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신한류 계급주의

2023.01.30

by VOGUE

    신한류 계급주의

    〈프로듀스〉와 〈쇼미더머니〉는 음악 방송이 아니다. 그들이 전시에 주력하는건 신분 상승의 사다리다.

    <쇼미더머니트리플세븐> 첫 회에서 진행자들은 이 시리즈가 한국사회, 문화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며 BJ(인터넷 방송진행자)와 래퍼가 요즘 학생들 장래 희망 1순위를 다툰다고, 놀랍다는 투로 전했다. 대학에 힙합 전공이생기고 랩 학원이 있는 현실에 출연자들조차 헛웃음을 짓는다.(물론 대한민국에는 BJ학과와 BJ아카데미도 존재한다) ‘역대급’이라는 관계자들의 자화자찬이무색하게 평가전 참가자들이 죄다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잘났고 무조건 떼돈 벌 거임’이라는 뻔한 가사를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걸 보면 교보문고에서 <국힙 랩 메이킹의 정석> 상(上), 하(下) 편도 절찬리에 판매 중일거 같다.

    돈과 명예가 보장된 일자리에는 매뉴얼화된 경쟁 시스 템이 도입되고, 그 경쟁을 통과하기 위해 사교육 시장 이 형성되는 게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이다. 더구나 그 돈과 명예라는 것이 계급의 사다리를 단숨에 뛰어오 를 만큼 압도적 규모라면 말할 것도 없다. 조선시대 과 거 시험과 20세기 사법고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집안 의 장남들이 청춘을 갈아 부었던가. 그런데 요즘은 아 이돌과 힙합 가수가 정치인과 법조인을 대신하고, <프 로듀스 101> 시리즈와 <쇼미더머니> 시리즈가 국가고 시를 대체하는 모양새다. 난립하던 고만고만한 음악 경쟁 프로가 몇 시즌째 변변한 스타를 못 내놓거나 우 승자들조차 데뷔에 난관을 겪으면서 시들해진 데 반 해, 예년 시즌 출연자들이 확실히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준 이 두 프로는 올해도 종교 부흥회를 방 불케 하는 광적인 분위기 속에 개최되었다. 그 광경은 한편으로 두려움과 씁쓸함을 자아냈다.

    최근 막을 내린 <프로듀스 48>에서는 “데뷔해서 가족의 고생을 끝내겠다”는 다짐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시즌 1회 출연자 김세정의 “꽃길만 걷게 해줄게”의 다양한 변형이다. 반면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 어떤 퍼포먼스를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주장은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각각의 미션에서 ‘섹시 컨셉은부담스럽다’ ‘랩은 잘 못하지만…’ 정도의 어필이 있을뿐, 기본은 ‘닥치는 대로 열심히’다. 음악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경쟁 프로에 나왔지만 음악 관련 재능은 전무한 경우도 많고, 있더라도 어필할 이유가 없다.(뭐,그걸 욕하자는 게 아니다. 나의 1픽도 강혜원이었다.서로 절실함을 경주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아님 말고’ 하는 태도가 숨통을 터주는 것 같아 좋았다) 어차피 K-팝 아이돌의 음악성이란 프로듀서에 의해 제조되는 것이고, 자신들은 몇 가지 정해진 캐릭터 타입 중하나를 골라 충실히 연기만 하면 된다는 걸 출연자 모두가 정확히 인식한다. 이미 기획사가 있는, 반쯤 만들어진 연예인이 참가한다고는 하지만 분홍색 아동복사이즈 교복을 입고 군무를 추는 참가자 100여 명 중단 한 명도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표준 체중 이상으로보이는 여자가 없다는 건 놀랍지도 않다. 성격도 철저히 기획된다. 센터 자리를 두고 매번 감정싸움이 벌어지긴 하지만 누구도 “이 X년아, 너는 나보다 못하고 인기도 없으니까 짜져 있어!”라며 남의 머리채를 잡지 않는다. 그건 한국 대중이 여자 아이돌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건 대기업 입사 시험이나 고시처럼 답이 정해진 게임이다.

    <쇼미더머니> 시리즈에서는 나름 튀는 캐릭터도 나오고 욕설도 오가지만 그 역시 ‘힙합=거친 미국 뒷골목문화에서 유래한 장르’라는 이미지 때문에 만들어진공식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얽힌 사연이 아무것도없는 참가자들을 대뜸 붙여놓고 서로 욕해보라는 ‘디스전’의 끔찍한 민망함과, 이겨보겠다고 말로는 센 척잔뜩 해놓고 막상 무대가 끝나면 눈길 피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벌써 여섯 시즌 동안 봤다. <프로듀스> 시리즈에 비해 실력이 결과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요구하는 캐릭터가 정반대라서 간과하기 쉽지만 여기도 엄연히 정해진 룰이 있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회사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신입 사원처럼 착실함을 발휘하여 유치한 미션도 극복하고 내키지 않는비트에도 랩을 하고 어울리지 않는 홍보 영상도 찍어야 한다. 총기도 약물도 없는 가족 시청 등급 클린 힙합 오락 방송 <쇼미더머니>에는 돈 많이 벌어서 고생한 울 엄마 호강시켜주고 싶다고 울부짖는 효자들도넘쳐난다.

    모든 게 유치하다거나, 힙합 정신에 어긋난다거나, 우스꽝스럽다고 욕하던 래퍼들도 하나둘 백기를 들고이 비옥한 경작지로 투항하고 있다. <쇼미더머니 트리플세븐> 첫 평가전에서 참가자 루피는 “예전에 <쇼미더머니> 나오는 래퍼들을 XX(방송사 자체 비음 처리)같다고 욕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프로듀스로 참여한 스윙스는 “(초창기 참가자로서) ‘X 같다, 구리다’는말 듣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구리다고 생각했다가 왜마음을 바꾸었나?”라고 따졌다. 루피는 부끄러운 듯몸을 꼬며 답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저만의 길을 가려고 노력해봤고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결심을했다.” <쇼미더머니>의 그늘 밖에서 힙합 하기가 춥고배고팠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나플라는 루피의 이 구차한 문장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간 짧은 시간에 곡을 쓰고 가사를 외는 게자신 없어서 <쇼미더머니>에 못 나간다던 그는 왜 출전했느냐는 질문에 환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돈벌려고요.” 그렇다, 결국 관건은 ‘돈’이다.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애초 제목에서부터 ‘돈’으로당신들의 열정에 보답할 거라고 뚜렷이 밝혔다. 하지만 제작진도 이 정도 성공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다.여러 시즌을 거치면서 힙합 신 안에서 언더와 오버의경계가 무너지고, 힙합이 K-팝과 더불어 한국에서가장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으며, 출연자들이 돈방석에 오르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다른 분야 연예인들이 수입을 쉬쉬하는 데 반해 힙합 스타들은 경쟁적으로 부를 자랑한다. 비싼 차, 좋은 집, 현금 다발을자랑하고, 돈 없어 고생하던 우리 집안을 내가 일으켜세웠노라 감회에 차서 노래한다. 그것은 신분 이동이불가능에 가까워진 현재 대한민국 계급 시스템 안에서 ‘흙수저’라 자조하는 청년들이 목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다.

    70년대 시골 노인들은 논 팔고 밭 팔고 딸들 인생과노동력까지 팔아서 아들 하나 공부시키면 그럭저럭형편이 펼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80~90년대 젊은이들도 대학만 졸업하면 혹은 공부를 못해도 본인이노력만 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성공은 아니어도 반듯한 직장 구해서 가족을 건사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소위 일류 대학은 걸음마 뗄 때부터 사교육 빵빵하게 받은 부잣집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학자금 대출 받아가며 졸업해봤자 취직은 쉽지 않고, 어찌어찌 직업을 가져도 부모 도움 없이 서울에 집을 장만한다는 건 난망한 일이됐다. TV와 영화는 서민들이 제 능력과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인 판검사도 가문과 재력에따라 쭉정이와 알맹이가 따로 있다고 가르친다. 어쩌다 ‘성공 신화’로 포장된 벤처기업 창업자 인터뷰를 봐도 태반은 부잣집 자제거나 세상이 이렇게 폭망하기한참 전에 좋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짜잔, 여기 진짜 흙수저에 ‘찌질이’로시작해서 일확천금을 거머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예컨대 돈 자랑으로 유명한 힙합 아티스트 도끼는 여러 예능 프로에서 “키 작고 혼혈이고 초등학교밖에 졸업 못하고 돈이 없어서 한때 컨테이너에서 살았고 힙합이라는 마이너 장르에서 고군분투하던 나 같은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일로 성공했다는 사실을 통해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것만이 희망이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프로듀스 48> 출연진은 자신들 눈앞에 보컬 트레이너로 앉아 있는 소유가 인생 플랜 B로 네일 케어를 배우던 연습생에서 수십억 원 상당의 건물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십 미디어에서 보았을 거다. 전 시즌을 통해 데뷔한 워너원은 연 매출이1,000억원에 이를 거라는 추정 기사가 나온다.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신화가 있다는 것,롤모델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K-팝은 이제 세계에서 통하는 문화고, 서울은 아시아의 할리우드로 진화하고 있다. 아이돌과 래퍼들은 살벌한 경쟁에서 승리해 이 치열한 산업에서 한자리를 차지한 자들이다.그들은 ‘영 앤 리치’의 모든 조건을 가꿨고, 성공을 즐길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게 이 나라 젊은이들이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프로듀스 48>에서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나는 꼭 데뷔해서 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하는 소녀들을 보면서 내내 입이 쓴 건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춤추고 노래하는 게 좋아서’라면 또 모르겠다.때로는 뚜렷한 재능도 없고 외모도 고만고만하고 이상황을 즐기는 것 같지도 않은 아이들이 어째서인지덜컥 아이돌 연습생의 길로 빠져드는 바람에 카메라앞에서 눈물 바람을 하고 있다. 임춘애가 라면만 먹고뛰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 따던 1980년대도 아니고,요즘 세상에 이 무슨 처절함인가. 그렇다고 대중이‘아, 이제 사연팔이도 식상하고 너무 절박한 건 보기힘들어. 정말 즐기는 태도가 보고 싶어’라고 하면 그것역시 하나의 공식이 되어 스타 지망생들을 억압할 것이다. 아마도 가장 바람직한 건 엔터테이너들이 정말엔터테이닝할 수 있는, ‘이것이 아니어도 괜찮아’라는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겠지만, 이 나라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쇼미더머니트리플세븐>에서도 “성공하고 싶어욤. 우히힝” 말고다른 메시지가 있는 아티스트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 이게 다인가, 우리가 타고 오를 사다리는?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이현석
    글쓴이
    이숙명(칼럼니스트)
    스타일링
    한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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