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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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병이라 부르지 못하는 병

2018-10-04T20:56:47+00:00 2018.10.05|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병이란 게 있나. 스스로 자초한 병은 또 어떤가. 우리 여자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에 산다. 그런 세상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업무상 양해를 구해야 할 때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라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한다. “충치가 생겨 치과에 다녀오겠습니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정형외과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처럼. 하지만 산부인과에 가야 할 때 고유명사는 대명사가 되고 소신 따위도 흐지부지된다. 똑 부러지던 문장은 이렇게 바뀐다. “병원 들렀다 출근할게요.” 문득 10년 전 풍경이 떠오른다. 그때도 나는 ‘당신이 산부인과에 가야 하는 이유’ ‘질염은 감기와 같은 것’ 같은 기사를 매달 써댔는데 정작 후배는 자궁에 생긴 바이러스 때문에 산부인과에 다녀온 후 편집장으로부터 “결혼도 안 한 어린애가 어쩌다가…”라는 말을 들었다. 혹시 세상이 바뀌었나 싶어 25세 후배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산부인과에 다니지 않는 친구는 없어요. 하지만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진 않죠. 엄마도 뭐 좋은 일이라고 남들한테 말하냐고 하세요. 남자애들한테 말하면 ‘그런 게 자꾸 왜 생겨? 관계할 때 제대로 신경 안 썼어?’ 같은 대답이 돌아와요. 반박하기도 지쳐서 그냥 입을 다물고 말죠.” 지금 나는 질염을 ‘감기처럼’ 달고 산다는 이유로 “성관계가 문란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들 정신적으로 타격이 없을 만큼 여성 질병에 대한 지식이 쌓여 있다. 출산 경험도 있는 기혼 여성이기에 자궁이나 생식기에 병이 생겨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서 밝혔듯 여성 질환을 드러낼 때 일말의 망설임을 느낀다. 검은 봉지 속에 들어간 생리대처럼 여성 질환은 감춰야 하는 것, 은밀한 것, 부끄러운 어떤 것으로 느끼게끔 하는 사회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모두 그랬으니까.
이렇듯 어떤 질병에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이 달라붙는다. 신경정신과 질환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더 폭력적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지인은 과거 회사에서 병명을 밝혔다가 사람들이 자신을 뒤에서 ‘정신병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이직한 회사에서 그녀는 절대 아프다는 걸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20층에 위치한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걸어 다니면서도 약봉지는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놓는다고 했다. “정당하게 업무상 화를 내도 정신병이 있어서 화낸다고 할 것 같았거든요. 당시 파트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부하 직원들이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고요. 최근엔 정신 질환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다고들 하는데, 글쎄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회사에서도 이해해줄까요?” 신경정신과 질환을 둘러싼 가장 큰 편견은 ‘정신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저 정도 스트레스도 못 견뎌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 ‘멀쩡해 보이는데 왜 저렇게 유난이야? 꾀병 아니야?’ 타인의 상황을 평가하며 ‘정신이상자’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정신 질환의 대부분은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의사들은 약물 치료를 해야 하는 병이라고 강조한다. 뜨끈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 한 바가지 흘리면 감기 몸살을 떨쳐낼 수 있다고 믿는 대한민국에서 정신 질환은 각자 ‘정신’이 해결해야 할 일로 여겨진다. 최근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인기 요인은 정신과 치료를 궁금해하지조차 못하던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 질환은 이해는커녕 절대적으로 숨겨야 하는 질병이다.
타인의 관심은 결국 ‘왜 걸렸나?’ , 즉 질병의 원인에 집중된다. 평생 연애를 안 해서 유방암에 걸렸다, 아무하고나 섹스를 해서 자궁에 탈이 났다, 스트레스를 제때 안 풀어줘서 우울증을 달고 산다는 식의 이야기. 서사 속에서 원인 제공자는 늘 병에 걸린 당사자다. 질병은 자기 관리로 피하거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데 개인이 잘못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촌 동생이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을 때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안 먹고 빼빼 마르더니만 결국…” 갑상선암과 ‘마른 몸’은 대관절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이렇게 사고하게 된 역사는 깊은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질병은 잘못한 인간에게 신이 내린 천벌’이라는 믿음에까지 다다른다. 고대 종교에는 잘못 살아온 결과 질병을 얻었다는 인과응보 스토리가 존재했다. 16~17세기에는 행복한 사람은 페스트에 걸리지 않는다 여겼고 19세기에는 과도한 활동과 긴장 때문에 암에 걸린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는 질병에 걸린 개인이 스스로를 탓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숨겨야 할 병이 생긴다. 개인의 허물은 덮어야 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은 저서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결핵과 암을 꼽으며 우리가 얼마나 이런 질병을 신화로 만들어놓았는지 밝힌다. 왜 결핵이 아름답고 숭고한 병이 되었는지, 왜 암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 우울증은 남다른 데가 있는 감성적이고 창조적 존재가 걸리는 병으로 여겨졌는지 증거를 찾아간다. 증거는 대부분 문학가들에게 발견된다. 이들은 죽음조차도 결핵은 기품 있고 평온하게, 암은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묘사하곤 했다. 손택은 신체에 가해진 해석에 반대한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어떤 질병에 낙인을 찍으며 좀더 나아가서는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어놓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목소리에도 불구,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치료 방법이 발달할 때도 대상만 바꿔가며 꾸준히 발전해왔다.
질병과 관련된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뒤지다가 발견하게 된 불편한 진실도 있다. 여성 질환과 정신 질환은 의학적으로 연구가 가장 소홀하던 분야다. 1990년까지도 의학은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연구해왔다. 연구소의 실험용 쥐조차 수컷이었다. 여성학에서는 과거 의학에서 남성과 여성의 몸은 임신, 출산의 생리적 기능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동일하다고 가정했다고 비판한다. ‘정상적인 몸’은 ‘성인 남성의 몸’이라는 전제는 수많은 오류를 낳았다. 여성들의 질병은 잘 드러나지 않았고 잘못 치료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 6월 BBC는 “오늘날에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효과적인 진통제를 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의료 산업이 여성의 고통을 무시해온 오랜 역사가 있음을 말한다. <허핑턴 포스트> 역시 “여성에게 건강염려증이 있다는 편견 때문에 섬유근육통, 외음부통 등 여성들이 많이 걸리는 병은 정신병학적으로 간주하며 의학적으로 연구하지도 않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유독 여성 질환에 걸렸을 때 21세기 현대인이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를 검사한 후 “X번, XX번, XX번에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치료법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었고, 가드네렐라, 유레아플라즈마 따위의 발음하기도 힘든 바이러스에 시달렸지만 단 한 번도 원인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들어본 적 없다. 원인이 복합적이라 그럴 수 있지만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1년 넘게 월경이 멈추지 않았던 지인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 배란통에 시달리던 또 다른 지인도 늘 병원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여자들의 몸에는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몇 달 전 인터뷰로 만난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은 월경에 대한 연구의 역사가 짧아서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저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에서 남자가 월경을 했다면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했을 것이라며, 월경은 남자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권위의 표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질병으로부터 스토리텔링을 걷어내기 위해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여성의 질병은 의학에서 우선순위로부터 밀려났고 무지는 편견이 들어설 수 있는 여지를 태평양처럼 넓게 제공했다.
내 몸을 잘 알고 긍정하자는 ‘보디 페미니즘’ 물결에 조금씩 개안하고 있는 요즘, 질병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는 편견에 대해서도 숙고해보면 좋겠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픈 데는 ‘백만스무’ 가지 이유가 있고, 아픈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은 “병은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편견이 심한 병일수록 이해해주는 사람이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치료에는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됩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제때 치료 시기를 놓쳐 더 아프고 싶지 않다. ‘숨기고 싶은 여성 질환 질염’ 같은 기사 제목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자궁근종을 자궁근종으로, 신경쇠약을 신경쇠약으로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유방암, 자궁암으로 오랜 시간 투병한 수전 손택은 말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