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얼샤 로넌의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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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얼샤 로넌의 아일랜드

2018-09-12T17:34:20+00:00 2018.09.12|

영화 〈어톤먼트〉에서 불안할 정도로 조숙한 연기를 선보인 시얼샤 로넌은 맡은 배역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보그〉가 변화하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감각적이면서도 명석한 여배우를 만났다.

“사람들은 내게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내가 누구와 사귀는지는 알지 못할 거예요.”
프라다 새틴 드레스를 입은 로넌.
석양빛을 받은 튤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은 자신의 첫 연기에 대한 후유증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몇 주 동안 이런 멜랑콜리한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침대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게 기억나요. 제 옆에는 엄마가 앉아 있었고요. 저는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했어요.” 촬영장에서 함께 작업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키운 제작 팀은 이제 완전히 해산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동일한 제작진과 다시 함께 작업할 일은 결코 없을 거야. 결코 말야.’” 그 프로젝트는 바로 <더 클리닉>이라는 아일랜드 TV 드라마였다. 로넌이 그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그녀는 고작 아홉 살이었다.

이제 스물네 살이 된 로넌은 5월의 어느 햇살 눈부신 오후에 아일랜드의 어느 해안도시로 나를 만나러 왔다. 자국의 낙태 금지법을 폐지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앞둔 아일랜드에는 태아의 모습을 담은 충격적인 포스터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로넌은 오랜 시간 동안 정부를 압박해 마침내 국민투표 실시라는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풀뿌리 운동인 재생산권 캠페인을 지지하는 비디오에 최근에 출연했는데,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카페에서 우리는 웨이터와 다가오는 투표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나처럼 로넌도 1990년대에 태어나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 아일랜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정부 기관에 미치는 가톨릭교회의 지배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동성애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이미 이혼이 합법화된 데다 역사상 처음으로 피임기구를 널리 사용할 수 있다. 로넌이 스물한 살이던 2015년에 아일랜드 유권자들은 62%의 득표 차이로 동성 결혼 권리를 지지했다. 그녀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블린 북쪽으로 차를 운전하고 있는데, 모두가 국기를 내걸고 있었어요. 그들은 거리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었죠. 우리 앞에 새 무대가 펼쳐진 기분이었어요. 의식이 깬 느낌이었죠.”

나는 로넌에게 아일랜드에서 오랜 세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온 낙태에 대해 본인의 견해를 솔직하게 피력함으로써 사람들의 반발을 사는 게 걱정되지는 않는지 물었다.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해외까지 가서 낙태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구나 싶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로넌이 그녀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 사안에만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2016년에 노숙자를 수용하기 위해 더블린 도심에 있는 어느 빈 건물을 불법 점유한 것에 대해서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미국에서 부활하는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제프 창(Jeff Chang)의 에세이집 을 추천한다. “성장기에 정치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더 사회운동가들이 하고 있는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들을 더 많이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그로부터 딱 2주 후에 아일랜드의 낙태 금지법은 압도적 득표 차이로 폐지됐다. 로넌은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자신이 얼마나 의기양양한 기분이 들었는지 설명한다. 그녀는 ‘예스’라고 말할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 여성에게 낙태 권리를 주기로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로넌이 영국을 떠나 옮겨온 더블린 외곽의 어느 소도시를 헤집고 다니다 보니, 그 모든 것이 아직은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일랜드는 잉글랜드보다 크기가 작아요. 그래서 나는 이곳을 매우 좋아해요. 이곳을 그리워했어요”라고 그녀는 바다와 길게 펼쳐진 해안 지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그녀는 한동안 더블린에서 살기도 했지만 성장기는 시골에 둘러싸인 아일랜드 북부에 있는 칼로주에서 주로 보냈다. 우리가 해안가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녀는 “이곳을 한 번도 떠나본 적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나라에 있을 때는 집에서처럼 편안하고 평화로워요. 물론 런던에서 지내는 것도 좋아해요. 익명성이 보장되니까요. 런던에서는 수많은 인파 속에 파묻힐 수 있어요.”

“제게는 제대로 된 보호자가 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로넌은 촬영장에 함께 있어준 엄마와 #미투운동을 통해 부각된 영화계의 위험 요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의 격자무늬 코트를 입고 미우미우 스카프를 두른 로넌.

물론 그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우리를 멈춰 세우더니 로넌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 요청에 응하고 행인은 감사를 표한다. 잠시 나는 그 낯선 사람이 로넌을 알아본 것에 약간 놀랐다. 로넌의 얼굴은 거울 같은 커다란 선글라스에 거의 가려져 있었고 그녀는 영화에서보다 체구가 훨씬 더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섰다. 스마트폰 화면상으로 보니 강렬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그녀는 보다 더 그녀처럼,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처럼 보인다.

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석재 벤치 위에 앉았을 때 로넌은 이러한 경험이 아직도 많이 낯설다고 고백하듯 말한다. “제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알아보면 아직도 정말 깜짝 놀라요.” 나는 그녀가 유명해지지 않아도 그냥 자신이 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은지 물었다. “네, 그래요. 그런데 그다지 유명하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대답한다. 나는 약간 더 캐묻듯 질문하고 그녀는 분명히 하려는 듯 “정말 진짜로 제가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셀레나 고메즈가 유명하죠”라고 덧붙여 말한다.

우리 뒤로 몇몇 가족이 작은 개들과 함께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우리 앞으로는 여러 대의 요트가 파도에 오르락내리락한다. 로넌이 정말로 본인의 유명세에 좌우되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자신을 다룬 언론 기사를 모니터링하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지 모를 경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여유 시간이 생기면 로넌은 요리를 하거나, 라이브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영화 보러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가 만드는 영화는 어떤 것이 됐든 곧잘 사랑에 빠진다고 고백하듯 말한다. 영화 에 대해서는 진짜 ‘용감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나는 누군가가, 특히 스물네 살에 자기 자신의 공적 이미지에 이렇게나 무관심할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호기심이 없는 걸까? “저 자신에 관한 것이면 그게 뭐가 됐든 볼 때마다 너무 불안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불안을 말하는지 묻는다. “지금 이대로의 제 모습이 좋아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렇지만 제 모습을 담은 사진을 하루 종일 보고 있을 필요는 없죠. 제 자신의 이미지에 너무 사로잡히고 싶지 않으니까요.”

로넌은 열세 살 나이에 소설가 이언 매큐언의 <어톤먼트>를 조 라이트 감독이 각색해 만든 영화에서 당황스러울 정도로 명석한 연기를 선보여 처음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2015년에는 콜럼 토빈의 소설에 기반한 존 크로울리의 <브루클린>에서 주연을 맡았고 올해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에서 주연을 맡아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비록 그 역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착용한 몸에 딱 붙는 무릎 길이의 캘빈 클라인 연분홍 드레스는 큰 인기를 끌었다.(루피타 뇽와 함께 로넌은 라프 시몬스가 처음으로 내놓은 캘빈 클라인 향수 ‘Women’의 여성 모델 가운데 한 명이다)

최근 그녀는 매큐언의 또 다른 소설을 각색한 도미닉 쿡 감독의 <체실 비치에서>라는 영화에서 젊은 신부로 분했고 마이클 메이어가 영화로 각색한 <더 시걸>에서 니나 역으로 분했다. 대규모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끊임없이 상영하는 슈퍼히어로 시리즈물 하나 없이도 인상적인 경력을 구축해왔지만, 그렇다고 그런 역할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제 말은 한 번도 그런 역을 제안받은 적이 없다는 뜻이에요”라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강력하고, 흥미롭고, 독창적인 대본이 들어오면 바로 수락할 거예요. 좋은 대본은 말 그대로 좋은 대본이니까요.” 다음 영화가 바로 그렇다. 오는 12월에 개봉하는 16세기 군주를 다룬 조지 루크의 전기영화에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역을 맡았다.

지적인 패션 스타일로 사랑받는 로넌은 차세대 캘빈 클라인을
이끄는 선두 주자다. 로넌이 입은 205W39NYC 코트와 호박색 새틴 레이스 드레스는 캘빈 클라인.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구름이 지평선 위로 하얀 막을 드리운다. 로넌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차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영화계에서 젊은 사람에 대한 자신의 방어가 얼마나 심해졌는지 말해준다. 가령 그녀와 함께 <레이디 버드>에도 출연했고 그녀보다 약 1년 후배인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스타 배우인 티모시 샬라메, 즉 티미 같은 사람에게 말이다. 나는 로넌도 아직 젊다는 점을 꼭 짚어 말했다. “저도 알아요”라고 그녀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말한다. “그와 같은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그녀가 스스로를 이 업계의 베테랑 배우로 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한 번도 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열세 살 때 영화 <데스 디파잉: 어느 마술사의 사랑>에서 가이 피어스와 같이 작업한 적이 있는데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츠>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열세 살 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구나.” 다른 동료들과 친구들도 그 말에 동의한다.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츠>에서 엘리자베스를 연기한 마고 로비도 그녀를 두고 “나이보다 성숙하다”고 말한다. 토빈은 “그녀는 아주 감각적이면서도 명석한 두뇌와 영혼을 지녔다”고 내게 말한다.

우리가 굽이진 차도 옆 조용한 주택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집에 다다랐을 때 그녀의 애완견 프란이 앞으로 불쑥 뛰어오르며 우리를 맞이한다. 로넌은 이 웨스티 리트리버 잡종이 매력적인 친구인 양 소개한다. “샐리에게 발 좀 내주겠니?” 그녀가 요청한다. 프란이 발을 내게 내준다. “그녀는 천재예요. 완전 천재라니까요.” 로넌이 감탄하며 말한다. 로넌의 어머니 모니카가 친절하게 차와 비스킷을 가져오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초기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브라운관과 스크린 양쪽을 오가며 활동하는 배우인 그녀의 아버지 폴은 딸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그녀를 여러 배역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영화 <어톤먼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로넌은 학교를 떠나 홈스쿨링과 강도 높은 작업 스케줄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로넌은 10대 시절 내내 부모가, 거의 대부분 엄마가 일터까지 그녀와 동행했다. 애정을 갖고 영화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 번도 착취의 희생양이 된 적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편했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한번은 어느 감독이 로넌의 젊음과 사근사근한 태도를 이용해 특별히 민감한 장면을 밀어붙었다. “그때 엄마가 촬영장 위로 올라와서는 ‘이 장면이 어디에서 끝날지에 대해 사전에 면밀히 계획하지 않는 한 다시는 그런 요구를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운 좋게도 제게는 제대로 된 보호자가 있었던 셈이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러나 로넌의 부모는 사실상 보호자 이상의 존재다. 홈스쿨링과 여행 등은 이 여배우가 다른 대부분의 10대처럼 고정적인 또래 집단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뜻이었고 어떤 점에서는 그런 간극을 메우기 위해 그녀는 가족에게 의지했다. 오늘도 엄마를 후견인으로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서나 촬영할 때 엄마 모니카가 곁에 없었다면 그녀가 촬영에 익숙해지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하는 점에서도 그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 “처음 스스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저에게 의지가 되고 언제든 찾아가서 ‘그들이 그걸 좋아할까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엄마 같은 그런 안전 담요가 더 이상은 없었어요”라고 그녀가 말한다.
로넌은 대체로 자신의 일을 하나의 직업이라기보다는 소명처럼 이야기한다. “매우 친밀한 작업이에요. 저와 카메라 렌즈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이처럼 사적인 경험은 그녀가 수년간 공연을 해온 데서 기인한다. “제 인생에서 아주 꾸준히 일관되게 행해온 활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준 게 바로 카메라예요.” 영화 <브루클린>을 촬영하는 동안 로넌과 우정을 쌓기 시작한 토빈은 “다른 사람들이 칼로주 곳곳으로 춤을 추러 다닐 때 시얼샤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평범한 청년기를 보낼 기회가 없었던 것에 대해 슬프다거나 좌절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물론 어릴 때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죠. 나에게는 그게 바로 영화 촬영장에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일을 더 많이 했어요.”

V버O터G U옐E로.C O컬.K러R의 V미O우GU미E우 K O스R카EA프 S를EP 두TE른M B로E넌R 이20 이18른 저녁 황금빛 햇살을 듬뿍 받고 있다.

로넌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토빈이 그녀의 재기 발랄함에 대해 하는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항상 고민하는 배우예요. ‘어떤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가?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등에 대해 늘 고민하죠.” 연기가 어느 정도는 그녀 자신만의 추정과 맞서 싸우는 노력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스스로를 밀어붙여 직관이라는 거품을 터트리고 나와서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로넌과 영화 <레이디 버드> 작업을 같이 하는 과정에 대해서 거윅은 말한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리허설도 하고 협력했습니다. 최종 결과물은 제 것이기도 하지만 로넌의 것이기도 합니다.” 로넌은 거윅의 격려 덕에 자신이 야심 차게 감독 일을 시도해보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서 로넌의 엄마 역을 맡았던 로리 멧칼프는 로넌이 카메라 앞에서는 놀랄 정도로 편안해 보인다며 훌륭한 시선을 가졌다고 말한다.

2년 전 브로드웨이에서 이보 반 호프가 제작한 <더 크루서블>의 장기 공연에 집중 참여한 후에 로넌은 시간을 내어 더 많은 연극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 아일랜드 연극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몹시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연극 감독들은 무대에 직접 뛰어들어 뭔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냅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150여 차례의 공연에서 벤 위쇼가 맡은 존 프락터의 상대역인 아비가일 윌리엄스를 연기하며 그녀는 아서 밀러의 드라마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다. “한 가지 캐릭터를 그렇게나 오래 연기하면 그 역할은 또 다른 자신이 되죠. 아비가일을 아주 잘 알게 됐고 그녀는 매일 밤 제 것이 됐어요.”

아역 스타였던 로넌은 사생활을 자세히 공개하지 못했다. 대체로 어린아이에게는 이렇다 할 사생활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게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그들은 제가 누구와 사귀고 어디에 사는지 알지 못할 거예요. 그들은 제 가족에 대해서도 많이 모를 거예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어린 시절을 칼로에서 함께 보낸 이들이다. 지금은 페미니스트 여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스칼렛 커티스와 영화 <브루클린>에서 공동 주연을 맡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 파트너로 데리고 갔던 에일린 오히긴스다. 그러나 이따금씩 로넌의 일은 사생활보다 우선시되곤 한다.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정말 다른 일을 못해요. 외출을 하거나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독서도 전혀 할 수 없어요. 누군가 제게 ‘너는 일에 관해서라면 정말 그것 말고는 없는 사람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제가 딱 그래요. 한 번에 딱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면, 그녀는 함께 작업한 배우와 제작진을 또다시 떠나보내며 아홉 살 때 처음 경험한 바로 그 ‘멜랑콜리한 상태’로 돌아간다. “그런 감정을 온전히 극복하지는 못해요. 그런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뿐이죠.” 이전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로 옮겨가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거의 모든 작업에 들어갈 때 초반에 늘 드는 생각이 ‘내가 이번에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야. 그것을 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어’라는 것이다.

일주일 후 나는 더블린 도심에 있는 공공 예술 컬렉션인 휴 레인 갤러리에서 로넌을 만났다. 그날은 구름이 잔뜩 낀 흐린 오후였는데, 갤러리 내부는 예상외로 따뜻해서 우리는 재빨리 재킷과 카디건을 벗었다. 로넌은 본인이 시각예술의 진가를 알아보지만 자신은 시간을 들여 작품을 감상하기를 좋아하는 후원자 타입이라고 말한다. “미술품은 당신이 더 많이 봐줄수록 조금씩 더 생명력을 얻게 돼요.” 우리는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서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그림 ‘아편’ 앞에 선다. 이 작품은 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붉은빛을 띤 금발을 가진 여성을 그린 야수파 화가의 초상화다. “그녀는 약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처럼 보여요”라고 로넌은 말한다. 메리 스튜어트로 살기 위해, 로넌이 종종 그러하듯, 자신과 그 역 사이의 연결 고리를 직관적으로 파악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비교가 정말 많아요.” 그녀는 말한다. 배우인 동시에 여왕으로서, 그녀는 “당신은 항상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