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버질 아블로

2018.10.10

by VOGUE

    버질 아블로

    우리 시대 패션 신전을 지킬 수호자 7인! 과거와 분리된 채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일곱 위인을〈보그〉가 만났다.

    버질 아블로와 벨라 하디드가 파리에서 포즈를 취했다. 벨라가 입은 저지 소재 드레스와 스니커즈는 오프화이트(Off-White).

    버질 아블로는 분주했다. 나는 그와 함께 루이 비통 파리 사무실 위층에 앉았다. 사무실이 자리한 스튜디오에는 스케치가 널린 작업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간중간, 그는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은 채 사무실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녔다. 전날, 아블로는 2019 S/S 패션쇼를 화려하게 치렀다. 지난 3월 남성복 총괄 디자이너로 발탁된 후 첫 쇼였다. 역사에 기억될 만한 일을 해낸 다음 날 아침이니 그는 초조할 만했다. 아블로는 루이 비통 164년 역사에서 남성복 라인에 입성한 첫 흑인 디렉터다. 게다가 뉴욕도 아닌, 일리노이주 록퍼드 출신이다.

    지금까지 패션계에서 아블로는 이 시대 소비자에 대해 꿰뚫고 있으며 미디어를 잘 주무르는 선동가로 알려져 있다. 용도를 바꾸고 완전히 개조해 사진발이 잘 받는 쿨함을 이끌어내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Shoelace(신발 끈)”(따옴표까지 그대로)라는 라벨이 붙은 끈 달린 하이엔드 스니커즈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브랜드와 활기차게 협업을 이어가고 있지 않나. 나이키, 무라카미 다카시, 지미 추, 몽클레르에 이어 최근에는 이케아까지.

    그가 멋을 결정하는 주체로서 명성과 인지도를 쌓은 것은 아블로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성공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루이 비통과 다르다. 이 브랜드는 젊은이의 장난스러움, 팝 디자인 특유의 거친 감각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 브랜드가 과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며 주류 패션 브랜드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LV 모노그램에 열광하던 세대처럼, 운동화 마니아들과 스타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오프화이트의 시그니처 대각선 스트라이프와 역설적 따옴표를 패션의 암호,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처럼 여긴다. 2018년 현재 이 브랜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460만 명 이상이다.

    “저는 명성이 자자한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보이지는않죠.” 아블로가 내게 말했다. “디자이너처럼 보이지않아요.” 10년 넘게 패션계에서 일하는 알렉산더 왕보다 더 많은 협업을 통해 품절 신화를 기록했으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끝낸 지 얼마 안 된 지금,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아마 어제 오후 제 자신을 디자이너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디자이너라는 생각이 드네요. 98% 정도요.”

    37세의 아블로는 가나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스케이드보드를 즐기고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으며 자랐다. 지금도 얼핏 그 스타일을 즐기는 듯했다. 직업적으로 부모가 바라는 대로 따랐다. 그래야 주말마다 자유롭게 DJ로 활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DJ로 일한다. “아버지는 엔지니어가 되길 바라셨죠. 그런데 저는 스케이트보드에 빠져 지내고 힙합을 듣고 폴로 사탕을 먹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죠.” 패션계에 입문하자마자 아블로는 인스타그램과 텀블러 같은 SNS에서 많이 주목받고 회자되는 인기 유명인들 뒤에서, 그들의 마음속에서 빠르고 영리하게 지평을 넓혔다. 브랜드와 이미지에 대해 대놓고 관심을 보이는 오늘날 환경에서 리한나, 벨라 하디드, 저스틴 비버, 아블로의 절친인 칸예 웨스트 같은 슈퍼스타들의 스타일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기 마련이니 말이다.

    아블로처럼 애초에 경력 면에서 급진적 간택을 받은 사람들은 뭔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사실, 그는 패션이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건축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유명 브랜드 회사에서 밑바닥부터 일을 거들며 커리어를 닦은 사람도 아니다. 프린트 티셔츠를 판매하다가 웨스트를 도와 일하던 철저한 패션계 아웃사이더였다. 나는 그가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만나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호의적이고 기민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머리 위로 하얀 후드 티셔츠의 모자를 눌러쓴 채 숨 가빠하는 모습이 보였다. 당연했다. 패션 위크 기간 동안 패션쇼를 준비하는 것은 하나의 팀이 헤라클레스 같은 괴력을 퍼부으며 애써야 하는 일이니까. 오프화이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동시에 올해 파리 패션 위크에서 패션쇼를 치른 아블로야말로 지난 한 주간 신들만이 지내는 올림포스산에 제대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 그의 삶이다. ‘삶들’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두 자녀를 둔 아버지, 아블로에게 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무표정하게 말한다. “저는 굉장히 체계적인 사람이라 가능해요. 그리고 열정! 열정이 바로 그 원천입니다.”

      에디터
      K. AUSTIN COLLINS
      포토그래퍼
      게오르기 핀카소프(©Gueorgui Pinkhassov), Magnum Photos / Euro Photos
      모델
      벨라 하디드 (Bella Hadid @IMG Models)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