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그들만의 소우주를 움직이는 패션 레이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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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그들만의 소우주를 움직이는 패션 레이블 8

2018-08-12T12:11:43+00:00 2018.08.14|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빈. 지구 여러 도시에서 그들만의 소우주를 움직이는 레이블 여덟 개. 이름이 생소하다면 지금부터 눈여겨보시라. 곧 빈번하게 보고 들을 테니까.

MARINE SERRE
2018 F/W 파리 패션 위크 첫째 날, 파리 북부의 어느 무역회사 건물에서 마린 세르 데뷔 쇼가 열렸다. 작년 LVMH 프라이즈 우승에 빛나며 발렌시아가, 디올, 마르지엘라 등 유명 패션 하우스에서 일한 그녀가 내건 주제는 ‘Manic Soul Machine’. “가속화된 현시대의 우리 모두는 인간인 동시에 기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스물여섯 살에 브랜드를 이끌게 된 저를 비롯해, 광적인 속도로 내달리는 패션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안의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작 정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저의 자전적 이야기와 마린 세르가 지향하는 패션을 잘 반영하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쇼가 끝난 후 쇼룸을 방문한 내 눈에 들어온 건 한국 해녀들이 사용하던 동그란 부표 같은 가방과 네오프렌 소재 의상.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제 옷에서 저도 전혀 생각지 못한 레퍼런스를 찾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반갑고 흥미로워요.” 전도유망한 디자이너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미래적 옷이 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물병과 노트, 책, 아이폰을 모두 넣을 수 있는 멀티 포켓 재킷은 저를 비롯해 핸드백을 들지 않고 외출하길 원하는 현대 여성의 요구를 반영한 마린 세르식 퓨처 웨어입니다!”

MADDIE WILLIAMS
“에코 패션도 시각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에든버러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22세의 매디 윌리엄스는 버려진 자전거 타이어, 낙하산, 방수 천, 우체부 가방 등을 옷감을 만들기 위해 잘라 직조한다. 런던 남부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과감하고 화려한 의상과 달리 전원적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가족이 모두 사는 집에서 촬영하다니 정말 초현실적인 경험이에요. 우리가 화단을 밟았다고 아빠가 화내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녀가 주목받은 건 졸업과 동시에 비비안 웨스트우드에서 지속 가능한 패션 인턴십 프라이즈를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신인 디자이너 육성 단체 패션 스카우트의 ‘One to Watch’에 선정됐다. “2018 F/W 컬렉션은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반하는 여신의 모습을 상상했어요. ‘아르 브뤼(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미술)’ , 고대 그리스 철학, 모계 중심의 사회 등에서 영감을 얻었죠. 어깨를 남자처럼 넓힌다고 강한 힘을 갖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어요.” 매디의 옷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실용적인 옷은 아니다. 즉 현실과 조금 거리를 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옷이 주목을 받고 또 패션이라는 범주 안에서 소비되는 건 런던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한몫 거든다. “런던은 다채로운 문화와 창조적인 산업이 모이는 허브예요.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경험이 가능하죠. 9월에 열릴 쇼에는 좀더 연극적인 퍼포먼스를 가미할 거예요.”

RICHARD QUINN
혜성처럼 떠오른 디자이너가 거쳐야 할 단계. 첫 번째, 유명 인사가 패션쇼 프런트 로에 앉는 것. 두 번째, 쇼가 끝난 후 ‘대체 그는 누구인가?’라는 기사가 쏟아질 것. 세 번째, 잘나가는 뮤지션이 입을 것!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석사과정을 졸업한 리차드 퀸은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되는 신예다. 그는 단 두 시즌 만에 ‘브리티시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다. 시상자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최근 비욘세는 제이 지와 함께한 월드 투어 홍보 영상에 리차드 퀸 F/W 시즌 초록색 꽃무늬 옷을 입고 나왔다. “상을 받은 건 제 개인뿐 아니라 팀에도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는 걸 증명했죠. 그렇다고 제 인생이 통째로 바뀐 건 아니에요. 여전히 런던 남부 페캄(Peckham)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프린팅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상징인 화려한 꽃무늬는 디지털 프린트와 수작업 스크린 프린트로 완성된다. “1960년대 아티스트 폴 해리스(Paul Harris)가 만든 꽃무늬의 통통한 인물 오브제에서 영감을 얻었죠. 텍스타일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도 환영이에요!” 이 젊고 명민한 디자이너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부술 예정이다. “2019 S/S 시즌에 대한 힌트요? 꽃무늬가 없을 거예요. 충격과 공포죠!”

WENDY JIM
패션계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스트리아 빈과 파리를 거점으로 삼는 브랜드 웬디 짐(Wendy Jim)의 인스타그램만 본다면 패션 스쿨을 갓 졸업한 젊은이의 감성이 폭발적으로 느껴진다. 최근 몇 시즌 동안 함께 일한 스타일리스트는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로타 볼코바. 하지만 브랜드를 이끄는 듀오는 20년 경력의 헬가 루트너(Helga Ruthner)와 허만 팽크하우저(Hermann Fankhauser)다. 빈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헬무트 랭에게 수학하던 이들은 1999년 이에르 페스티벌 수상을 시작으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이번 파리 컬렉션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빈에서 보낸 컬렉션 박스 중 대부분이 파리로 오던 중 사라진 거죠. 컬렉션을 시작하기 2시간 전에 겨우 도착했답니다.” 눈에 띄는 건 네온 컬러 워크 웨어와 타이츠, 우거진 풀숲 사이로 보이는 에펠탑 프린트의 아노락 등이다. “이전엔 쓰지 않던 컬러 팔레트였습니다. 패션은 요리 같은 거예요.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어떤 조미료를 쓰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죠.” 웬디 짐이 신인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매 시즌 새 요리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옷은 최근 트렌드를 신속히 흡수하기로 소문난 한국의 편집숍에서도 들여왔다. “거리에서 우리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OTTOLINGER

요즘은 인스타그램으로 얼마든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패션 브랜드에는 PR 에이전시 역할도 중요하다. 그래서 베트멍과 와이/프로젝트라는 신인을 발굴한 파리의 에이전시 리추얼 프로젝트(Ritual Projects)가 그림판으로 그린 듯한 오토링어(Ottolinger)의 조악한 초대장을 보냈을 때 많은 사람이 믿음을 갖고 퐁피두센터 근처 세탁소로 향했다. “비가 오는데도 많은 사람이 찾아왔고 우리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 기뻤어요.” 스위스 출신의 듀오 디자이너 크리스타 보쉬(Christa Bösch)와 코시마 가디언트(Cosima Gadient)가 말했다. 둘은 바젤의 패션 디자인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를린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다. 그들의 컬렉션은 2000년대의 어느 날 밤새 클럽에서 한바탕 놀다 온 젊은이의 옷처럼 보인다. 어느 한 곳은 라이터로 태운 듯 구멍이 나거나 그을렸고, 찢어지고, 얼기설기 실로 꿰맨 DIY 감수성이 느껴지니까. 여기에 화려한 모피와 몸매를 감싸는 색조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전성기 무대의상을 보는 듯하다. “이상하고(Odd) 아름답다(Beautiful)는 단어로 브랜드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브랜드를 론칭한 지 3년이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LVMH 프라이즈 수상 후보에 오르고 칸예 웨스트의 ‘이지(Yeezy)’ 디자인 팀에 합류하는 등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트렌드는 파도 같아요. 일정한 페이스로 우리 디자인을 전개하다 보면 트렌드의 파도가 밀려와 우리를 치고 내려가기도 하겠죠.”

GYPSY SPORT
여기 LA 한인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멕시코 출신 소년이 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무작정 뉴욕행 편도 티켓을 끊었고 도착하자마자 이력서 30장을 프린트해 여기저기 뿌렸다. 결과는? 발렌시아가 매장의 창고 관리직. 눈이 오면 눈을 쓸고 물품 보관소를 청소하는 등 누구도 하지 않을 듯한 일을 도맡던 그가 승진에 승진을 거쳐 파리로 날아가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만났다. 그리하여 발렌시아가의 비주얼 머천다이징으로 경력을 쌓던 그가 만든 런웨이용 모자가 편집숍 오프닝 세레모니의 흥미를 끌었고, 온라인 스토어에 제품을 올리기 이틀 전 생각한 이름이 바로 ‘집시 스포츠’였다. 이 브랜드는 CFDA/Vogue 어워즈를 수상하며 뉴욕 패션 위크의 메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리오 우리베(Rio Uribe)의 LA 사무실 겸 집을 <보그>가 방문했다. “저는 패션 학교에 진학하지 않았고 몹시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컬렉션을 만들었어요. 저처럼 언더그라운드 디자이너의 목소리도 세상에 나오게 돼 정말 기쁩니다.” 2018 F/W 컬렉션에는 트랜스젠더 활동가, 10세 드래그 퀸 소년 등 다양한 모델이 섭외돼 화제를 모았다. “친구들이에요. 저는 이렇듯 다양한 인물들이 런웨이에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욕은 물론 가족이 있는 LA에서 디자인과 생산을 하게 된 리오는 여전히 바쁠 거라고 귀띔한다. “올해 멕시코에서 패션 필름을 촬영할 거예요. 또 쿨한 신발 협업 컬렉션도 기다리고 있죠. 무엇보다 올여름은 해변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ECKHAUS LATTA
아트 스쿨에는 자신과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조각을 공부한 87년생 동갑내기 마이크 에카우스(Mike Eckhaus)와 텍스타일을 공부한 조 라타(Zoe Latta)도 역시 그중 하나였다. 자신들의 작품이 갤러리에 걸리는 걸 상상하던 이들은 2011년 패션 브랜드를 만든 이후 미술 작품 시리즈를 내듯 작업 중이다. 듀오는 6개월마다 돌아오는 시즌에 특정 테마 없이 옷을 만든다. “직접적으로 영감을 얻는 대상이 없어요. 오히려 개인적 성장을 반영하거나 우리에게 새롭다고 여겨지는 것을 만들죠. 에카우스 라타가 그리는 특정한 인물상도 없어요. 늘 사회 기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옷을 통해 이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합니다.” 비디오, 퍼포먼스 등 여러 플랫폼과 패션을 결합해온 듀오는 8월 3일부터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메인 작품은 패션계의 다양한 면을 대화로 풀어낸 삼면으로 이뤄진 설치 작품. 플러스 사이즈 모델, 만삭의 아티스트, 트랜스젠더 등 전문 패션모델이 아닌 인물을 런웨이에 세우고 비전통적 소재로 옷을 만들거나 일반인들의 섹스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는 그들에게 관습을 거부하는 반항아 같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렇다고 입을 수 없는 옷은 아니다. 도리어 현실성이 충만해 폭넓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뉴욕 차이나타운 쇼룸에서 만난 그들의 비전은 이미 9월에 열릴 쇼로 향해 있었다. “쇼가 끝나고 마지막 모델이 백스테이지로 들어갈 때 희열을 느껴요. 그때 비로소 친구들과 축배를 들 수 있으니까요!”

MATTHEW ADAMS DOLAN
데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튜 아담스 돌란의 오버사이즈 재킷이나 팬츠가 익숙할지 모른다. 리한나, 레이디 가가의 인스타그램에도 종종 등장했으니까. 디자이너 역시 새로운 인플루언서로 각광받는 이 시대에 그는 셀러브리티가 사랑하는 디자이너라면 화려할 거라는 선입견을 깬 인물이었다.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미팅이 있어요. 일요일에 촬영하는 건 어떨까요?” 브루클린 브리지가 보이는 항구 옆 쇼룸에 나타난 매튜의 옷차림은 2018 F/W 백스테이지는 물론 올해 소개된 여러 인터뷰 사진 속 옷차림과 신발까지 똑같았다. 레이크랜드 테리어 ‘메이지’와 작업실에서 새벽까지 혼자 컬렉션 의상을 만든다는 인터뷰를 믿게 된 순간이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파슨스 졸업 컬렉션은 거의 모든 옷이 데님을 소재로 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매튜는 자신을 한정하는 데님을 줄여나갔다. 이번 시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테마는 재클린 케네디 스타일과 90년대의 미국 광고 이미지. 그의 작업실 벽에는 당시 폴로 스포츠, 바나나 리퍼블릭의 광고 이미지가 붙여져 있었다. 미국식 워크 웨어를 젊은 감각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아온 그가 미국 스타일의 상위 버전에 도전한 것이다. “당시 미국 브랜드는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고 생각합니다.” 푸크시아 핑크 체크 브레스티드 재킷, 오버사이즈 풀오버, 넓은 실루엣의 정장 반바지는 매튜가 새로 해석한 미국 럭셔리 캐주얼. 미국에서 태어나 호주, 일본, 스위스 등에서 살아온 그에게 미국이라는 테마만큼 알쏭달쏭하고 매력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늘 미국 스타일이라는 아이디어에 존재하는 이중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