 숨은 이면.

    때아닌 높은 습도로 꿉꿉한 공기가 브루클린을 에워싸던 지난해 10월의 어느 날, 집 앞에 주차된 픽업트럭의 시끌벅적한 레게 소음으로부터 멀어지고자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뒤 인터넷 영상통화 서비스 ‘스카이프’ 벨 소리가 집 안의 고요한 적막을 깨뜨린 순간 낯선 이와 나누게 될 농밀한 대화로 마음이 초조해졌다. 우린 뭐든 과도하게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성생활에 대해 세세하게 털어놓는 일은 여전히 큰 도전이다. 영상통화의 주인공은 남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40대 초반의 빨강 머리 여인. 그녀의 이름은 킴벌리 존슨, 직업은 성 전문 마사지사다. 호흡, 터치, 마사지, 요가 같은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의뢰인의 성적, 육체적, 감정적 행복 증진을 돕는다. 킴벌리가 데스크톱 바탕 화면에 떠오르자 난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의학적 증세를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산후 조리사로도 유명한 그녀를 난 전혀 다른 이유로 찾았다. 자궁 내 삽입하는 피임 기구(IUD)의 유효기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30대 후반에 접어든 난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새 IUD로 교체할 것인가, 또 다른 피임법을 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속사정을 털어놓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다. 허둥대는 날 위해 킴벌리는 핵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련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저기 지금 잠깐 멈춰보세요.” 감추려 애쓴 불편한 기색을 감지한 걸까? “저와 대화를 나누는 지금 당신은 신체 어느 부위를 주목하고 있나요?” 내 시선은 그녀의 눈이 아닌 어깨 너머 책꽂이에 꽂힌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 소설책을 향하고 있다. 불안함의 증거다. 그리고 잠시 후 킴벌리가 던진 질문 의도가 파악됐다. 애초에 우린 나의 골반, 그러니까 살면서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언급한 적 없는 부위에 대한 깊이 있는 상담을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생리를 통제해 임신을 막아주는 IUD의 힘을 한 번 더 빌린다 해도 다가올 부작용이 문제다. 강도는 미약하나 집요한 경련통과 자궁 내 pH 불균형이 대표 사례다. 담당 의사 말로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지만 이럴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궁금해졌다. 그의 솔루션은 새로운 IUD 삽입 혹은 1년에 한 번 정기적인 자궁경부 검사. 킴벌리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지금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했다.

    원활한 출산을 돕는 ‘질 지압사’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그녀는 인공피임 반대자다. 약이나 기구 삽입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호르몬을 조절해 성적 취향은 확장하고 가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자연주의 방식을 지지한다. 테크업계를 비롯한 여성 인권 보호 사업은 이렇듯 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리 주기에 적절히 대응하길 바라는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 패턴 인식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탄생한 디지털 서비스와 관련 제품 론칭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여성 의학을 둘러싼 완곡한 어휘 선택과 비밀스러움에 피로를 느끼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다. 그 결과 솔직함을 앞세운 새로운 시도가 하나둘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 SNS에서 파드마 라크쉬미(Padma Lakshmi)와 레나 던햄(Lena Dunham)은 자궁내막염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생리와의 전쟁을 공개적으로 얘기해왔고, 사진작가 페트라 콜린스(Petra Collins)는 피 흐르는 질을 선으로 표현한 드로잉 티셔츠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이런 움직임은 탐폰 정기 배송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롤라(Lola)에선 생리통 완화에 도움을 주는 천연 보조제를 내놨으며 유해 성분을 일절 함유하지 않은 허니팟(Honey Pot)의 순면 생리대도 등장했다. 이처럼 처방전에 의한 해결책보다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신개념 건강법에 대한 반응이 거세지면서 제약 산업에 대한 회의론이 힘을 얻고 있다.

    슈퍼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는 벨라루스산 생리 주기 애플리케이션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앱은 생리 주기를 통해 배란기를 추적하고 여성 건강에 관한 익명의 채팅방과 메시지 보드를 관리한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녀는 이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건 비단 당신만이 아니었다는 걸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고 말한다. “다섯 아이의 엄마지만 내 생식기와 임신 원리에 대해선 무지했어요. 그동안 온갖 종류의 의학 전문용어를 들어왔지만 절반 이상은 모르는 것들이었죠. 여성의 배란기는 생각보다 아주 정직하더군요.

    2018앗, 지금 휴대폰 알람을 통해 지금 제가 임신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경고 신호가 떴어요.” 남편 앙투안과 로맨틱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뉴욕에 도착한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이번 주 우린 각별히 더 조심해야 해요.”

    뉴욕의 플로 리빙 호르몬 센터(Flo Living Hormone Center) 설립자 알리사 비티(Alisa Vitti)는 “여성 대부분이 자신의 호르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본 지식조차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체중 증가, 낭포성 여드름, 생리 불순을 일으키는 호르몬 불균형에 시달린 채 젊은 시절을 보낸 알리사는 현재 여성들이 PMS(생리 전 증후군), 자궁내막염,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비롯해 생리와 관련된 여러 문제의 근본적 원인의 이해를 돕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 해결책 중 하나가 ‘생리 주기 동기화(Cycle Syncing)’다. 이것은 생리 주기의 4단계(황체기, 생리기, 여포기, 배란기)에 맞춰 자신의 식단과 운동 방식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한 달 중 며칠간은 침대나 소파에 무조건 눕고 싶고, 또 다른 며칠은 창문 밖으로 믹서를 던지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마이 플로(My Flo)의 생리 주기 추적 앱 하나면 황체기에 지나친 당분 섭취 대신 채소를 구워 먹고 여포기와 배란기에 고강도의 소울사이클(SoulCycle) 수업을 예약하는 등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만으로도 생리 주기 정상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 알리사는 전 세계 여성들이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여성 건강 전문가들, 생리 코치나 폐경기 카운슬러와 상담하게 될 미래를 상상한다. “임신부라면 조리원의 수간호사, 둘라(Doula, 임산부에게 조언을 해주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자) 혹은 수유 컨설턴트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세요.”

    돌이켜보면 그동안 내가 여행을 다니고 4개 대륙을 오가며 일을 하고 여러 번의 연애를 하고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최고로 조화로운 삶을 경험했던 30대 중반에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돌이켜보면 순전히 IUD 덕분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요.” 뉴욕대학교 랑곤 의료센터 산부인과 조교수인 타라 시라지안(Tara Shirazian) 박사는 이런 문화적 변화에 대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린 경구용 피임약이 장기적으로 자궁암과 난소암에 걸릴 확률을 낮춰주고 생식력에 그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신체 주기를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것보다 건강에 이롭다는 데이터는 어디에도 없죠.”
    못해도 1~2년 안에 임신할 생각이 있는 난 킴벌리와 알리사가 지지하는 플랫폼에 몰두할수록 합성 호르몬 없이 생리를 함으로써 내 몸의 잠재적 생식력 문제나 호르몬 불균형이 있는지 제대로 인지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30세, 35세, 심지어 40세를 훌쩍 넘어 임신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미국에서 출산율이 상승하는 유일한 집단이죠.” 내과 의사이자 서양의학과 영양, 건강, 예방 정보를 결합한 디지털 플랫폼인 파슬리 헬스(Parsley Health) 설립자 로빈 버진(Robin Berzin) 박사의 설명이다. “가족계획에 대한 정확한 플랜이 필요해요. 여기엔 임신을 준비하기 전 생리 주기 정상화를 위해 인공피임 처방을 끊는 노력이 포함됩니다.”

    픽업트럭에서 흘러나오던 시끄러운 레게 소음이 베이스 기타 소리에서 현악기로 교체될 무렵 나는 킴벌리에게 자궁에서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에 대해 털어놨다. 그녀는 이는 곧 내 몸이 견딜 수 없는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며 IUD 제거 시술을 제안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해결책이었다. 아직 스스로 깨닫진 못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처음으로 난 내 안의 어떤 불편함이 인공피임법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제대로 파악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난 IUD 제거를 위해 산부인과 의사와 약속을 잡았고 생리통 완화를 위한 천연 보조제 정기 배송과는 차원이 다른, 내 몸의 배란기를 알려주고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날 커다란 빨간불이 반짝이는 독일산 스마트 기초체온 측정계 ‘레이디 캄프(Lady-Comp)’에 500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에디터
      이주현
      포토그래퍼
      Grant Cornett
      글쓴이
      Emily Witt
      프랍 스타일링
      Janine Ive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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