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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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의 눈동자

2018-08-12T15:42:02+00:00 2018.08.20|

야망 있는 여성은 기 센 여자로 폄하되고, 야망 없는 소녀는 왜 꿈을 꾸지 않느냐고 책망을 듣는다. 야망을 둘러싼 이중적 잣대.

내 이름 ‘조소현’은 평범하지만 한 글자씩 뜯어보면 웃긴 구석이 있다. 중간 글자가 ‘작을 소(小)’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네가 남자 사주를 타고나서… 좀 눌러줄 필요가 있었어. 네 오빠랑 사주와 성격이 반대였으면 좋았을 텐데.” 오빠는 목소리가 작았고 나는 목소리가 컸다. 오빠는 공부에 욕심이 없었고 나는 오빠보단 많았다. 오빠는 되고 싶은 게 없었고 나는 돈 많은 사장님도 되고 싶고, 말 잘하는 변호사도 되고 싶었으며,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기자도 되고 싶었다. 어느 선배는 이런 얘길 들려줬다. “초등학생때 얼결에 학생회장이 됐는데 아버지가 그러셨지. ‘내가 아들만 있었어도 학생회장은 남자만 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게 했을 텐데.’” 사주가 ‘눌린’ 탓인지 머릿속에서 ‘성공’ 같은 단어는 작아졌고, ‘작을 소(小) 효과’로 키도 딱히 자라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잘난 여자를 싫어한다. 뛰어난 여자도 싫어한다. 거대한 포부가 있거나 야심만만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여자도 싫어한다. 이들은 드세고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한 친구는 회사에서 야근을 불사하며 일을 가리지 않고 주도적으로 해낼 때마다 “임원이라도 되시게요?” “너무 독하다~” “욕심이 많네” 같은 소리를 듣는다. 물론 남자 동기가 똑같이 했을 때 “능력 있네”라고 칭찬받는 걸 목격한 적 있다. 같은 회사에 유일한 여성 임원은 직원들 사이에 ‘성공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못돼먹고 표독스러운 냉혈한’으로 포지셔닝되어 있다고 했다. 수두룩한 남성 임원은 그냥 ‘임원’이거나 ‘타고난 리더’다. ‘최연소 이사’ ‘연봉 5,000만원’ 등 실제 커리어상 ‘사실’을 숨기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말해도 미움을 산다. 여자의 야망은 선을 넘은 과욕이고 남자의 야망은 멋진 것이다. 덕분에 여자는 자기 가치를 모르고 남자는 자기 분수를 모른다. 전설의 슬로건 “Boys, be ambitious”는 세상의 수많은 소년을 이글이글 야망을 품도록 부채질했지만 영어표현 ‘Ambitious’와 ‘Bossy’를 여성에게 사용할 때는 부정적 의미를 잔뜩 띤다. 패션 디자이너 토리 버치조차 이와 같은 이중 잣대에 고통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토리 버치’를 론칭해 괄목할 만한 브랜드로 키워내자 그녀는 어느새 ‘지나치게 갈망하고, 지나치게 권력을 추구하며, 지나치게 야망이 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자만 여자를 그렇게 볼까? 그렇지도 않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진행한 실험이 있다. 두 개 설문 그룹에 똑같이 성공한 벤처 투자자의 신상 정보를 나눠주며 이름만 ‘하워드’와 ‘하이디’로 다르게 알려줬다. 설문 참가자들은 ‘하워드’와 ‘하이디’ 모두 유능하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하워드는 ‘인간적이고 매력적이고 함께 일하고 싶다’고 판단한 반면 하이디는 ‘공격적이고 편법을 쓰며 이기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정말 놀랍지 않나? 중성적 이름 ‘헤이든’으로 개명하든지 대리인을 내세워 성공해야 할 지경이다. 우리 사회는 야망 있는 여자를 어두운 침실에서 방황하는 모기 소리만큼이나 못 견딘다.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라”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너무 튀거나’ ‘너무 강하면’ 안 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를 늘 입에 달고 계셨던 우리 부모님처럼 여성은 어릴 때 부터 부모, 교사, 이웃, 친척, 그리고 대중매체로부터 끊임없이 세뇌당한다. 자신을 낮추고 유순한 것이 여성스러운 것이고 누군가를 돌보고 보조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 불평등 경험담을 나누는 사이트 ‘everydaysexism.com’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여성의 꿈에 바람을 빼는 세상의 목소리를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엄마는 내가 주장이 너무 강해서 남자에게 인기가 없을 거라고 늘 말씀하셨다. 3세부터 그 소리를 들은 것 같다.” “13세 때 선생님들에게 나중에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너무 복잡하지않니? 여자는 보통 그런 일을 안 하는데.’ 나는 우리 반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멕시코에 산다. 이 나라 사람들은 ‘넌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더 예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교수가 우리 반 학생들에게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셀수도 있다.” 절대 70~80년대 소녀의 경험담이 아니다.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소설가 제시카 놀은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칼럼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동시에 추구하기 힘든 가치를 강요받는다고 적은 바 있다. “나는 늘 여성으로서 내게 기대되는 것과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 사이에서 씨름해왔다. 밀레니얼 세대의 여성성에는 상충하는 메시지가 있다. 야망을 갖되 보스처럼 굴어서는 안 되고, 강하되 날씬해야 하고, 솔직하게 공손해야 하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문화적 편견하에서 여성 동료의 성공에 일조해야 한다. 남자가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방식대로 공격적으로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여성을 나는 소설에서만 그릴 수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쥐꼬리만 한 것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여성 말이다.” ‘너무 잘난 여성은 부담스럽다’며 여자에게 자신을 낮출 것을 강요하던 사회는 이제 세상이 변하지 않았느냐며 여학생에게 “왜 남자처럼 야망을 갖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느냐”고 탓까지 하기 시작했다. 밀레니얼 세대 여성은 사회나 가정에 경제적으로 일조해야 하지만 남자보다 잘나서는 곤란하다.

나름대로 희망찬 소녀였던 나는 사회에 나와 완벽한 ‘쭈구리’가 됐다. 처음 정규직 제안을 받았을 때 “저 같은 애도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되물었고, 경력이 쌓여 승진할 시점이 왔을 때 “제가 무슨 차장이에요. 지금도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팀장자리를 권유받았을 때 “글쎄요, 그냥 서포트하는 역할이 저에게 잘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칭찬이라도 받으면 “어우, 남들도 다 하는 건데요, 뭐”라며 손사래를 쳤다. 끊임없이 내가 가진 능력을 의심하고 지레 나 자신을 끌어내렸다. 승진하려고 애쓰는 여자 선배를 볼 때면 동기들끼리 “난 저렇게 나이 들지 않을 거야. 추하게 뭘 저렇게 자리에 집착하냐. 때 되면 내려놔야지” 하고 수군거렸다. 한편 어느 선배는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부정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더 좋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남자 마인드로 살았다. ‘여성적인 것’을 모두 거부했는데 가령치마를 입으라고 하면 기함했고 사내아이 같은 말투를 썼다. 이로써 그 선배는 “쟤는 여자가 아니야. 완전 남자야” 같은 평판을 이끌어냈고 ‘예외’ 취급을 받으며 오히려 자유롭게 살았다. 여자는 자기 능력을 최소화해서 살거나 주류 밖으로 나가버리는 길을 택했다. 사실 나는 몰랐다. 토리 버치가 여성의 야망에 대한 이중 잣대를 얘기하기 전까지 깨닫지도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 성격이 소심해졌다고 생각했지, 외부로부터 자신을 낮추라는 메시지를 암시적 또는 명시적으로 주입받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여자를 보고 있노라면 길들여진 코끼리가 생각난다. 어릴 때부터 쇠사슬로 묶어놓으면 나중에 쇠사슬을 풀어도 활동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코끼리 말이다. 페미니스트 작가 제시카 발렌티는 <그런 이중 잣대는 사양합니다>에서 여성 상사를 ‘독사’라고 부르는 것은 교묘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힘 있는 자리가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려는 사악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평판은 이미 힘 있는 자리에 오른 여성을 위축시킨다. 그녀는 여성 상사를 남자 같다고 하는 것 역시 ‘여성다운 동시에 힘 있는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고 세뇌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힘 있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남성의 자리’라고 규정하는 전략이다.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해 모성 신화를 만들어낸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토리 버치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 중 기자로부터 ‘야심적(Ambitious)’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불쾌했는데 그것부터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난해 여성의 날에 #EmbraceAmbition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네스 팰트로, 리즈 위더스푼, 안나 윈투어를 비롯해 명사 수십 명이 동참했다. 그녀들은 말했다. “야망은 나쁜말이 아닙니다.” “여자는 야심가로 태어났어요.” “사과하지 마세요.” “야망이 있는건 섹시한 겁니다.” 이보다 앞서 저서 <린인>을 통해 공개적 찬사보다 은밀한 성공을 편안해하던 과거를 고백하며 야망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바 있는 페이스북 최고 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는 걸스카우트와 ‘밴 보시(Ban Bossy) 캠페인’을 진행중이다. 캠페인에 참여한 비욘세가 “I’m not bossy, I’m the boss”라고 말하는 영상은 굉장히 짜릿하다.

이런 움직임이 있지만 지금 네이버 검색창에 ‘셰릴 샌드버그’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기가 센 여자” “기 센 여자”가 함께 뜬다. 극단적 사건이지만 얼마 전에는 자신보다 능력 있는 아내를 견디지 못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고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여전히 나는 리더의 자리가 두렵고 기 센 여자라는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내 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잘난 척은 하지 않더라도 자기 비하는 그만두려고 한다. 이번 달 <보그>와 인터뷰한 아티스트 제니 홀저는 “여자가 일에 빠져들거나, 그런 삶을 갖거나, 자녀를 위해 해야 하는 전부를 하는 걸, 남자들의 세상이 쉽지 않게 만들거나 가능하지 않게 합니다. 개인적 문제를 넘어 국경을 초월한 사회적 문제이기에 지금 당장 해결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작품 ‘Raise boys and girls the same way(소년과 소녀를 같은 방식으로 키워라)’ ‘Selfishness is the most basic motivation(이기적이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동기다)’이 머릿속을 스친다. 일단 이름의 ‘작을 소’부터 어떻게 해봐야겠다. ‘웃을 소’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