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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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쿨

2018-09-05T14:26:08+00:00 2018.09.06|

‘아시안 쿨’은 아시아의 밀레니얼 세대, 제트 세대가 향유하는 삼의 단면이다. 언어 외에 국적을 그러내지 않은, 무국적 감수성의 아시아 문화 콘텐츠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한국 사람’이란 대답 대신,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대답을 달리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아시안 쿨’이라는 단어를 처음 본 건 K-팝을 키워드로 해외 매체의 기사를 스크랩할 때였다. 뭔가 그럴듯하지만 정확히 뭔지 알 수 없는 단어라서 구글에서 검색을 해봤다. 그러자 미용실에서 보여주는 샘플처럼 한국 남자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 이미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구글 월드에선 ‘아시안 쿨’이 한국 남자 연예인st의 말끔한 룩을 가리키는 말인 셈이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이 단어는 ‘BTS가 미국에서 성공한 이유’를 사회 문화적으로 분석한 칼럼에 있었다. 따라서 헤어스타일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최근 태국 영화 <배드 지니어스>와 한국에서 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품 비푸릿의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태국의 팝 컬처를 틈틈이 살펴보고 있다. ‘사운드크림’이라는 3인조 걸 그룹을 발견해 소셜 미디어를 팔로우하거나, 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그룹인 ‘GMM Grammy’의 유튜브 계정을 구독하면서 최신곡을 접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음악, 드라마, 영화, 배우 매니지먼트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전반의 영역에서 태국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사실 태국은 아시아에서 꽤 규모가 큰 엔터테인먼트 시장이고, 한때 신선한 관점의 공포 영화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동남아의 저렴한 관광지로 여겨지지만 산업적으로는 중요한 아시아 시장이 태국이다. 대만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같은 대만 청춘 영화의 인기는 <몬몬몬 몬스터> 같은 최신 호러 영화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미디어 환경은 PC를 건너뛰고 모바일로 직행하면서, 테크 기반의 스타트업에는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여겨진다. 모두 2000년 이후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쿨’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니 ‘아시안 쿨’이란 한국뿐 아니라 태국, 베트남과 같은 아시아의 신흥 세력이 향유하는 삶의 단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시아와 쿨.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 20세기에 서구에서는 아시아를 분열적으로 이해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기억해보자.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쿄의 밤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로지른다. 도쿄 같은 대도시부터 이를테면 다낭의 열대 밀림까지, ‘아시아적인 것’은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는 감수성이었다. 그래서 막연한 동경과 공포가 공존한 채로 중산층 서양인들의 여가를 위한 소품으로 소비되곤 했다. 그런데 21세기 이후, 한류가 아시아를 장악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아시아적인 어떤 것’은 쿨한 감수성의 전위가 되고 있는 것 같다.

태국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는 2010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아시아 영화는 주로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알려지는데, 한국에서 중국이나 일본 영화를 접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서양인이나 한국인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팝 컬처는 모두 진지하고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것인 듯 여기곤 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동시 번역의 지원 아래 우리는 현재 저 낯선 땅의 엔터테인먼트를 동시대적으로 접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흥행 기록을 새로 쓴 <너의 이름은.>을 비롯해 서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꼽히는 <강철의 연금술사> 그리고 엠넷의 <프로듀스48>과 연계하며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글로벌 팝 프랜차이즈 브랜드 AKB48 등은 글로벌에서 먹히는 일본의 엔터테인먼트를 대변한다. 한국의 <런닝맨>은 아시아에서 크게 화제를 얻고 있으며, <올드보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유명한 망치 격투 장면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마블 데어데블> 시즌 1에서 오마주하기도 했다. <곡성>이나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등은 스타일리시한 한국식 장르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도 여겨진다.

이런 작품의 공통점은 이종교배의 결과라는 것과 언어 외에는 국적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세기 아시아 국가가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 백인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교본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 결과값이 이종교배의 무국적 감수성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엔 팝 컬처뿐 아니라 CGV처럼, 서비스 산업과 테크놀로지가 결합한 산업도 포함된다. 어디서 본 것 같지만 총체적으로는 낯선 감각. 아시안 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 BTS가 성공한 맥락에 대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BTS의 성공 원인을 SNS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과 아티스트십 등을 언급하지만, 내 생각엔 미국 내의 밀레니얼과 제트 세대가 주류 소비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타 지역 문화에 대한 접점 때문인 것 같다.

여기엔 지구적 규모의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기업이 제공하는 자동 번역 기술이 기여했다고 보는데, 어릴 때부터 인터넷으로 다양한 문화와 이슈를 접한 신세대에게는 국적이나 인종, 언어의 장벽 같은 것은 정체성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여러 기관이 이런 맥락에서 인류 문화적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으로 ‘오픈 마인드’ ‘개인주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긍지’ 같은 것이 꼽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10년쯤 뒤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다. 이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사실 한국인의 세계 인식은 ‘한국인과 백인’이라는 이분법에서 작동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점점 ‘아시안으로서 정체성’이 중요해질 것 같다. 정서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저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국제 정치적으로는 일단 문재인 정부의 통일 정책이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분단 체제 유지를 전제로 북한과 남한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그림은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평화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갈등이 부각되면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힘겨루기 양상이 벌어지면서 세계대전의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는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경험으로부터 전후 경제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베트남과 태국은 인구 증가와 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정치·경제적인 부흥기를 기대하는 상황인데, 이런 시대에 누구도 아시아에서 군사적 위기가 발생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위기는 아시아의 위기인 셈이다.

경제적으로도 한국과 아시아의 관계는 중요하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정치 · 경제의 민주화를 가장 빨리 이룬 국가로, 문화 상품을 비롯해 여러 인프라를 아시아 국가에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전수하고,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교류를 넓힌다. 21세기에 등장한 ‘코리안 드림’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맥락에서 언젠가 때가 되면 한국 사회의 ‘우리’는 그저 한국이라는 국적이 아니라 ‘아시안’이라는 광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지금의 네트워크 환경은 기존의 언어·문화적 차이를 좁히면서 오직 정서와 경험을 기반으로 상호 소통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빠른 시일 안에 개인의 국적 같은 걸로 자신을 설명하는 세상이 끝장날 수도 있다. 국가를 벗어나 자신을 재정의하고자 할 때, 결국 중요해지는 건 ‘문화적 정체성’이 될 것이다. ‘나를 키운 8할’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세계 시민’ 혹은 ‘아시안 공동체의 일원’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 제트 세대는 이미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너는 뭘 하는 사람이야?’라는 질문에 ‘대기업 다녀’라고 답하는 걸 정말 매력 없다고 여긴다. 마찬가지로, ‘너는 누구야?’라는 질문에 ‘한국 사람이야’라는 대답도 시시하게 보일 수 있다. 요컨대 ‘아시안 쿨’이 가리키는 풍경은 바로 이 ‘너는 누구?’라는 질문에 우리 모두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하는 세계다. 내가 정의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답 말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자기 정체성을 들여다보고 그걸 더 넓은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상상해야 할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