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몬스터의 런던 플래그십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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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몬스터의 런던 플래그십 스토어

2018-09-18T11:02:14+00:00 2018.09.14|

젠틀몬스터가 이번엔 유럽으로 키를 돌렸다. 지구 정복에 나선이 점잖은 몬스터는 ‘쿵후’를 수련 중인 외계 챔피언들과 함께 유럽 대항해의 첫 여정, 런던에 착륙했다.

선글라스’로 지구 대정복에 나선 젠틀몬스터가 유럽행 첫 깃발을 꽂은 곳은 런던. 리버티 백화점 앞 아가일 거리는 유럽 멋쟁이들의 아지트 같은 골목이다. 7월 27일, 쇼윈도에 조명이 켜지자 골목에서 웅성거리던 인파가 유리창 앞으로 몰려들었다. 걸음을 멈추게 한 건 바로 음악. 고요한 백색소음과 함께 몽환적인 앰비언트 사운드 덕분에 매장에 들어서니 시끌벅적한 골목과 다른 차원의 신세계로 진입한 기분이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 규칙적으로 울리는 음악은 몽클레르와 끌로에 등 패션 브랜드의 음악을 관장하는 뮤직 디렉터, 루카스 히리치(Lukas Heerich)의 작업이다.

눈앞에 펼쳐진 건 선글라스와 안경이 아닌 천장까지 뻗은 거대한 징 그리고 양쪽으로 뻗은 ‘키네틱 오브제(움직이는 조형물)’. 지금부터 시작될 이곳에 대한 서사는 젠틀몬스터의 선글라스보다 이 환상적 인스톨레이션이 8할이다. 선글라스 매장에 실제로 항해하던 배를 박제(?)해 넣거나,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하며 공간에 이야기를 담아온 젠틀몬스터의 새 작품이야말로 이 플래그십 스토어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서양의 예술로 손꼽히는 쿵후를 유럽 진출의 서막으로 꼽았다. 갑자기 채가 절로 움직이며 징을 두드린다. 울리는 징 곁에 들어선 조형물은 모래가마 속으로 두 손을 차례로 집어넣으며 쿵후의 철사장을 훈련한다. 맞은편 조형물은 기마 자세를 취하고는 양손으로 접시를 돌리고 있다. 그 사이에 늘어선 다섯 개의 커다란 디스플레이에선 폭포가 세차게 쏟아진다. 물소리가 흘러나오는 이 스크린은 사운드 아티스트 료이치 구로카와(Ryoichi Kurokawa)의 2011년 작품 ‘Octfalls’를 이곳을 위해 작가와 함께 재해석한 것이다.

외계인의 쿵후 수련장을 떠올리게 한 초현실적인 인스톨레이션을 따라 걸어 나가자 징 뒤쪽으로 선인장 오브제가 자갈 위에 몰려 있다. 대형 징과 선인장 조형물 사이엔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징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상징한다. 외계 생명체 같은 이 조형물 사이에 에너지와 의사소통하는 듯한 자연의 회로가 존재하는 셈이다. 오히려 이들의 주 종목인 선글라스와 안경은 조형물 너머에 진열되어 있다. 외계인이 지구의 쿵후를 접한 뒤 팬이 되었다는 상상력으로 일군 쿵후 수련장이 젠틀몬스터에 대해 궁금해하는 고객에게 보여줄 ‘첫인상’인 것이다.

외계 생명체의 수련장을 지나 지하 계단으로 내려섰다. 계단 끝에서 90도로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조형물이 반겼다. 악수나 비주 같은 서양식 인사 대신 예를 갖춘 동양식 인사법을 숙지한 외계인의 손님맞이! 중앙 홀에선 키다리 로봇이 쿵후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올해 챔피언을 꿈꾸는 외계인의 도전이 한창인 풍경. 맞은편엔 쿵후 대결 중인 동료를 응원하는 관중석이, 카운터를 향하면 챔피언 메달을 거머쥐었던 과거(이곳의 시계는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뒤 미래다) 챔프들의 명예의 전당이다. 외계인의 아지트 사이사이에 진열한 젠틀몬스터 선글라스와 안경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온 외계인인지 혹은 그들의 전리품인지 알 수 없지만 ‘지구에서 볼 수 없던 가장 새로운 것’처럼 위용을 드러낸다.

그리고 7월 30일, 셀프리지 백화점.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1층 한가운데 젠틀몬스터 매장이 문을 열었다. 유럽에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인 지 사흘 만에 런던에 두 번째 깃발을 꽂은 것이다. 에르메스와 구찌, 생로랑 매장이 즐비한 그라운드 플로어에 ‘선글라스’ 브랜드로는 첫 번째 단독 매장이다. 게다가 주변의 명품 브랜드 매장과 견주어 손색없는 규모다. 두 달 전부터 진행한 팝업 스토어의 인기와 예상치 못한 판매량 폭주로 백화점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 공간 역시 젠틀몬스터다운 발상으로 충만하다. 입구 정면엔 분화 직전의 칼데라호가 형상화되어 있고, 화산의 분화를 막기 위해 기도를 올리는 조형물이 의식을 행하듯 분주하게 움직인다. ‘Love’ ‘Belief’ ‘Fear’ 같은 문구가 뜨는 전광판은 기도 에너지를 시각화한 것으로 화산을 잠재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 입구 양쪽에 늘어선 네 발 조형물은 화산을 지키는 제사장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이곳을 화산 분출과 기도가 들끓는 에너지의 공간으로 해석했다. 백화점 매장답게 제품 진열도 돋보였는데, 이곳에선 한정판 모델도 만나볼 수 있다. 셀프리지 오픈을 기념해 오직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세 가지 컬러 ‘아픽스(Afix)’ 선글라스가 그것이다. 미러 블루 렌즈와 핑크, 옐로 틴트 렌즈로 셀프리지를 상징하는 노란색 패키지와 블랙 케이스에 담겨 판매 중이다.

지구 밖의 외계 생명체와 지구 안의 초자연적 힘을 상징한 젠틀몬스터의 ‘런던 콜링’. 모두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실로 자주 접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려는 젠틀몬스터의 도전을 상징한다. 단순히 움직이는 조형물로서 외계인이 전부가 아니다. 이들이 지구에 착륙했으니, 프로젝트는 이제부터다. 이름부터 ‘주연’임을 암시하는 힌트가 진작에 숨어 있지 않나. ‘젠틀(점잖은) 몬스터(외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