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네팔에서 온 디자이너

2018.08.06

by VOGUE

    네팔에서 온 디자이너

    프라발 구룽을 이끄는 키워드 네 가지. 여자, 고향, 변화 그리고 보석.

    프라발 구룽이 타사키 아틀리에의 크리에이티브로서 처음으로 디자인한 컬렉션.

    WOMEN
    “내 삶은 언제나 힘 있는 여성과 함께했다. 홀어머니 아래 자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주위 여성들 덕분이다. 디자이너가 된 건 그들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숨겨진 욕심 때문인지 모른다. 2009년 뉴욕 패션 위크를 통해 데뷔할 때부터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분명했다. 자신감 넘치고, 세상을 잘 알고, 어떤 무게감을 지닌 여성. 지적이며, 스스로를 꾸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변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여성. 무엇보다 스스로가 여성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 여성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 아닌가. 이렇게 내가 꿈꾸는 여성상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랬기에 미셸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 케이트 미들턴 등이 내 옷을 입은 순간도 경험할 수 있었다. 난 네팔에서 꿈 하나만 믿고 뉴욕에 왔다. 파슨스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다른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내 꿈을 준비했다. 내 브랜드를 시작하기 위해 실업 급여를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펼쳐 보일 확신이 있었기에 모든 걸 견뎌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천천히, 정확하게 내가 꿈꾸는 아름다움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아름다움 속에는 아름다운 영혼이 자리할 것이다.”

    초현실주의에서 영감을 얻어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활용한 주얼리를 선보였다.

    HOME
    “네팔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아주 작은 나라이고 흥미를 끌 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내 고향은 풍부한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을 지닌 곳이다. 당연히 내 작업에도 네팔의 문화와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패션계에서 네팔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누나, 형과 함께 시작한 자선단체 역시 네팔을 돕기 위한 것이다. 첫 컬렉션이 끝난 직후였다. 우리는 12명의 소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7년간 거의 1만5,000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지금도 300명의 소녀가 우리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지진을 겪은 후에는 재건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엔 학생들의 예술 교육을 시작했고, 감옥에 수감된 여성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삼각 수영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소셜 미디어 속 내 모습과는 다를지 모른다. 신나게 사는 것만큼 남들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 두 가지 모습이 서로 등질 필요는 없지 않나.”

    서울을 찾은 프라발 구룽은 경쾌한 태도로 촬영에 임했다. 특히 목선이 깊이 파인 티셔츠는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

    CHANGE
    “내 컬렉션엔 단순히 아름다운 드레스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내가 지닌 생각을 공유할 필요도 있다. 미국 대선이 끝난 후 이런 생각이 더 명확해졌다.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느꼈다. 게다가 패션은 모든 이들이 앉고 싶어 하는 테이블과 같다. 배우부터 래퍼, 스포츠 스타 등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들이 패션계로 모여든다. 이러한 플랫폼을 활용해 다양성과 양성평등,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인권, 소수 인종 인권 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쁜 옷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이 옷은 어디서 샀고, 저 구두는 어디서 샀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그 시작 중 하나는 존경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에게 영감을 얻은 컬렉션이었다. 그다음 시즌이었던 2017년 가을 컬렉션에는 좀더 쉽게 풀어냈다. “I am an immigrant” “Nevertheless, she persisted” 등의 문구를 담은 슬로건 티셔츠도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크리스털 30만 개를 수놓은 드레스만큼 이토록 분명한 메시지도 함께 선보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세상이 올 거라고 믿는다. 커다란 세상을 바꾸는 데 내 작업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이다.”

    JEWELRY
    “여성이 귀고리를 차기 위해 손을 올리는 순간, 팔찌를 채우기 위해 살짝 팔을 비틀 때. 그 제스처보다 우아한 순간이 있을까. 그건 여성이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적 순간이다. 그 풍경 때문에 어릴 때부터 주얼리를 좋아했다. 네팔 민속 의상 사리를 입고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조심스럽게 차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스스로에게 수여하는 변화의 의식과 같다. 그렇기에 타사키에서 제안이 왔을 때 반가울 수밖에. 특히 나가사키에 자리한 진주 양식장과 파인 주얼리가 완성되는 공방을 살펴본 후에는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소수만 즐길 수 있는 파인 주얼리를 선보이고 싶진 않았다. 더 다양한 여성이 타사키의 아름다운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애슐리 그레이엄처럼 풍성한 여성도, 밍 시와 같은 아시아 모델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모던 주얼리 말이다. 지난 5월 멧 갈라에서 내 꾸뛰르 라인 론칭과 함께 타사키 주얼리를 소개한 건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름다움은 변했다. 매우 현대적인 미학을 담은 타사키를 기대해도 좋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김재훈
      모델
      스완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유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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