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대안운동

2018.11.09

by VOGUE

    대안운동

    젠더, 유행, 마케팅에 갇힌 운동만 하고 있는가. 트라이애슬론은 이들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고려할 만하다.

    “트라이애슬론은 새로운 할리 데이비슨이다.” 핀란드 전임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Alexander Stubb)가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할리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것보다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것이 더 ‘쿨한’ 시대라 주장하고 있다.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연속으로 치른다. 철인 3종 경기로도 불린다. 종주 거리에 따라 코스가 여러 개다. 수영 3.9km, 사이클 180.2km, 마라톤 42.195km의 아이언맨 코스와 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의 올림픽 코스가 주다. (저 숫자가 맞다.) 수영과 달리기를 결합한 아쿠아 애슬론, 수영  산악자전거  트레일러닝으로 구성되는 엑스테라 트라이애슬론 등 변형 경기도 많다. 어떤 종류든 경이롭다. 같은 디자인의 수영모(유니폼 역할을 한다)를 쓴 수백 명이 바다로 뛰어들 때의 파동, 미친 듯 자전거 페달을 돌려 터질 듯한 허벅지, 마라톤 결승점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는 참가자들.

    평창 동계 올림픽 때 ‘크로스컨트리 스키 50km 단체 클래식’을 관람했다. 설원 위의 마라톤이라는 별명만 봐도 그려지지 않나. 선수들은 팀원에게 바통을 터치하는 즉시 쓰러졌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멀쩡히 걸어서 퇴장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관중석에서 그들의 무한한 체력과 정신력을 ‘리스펙트’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처럼 트라이애슬론도 내게는 경기장과 관중석, 하는 자와 보는 자처럼 두 개의 세계였다. 물론 나는 후자다.

    그러다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을 읽었다. 부제는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다. 책상머리에서 심신이 망가진 편집자가 운동으로 인생을 바꾼 이야기다. 그녀는 트라이애슬론 마니아다. 확실히 요즘 여성은 운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희열과 자존감을 느낀다. 하지만 요가, 필라테스처럼 정적인 운동 위주다. 마흔 넘은 여자의 트라이애슬론이 신선했다.

    물론 5~6년 전 ‘꿀벅지’라는 괴이한 단어가 나올 만큼 근육 있는 여성이 각광을 받으며 유승옥, 정아름 등의 스타가 나오고, 웨이트 트레이닝이 인기를 얻었다. 우리는 수십만~수백만 원을 지불하며 PT의 세계로 진입했다. 나 또한 ‘하우스 푸어’를 패러디한 ‘피트니스 푸어’라는 기사를 쓸 정도로 일대일 PT에 10개월간 가산을 들였다. 이젠 그 유행도 한풀 꺾이고, 많은 여성이 요가로 회귀하거나 필라테스에 발을 들인다. 나 역시 요가와 필라테스 개인 강습을 시작했는데, 첫 수업에 ‘몸 품평’ 혹은 ‘보디 디자인’을 하면서 허벅지가 거론됐다. “앞 허벅지의 튀어나온 근육을 재정비해야겠어요.” 오랫동안 잘못된 PT를 받은 탓이라고 했다. 나는 PT 강습료보다 두 배 오른 회당 8만8,000원을 지불하며 허벅지 근육 해체를 시작했다. 내가 이들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주변에서 여성이 평생 할 운동으로 요가 혹은 필라테스를 권했다. 나 역시 웃기게도 다른 운동은 후보에 올리지도 않았다. 개인에게 맞는 운동이 있지, ‘여성이 할 만한 운동’이란 건 없는데 말이다.

    편집자 이영미는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성성에 갇힌 후배들이 안됐다고 생각했어요. (중략) 단단하고 강한 체력이라면 뚱뚱해도 상관없어요. 세레나 윌리엄스를 좋아해요. 자유롭게 뛰고 포효할 때면 너무 예뻐요.” 한때를 풍미한 미국 드라마 <어글리 베티>의 주인공 아메리카 페레라(America Ferrera)도 2년 전부터 트라이애슬론에 빠졌다.(<위기의 주부들>의 테리 해처와 펠리시티 허프만 그리고 제니퍼 로페즈도 트라이애슬론을 즐긴다) 아메리카 페레라는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찬양한다. “몸매를 바꾸거나 살을 빼려고 운동하지 않아요. 트라이애슬론은 다른 차원이죠. 처음 바다 수영을 한 날처럼 자연으로 멋진 모험을 떠날 수 있어요. 이 경험은 내 몸과의 관계를 바꿨죠.” 그녀는 자신이 트라이애슬론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 운동을 하는 여자를 본 적 없기 때문이죠. 다들 밖에 나가서 엄청난 자연을 경험하고, 내 안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면 좋겠어요. 트라이애슬론이 그런 본능을 일깨울 거예요.”

    특히 그녀는 소녀들이 트라이애슬론으로 내재된 힘을 깨닫길 바랐다. 체육 시간, 똑같은 공을 주고 남학생은 축구를, 여학생은 피구나 발야구를 했다. 우리가 정적인 운동에 매몰된 것은 학습 혹은 세뇌의 결과가 아닐까. 37세 여성 김혼비는 자신의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기절할 만큼 축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어른이 될수록 더 축구를 할 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멋지게도 그녀는 어린 시절 ‘발야구 세뇌’도 당하지 않고, 남성 팀의 맨스플레인도 물리치며 행복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

    사유하는 능력의 호모사피엔스보다는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 필요한 시대다. 우리는 놀이를 잊었다. 놀이는 이해관계나 경쟁 없이 자발적이며 자신에게 집중한다. 놀이의 종류 중 하나가 운동이지만, 현대인에게 운동은 많은 부분 ‘잘못된 학습’ ‘소비’ ‘유행’과 연계된다. 그들에게 벗어나 진짜 놀이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학습돼 거부하던 ‘격한’ 세계라면 더 재미있을 듯하다.

    트라이애슬론 동호회를 알아봤다. 1990년대 국내에 본격 도입된 트라이애슬론은 협회에 등록된 클럽만 150여 개다. 지난여름에만 국내에서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10여 차례 열렸다. 참여자들이 얘기하는 트라이애슬론의 큰 매력은 자연과 교감이다. 호수나 바다에서 수영하고, 시골 풍경을 보며 달리고 사이클을 탄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트라이애슬론 혼성릴레이 은메달리스트이자 경주시청 소속 선수 장윤정이 이 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본래 수영 선수였던 그녀는 실내 수영장에서 종종 폐소공포증을 겪었다. “트라이애슬론의 가장 큰 매력은 답답하지 않다는 거예요. 19세에 강, 바다, 아름다운 산과 평지와 함께 호흡하는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하면서 폐소공포증이 없어졌죠. 저뿐 아니라 다들 자연과 함께하는 운동을 더 찾게 될 거예요. 또 한국만 해도 한 경기에 1,000~1,500명이 참여하는 트라이애슬론은 밖에서 함께 호흡하며 연대를 느끼죠. 젊은이들이 마라톤, 정확히는 마라톤 크루와 대회에 빠진 이유 중 하나도 그거잖아요. 트라이애슬론의 인기는 더 높아질 거예요.”

    그녀는 <보그>를 보는 여자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덧붙인다. “모두 아이언맨 코스나 올림픽 코스를 뛸 필요 없죠. 흔히 바다 수영이 무서워서 트라이애슬론을 시작하지 못하는데, 자전거와 육상만 뛰는 트라이애슬론도 있어요. 팀원 각자가 수영, 육상, 사이클을 맡아서 하는 팀 경기도 있죠. 자신에게 맞는 종류를 선택하면 돼요. 무엇보다 트라이애슬론은 자유로운 운동이에요. 원하는 때 탁 트인 공원에 나가 뛰고, 주말엔 근교로 나가 사이클을 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즐기면 돼요.”

    물론 쉬운 운동은 아니다. 장윤정 선수는 “이렇게까지 힘든데 다른 것쯤은 다 해낼 수 있으리란 기분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마음 수양이 가능하다는 거다. 트라이애슬론 선수들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한다. 스노보더이자 트라이애슬론 종주자인 키미 파사니(Kimmy Fasani)는 자서전에서 명상을 통한 집중, 호흡법도 훈련한다고 밝혔다.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훈련해야 두려움이 사라지죠.” 직장인 정재희는 트라이애슬론으로 우울증을 극복했다. “코스를 치르는 동안 딴생각할 여유가 없죠. 다른 의미의 명상 같아요. 애써 잡념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절로 나만의 세계로 들어서죠. 또 격한 운동을 치르기 위해 술도 줄이고 몸 관리를 하면서 정신도 맑아져요.” 그녀는 해마다 5~6차례의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출전한다. 실리콘밸리를 주축으로 수많은 명상법이 유행을 탄다. 하지만 명상을 정적인 테두리에 가두고 있진 않은가. 트라이애슬론은 다른 의미의 명상을 제안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라이애슬론 종주자는 올해 89세의 메리 도로시 뷰더(Marie Dorothy Buder)다. 52세에 처음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출전했고, 75세에 아이언맨 코스를 달성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나이를 생각하지 마세요. 몇 살처럼 느끼는지에 집중하세요.” 트라이애슬론은 젠더, 나이 같은 고정관념을 부수며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다음 시대의 운동이 될지 모른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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