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Remixed and Remastered

2018.08.26

by VOGUE

    Remixed and Remastered

    패션 브랜드가 고유의 상징적 작품과 클래식한 시그니처 작품을 재해석하고 달리 사용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나일론 패딩 소재 레인 웨어를 출시한 이후, 자신의 브랜드에 독특하면서도 멋진 여성성을
    부여했다. 민트색 퍼프 재킷과 형광 플라스틱으로 장식한 치마, 버킷 햇과 선글라스는 프라다(Prada).

    요즘 패션계에는 미우치아 프라다가 참조한 작품의 출시 시기 맞히기 게임이 생겼다고 한다. 최근 발표한 컬렉션에는 그녀가 초창기에 출시한 미니멀한 나일론 의상부터 90년대 중반 괴짜스러운 긱 시크 프린트까지 모든 걸 믹스했다. 마찬가지로 베르사체는 이보다 더 베르사체다울 수 없다. 구찌도 샤넬도 그렇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패션계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시각적 표시나 다를 바 없는 시그니처 작품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탐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작고한 지아니 베르사체가 창조한 금색의 화려한 바로크풍 디자인은 어떻게 참조했을까? 지금은 지아니의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그 디자인을 간소하면서도 합리적으로 활용해 드레이핑이 돋보이는 프린지 칵테일 드레스부터 일상에 편한 스니커즈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샤넬의 더블 C 로고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로고의 변신은 무한하다. 더블 C 로고는 칼 라거펠트의 상상력을 거쳐 서프보드의 도안, 월계관으로 탄생하기도 했다(라거펠트가 이끌고 있는 샤넬은 40년 넘게 이런 재창조를 거듭했으며 브랜드의 과거를 참조해 패션을 창조하는 면에서 에너지나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하우스가 되었다).

    도나텔라가 이끄는 베르사체에는 지나친 섹시함과 불손함, 새로운 방식의 유머가 담겼다. 그녀는 먼저 떠난
    오빠가 남긴 엄청난 디자인 유산을 존중하며 오랜 시간 현명하게 지켜내고 있다.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베르사체(Versace).

    위에 언급한 이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은 과거 의상과 현재 두드러지는 특징, 즉 스트리트 웨어, 로고 마니아, 젠더 유동성, 활동성, 입문자를 위한 스타일 등이 지니는 특성을 샘플링하고 리믹스해 지금 필요한 것을 아주 잘 캐치해낸다. 돌체앤가바나의 스테파노 가바나와 도메니코 돌체, 생로랑의 안토니 바카렐로, 겐조의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도 마찬가지다.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에서 만들어내는 옷을 보시라.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추구하던 건축미 덕분에 이 브랜드가 50년대에 출시한 오뜨 꾸뛰르 오페라 코트 형태를 상기시키는 품이 넉넉한 멀티레이어드 파카의 슬라우치 룩을 만들었다. “발렌시아가의 미학을 현재 패션 세계에 접목시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도전입니다. 이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바잘리아가 말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것이든 수명은 짧아지고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인스타그램을 여러 차례 훑었지만 어떤 것도 마음에 드는 것이 딱히 없기에, 요즘엔 디자이너가 자신의 존재나 작품에 대해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달리 보면 이미 알던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창의적으로 재조합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일상에서 해오던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를 해시태그로 연결하는 이 마당에, 디자이너들이 그 똑같은 자극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게 될까? “우리가 끌어낼 과거가 없다면 미래는 없을 거예요. 심지어 현재도 없을 수 있습니다.” 돌체앤가바나의 스테파노 가바나가 말했다. 그래서 패션계에서 ‘새로움’이라는 말에 담긴 ‘과거에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것’의 의미는 점차 약해지고 ‘새롭고 예기치 못한 맥락 속에서 친숙한 뭔가를 찾아내는 것’의 의미가 더 커지고 있다.

    프록 스커트 위에 플리스 재킷, 그 위에 코트를 입은 모습이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만든 버블 가운의 활력을 떠오르게 한다. 뎀나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는 하이엔드 패션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패션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편안한 놈코어 룩과 쿨한 스트리트 웨어의 특색이 두드러지던 시대가 지나고, 상징적인 것을 추구하거나 아예 반대로 가려는 새로운 시대가 풍성함과 재미 그리고 가치관 때문에 엄청나게 환영받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이상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명품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반 제품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가능한 한 절제된 듯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혜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서 명품을 통해 기쁨을 얻어야 할까? 패션은 정서적일 때 가장 멋지다. 즉 패션은 자신의 경제력을 알려주는 대상이 아니다. 생로랑의 바카렐로가 말하는 것처럼 ‘현실도피적 판타지’를 제시할 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구찌의 상징적인 꽃무늬 패턴을 보자. 이것은 1966년 그레이스 켈리를 위해 만든 스카프에 처음 사용했으며, 40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컬러로 출시된 야생 정원 무늬 프린트다. 그리고 이 패턴이 탄생한 지 52년이 지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똑같은 모티브에 뉴욕 양키스 로고를 더해 파자마 톱을 만들었다. 즐거우면서도 열정적이고 과감하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세로, 미켈레는 그 꽃무늬 패턴보다 더 많은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즉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이 구찌의 상징적인 GRG 스트라이프와 더블 G 로고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과시하고 싶은 충동을 넘어 시그니처 스타일을 다루는 새로운 흐름이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 문화의 변화 속도는 전광석화와 같다. 그래서 재사용과 용도 변화 모두 대혼란과 창의적 재발견의 기회 사이에서 계류하는 중이다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JACKIE NICK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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