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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스타 BTS를 받아들이는 자세

2023.02.20

by VOGUE

    월드 스타 BTS를 받아들이는 자세

    빌보드 차트 점령, 미국 투어, 유엔 연설, <타임>지 ‘차세대 리더’ 특집호 커버 등, 한 달 새 방탄소년단(BTS)의 업적은 ‘방탄 올림픽’이라도 열린 듯 압도적이다. 미국 뉴욕에서 온몸으로 느낀 BTS의 인기에 대하여.

    BTS 미국 투어를 두고 미디어는 저스틴 비버나 원 디렉션을 넘어 비틀스를 비교 대상으로 소환하느라 바빴다. 한국 음악이 슈퍼 스타덤을 차지한, 세계 팝 역사에서 특별한 순간임이 분명했다. 동시에 미국 방송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그들을 보며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화려한 댄스로 무장한 댄스 팝 가수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요 근래 미국에선 댄스 뮤직이 거의 실종 상태다. 충성스러운 팬클럽 아미(Army)는 알고 보면 동시대에 필요한 엔터테인먼트가 무엇인지 가장 빠르게 알아챈 영리한 소녀들이 아닌가. 방탄소년단의 부상은 근래 영어권 팝 시장의 재미없음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하이엔드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팝 스타로 아리아나 그란데, 비욘세, 케이티 페리가 떠오르지만 이들은 유튜브에 매주 업데이트될 만큼 콘텐츠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이슈 메이커였던 레이디 가가는 차분해졌고, 매번 홈런을 치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드레이크는 퍼포먼스 면에서는 심심하다. 흥이 식어버린 팝보다는 젊은 아티스트가 연일 등장해 새로운 선언을 쏟아내는 힙합이 미국에선 훨씬 다이내믹한 장르다.

    개인의 취향과 상관없이 댄스 뮤직이 언제나 대중문화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다. 힙합, 록, 알앤비, 발라드 장르 관계자가 항의할 발언이지만 누구나 의지와 상관없이 외우는 오랜 댄스곡 몇 곡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팝 음악이 부재한 지금, 미국 10대들은 지리멸렬하게 지속되는 <더 보이스>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달콤한 남자 가수들도 계속 등장하지만 재미 면에서 BTS에게 맞서지 못한다. 팬과 긍정의 언어로 친근하게 소통하다가 노래만 부르면 카리스마 충만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BTS 같은 팝 그룹은 전무후무하다. 음악은 가볍게 들려도 굉장히 전략적이다. 빌보드 차트 이후부터는 피처링도 적극 활용하며 본격적인 팝 실험에 나선다. ‘아이돌’ 뮤직비디오는 K-팝이 ‘팝’이 될 수 있는 모델을 당당하게 제시한다. 지금 제일 핫한 EDM 사운드에 맞춘 힙합 댄스 뮤직, 이국적인 양념을 더하는 한국식 추임새, 발리우드급의 총천연색 다이내믹 군무가 현란하게 어우러진다.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MIC Drop’처럼 독창성을 인정받고 쿨한 입지를 유지하는 데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어느 팝보다 재미있는 음악이다.

    서양음악이 비용 대비 수익성 좋은 디제잉 퍼포먼스 트렌드를 좇는 동안 K-팝은 퍼포먼스 기반 팝 뮤직의 한길을 걸어왔다. 한국인들은 쏟아지는 댄스 뮤직으로 결핍을 겪을 시간이 없었지만 밝고 명랑한 음악에 굶주린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유튜브를 방랑하며 K-팝의 신세계를 마주했다. 여기에 현재 미국에서 중시하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더했다. 뉴저지 콘서트로 BTS를 처음 접하고 그들의 완성도 높은 팝에 놀란 일본 친구이자 팝 저널리스트 나카무라 아케미는 이 점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연출과 공연, 익숙한 팝 요소를 가지고 독자적으로 잘 완성해낸 음악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라니, 지금 시기에 딱 맞는 보편적 메시지다. BTS의 인기는 우리가 다른 문화에서 다른 언어로 산다고 해도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하는 측면도 있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처럼 인종적 다양성을 반영한 콘텐츠가 나날이 기록을 경신하는 시점에 방탄소년단의 미국에서 인기는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문화 현상으로 이해된다.

    미국이 BTS 현상을 다각도로 소화하는 한편, 세상 사람들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오히려 한국인들이 적응하지 못한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월드 스탠더드가 된 세상에 ‘두 유 노우 BTS?’라고 묻는 것도 멋쩍다. 일시적 유행이라며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황은 불쑥 튀어나온다. 어느 날 한국 상점가를 같이 지나가던 중국 지인이 흘러나오는 노래에 “오늘 ‘Fake Love’를 듣다니 정말 운이 좋다”며 흥분했을 때 나 또한 멈칫했다.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이 일상적 대화에 거침없이 끼어드는 BTS 토픽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기존 K-팝과 다소 다른 BTS 음악 세계’ ‘스티브 아오키 피처링이 미친 영향’ ‘두 유 노우 싸이’ 등등을 준비하며 머리를 굴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대신 차분하게 세계의 핫한 유행어로 답하기로 결심했다. 한국말로, 또박또박, 분명하게. “그래, 우린 영원히 함께니까.” 곧바로 그녀는 말했다. “디엔에이.” 그러니 소통은 걱정하지 마라. BTS와 K-팝 덕분에 음악이 언어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홍수경(칼럼니스트)
      사진
      GettyImagesKorea
      에디터
      조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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