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혼자라서

Fashion

혼자여서, 혼자라서

2018-10-26T14:31:10+00:00 2018.10.30|

소셜 네트워크와 팬덤에 기대는 가요 차트에서 싱어송라이터란 1인 섬은 작아도 굳건하다. 에디킴의 앨범에서 에디킴이 아닌 것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이너로 입은 터틀넥과 그래픽 티셔츠는 펜디(Fendi).

가요계에서 에디킴의 ‘포지션’은 흔히 ‘고막 남친’으로 분류된다. ‘너 사용법’ ‘밀당의 고수’처럼 제목부터 달콤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노래, 욕심내지 않고 속삭이듯 불러주는 목소리, 다른 악기도 아닌 기타 연주. ‘고막 남친’은 오래전부터 가요계 유행과는 별개로 꾸준히 소비되는 영역이다.

하지만 에디킴을 그렇게 한정 짓기 전에 앨범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너 사용법> , 이번에 내놓은 까지 세 개의 EP 앨범, 18곡 모두 작사, 작곡, 프로듀싱, 보컬을 맡았다. 는 자이언티 ‘양화대교’의 작곡가 서원진, 재즈 뮤지션 윤석철, 치즈의 전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 구름, 김동률 ‘답장’ 편곡자 정수민과 함께 “하나부터 열까지 결정의 연속”을 겪어내며 만들었다. 달콤한데 능력도 있는 남친이라고 해야 하나. “어느 하나 포기가 안 돼요. 보컬로만 참여하면 더 잘 부를 것 같고, 프로듀싱만 하면 더 잘할 거 같은데 말이죠. 하나하나 에디킴만의 명반을 만들고싶은가 봐요. 그래서 앨범 발매가 늦어진 것도 있고요.”

셔츠를 변형한 티셔츠는 3.1 필립 림(3.1 Phillip Lim).

는 3년 9개월 만의 앨범이다. 그렇게까지 오래됐나, 에디킴도 소속사도 놀랐다. “3박자가 맞는 곡을 앨범에 넣고 싶어요. 내 마음에들고, 대중이 좋아할 것 같고, 에디킴 고유의 감성이 이어지는 곡을요. 한때 펑크에 빠져서 만든 ‘팔당댐’을 싱글로 발매한 것도 곡은 좋아도 앨범의 흐름에 이어지지 않았거든요.” 자기 검열을 하다 보니 는 20대의 마지막 앨범이 됐다. “그 말을 듣고 ‘팩트 폭격’ 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서른이 뭔지, 이 숫자 앞에선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데, 에디킴은 음악으로 회상한다. 예를 들어 에디킴이 20대 초반에 쓴 곡은 사랑의 시작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달콤하고 안절부절못한다. 너 사용법(“가끔 한 번씩 무작정 키스해주시오. 이유 없이 너에게 빠진 그날처럼”), 밀당의 고수(“오늘도 헷갈려 문자는 신경 쓰게 해놓고. 또 만날 땐 여느 때보다 밝아”)가 그러하다. “문자 보내놓고 언제 답 오나 기다리고, 밀당하면서 설레고, 그런 사랑을 했더라고요. 이게 내 삶의 큰 이슈였구나 새삼 놀랐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번 앨범만 해도 이별 얘기예요.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서 앨범명을 ‘Miles Apart’라고 지었어요.”

네이비 컬러 저지와 하늘색 팬츠는 발렌티노(Valentino).

에디킴은 사랑뿐 아니라 삶의 태도도 변했다. “이전이 바다라면 지금은 호수죠.” 이전에는 “야망과 열정의 학생”이었다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스로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기숙사 생활과 홈스테이를 하며 혼자 타지 생활을 했다. “모험심이 강했던 것 같아요. 최고의 뮤지션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아무도 안 시키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했어요. 악에 받쳐 매일 초롱초롱하던 시절이었죠.” 지금도 여전히 꿈은 꾸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룰지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편이다. 그는 “좀더 차분해졌다”고 덧붙였다. 활동 기간이 아닌 때의 일과를 봐도 잔잔하다. 일어나면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카페에 갔다가 작업실에서 밤을 새우곤 한다. ‘베짱이’란 별명은 반기한다. “영혼을 갉아먹으며 작업하고 있는걸요. 나서서 드러내지 않을 뿐이에요.” 영감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얻는다. “작업실에 앉아 명상 비슷하게 생각에 잠기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크리에이티브’해지는 것 같아요.” 혼자 앉아 지나간 사랑을 되짚는 그림이 좀 처량해 보이지만, 뮤지션은 자기 경험을 꺼내서 리메이크하는 직업이기도 하니까. 여타 싱어송라이터들이 그러하듯 에디킴도 이별 중에 “이거 역대급으로 슬픈데”라면서 감정을 기억하려고 하고, 귀에 걸리는 말은 휴대전화에 메모하고 후에 가사로 쓴다. 그는 일상과 사랑의 결정적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자기주장보다 순간의 감정을 노래로 쓰기 때문이다. “제 곡은 주관을 담지 않아요. 래퍼들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얘기를 쓰잖아요. 저는 그 순간에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표현하려고 해요.”

이너로 입은 터틀넥과 그래픽 티셔츠는 펜디(Fendi).

이번 앨범에 대해 소속사의 수장인 윤종신은 “손댈 것이 없다”고 평했다. 에디킴은 “그럼에도 가사는 더 신경 쓰라고 하셨죠”라면서 웃었다. 작사가들이 그러하듯 에디킴도 며칠씩 단어 하나를 곱씹고, 여러 의견을 물어보고 다닌다. 앨범의 수록곡 ‘달라’는 ‘블루 랍스터’가 될 뻔했다. “‘달라’라는 제목이 너무 뻔하지 않나 고민하다 파란색 랍스터가 잡혔다는 뉴스를 봤어요. 제가 <더 랍스터>라는 사랑 영화를 감명 깊게 보기도 했고, 이 곡이 ‘너는 굉장히 스페셜해, 누가 와도 너를 대신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 ‘블루 랍스터’로 바꾸고 싶었죠. 근데 주변에서 다들 말리더라고요. 여자한테 스윗하게 불러줘야 하는데, 랍스터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냐고요.(웃음)” 에디킴은 음악에 있어서는 피드백이 열려 있다. 곡을 발표하면 유머 사이트에 달리는 댓글까지 죄다 읽는다. “나에 대한 평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음악에 대한 얘기는 하나하나 들어요. 제 앞에서는 좋다고밖에 못하잖아요. 진짜 솔직한 얘기는 그런 데서 나오죠.”

아이러니하지만 그의 또 다른 꿈은 대중과는 무관한 앨범을 만드는 거다. “뮤지션이라면 대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예를 들어 듣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려고 높은 키의 구간을 넣기도 하죠. 하지만 언젠가는 누가 듣든 말든 완전히 독보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미국 ‘SNL’의 무대처럼 완전히 컨셉추얼한 공연도 꾸미고, 일본이나 유럽, 미국에서 활동도 하고 싶어요. 이렇게 계속 또 다른 에디킴이 나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